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편집위원 민철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 서로 안아주라고 말해주는 어른은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용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할 만큼 자랐다. (…) 시몬 비젠탈은 “망각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이지만, 용서는 의지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것은 용서를 마주하는 개인과 사회의 의지에 따라서 용서의 모습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용서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 〈고대문화〉 2020 가을호, “용서를 위한 자그마한 지침서” 중.
두 세대가 넘게 지난 다음에도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실이 있다. 아우슈비츠는 신이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곳은 사람이 만든 지옥이었다. 사람을 도구화하고, 마침내는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도 아우슈비츠가 두려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 야만은 얼마든지 우리 사이에서도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기념의 미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