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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비건 ^소비^ 안 하기를 넘어

[특집'비거니즘' 여는 글] 편집장 상민 

“감사합니다! 저희가 설문조사 참여해주시면 새콤달콤 드리고 있거든요~”

“서비스로 야쿠르트 넣어드렸습니다:) 별 5개 부탁드려요!”

“상민 씨 초코파이 왜 안 가져가세요? 잔뜩 남았어요!”


비건 지향 생활을 하며 곤란한 순간 중 하나는 비건이 아닌(논비건) 음식들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내 손에 쥐어지는 순간이다. 때로는 아예 안 받고, 때로는 받아서 친구나 가족에게 주고, 때로는 그냥 먹는다 (뭔가 자존심이 상해서 ― 그들이 나중에 내가 비건이라는 걸 알고 근데 그때 왜 그거 먹었어요? 할까 봐 ― 대부분 혼자 있을 때만 먹긴 한다).


먹는 경우는 주로 내가 비거니즘 실천을 하기 전 즐겨 먹던 것을 받았을 때나, 아니면 아주 배가 고플 때이다. 물론 이것도 가공식품에 한해서이고 직접적인 형태로 섭취하는 것은 이제 쉽지가 않다. 아무튼 간에… 그것들을 먹고 나면 맛이나 허기짐 해소로 인한 만족감보다도 찝찝함과 불쾌함이 더 크기 때문에 이런 경우가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렇게 기어코 내 입에 넣은 뒤에는 항상 이렇게 자위한다. 어차피 ‘이미’ 소비된 거잖아. 내가 먹든 친구가 먹든, 어느 누가 먹든 별 상관없는 거 아니야?


사실 비거니즘을 일종의 소비자운동으로만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불매운동과 같은 소비자운동은 다른 소비자들도 그것에 동참을 해야 효과를 가지기 때문에 개인적인 실천에만 머물지 않고 다른 이들의 참여를 독려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소비에 대해서는, 혹은 이미 이루어진 소비에 대해서는 무기력해지는 것이 소비자운동의 한계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경제력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한계이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이들의 ‘불매’는 큰 영향력이 없을뿐더러 대체제가 빈약하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비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쓰는 많은 글들은 왜 이러저러한 이유로 비건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잘 실천할 수 있는지를 말한다. 그 실천의 내용은 주로 어떻게 해야 비건 제품/식품을 잘 ‘소비’할 수 있는지이다. 또한 비건이 아닌 사람들이 비건에 대해 소개하는 글이나 기사를 쓸 때는 채식에는 이러이러한 단계가 있고 근래에 핫한,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소비’ 트렌드라고 한다. 끝이다.


하지만 비거니즘은 단순히 ‘착한 소비’가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 논비건 음식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보다는 내가 먹는 게 낫다는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이미 ‘소비된’ 것이라는 이유에서라면 비거니즘이 소비자운동 이상으로 뻗어나가기는 난망할 것이다.


우리는 비거니즘이 소비자 운동 그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비자운동은 선택지를 늘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근본적인 생산체계에는 손을 대지 않은 채 ‘착한 자본’이 등장하기만을 바라는 일이다. 비거니즘이라는 운동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운동이 개인의 실천으로만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비거니즘은 환경-동물-인간의 관계를 재성찰하는 일이고, 비거니즘 운동은 모든 이들에게 비거니즘이 가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해방은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동물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끝장내자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고질적인 병폐들을 말하는 수준에는 다다라야 한다.


물론 이런 어려움이 개인의 몫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에 관해서는 다른 글에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듯합니다.


작년 가을호에서 나는 한국 사회에서 비건으로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말한 뒤 이러한 각주를 단 바 있다. 그때 말했던 '다른 글'이 무려 한 호의 특집이 되었다. 여전히 명료한 답은 없다. 그렇기에 오히려 무궁무진한 해법이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자원인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보았다. 상상은 힘이 세다. 우리의 상상이 분명 이 운동을 단순한 ‘소비자 운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끔 도우리라 믿는다.


편집장 상민 / poursoi09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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