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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영화를 본다는 것: 민주적 영화(관)?

[칼럼] 편집위원 상민

축제와 탈진[1]

잠시 시계를 일 년 반 전으로 돌려보자. 2019년은 영화계의 대잔치라고 할 수 있는 한 해였다. 1년에 한 편도 나오기 힘들던 시기가 있었던 천만영화가 무려 다섯 편이나 나왔고(〈극한 직업〉, 〈어벤져스: 엔드게임〉, 〈알라딘〉, 〈기생충〉, 〈겨울왕국2〉), 매출액과 관객 수 모두 역대 최고를 갱신했다. (전년 대비 각각 5.5%, 4.8% 증가했다.[2]) 게다가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이하는 상징적인 해에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며[i] 해를 넘긴 (한국시간 기준) 2월 10일에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국제영화상을 받은 것은 물론 작품상과 감독상을 차지하는 말도 안 되는 초특급 이벤트까지 있었다.


[i] 칸, 베를린, 베니스가 3대 영화제로 꼽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칸 영화제의 권위가 가장 높다. 여태껏 한국영화의 위상에 비해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타지 못한 것은 아쉽게 여겨지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2월 말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이러한 수치들은 곤두박질쳤다. 2월 18일 대구 신천지 교회 발 집단감염을 기점으로 극장을 찾는 발길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일주일 사이 주말 박스오피스가 전주 대비 60%가량 하락하며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구축된 이래 가장 적은 관객 수(66만 명)를 동원한 주말이 되었다.[3] 결과적으로 2020년 극장 매출액은 전년 대비 73% 하락한 5,104억 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2001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였다.[4] 국내에서 영화관을 통해 코로나19가 전파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지만, 한 공간에 여러 명이 모여있어야 한다는 점과 대중의 삶에 있어 필수적이지는 않다는 점이 영화관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또 단기간에 제작비를 회수해야 하는 산업 구조상 용감하게 개봉하는 대작들이 드물었고, 그러다 보니 볼 영화가 없어서 관객들은 더욱 극장가를 찾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해가 바뀌어도 상황은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개봉 예정이었던 CJ의 텐트폴 영화[5] 〈서복〉은 지난 4월 파격적으로 CJ의 OTT인 티빙에서 극장과 동시에 공개되었으며 5월이 되도록 1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네 편(〈소울〉,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미나리〉, 〈분노의 질주 9〉)뿐이다.   


그 와중에 CGV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을 핑계로 관람료를 천 원씩 두 차례나 인상하였고,[6] 독립·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인 아트하우스 팀을 해체했다.[7] 심지어는 3년 내에 전국 상영관의 30%를 축소할 예정이라고 한다.[8] 한편 사회공헌사업으로 독립영화 제작·배급을 지원하고 홍대의 상상마당 시네마를 운영하던 KT&G는 지난해 12월 영화사업부 직원 8명에게 사직을 권고하며 사실상 부서를 해체시켰다.[9] 상상마당 시네마의 경우도 기존 운영사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새롭게 2년 계약의 운영사를 공모하였는데, 이렇게 기존 인력을 모두 교체함은 KT&G의 관심사가 사회공헌을 하고 있다는 명목을 유지하는 것이지 상상마당 시네마가 표방해온 가치를 지켜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하였다.[10]


이렇게 가시적으로 무언가가 사라지고, 해체되는 상황까지 보지 않더라도 영화관 전반의 상황이 매우 어려우리라는 사실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특히 VOD와 같은 2차 판권 시장이 취약한 한국의 경우 영화 산업이 극장 수익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ii] 극장의 죽음은 곧 영화의 죽음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이에 극장들은 관객을 모으기 위한 다양한 자구책을 강구하게 되었다. 연속되는 예전 영화의 재개봉, GV와 굿즈 증정과 같은 것이 그러한 방안인데 실상 GV와 굿즈 증정이 이루어지는 회차만 매진되었을 뿐 그 외 시간대의 빈 관객석까지 채우지는 못했다. 게다가 〈테넷〉과 같이 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극강의 경험, 특히 특별관을 통한 경험을 강조한 영화들조차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는 실패하며[11] 극장가는 더욱 얼어붙었다. 그 외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 한국 텐트폴 영화들은 수차례 개봉 일자를 바꾸며 더 보수적으로 공개를 미루기만 한 것이다.


[ii] 2019년 기준 극장 매출이 전체 영화산업 매출의 76.3%를 차지했다. (영화진흥위원회, 2020: 14)


영화제의 경우는 어떠한가.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제이자 콧대 높은 영화제로 평가받는 칸 영화제는 오프라인 상영을 못 할 바에야 아예 개최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그 외의 많은 세계의 영화제들은 온라인 상영을 진행했다. 혹은 부산국제영화제처럼 상영 회차와 규모를 줄이고, 해외 게스트와의 GV는 영상통화로 진행하면서 오프라인 개최에 성공한 곳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러한 변화가 항구적이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년 반가량 이런 난관을 겪으면서도 영화계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만 끝나면’ 예전의 좋았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많은 관객들 역시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극장을 찾지는 못하고 있지만, 팝콘 냄새와 불 꺼진 상영관에서 함께 울고 웃는 경험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고 있다.[12] 하지만 감각에서 오는 그리움이, 습관에서 오는 그리움이 그때로 돌아가야 할 당위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영화관은 정말 팬데믹 이전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야 할까? 또 그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당신의 노스탤지어는 특권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 영화관은 오래전부터 불편한 곳이었다. 대부분의 한국영화 상영에는 한국어 자막이 없는 탓에 청각 장애인에게 극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영화는 (자막이 있는) 외국 영화 뿐이며, 음성 해설이 있는 상영 역시 일반적으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시각 장애인에게 영화관은 거의 갈 일이 없는 곳에 가깝다. 일부 배리어프리 상영을 하는 영화관이 있기는 하지만 시도별로 1~2곳에 불과하며 상영 날짜와 시간, 선택할 수 있는 영화의 종류도 지극히 한정적이다.[iii]


[iii] 2018년 개봉한 한국영화 465편 중 배리어프리 버전이 제작된 영화는 30편에 불과했다. 자세한 실태는 〈한국일보〉 기사 “’천만 영화면 뭐해’ 소외된 시청각장애인들”을 참조하라.

이와 관련한 차별구제소송이 5년째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최종 판결이 나오려면 수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한다. (신민정, 2021.01.26.)


또 극장에서 휠체어석이 어디 있는지 유심히 살펴본다면 절대다수는 맨 앞인 A열에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가 전국 173개 영화관을 대상으로 장애인 영화관람 환경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81.1%의 상영관이 휠체어석을 스크린 제일 앞줄에 설치해두었다고 한다.[13] 다소 오래된 자료이나, 우리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그때와 지금이 별반 달라진 것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상영관이 스크린 앞으로 입장하는 구조이기에 그러한 것인데, 콘서트나 연극과는 달리 영화관에서 A, B열은 기피되는 자리로,[14] 실제 CGV가 좌석 차등제를 폐지하면서도 A, B열에 대한 천 원 할인은 없애지 못했을 정도이다. 당장 모든 상영관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한 극장의 상영관 중 몇 퍼센트 이상은 상영관 뒤 혹은 옆에 출구를 만들어 그곳에 휠체어석을 두도록 강제해야 할 테다.[iv]


[iv] 물론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모든 상영관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며, 그것은 기업의 자비가 아닌 법에 의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 독일 등의 국가는 휠체어석의 시야 확보를 법률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상영관 구조 변경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좌석 사이 이동 통로를 경사로로 만드는 방법도 있겠다.

〈그림 1〉 과거 좌석 차등제 시행 당시 CGV 예매창 모습. 현재는 이러한 구분은 사라진 채 A ,B열만 천 원 할인되고 있다. 또 상영관 뒤에도 출입구가 있음에도 상영관 뒤에도 출입구가 있음에도 장애인석이 A열에만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CGV 빠른예매의 좌석선택 화면. 가로로 15줄, 세로로 12줄의 상영관의 앞 세 줄(A~C열)은 이코노미존(노랑색), 6~12번째 줄의 중앙블록 (F~L열의 3~13번 좌석)은 프라임존(빨강색), 그 외의 자리는 스탠다드존(초록색)으로 분류되어있다. 짙은 연두색의 장애인석은 맨앞 중앙인 A열 7,8 두 자리가 존재한다. 그림 설명 끝. 

허나 몇몇 관의 구조를 변경하더라도 문제가 즉각 해결되지는 않는다. 많은 멀티플렉스의 상영관 배분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 대해서 들어보았을 것이다. 특히 블록버스터가 줄지어 개봉하는 여름, 겨울 극장가를 보면 한두 영화의 상영회차는 고속버스 시간표를 연상시킬 정도로 촘촘한 반면 나머지 영화들은 한두 회차만 걸려있는 것이 흔한 풍경이었다. 만약 휠체어 이용자가 그렇게 적은 회차만을 배정받은 영화를 보고자 한다면, 그에게는 휠체어석이 극장 뒤편에 있는 영화관을 선택해볼 여지조차 없을 것이다.


〈그림 2〉 2018년 4월 26일 수도권 한 멀티플렉스 극장의 상영시간표. 출처: 오마이뉴스 ⓒ 성하훈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가 대략 30분 간격으로 한 영화관에서 하루에 30회 상영됨을 알리는 전광판 화면. 그림 설명 끝. 


이러한 스크린 독과점은 비단 장애인과 휠체어석의 문제만은 아니다. 스크린 독과점이 가져오는 문제점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로 인해 심화된다. 독립·예술영화관의 경우 절대적으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CGV 아트하우스 경우도 18개 중 서울에 7개, 경기에 3개, 인천에 하나가 있어서 비수도권에는 7개만이 있고, 그마저도 대부분 광역시에 있다. 그 외의 독립·예술영화관들도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따라 대부분 수도권이나 광역시에 위치한다. 결국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멀티플렉스가 그 지역의 유일한 영화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독립·예술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그 지역 멀티플렉스의 상영관 배분에 따라 달라지는데, 꼭 스크린 독과점이 이루어지는 성수기가 아니더라도 인기가 적은 독립·예술영화는 (전용관이 있지 않은 이상) 평소에도 걸리기가 어렵다.


따라서 장애인과 비수도권 거주자들의 접근성 문제,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 대한 성찰 없이 코로나 이전의 영화관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논의는 우리가 코로나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회귀란 것이 가능하기는 한지를 따져보는 것이 우선일 테다.


Netflix and chill?

사실 코로나19 이전에도 극장 중심의 영화산업은 서서히 붕괴되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바로 OTT(Over-the-Top) 서비스의 등장이 있었다. 특히 넷플릭스는 업계의 선두주자이자 가장 큰 플랫폼으로, 사실상 OTT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었다. 2018년에 헐리우드의 공룡 중에서도 공룡인 디즈니의 시가총액을 잠시 뛰어넘어 엔터테인먼트 업종 1위를 차지했었을 정도로[15] 이미 영향력이 커졌던 넷플릭스는 산업적으로뿐만 아니라 2018, 19, 20년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자체 제작 영화들을 각각 8개, 15개, 24개 후보에 올리는 등 계속해서 영화란 극장에서 상영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통념을 적극적으로 깨고 있었다. 코로나19는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가시화시켰을 뿐이다.


〈그림 3〉 (좌) 넷플릭스의 전 세계 가입자 수 변화 그래프 (우) 넷플릭스의 한국 가입자 수 변화 그래프. 출처: Pulse

좌측 그래프: 2019 3분기 1.58억, 4분기 1.67억, 2020 1분기 1.83억, 2분기 1.93억, 3분기 1.95억.

우측 그래프: 2018년 12월 90만명, 2019년 3월 150만명, 8월 190만명, 2020년 3월 272명, 9월 330만명. 그림 설명 끝. 


팬데믹으로 극장을 비롯한 많은 산업 분야는 타격을 받았지만,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호재로 작용했다. 함께 모여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여러 사람이 같은 작품을 보며 채팅을 할 수 있는 ‘텔레파티’와 같은 확장 서비스를 통해 해결됐다.[16]


누군가는 좋은 시절이 다 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제야 좋은 시절이 온 것일 수도 있다. 넷플릭스에는 스크린 독점 같은 개념의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며, 어느 지역에 살고 있든 제공되는 콘텐츠의 종류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또한 독립·예술영화의 입장에서는 전 세계 구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넷플릭스를 통해 배급하는 것이 흥행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선택지이기도 하다. (이것이 많은 독립·예술영화 감독들이 극장 상영의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는 이유이다.) 그리고 의무적으로 CC(Closed Caption) 자막과 음성설명 기능을 제공해야 하는 등 장애인 접근성이 좋다는 점도 중요하다.[v]


[v] 물론 음성해설은 자사 배급 영화에만 제공되고, 한국어 CC 자막은 한국어 콘텐츠에만 제공된다는 한계가 있다. 또 자막의 퀄리티가 그리 높지 않다는 의견도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의무로 되어있다는 점에서 극장보다는 훨씬 배리어프리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4〉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의 한 장면. CC 자막은 인물의 행동 묘사는 물론 사용하는 언어가 변화하는 상황일 경우 언어의 종류 역시 표시한다. 

ⓒ Netflix. 30대 여성 배우 정유미가 분한 단발머리에 폴라티를 입은 안은영이 어깨만 보이는 보라색 옷을 입은 남성에게 말을 하고 있다. 자막에는 ‘뭔 소리야, 씨발 놈아, 한국말로 해’라고 적혀있으며 그 위에는 대괄호 표시 안에 ‘매켄지를 툭툭 친다’, 그리고 ‘한국어’가 적혀있다. 


또 어떤 작품을 넷플릭스 외의 통로로 별도로 수입한 국가가 아닌 이상 모든 작품은 전 세계 넷플릭스에서 동시 공개되는데, 이는 서구 중심적인 영화계와 영화제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서구 중심적인 영화 권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을 기준으로 자국 영화 점유율이 50%를 넘는 국가는 미국, 일본, 중국, 인도 그리고 한국뿐이고, 그 외 전세계 박스오피스의 대부분은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가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스크린쿼터제의 영향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투자-제작-배급-상영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이루어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헐리우드의 자본과 국내 대기업의 자본 규모는 큰 차이가 있지만, 어느 쪽이든 ‘돈으로 돈을 번’ 것은 마찬가지이다.


한편 독립·예술영화 역시 서구 영화제(특히 앞서 각주 3에서 말한 세계 3대 영화제)에서의 인정이 곧 세계적인 인정을 의미하곤 한다. 그리고 이는 비평 권력을 통해 강화되는데 앞서 말한 GV에서도 특히 인기 있는 몇몇 평론가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상찬하는 영화는 대부분 이러한 서구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영화이지만, 그렇지 못한 영화임에도 그들이 어떻게 언급하느냐에 따라 관객의 반응이 바뀌는 양상이 적지 않게 보인다.[17] 너무 인기가 많아서 GV를 전국 몇십 개 지점에 생중계하는 평론가, 혹은 영화 본편보다 더 길게 GV를 진행해서 ‘차력쇼’를 한다고 불리는 평론가의 영향력은 대기업의 독과점에 비할 바는 아니나, 작은 시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닐 것이다.[18]


넷플릭스는 일견 이러한 영향력에서 모두 자유로운 듯 보인다. 실제로 스페인에서 제작된 〈종이의 집〉, 한국 영화인 〈#살아있다〉 등이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자들에게 많은 선택을 받은 것이다.[19] 또 넷플릭스가 ‘밀어주는’ 작품이 메인 화면에 더 많이 배치될 수는 있겠지만, 다양한 선택지 없이 그 작품만이 제공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넷플릭스 작품은 비평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에[20] 비평 권력 등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떨어지는 돌멩이가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vi]

이렇게 넷플릭스는 관객에게, 또 창작자에게 무한한 자유를 선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풍부한 선택지가 되려 새로운 문제점의 근원이 된다. 실제로 콘텐츠를 보는 시간보다 무엇을 볼지 검색하는 시간이 더 길거나 시청을 포기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넷플릭스 증후군(Netflix Syndrome)’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지기까지 한 상황[21]은 이를 잘 보여준다. 너무 많은 선택지는 선택지가 없는 것과 유사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는 자체적인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내가 좋아한 어떤 작품과 비슷하다’, ‘나의 취향과 몇 %의 확률로 일치할 것이다’와 같은 문구들이 나의 선택을 돕는다. 이들이 취합한 ‘나의 취향’이란 빅데이터 분석과 딥 러닝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단순히 어떤 장르, 어떤 배우를 좋아한다는 것 이상이다. ‘취향 분석 시스템’은 영화의 장르, 상영 시간, 개봉 일시, 흥행 성적과 같은 객관적 데이터는 물론 영화의 분위기(공포스럽거나 또는 사랑스러운), 스토리의 복잡함((비)선형 구조, 액자 구조, 반전 구조)등 영화의 내용적 데이터 모두 정량화해서 감상자의 취향을 파악한다.[22]


따라서 개별 사용자들이 추천받는 작품은 제각각 다르다. 이는 획일적인 선택지를 제공하던 기존 극장보다 한결 나아 보이지만, 편해진 만큼 더 큰 위험성을 내포한다. 과거 극장에서 한정된 영화만을 상영할 때, 현재 넷플릭스가 하던 역할은 토렌트와 웹하드의 것이었다. 물론 이 둘은 모두 불법인 데다가 웹하드는 성범죄 카르텔의 온상이었다는 점이 밝혀지기까지 했지마는, 이것들이 수도권과 지방, 국내와 해외 사이의 영화 격차를 좁히는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23] 이 말이 웹하드나 토렌트를 옹호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이 시기에 어떤 영화를 볼지 선택하는 것은 적어도 관객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그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유명하지 않으면서도 의외로 새롭고 재밌는 영화를 찾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넷플릭스가 내가 볼 작품을 선택해준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모두 내가 기존에 좋아했던 작품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넷플릭스에 있는 영화가 세상에 있는 영화의 전부가 아님에도, 이미 넷플릭스가 엄청나게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기에 나는 그 안에 있는 영화들만 찾아보기에도 바쁘다. 그 결과 넷플릭스에 들어가지 못하는 영화들은 나에게 선택지로 주어지지조차 못하게 된다. 나는 넷플릭스의 자유로운 선택지와 함께 날고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추락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vi] … 스스로 자신의 의지로 날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바뤼흐 스피노자)


혹자는 왜 꼭 넷플릭스의 추천이 나쁘기만 하냐고 할 수도 있다. 오히려 시행착오로 인한 시간 낭비를 줄여주니 좋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이는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 콘텐츠들을 만드는 방식을 보면서 생각해볼 문제이다. 그들은 작품 추천뿐 아니라 제작에 있어서도 빅데이터 분석을 중요시한다.[24] 물론 작품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겠으나, 수집된 데이터를 통해 얻어진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평균치’에 최대한 수렴하는 작품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제 순환의 도식이 그려진다. 시청자들은 넷플릭스에 자신의 ‘취향’을 제공하고, 넷플릭스는 그것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어 시청자들에게 제공한다. 이 도식의 반복을 통해 취향과 작품 모두 획일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25]


핵심은 권력에서의 탈피

우리는 넷플릭스의 도움으로 멀티플렉스의 독과점으로부터 탈출했지만, 여전히 넷플릭스가 골라주는 영화의 개미지옥 속에 있다. 거기에서 나와야 한다. 또 앞서 말한 비평 권력으로부터도 빠져나와야 한다. 팬데믹 시대가 제공한 것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국경을 뛰어넘어 자신들의 작품을 온라인으로 상영하는 기현상이다. 심지어 영화제들도 상당수가 온라인 상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혜택을 적극적으로 누릴 필요가 있고, 개개인으로서 SNS 등을 통해 담론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비평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비평가가 되기를 요청한다. 비평가가 된다는 것이 대단한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AI가 아닌 내가 어떤 영화를 추천하는 주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분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영화 추천 글 하나가, 왓챠피디아에 적는 코멘트 하나가 그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추천한 영화들을 볼 수 있는 플랫폼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내가 선택한 영화를 볼 수 있는 OTT라는 플랫폼은 획일화된 영화 권력에서 벗어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앞에서는 계속해서 넷플릭스가 영화의 대안이 될 수 없다더니 갑자기 말을 바꾸는 것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이유들은 ‘영화란 모름지기 영화관에서 상영되어야 한다’와 같은 이유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거대자본에 의한 지배가 오프라인(멀티플렉스)에서 온라인(대형 OTT)으로, 심지어 더 교묘한 형태로 넘어왔을 뿐임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림 5〉 퍼플레이에서 제공하는 큐레이션. 출처: 퍼플레이 사이트 캡쳐.

검은 인터넷 창에 ‘주제별 큐레이션’이 쓰여있고 밑에 하얀 칸들에는 ‘BEST 10’, ‘대세는 여성 투톱 영화’, ‘누구보다 빠르게 만나는 여성영화 신작, 아이들의 세계를 그리는 시선, 경계 위의 존재들, X언니를 찾아서 〈90-00: 언니들의 영화〉, 여성영화제 상영작 모아보기, 퀴어영화 맛집, 소녀들이 성장하는 법, 우리가 사랑한 배우들, 바쁘다 바빠 10분 영화!, 우리의 느슨하고 끈끈한 연대, 카메라를 든 여성의 힘, 누군가의 ‘엄마’ 혹은 ‘아내’, 그들의 이름을 찾아서, #나는_페미니스트다, 역대 여성영화인상 수상자, 우리의 삶이 예술이 될 때,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몸 등이 한 줄 씩 적혀있다. 그림 설명 끝. 


OTT 서비스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넷플릭스나 왓챠, 디즈니플러스와 같은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에는 대표적으로 여성영화만을 전문적으로 큐레이션 해주는 ‘퍼플레이’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서 직접 창작자에게 가상화폐로 투자할 수 있는 ‘무비블록’ 등의 독립 OTT가 존재한다. 상당수의 독립·예술영화들은 개봉 기회를 얻지 못하고 영화제에서의 상영 뒤 영화제의 데이터베이스에만 남아 왔다. 이런 독립 OTT들은 그런 영화들을 일반 관객들에게 유통해주는 역할을 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는 더욱 다양한 OTT가 있는데, 지역 OTT(시카고의 OTV)부터 작가(주의) 영화를 큐레이션 해주는 OTT(mubi, Criterion Channel), 다큐멘터리 전문 OTT(Dafilms)와 컬트 영화 전문 OTT(Spamflix)까지 다채롭게 제공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영화제들이 코로나19 이후 이들과 같은 OTT 서비스를 통해 영화 상영을 진행하며 상부상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창작자와 관객이 물리적인 영화제 없이도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어 소통하는 모습은, 어찌 보면 이것이야말로 진정 ‘국제영화제’의 의미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풍경이었다.


민주적 시네마에로의 전회

나는 앞서 영화관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 바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관은 존재해야 하고,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모든 이들이 동일한 영화 관람 환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성일이 지난 8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사이트에 기고한 글의 일부를 우선 보자.


(…)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정치경제학적 환경이 민주적이었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한다. 당신은 입장료를 내면 계급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영화를 경험할 권리를 얻었다. (…) 방으로 물러나게 되면 이제 이 민주적 기회는 사라지고 각자의 환경의 토대가 제공하는 영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환경의 토대? 누군가는 홈 씨어터에 최신 버전의 프로젝터와 스피커를 갖춰놓고 방음까지 된 방에서 스크린에 가까운 화면으로 영화를 ‘경험’할 것이다. 누군가는 같은 영화를 반지하 방에서 노트북으로 볼 것이다.

정성일 (2020.08.21.). 코로나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영화를 본다는 습관에 대한 두 세가지 질문 中


팬데믹 이후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며 드러난 문제들 – 원활한 인터넷 환경과 독립된 시공간 확보의 어려움 – 이 여기에서도 나타날 뿐만 아니라, 감상 환경에 따라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전혀 ‘다른 영화’를 보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관은 ‘민주적’ 공간으로서 기능할 수 있지만, 앞서 보았듯 그것이 배제하는 사람들과 배제하는 영화가 분명 존재한다.


고로 영화관이 집중해야 할 문제는 ‘경험’을 어떻게 더 색다르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기존의 ‘경험’을 모든 관객과 영화에게 보장해줄 것인가이어야 한다. 하지만 기존 영화관들, 특히 멀티플렉스들은 전자, 즉 특별관 강화에 더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뛰어난 스펙을 자랑하거나(CGV 아이맥스, 메가박스 돌비시네마) 영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체험하게 만드는(CGV 4DX) 특별관, 혹은 고품질의 좌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영관들이 그것이다.(CGV 골드클래스, 롯데시네마 샤롯데, 메가박스 더 부티크) 아예 내 거실처럼 누워서 볼 수 있는 영화관(CGV 템퍼시네마), 고급 레스토랑 같은 식사까지 코스로 제공해주는 영화관(CGV 씨네드쉐프) 등 이런저런 특별관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들은 이러한 ‘고급화’로 공략하는 대상이 다를 뿐 모두 집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을 영화관이 제공하겠다는 기획이라는 점에서 큰 틀에서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짐작 가능하듯이 이런 상영관들의 티켓 가격은 일반관에 비해 월등히 비싸다. 2021년 5월 현재 성인 주말 2D 기준 일반관 관람료(앞서 말했듯 팬데믹 이후 두 차례 인상된 가격이다)는 14,000원인 반면, 아이맥스 디지털과 4DX는 18,000원, 아이맥스 레이저 20,000원, 골드클래스 35,000원, 씨네드쉐프 45,000원(식사 비용 미포함)이다. 고급화를 통한 차별화의 노력으로 영화관이 사라지지는 않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아는 영화관이 아닌 값비싼 박물관, 놀이공원 혹은 고급 살롱이 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극장으로 가게 만드는 힘은 그러한 특별화, 고급화에 있지 않다고 믿는다. 모두에게 평등하고 안전한 공간이 되는 것, 내가 ‘정말로’ 보고 싶은 영화를 보여주는 곳이 되는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영화관을 찾게 하리라고 믿는다. 또 그래야만 영화관은 존재할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가 ‘지켜야 할’ 영화관은 독립적이고 신선한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영화관, 상영 후 GV를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지역 문화 교류의 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영화관, 상시적으로 배리어프리상영을 진행하며 휠체어 이용자도 편안한 자리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상영관이 있는 영화관이다.[vii] 대표적으로 ‘커뮤니티 시네마’라는 지역별 초소형 극장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큰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 대신, 각 지역의 사람들을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커뮤니티 시네마 페스티벌이 열리는 등, 팬데믹 와중에 이러한 상영관들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다. 커뮤니티 시네마들이 글에서 말한 문제점을 모두 해결한 곳들은 아니지만, 그러한 이상향에 다가가려는 시도를 응원해주어야 할 것이다.


[vii] 물론 앞서 말했듯 장애인의 접근권은 국가가 법적으로 모든 영화관에 의무화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림 6〉 ‘커뮤니티시네마페스티벌2021’의 포스터. 본 행사는 약 두 달여가량 서울, 목포, 원주, 전주, 부산을 순회하며 개최된다. 출처: 인디그라운드

사람들이 모여서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을 흑백에 노이즈 가득하게 찍은 세로 사진을 배경으로 좌측 상단에 연두색 글씨로 ‘COMMUNITY CINEMA FESTIVAL 2021 5. 3 - 6. 27’이 적혀있고, 우측 중앙에는 한  줄 씩 ‘다락스페이스, 시네마라운지MM, 원주영상미디어센터 모두 & 고씨네, 무명씨네, 모퉁이극장’이 적혀있다. 그리고 그 밑인 우측 하단에 큰 글씨로 ‘THE IMPACT OF COMMUNITY CINEMA’이 써져있고, 작은 글씨로 ‘communitycinemafestival.com’도 적혀있다. 


코로나 시대에 영화를 본다는 것

‘코로나 시대’라는 말을 검색창에 입력해보자. 수많은 글, 기사와 이미 출간된 단행본들이 쏟아져나온다. 이들 대부분이 현재 팬데믹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코로나 시대’, 팬데믹 종식 이후의 시대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어떤 시대를 무언가의 ‘포스트’로 부른다는 것은 그 무언가의 영향력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글에서 오늘날의 청년 세대는 “'대중적 페미니즘'이라는 비가역적 사건을 경험하고 그 사건을 주체화한 세대"이기에 그에 대한 찬반 여부와 무관하게 ‘페미니즘 세대’로 이름 붙일 수 있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26] 유사한 맥락에서 팬데믹이 종결된 이후에도, 집단 면역이 형성된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19)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당장 코로나19 유행이 지속되고 있는 현재보다도 그 이후가 코로나19의 영향을 더 잘 보여준다면, 그 때가 ‘코로나 시대’라는 호명에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코로나 시대에 영화를 본다는 것’의 의미는 팬데믹이 종결되는 순간 굳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시점이 의미가 만들어지는 시작점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어느덧 팬데믹이라는 긴 터널의 끝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조금씩 터널 바깥의 풍경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차례에 걸친 연기 끝에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도 이번엔 정말 개봉하려는 눈치이며, 이번이 몇 편째인지도 모르겠는 〈분노의 질주〉의 속편이 이미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다.


〈그림 7〉 〈박하사탕〉(1999) 속 폭력 경찰 출신의 가정폭력을 일삼던 실패한 사업가 김영호는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터널에서 나오는 기차를 가로막는다. 〈박하사탕〉은 기차를 거꾸로 돌려 그의 순수했던 시절로 회귀하는 영화이다. 그러나 사실, 이 회귀는 반동적이고 메스꺼운 것이다. ⓒ 이스트필름


중년 남성 배우 설경구가 분한 김영호가 두 팔을 벌린 채 절규하고 있다. 다리 위 기차 선로에 서있는 그의 뒷편으로 터널이 희미하게 보인다.  


터널을 거친 바깥은 관성적으로 터널 이전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이런 순간일수록 우리의 결정이 중요하다.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되는 날, 우리는 무슨 영화를 어떤 플랫폼으로 처음 볼 것인가? 그곳에서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편집위원 상민 / poursoi0911@gmail.com


[1] 사회비평가 박권일의 칼럼집 『축제와 탈진』(yeondoo, 2020)의 제목을 차용.

[2] 이하 모든 흥행 관련 자료의 출처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kobis.or.kr이다. (접속일 2021.05.15.)

[3] 물론 이어지는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이 기록은 지속적으로 갱신되었다. 2021년 1월 2주 차의 80,781명이 현재 최저치이다.

[4] 영화진흥위원회 (2021). 3.

[5] 유명 감독과 배우, 거대 자본 투입으로 제작되어 흥행이 확실한 상업영화를 말한다. 텐트를 세울 때 지지대 역할을 하는 기둥인 텐트폴(tentpole)처럼 영화사에 수익을 보장하는 확실한 지지대 역할을 한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김형석 외, 2021: 49)                                                                                                                      

[6] 2020년 10월, 2021년 4월. 핑계라고 말하는 이유는 CGV의 경영난은 터키에서의 투자 실패로 2018년부터 있었지만,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엄청난 내수 시장으로 흑자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뿐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조선비즈〉의 “4년 묵은 터키 리스크 털어내는 CJ CGV, 실적 정상화 가시밭길” 참조.

[7] 아트하우스 상영관은 유지되지만 전담팀이 해체되었다는 것은 그 비중을 줄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8] CJ CGV 상영관 30% 감축 예정… 새로운 OTT 플랫폼 출범 러시 (2020.10.23.). 씨네21.

[9] KT&G상상마당 영화사업부 8명 중 7명이 권고사직 (2020.12.25.). 씨네21.

[10] 이에 과거 KT&G 상상마당 영화사업부 배급 대행 계약작 감독 12인은 계약을 해지하며 비판 성명을 냈다. 그중 일부를 옮긴다. “새로운 운영사가 배급 대행 계약을 이관하여 영화를 어떻게 전문적으로 배급하고 관리해나갈 것인지도 불투명합니다. 2년이라는 단기간의 운영 후에 새로운 운영사가 또 오는 구조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2년 후의 계약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명확하게 사업비가 책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 운영사가 영화관 사업과 배급 계약작의 배급 대행 관리를 어떻게 해나가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11] 자세한 내용은 2021 봄호의 “〈테넷〉은 (왜) 시네마를 구하지 못하였는가”를 참조하라.

[12] 사실 멀티플렉스의 매출 비중은 영화관람료보다는 매점에서 나온다. 현재 CGV 등에서는 팝콘만 따로 배달하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13] 전국 영화관 장애인 영화관람 환경 ‘열악’ (2013.02.16.). 에이블뉴스.

[14] 물론 공연계라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매 공지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 문제부터 구조물에 의해 시야가 가려지는 곳에 휠체어석을 설치하는 경우도 많다. 자세한 내용은 KOPIS 공식 블로그의 “알고 계셨나요? 공연장 내 휠체어석 실태”를 참조하라. (https://blog.naver.com/gokams_kopis/221499283660)

[15] [이슈+] 넷플릭스 날개 어디까지..디즈니 주가 넘었다 (2020.04.21.). 한스경제.

[16] 자세한 사용법은 〈문화일보〉의 기사 “[Opinion] 우리... '랜선 파티' 할래요? [문화 전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7] Fantasy (2014.12.17.). 평론가 리뷰 이동진 편. ㅍㅍㅅㅅ.

[18] 비평 권력 등의 문제에 대해 더 관심이 있다면 〈콜리그〉에 개재된 “정성일-기능에 관해서 혹은 우리가 앓고 있는 질병은 오래된 것이다”라는 글이 도움이 될 것이다. (https://colleague.co.kr/forum/view/461539에서 볼 수 있다.)

[19] 유아인 좀비물 '#살아있다', '킹덤2'도 못한 넷플릭스 세계 1위 (2020.09.11.). 중앙일보.

[20] 〈사냥의 시간〉이나 〈승리호〉와 같이 원래 극장 개봉 예정이었다가 넷플릭스로 배급망을 바꾼 최근의 사례 이전에는 대부분의 넷플릭스 영화들이 (아카데미에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정도가 아닌 이상) 기성 영화 출판·비평계의 진지한 언급 대상이 되지 못했었다.

[21] "뭐 볼지 고민만 1시간" '넷플릭스 증후군'을 아시나요 (2020.09.19.). 아시아경제.

[22] 김진욱 (2019.09.). 57.

[23] 정경담 (2021.01.). 해적을 위한 변명: 위디스크와 리스트. 마테리알 4호.

[24] 민병준 외 (2020.08.). 35.

[25] 물론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들이 다양성 면에서 기존의 헐리우드 영화사보다 훨씬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 역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것이기에 반드시 빅데이터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점은 영화팬(특히 서구권 시청자들)의 다수가 인정하고 불편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에 관해서는 다른 글에서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26] 박동수 (2020). 31.



참고문헌

단행본

박동수 (2020). 페미니즘 세대 선언. 한편 1호 세대. 민음사.

김형석 외 (2021). 한국영상자료원 엮음. 21세기 한국영화 – 웰메이드 영화에서 K-시네마로. 앨피.

 

논문 및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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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준 외 (2020.08.). 넷플릭스의 경쟁 전략: 네트워크 효과, 콘텐츠 재판매, 오리지널 콘텐츠의 전략적 조합. 전략경영연구 23(2). 25-45.

영화진흥위원회 (2020). 2019 한국영화산업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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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및 온라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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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자료

[전주컨퍼런스] 2021 OTT 산업 트렌드 리포트 & 대안 OTT 소개 Industry Trend Report 2021 & Alternative OTTs (2021.05.04.). JEONJU IFF. Retrieved from https://www.youtube.com/watch?v=MTwFYjWlK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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