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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은 (왜) 시네마를 구하지 못하였는가

[리뷰] 편집위원 상민

극장을 구하러 나타난 ‘흑기사’

팬데믹으로 텅 비어버린 극장을 보며 누군가는 타노스의 핑거 스냅으로 인류의 절반이 사라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 속 세계를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 패닉에 빠진 영화관을 구하러 온 것은 마블의 영화가 아니라 〈다크 나이트〉(2008)를 통해 ‘슈퍼히어로 르네상스’를 먼저 이끌었던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테넷〉(Tenet, 2020)이었다. 디지털 대신 필름을 예찬하고 CG 사용을 최대한 지양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가 영화관을 절멸의 상태에서 구해줄 ‘흑기사’로 등장하는 것은 말그대로 ‘영화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 8월 말 개봉한 〈테넷〉의 성적은 그렇게 신통치 못했다.

〈표1〉 크리스토퍼 놀란 대표작들의 흥행성적 비교. (달러 수치는 boxofficemojo.com, 관객 수 수치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or.kr)에서 참조. 관객 수는 만의 자리 밑으로 버림. 접속일 2021.01.28.)


물론 팬데믹 이후 이렇게 단독으로 개봉한 블록버스터가 없기에 〈테넷〉이 흥행에서 과연 실패한 것인지, 또 만약 실패했다면 그것이 작품의 내적 요인 때문인지 외적 요인 때문인지를 판별하는 일은 어렵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제작·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 입장에서 대흥행까지는 아니어도 손해는 보지 않으리라는 계산이 있었기에 극장 개봉을 강행했을테고, 그런 관점에서 (자사 OTT인 HBO Max로 동시 공개하지도 않은) 〈테넷〉의 극장수입은 상당히 실망스러웠을 것이다.[1] 특히 〈테넷〉의 개봉 이후 워너브라더스가 자신들의 모든 라인업을 HBO Max와 극장에서 동시에 공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는 사실은 이런 추측에 힘을 실어준다.[2]


[1] 보통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경우 홍보비용 등을 감안해 손익분기점을 대략 제작비의 2배로 본다. 그리고 <테넷>의 경우는 개봉이 북미 기준 3번 연기되며 홍보비용이 더 증가했다.

[2] 한편 놀란은 이러한 워너에 결정에 크게 분노하며 2003년 <인썸니아>부터 시작해 9편의 영화를 함께 만든 워너와 차기작을 함께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였으며, 추후에 <테넷>을 워너의 HBO Max를 통해 스트리밍하는 것도 거부했다. (You Can Finally Watch Tenet From the Safety Of Your Home. Here’s How. (2020.12.14.). Esquire.)


그럼에도 〈테넷〉이 불러온 화제성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놀란 영화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한국의 경우 〈테넷〉의 개봉은 그 자체로 꽤 큰 이벤트였고, CGV용산아이파크몰점의 아이맥스관(이하 ‘용아맥’)은 ‘명당’을 잡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만큼 〈테넷〉에 대한 이야기들도 쏟아져 나왔는데, 무엇보다 가장 많이 들리는 이야기는 영화가 어렵다는 말이었다. N차 관람은 필수라는 〈테넷〉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두 번 본 사람이 없기에 진정한 천만영화’라는 〈해운대〉(2009)와는 정반대 양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영화가 과연 좋은 영화일까? 무엇보다 〈테넷〉이라는 영화의 어려움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이해하려 하지 마. 느껴”[3]

[3] 처음 ‘주인공’에게 인버전을 설명하는 요원이 하는 말. “Don’t try to understand it. Feel it.”


영화가 어렵다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 영화를 2부 구성으로 나누어 꿈과 현실을 마구 섞어놓음으로써 관객을 황홀경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멀홀랜드 드라이브〉(2000), 9개의 인생을 연기하는 은유로서의 영화의 여정을 따라가는 〈홀리 모터스〉(2013) 같은 영화는 어렵기로 소문났지만 영화사에서 중요한 영화로 인정받고 있다. 장 뤽 고다르와 알랭 레네, 샹탈 아케르망, 장 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의 60년대 영화들은 오늘날 보아도 여전히 파격적이며 (사실) 이해하기 어렵다. 중요한 점은 이런 영화들의 ‘어려움’은 애초에 단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게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온다는 것이다. 기존 관습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기에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이런 영화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일반적인 기승전결의 서사로 설명되지 않는다. 애초에 그보다는 영화라는 매체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의 확장을 목표로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넷〉의 경우 이런 류의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2억 불짜리 대중영화이기도 하고, 영화 자체도 여러 가지 해석이 아닌 하나의 선형적 서사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몇 번을 더 봐야 이해가 가는 영화다”라는 식의 평들이 이미 주류를 이루고 있고, 심지어는 평론가들조차 자신 역시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물론 영화가 어렵다는 반응은 이전의 다른 놀란 영화에도 있어왔는데, 특히 〈메멘토〉(2000)나 〈인셉션〉 같은 영화가 그러했다. 그러니 만약 그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도 도망가지 않고 다시 한번 놀란의 신작을 상영하는 극장을 찾았다는 것은, 영화의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이해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테다. 그런데 그런 관객들에게서조차 불만이 터져 나온다는 말은 뭔가 상당히 잘못됐다는 말이다.


〈테넷〉을 우악스럽게 설명한다면 〈인셉션〉의 스타일로 〈메멘토〉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메멘토〉가 영화 전체 서사의 시작 지점 A와 마지막 지점 C 각각에서 정중앙 B를 향해 진행되는 영화였다면 〈테넷〉은 B에서 다시 시간을 돌려 A’에 이르는 영화이다. 그리고 〈메멘토〉에서 시간을 거슬러가는 것은 순전히 영화 언어인 편집을 통해서였지만 〈테넷〉은 (〈인셉션〉과 〈인터스텔라〉 때처럼) 과학적 설명과 특수 효과들을 동원한다. 하지만 그렇게 ‘최첨단’의 도구를 가져온 것이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하지도 못했고, 그것의 이해도를 높여주지도 못했다. 〈메멘토〉와 〈인셉션〉의 경우 다시 보면서 자신이 놓친 사소한 부분을 파악하고, 교차편집으로 엉킨 타임라인을 시간순으로 재배열할 수 있기에 재관람이 ‘권장’된 것이지 주요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관람 내내 헤맬 필요는 없었다. 특히 〈인셉션〉은 다중의 꿈을 오가는 복잡한 플롯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시각적 표지(추락하는 자동차 / 무중력 호텔 / 설산 / 황폐한 폐허 등 – 〈그림 1〉 참조)들과 깔끔한 편집을 통해 관객들이 상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림1〉 〈인셉션〉 장면들 ⓒ Syncopy

영화의 설정 전부를 파악하지는 못하더라도 당장 주어진 미션을 누가, 어떻게, 왜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그 장면을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테넷〉에는 이를 도와줄 시각적 표지가 부족하다. 〈덩케르크〉에서 장인의 솜씨라 부를 만한 연출과 편집을 보여준 감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영화 기법을 사용하는 솜씨가 서툰 것이다. 물론 회전문과 같은 설정을 두거나 인버전 한 쪽과 안 한 쪽을 빨강과 파랑으로 구분해 표시하는 등 시각적인 설명을 위한 노력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복잡함에 비해 이 정도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인버전 이후 처음 ‘주인공’[4](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바깥 세상으로 나갔을 때는 그를 제외한 세상 모든 것이 거꾸로 흐르기에 ‘주인공’이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 뒤로는 금세 완벽히 적응했는지 더이상 혼란을 보여주는 장면이 없다. 그렇게 인버전을 한 쪽도 혼란을 느끼지 않으니, 관객들은 등장인물들의 인버전 여부를 배경의 움직임을 보면서 (새가 앞으로 날아가는지 뒤로 날아가는지 등을 통해)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인버전 된 쪽과 되지 않은 쪽이 함께 등장할 때이다. 영화는 어느 한쪽의 시점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때는 인버전된 쪽이 역재생되고, 다른 때는 되지 않은 쪽이 역재생된다. 심지어는 인버전 상태에서 재(再)인버전을 해 다시 시간 순행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설정까지 생기는데, 시각적으로는 이들을 아예 인버전하지 않은 쪽과 구분할 방도가 없다. 이 세 쪽이 뒤엉키면서 영화는 혼돈의 도가니가 되어버리고, 결국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스탈스크12’ 전투에서 관객은 ‘가슴이 웅장’해지기는커녕 인물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 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


[4] 한 번도 영화 속에서 캐릭터의 실제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크레딧에서는 ‘Protagonist’로 나오고, 수입사에서는 ‘주도자’라고 번역하지만 이 글에서는 순전히 작품의 ‘주인공’이라는 의미로 이렇게 번역하겠다.


이것은 관객의 잘못이 아니라 설정 놀음에만 몰두한 각본, 이해시키길 포기한 연출, 엉망진창인 편집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테넷〉은 정말 놀란의 신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만듦새가 허술했다. 혹은 무성의했다. 하지만 영화의 어딘지 있어 보이는 웅장함과 감독의 전작들로 인한 명성 때문에 관객들은 “내가 문과라서” “내가 머리가 나빠서”라고 생각하며 집에 가는 길에 ‘테넷 해석’을 검색한다. (실제로 네이버와 유튜브 검색창에 ‘테넷’을 적으면 자동완성 제일 위에 ‘테넷 해석’이 뜬다) 유튜브에는 애니메이션을 동원해 〈테넷〉 전체의 타임라인을 정리하며 왜 영화에서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지를 설명하는 영상들이 여럿이다. 그리고 영상의 댓글창은 감탄하며 “이제야 이해했다”고 감사를 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혹은 나 같은 일부 관객들은 여전히 이해가 안 됨을 호소한다)


영화를 보고 전문가의 글이나 영상을 찾아보는 일은 나쁜 일이 아니다.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알아야 더 이해가 잘되는 영화가 있기도 하고, 영화 언어[5]에 대한 지식을 통해 영화를 분석함으로써 영화를 보는 눈을 키워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테넷 해석’ 영상을 보는 관객들은 그저 감독이 꼬아놓은 플롯을 누군가 풀어주는 것에 감탄하며 그들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 적게 된다. 놀란의 영화 속 부실한 여성/아동 캐릭터 묘사, SF와 스파이 액션 영화 역사 속 〈테넷〉의 위치, 촬영 스타일, 영화의 주제의식과 그 표현법 등등에 대한 토론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남는 것은 “이해했냐 못했냐” 하는 질문과 마치 그에 대한 답변하는 듯한 영화 속 대사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 뿐이다.


[5] 여기서 영화 언어란 ‘몽타주’, ‘미장센’ 등의 영화 용어가 아닌, 쇼트의 종류, 편집 규칙, 음향의 사용법 등등 다른 예술 매체와 달리 영화만이 가지는 문법을 말한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다”[6]

[6] “What’s happened, happened.” 작중 과거로 돌아갔을 때 벌어질 혼란에 대해 우려하는 ‘주인공’에게 ‘닐’(로버트 패틴슨)이 해주는 말. 참고로 앞의 소제목과 더불어 네이버 영화 명대사 1,2위를 장식하고 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는 설정 때문에 영화가 너무 복잡해질 것을 우려했는지, 영화의 알맹이를 채우고 있는 내용 자체는 이제까지의 놀란의 그 어떤 영화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며 클리셰를 남발한다. 하지만 놀란의 영화들에서 유구하게 이어지던 ‘백인 중년 남성의 죽은 애인/아내와 만나지 못하는 자식’이라는 테마는 살짝 변주되는데, 이번 작에서는 ‘주인공’에게서 그러한 가정적 배경을 모두 지워버린 대신 (준)여주인공인 악당의 부인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을 ‘아들 바보’로 만들어버렸다. 즉 일반적으로 놀란 영화에서 한 명의 남성이었던 주인공 캐릭터를 둘로 찢어놓은 모양새이다. 하지만 아들에 대한 캣의 집착은 〈인셉션〉의 코브나 〈인터스텔라〉의 쿠퍼의 그것보다도 더 설득력이 없고, 아무런 감정적 동기가 없는 ‘주인공’이 인버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캣을 구하려는 이유 역시 마땅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 그나마 ‘주인공’이 캣에게 로맨틱한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7]


[7] 허문영은 〈FILO〉에 기고한 그의 글에서 애초에 단신 흑인 남성과 장신 백인 여성을 캐스팅한 것을 보아 로맨스보다는 둘 사이의 대칭/대조를 염두에 둔 것이리라 추측하였다. 또 개인적으로는 놀란의 영화 중 최초로 사연 없는 남자 주인공을 흑인으로 설정한 것에서 묘한 기괴함을 느꼈다.


* 여기서부터는 〈테넷〉의 결말에 대한 구체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Experience it ‘in IMAX’ 부분으로 가주세요.


그런데 그렇게 이토록 자식 사랑을 그려놓은 영화에 기후 위기 이슈가 들어올 때, 영화가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당황스럽다. 마지막 ‘스탈스크12’에서 알고리즘 탈취를 막기 위해 찾아온 ‘주인공’이 악당 ‘사토르’(케네스 브래너)와 나누는 대화에서 미래가 자신들의 과거를 파괴하고자 하는 이유가 마침내 밝혀지는데, 사토르의 대사를 그대로 옮기자면 “해수면이 높아지고 강이 마르고 있어서”라고 한다. 이렇게 영화는 ‘갑자기 분위기 기후 위기’가 되어버리는데, 기후 위기라는 것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이제 미래 세대의 공격은 단순한 악이라고 부르기 힘들어진다. 그런데 여기에 ‘주인공’이 “각 세대의 일은 각 세대의 책임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세대가 저질러놓은 일 때문에 미래 세대들이 죽어간다는데 이게 할 소리인가. 게다가 우리는 지금 팬데믹의 한가운데 놓여있으며 기후위기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음을 이미 피부로 느끼고 있지 않은가.


물론 ‘주인공’이 갑자기 감복해서 “그래 과거를 같이 없애자” 하는 것은 당연히 말이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그건 각 세대의 문제다, 라고 퉁칠 것이었다면 애초에 그런 소재를 끌고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들의 상황이 피폐하다는 이유로 시간을 돌려서 아예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미래의 인간들이 이기적일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런 미래의 인류 사정 따위 나 몰라라 하고 현재의 삶에 충실하자는 말을 하면 그것이야말로 더 이기적인 것 아니겠는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죽을 뻔한 캣을 인버전한 ‘주인공’이 살려낸 후, 이 사실을 모르는 캣이 하교하는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집에 가는 쇼트이다. 그러니까 놀란은 ‘미래’를 찍은 것이다. 이 미래는 기후 위기로 생의 조건 자체가 위협받는 미래이다. 미래를 바꿔볼 여지마저 단호하게 없애버린 남자의 시점 쇼트로 찍은, 그 미래로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과연 감동적이거나 낭만적인가? 오히려 이건 거의 사이코패스적인 쇼트가 아닌가.


〈그림 2〉 〈테넷〉의 마지막 장면 ⓒ Syncopy

영화가 이미 인버전을 통해 바뀐 과거를 보여주고 있다는 설정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주인공’에 의해 바뀌기 전의 과거도 있었지만,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게 아니라면) 애초에 이미 ‘미래의 나에 의해 바뀐 현재’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현재’인 것이고, 그렇다면 〈테넷〉은 정말 강한 결정론을 따르는 영화이다. 등장인물들이 할 일은 이미 다 정해져 있고, 정해진 대로 일어났으며, 인물들은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자유의지에 따라 ‘미래의 나’가 이미 다 해놓은 일을 고스란히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미래의 ‘주인공’은 과거를 제거하려는 미래 세력을 막기 위해 자신의 ‘자유의지’로 ‘테넷’이란 조직을 꾸린 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 계획이 성공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모순적인 세계관에서 영화는 그저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다”라고.


Experience it ‘in IMAX’

〈그림 3〉 아이맥스 화면비 비교 그림. 출처 그림 내 표기.

한편 〈테넷〉을 이야기하면서, 더 넓게는 놀란의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아이맥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놀란의 영화를 제외하고도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하여 개봉하는 영화들은 많다. 하지만 놀란 영화의 경우 아이맥스 필름카메라를 사용해 화면이 1.43:1 비율까지 확장되는데, 이때 영화의 화면은 60% 증가한다. 그러다 보니 “〈테넷〉을 용아맥에서 보지 않았다면 제대로 본 것이 아니다.” “일반 버전과 아이맥스 버전은 다른 영화이다”와 같은 말들이 영화 커뮤니티와 SNS를 타고 빠르게 퍼진다. 아이맥스는 일반 영화필름보다 훨씬 큰 필름을 사용해 훨씬 좋은 화질(과 음질)을 자랑하는 시스템이다. 도입 초기에는 카메라의 크기와 비용 문제로 자연 다큐멘터리용으로만 사용되었는데, 이 시스템을 상업 극영화에 유의미하게 도입한 첫 영화가 바로 놀란의 출세작 〈다크 나이트〉이다.[8] 이 작품 이후 놀란은 한 번도 아이맥스 촬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매번 비중을 늘려나갔다. 그래서 ‘놀란 영화=아이맥스’라는 공식이 생겨났는데, 문제는 현재 전국에 아이맥스 상영관은 17개뿐[9]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놀란이 의도한 화면비인 1.43:1로 볼 수 있는 상영관은 전국에 딱 한 곳, ‘용아맥’뿐이다.


[8] 그 전에도 일반 35mm 필름으로 촬영 후 아이맥스로 변환(DMR)해 상영하는 영화들은 종종 있었지만 수요도, 공급도 적은 상황이었다.

[9] TK지역 유일한 아이맥스관이 있던 CGV대구가 폐점수순을 밟게 되며 17개가 되었다. ([단독] 대구 유일 아이맥스 상영관 ‘CGV 대구’ 폐점 수순. (2020.12.29.). SBS Biz.)


그런데 정말 〈테넷〉은 ‘용아맥’에서 봐야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문제적이다. 전자라면 〈테넷〉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수도권에 거주하거나 서울까지 ‘원정’을 갈 수 있는 시간·금전적 여유가 있는 사람뿐이기 때문이고[10], 후자라면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통념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영화관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테넷〉의 전체 국내 관객수 중 8.8%가 (한국에 17개뿐인) 아이맥스관에서 이 영화를 보았는데, 놀라운 것은 상영횟수 기준으로는 고작 2.6%만이 아이맥스관에서 상영되었는 점이다. 이 말인 즉, 아이맥스관은 꽉 차는 동안 다른 일반관은 상대적으로 관객이 훨씬 덜 찼다는 말이 된다.


[10] 이는 해외의 경우도 별로 다르지 않은데, 2021년 2월 현재 상업영화 상영용으로 운영되는 아이맥스 레이저관은 미국에도 7개뿐이고 프랑스에는 2개, 영국은 한 곳뿐이다. 물론 여기에 필름 상영 아이맥스 관들도 카운트해볼 수 있겠지만 필름 상영의 물리적 한계로 인해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림 4〉 Google ‘용아맥 원정’ 검색 화면 (검색일 2021.03.10.)

그래도 당신이 “아니 그래서 〈테넷〉을 ‘용아맥’에서 보는 게 중요하단 거야 아니란거야?”하고 따져 묻는다면, 나는 확신을 가지고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우선 이 영화가 최대한 많은 관객에게 표를 팔아야하는 텐트폴 영화라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용아맥’을 제외한 다른 일반관에서 〈테넷〉을 볼 경우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면 어떻게 흥행을 하겠는가? 그렇기에 일반 상영관에서 상영되는 2.20:1의 비율의 〈테넷〉과 1.43:1로 자주 전환되는 〈테넷〉 간에 내용상 어떤 유의미한 차이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하로 늘어난 화면 면적에 아무런 의미가 있지도, 있어서도 안되리란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테넷〉의 경우 내용적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별다른 의미가 없는데, 이것은 놀란의 이전 영화들에서보다도 더 퇴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43:1은 초기 영화인 1.33:1과 흡사한,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비이다. 이 화면비의 장점은 단연 인물의 클로즈업 쇼트와 풀 쇼트[11]에서 드러난다.


[11] 인물의 전신(全身)을 담은 쇼트.

〈그림5〉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은 영화 속 시대 변화에 따라 화면비가 변화한다. 1.37:1(상)은 인물 클로즈업 시 여백이 거의 없지만 2.39:1(하)은 그렇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 Fox Searchlight Pictures

〈그림 6〉 비스타비전(1.85:1)으로 촬영된 〈수색자〉(1956)의 엔딩(하)에서는 좌우를 어둡게 하여프레임을 좁게 만듦으로써 홀로 남게 된 카우보이의 풀쇼트을 강조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 C.V. Whitney Pictures


하지만 〈테넷〉에서 놀란은 인물들이 대화하는 장면은 모두 2.20:1로 찍고, 스케일이 큰 장면에서 1.43:1의 화면비를 쓴다. 즉 〈테넷〉의 1.43:1로의 확장은 순전히 스펙터클의 확대, 다시 말해 관객의 시야를 꽉 채우고 현장에 있는 것처럼 ‘체험’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테넷〉이 체험하는 종류의 영화인가? 감독의 전작인 〈덩케르크〉는 주관적인 시간을 체험시키는 영화였고, 〈1917〉(2019)이나 〈로마〉(2018)처럼 영화 속 인물이 되어 그 시간을 감내한 것만 같은 느낌을 주려고 만들어진 영화들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테넷〉은 그보다는 지적 유희에 가까운 영화이다. 우리는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하기보다는 꼬여있는 플롯을 애써 제대로 푸는 데 더 집중하게 된다. 비행기 폭파 장면이나 카체이싱 장면은 이미지적으로도 그리 인상적이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스케일을 키우는 방식은 이 영화의 성격과도 어울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질문을 해볼 수가 있다. 만약 ‘체험’이 영화의 가장 주요한 목적이 된다면 가장 궁극적인 이상향은 방에서 혼자 쓰고 체험하는 VR(Virtual Reality)이 아닐까?


〈테넷〉의 실패가 시네마의 실패가 되지 않도록

한 아이맥스 전문 블로거는 앞으로의 극장은 “주요 몇 개의 프리미엄 상영관에서 〈집구석에서는 절대 체험할 수 없는 경험〉을 안겨주는 것이 과제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지만,[12] 영화 산업을 소수의 특별관과 그에 특화된 영화만으로 견인하겠다는 생각은 허상에 가깝다. 아무리 특별관의 티켓값이 더 비싸다고 하여도 특별관의 수가 절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특별관의 수가 늘어나서 특별관에서의 관람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일이 된다고 한다면, 영화는 더는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생활이 아니게 될 것이다. 물론 그 특별관이 수도권에만 집중되리란 것 역시 자명하다. 특별관은 ‘특별’한 경험을 주는 데에 그쳐야지, 영화 관람에 필수적인 조건이 될 필요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13]


[12] 수너군 (2020.08.26). [IMAX 2D] 테넷 아이맥스 :: 집중, 또 집중하라. [네이버 블로그].

[13] 이에 관해서는 다음호의 보다 흥미로운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여러분이 여기까지 읽은 다음 이 글의 제목을 다시 찾아본다면 의아해질 것이다. ‘왜’라는 질문에 왜 괄호가 쳐져 있지? 〈테넷〉이, 그리고 〈테넷〉이 그렇게 홍보한 아이맥스가 영화관을 구하지 못한 것은 너무 자명하잖아? 맞다. 하지만 그것은 ‘시네마’를 영화관 내지는 영화산업으로만 바라보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물론 영화는 그 어떤 예술보다도 산업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며, 제작비의 크기와 무관하게 상업적 성공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시네마’는 예술이다. 그렇기에 〈테넷〉이 시네마(산업)을 구하지 못했다고 해서 시네마(예술)이 죽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내가 제목의 괄호를 포기하지 못한 이유이다.

〈그림 7〉 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영화 〈시몽 시네마의 101일 밤〉(1995)의 주인공 ‘무슈 시네마(시네마 씨)’는 쇠약하지만 여전히 엉뚱하고 재기발랄한 모습이다. ⓒ Ciné-Tamaris


이렇게 호기롭게 외쳐보아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코로나19 이후 “생활에 필수적이지 않은” 문화예술계는 모두 벼랑 끝에 내몰렸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꿋꿋이 개봉하는 영화들과 방역지침을 지키며 현장 개최되는 영화제들이 있으며, 마스크를 낀 채 두 시간을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극장을 채운 관객들이 있었다. 나는 죽어가고 있는 시네마에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이 사람들의 마음을 믿어보고 싶다. 그리고 그 마음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와 같은 운명론적 시선도, “각 세대의 일은 각 세대의 책임이다“와 같은 회피적인 시선도 아닌,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일 테다.



편집위원 상민 / poursoi0911@gmail.com


참고문헌

기사 및 온라인 자료

김완진 (2020.12.29.). [단독] 대구 유일 아이맥스 상영관 ‘CGV 대구’ 폐점 수순. SBS Biz. Retrieved from https://n.news.naver.com/article/374/0000229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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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자료

Nolan, Christopher (2010). Inception. Syncopy.

Nolan, Christopher (2020). Tenet. Sync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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