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편집위원 보리 / 정치경제학연구회 수레바퀴 인터뷰
‘인권주간’을 아시나요? ’인권주간’은 코로나19로 학내 대면 행사가 불가능해진 2020년 이전까지 매해 가을, 중간고사가 끝난 다음 주에 민주광장에서 열렸던 행사입니다. 다양한 존재의 존엄과 권리에 주목하고 연대하는 학내 단체들이 민주광장에 부스를 설치해 개성 있는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저도 공강 시간에 설레는 마음으로 민주광장에 갔답니다. 여러 부스를 돌아다니며 행사를 체험했어요. 각 부스를 운영하는 단체의 구성원 분들께 장애인, 퀴어, 여성, 비인간 동물, 노동자 등 다양한 존재의 권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준비된 이벤트를 체험할 수 있었답니다. 설명과 이벤트 체험이 끝나면 부스를 돌았다는 표시인 스티커를 받았고, 스티커를 많이 모아 인권주간 굿즈를 받을 수도 있었지요. 그런데, 올해에는 인권주간이 열릴 수 있을까요?
코로나19로 사회 문제를 다루거나 사회적 소수자와 연대하는 학회, 소모임, 동아리, 위원회 등의 학내 단체들이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예측해봅니다. 사실 코로나19 이전에도, 사회 이슈에 대한 학생 사회의 관심도가 줄어들고, 취업난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가 전반적으로 앞당겨지면서 앞서 말한 ‘학내 단체’를 찾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줄어왔습니다. 특히 취업에 도움이 되는 ‘스펙 활동’과는 거리가 먼 학내 인권단체는 빠르게 축소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면 활동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코로나19가 찾아왔고, 줌(Zoom) 등을 이용한 비대면 모임으로는 단체를 유지하는데 기본이 되는 인간적인 유대감이나 친밀감을 형성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취업의 어려움과 사회와 정치에 대한 학생 사회의 무관심, 대면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학내 단체’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제가 활동하던 저희 학과의 사회과학학회와 페미니즘 소모임도 코로나19가 시작된 첫해에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활동을 이끌어 온 선배 세대는 대학 이후의 진로 준비로 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대면 수업 환경으로 인해 활동을 이어나갈 후배 세대가 거의 들어오지 않거나 금방 활동을 중단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학내 단체‘의 어려운 시기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고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던 단체들이 학생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일까요? 대학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데 더 큰 노력이 요구되는 지금의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러한 공간들이 자연스럽게 축소되어 사라져도 되는지에 대해 ‘그렇다‘고 선뜻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여러 악조건이 중첩되는 요즘, 사회의 문제에 주목하고 부당하게 차별받는 존재와 연대하는 학내 공간이 지속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요? 지금과 같은 시기에도 활동을 이어가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이러한 질문을 마음에 품고 저의 옛 동료들을 찾아갔습니다. 저는 ‘고대문화’에서 활동하기 전에 ’수레바퀴’라는 학회에서 활동했습니다. ‘수레바퀴‘는 다양한 사회 이슈와 사회문제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학회 밖으로 나가 연대하는 활동을 합니다. 저와 함께 학회 활동했던 학회 운영진들에게 현재 학회 활동의 상황과 동력을 주제로 인터뷰를 요청했고 학회장 세민(사회 19)과 운영진 지은(철학 18), 린(디자인조형 19), 시언(경제 20)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보리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정치경제학연구회 수레바퀴’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세민 정치경제학연구회 수레바퀴는 고려대학교 중앙동아리 사회과학학회입니다. 노동권, 여성권, 생태권, 평화권 등을 주장하는 곳이에요. 뉴스를 일면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의 관점을 세우기 위한 학습을 하고, 학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희의 지식이나 의견을 사회에 공유할 수 있도록 여러 연대나 투쟁 활동도 진행하고 있어요. 그리고 무척 사이좋은 행복한 공간입니다.
보리 코로나19로 학회 활동의 어려움은 없었나요?
세민 학회가 사실 공부만 한다고 하면 큰 문제가 없거든요. 줌(Zoom)으로 만나서 공부할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만 보면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학회가 학습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데 있는 것이죠. 오프라인 세미나에서는 같은 2시간 세미나를 하더라도 학회원의 삶의 고민이나 학습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모임 분위기를 보면서 캐치하고 같이 해소해 나가는 과정이 중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지금은 온라인으로 세미나를 하고 캠 끄면 끝이에요. 그런 식으로 같이 고민을 해결해 나가는 느낌을 유지하거나 공동체 감각을 유지하는데 훨씬 더 많은 힘을 들여야 하니까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인 것 같아요.
원래는 ‘외화 사업’이나 ‘연대 활동’[1]을 적극적으로 했었어요. 그런데 학회 밖으로 나가서 학생이나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좀 더 어려운 일이 되면서 저희의 의견을 학회 밖으로 피력하기도 어렵고 세미나를 해서 실제로 어떤 활동을 해볼지 논의할 때 막막한 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집회가 없어져 아쉬워요. 그냥 아쉽다, 차원이 아니라 새로 들어온 분들의 경험을 축적하는 면에서도 우려가 돼요. 다양한 활동을 경험해보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니까요
지은 저도 집회에 못 가서 아쉬워요. 학회에서 사회 문제에 대해 학습을 하는데, 글로만 읽으면 사회가 암울하다는 감정이 들기도 해요. 근데 실제 현장을 가면 사람의 삶이 있고 에너지가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확 들거든요. 그런 것들이 대면 세미나를 할 때도 학습에서 오는 무기력감을 이겨내는 큰 요소였던 것 같은데, 코로나19로 학회 밖으로 나가는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학습이 형식적인 공부로 남을 가능성이 커진 것 같아 아쉬워요.
그리고 연대 활동하면서 항상 학회원들끼리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자신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고, 나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어떻게 나의 정체성을 잘 사용할 수 있는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온라인으로 학회 활동을 하니까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만 있다 보니 갇혀 있는 느낌도 들어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위치에서 연대할 수 있을지, 나는 어떻게 더 넓어질 수 있는지 고민하기 어려워진 것 같아요.
시언 말을 조금 더 보태자면, 저는 연대 활동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른 배경을 비롯한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음에도,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되게 많이 느꼈어요. 저는 그게 동아리방에서 느끼는 것과 다른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당사자들과 이야기하고 밥 먹고 함께 투쟁하면서 나의 삶과 투쟁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민할 수 있었어요. 그런 것이 굉장히 소중한 고민이라고 느꼈는데, 지금은 학회 밖으로 적극적으로 나가기 어려워져서 아쉬움이 남아요.
보리 학내에서 사회 문제나 사회적 약자의 존재를 살펴보고 그에 연대하는 분위기가 줄어드는 추세인 듯합니다. 코로나19로 많은 자치 공간이 활동을 중단하며 이런 경향은 심화하는 것 같은데, 이런 학생 사회의 추세에 학회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은 정치적 무관심이 그냥 일반적인 추세여서 극복을 하긴 어렵겠지만 적응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처럼 마르크스주의 서적만 읽으면 당연히 아무도 학회에 남지 않을 것이고, 그때그때 사람들의 관심사에 맞춰 학회도 변화해 왔고,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신자유주의가 심화하고 있는 시대에도 사회 문제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은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과 같이 사회를 다르게 보는 법을 배워 나가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위기감은 항상 느끼는 것 같고, 코로나19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 같아요. 다만 코로나19가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현재의 추세를 극단적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어떻게든 학회가 유지되고 있지만 앞으로 1~2년 후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온라인 세미나로는 학회를 운영해나갈 역량이나 경험을 쌓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린 정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 추이라는 말에 동의해요.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이런 추세이고 다들 학회에 관심 없는데 어떡하지?’라고 고민만 하면 답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취업률을 올릴 수도 없잖아요. 학회 차원에서 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은 다음 세미나를 조금 더 열심히 하고, 지금 연인(硏人)[2]들의 고민을 첨예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학회가 망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없었던 적이 있나 싶어요. 사실 전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크게 보자면 어려운 추세라고 하지만, 어차피 학회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계속 마주하고 있다 보니까 ‘그래도 할 수 있네’라는 느낌을 갖고 활동하는 것 같아요.
세민 사실 학회 활동이 어렵지 않았던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90년대에 선배들이 대화록[3]에 남긴 이야기를 보면, 그때도 망해가고 있다고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 골골대며 30년 동안 유지가 되었던 걸 보면 어떻게든 유지가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학회의 꾸준한 위기는 학회 정체성 때문에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체제에 비판적이고 저항적인 지식을 공부하기 때문에 감수해야 할 숙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지식을 아무렇지 않게 환류할 수 있으면 이미 그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닐까요? (웃음)
앞선 인터뷰 중간중간 수레바퀴가 예전부터 존재해 온 학회라는 걸 눈치채실 수 있는 말이 등장했는데 찾으셨나요? 학생 운동이 대학가에 지배적이었던 80년대 중반에 생긴 수레바퀴[4]는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며 사회 변혁과 학생 운동을 고민하는 학생들이 활동하던 학회입니다. 90년대를 거쳐 30년 동안 유지되고 있고, 동아리방 곳곳에는 운동과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물건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현재 ‘학생 운동’은 과거 대학가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얻었던 활동 정도로 회자되며, ‘사회 변혁’은 학생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 대학생들이 많이 공감했던 구호였습니다. 학생 운동의 모습과 영광을 추억하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지금 대학 사회에서 ‘학생 운동’을 내걸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단체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학생 운동은커녕, 사회 문제에 주목하고 사람들과 연대하는 공간 자체가 지속하기 어려운 것이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수레바퀴 운영진분들과 학회에서 ‘학생 운동‘의 빈자리는 현재 어떤 가치로 채워졌는지, 학회 활동의 동력은 무엇인지, 학회 활동이 앞으로의 삶에 어떻게 녹아들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서 나누어 보았습니다.
보리 80년대를 포함해 학생 운동의 주요 공간이던 과거 학회와 지금의 학회는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은 80년대 수레바퀴는 마르크스주의를 심도 있게 공부했어요. 현재는 그런 공부에만 치중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대학생이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 달라진 것이 그 변화의 배경이라고 생각해요. 80년대에는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들이 취업에 대한 걱정이 없었기도 했고 학생 운동의 구호가 대학가에 강력했기 때문에 너도나도 사회변화를 고민하고 학회 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보여요.
하지만 80년대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학회 활동이 현재 학회원의 삶과 더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같아요. ‘학생 운동’이라는 하나의 표상만으로 학회 활동을 이어나갈 수 없기 때문에 학회 활동과 대학생 신분인 학회원의 삶 사이의 여러 가지 연결점을 고민하게 되고요. 그래서 오히려 마르크스주의로만 돌아가는 것도 경계하고 있어요.
세민 저도 지은 말씀에 공감합니다. 80년대 학회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읽었지만 이제 저희가 마르크스를 읽지 않는 이유는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에요. 80년대는 한국이 아직 신자유주의화 되기 이전이고, 소련같은 학생 운동이 참고할 수 있는 대상도 있었고 실제로 사회 변혁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열성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거잖아요. 그런데 소련은 90년대에 붕괴하고 97년도에 한국은 IMF 경제 위기를 맞고 그 이후에는 한국 사회도 많이 변하면서 그냥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읽는 것만으로는 사실상 사회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힘을 만들기 어려워졌다고 생각해요.
보리 말씀해주신 부분 중에 현재의 삶과 학회 활동이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부분이 인상깊었는데요. 다른 분들은 ‘현재의 삶과 연결되는 학회‘라는 키워드에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가요?
시언 지금 사회를 나타내는 키워드가 ‘불안’인데, 우리가 왜 불안한지 모르는 게 문제잖아요. 그래서 사회를 다층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상황인 것 같아요. 그리고 현재의 삶과 연관되는 공부라는 게, 어떤 공부를 했을 때 그것이 삶과 얼마만큼 연결되는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학회에서 공부하면서 무기력함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무기력함이나 개인의 고민을 개인에게만 남겨두지 않고 다 같이 고민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지 많이 이야기하고 고민하곤 해요. 그런 과정을 통해 현재 상황에 체념하기보다는 기존에 다루지 못했던 것들을 다층적으로 다루려고 노력하면서, 파도에 휩쓸려 가는 흐름에 견딜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린 수레바퀴에서는 계속 지식이 삶과 환류되는 지점을 중시한다고 생각해요. 또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학회원 각각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차이나 성향 차이 같은 것들을 모두 포용할 수 있도록 공통점을 찾는 것은 운영진 회의를 하면서 챙기려는 부분이에요. 그리고 학회 활동과 삶의 연결에 관한 이야기가 주요하게 나온 것은 학회가 학생 운동만 열심히 하거나 세미나만 하는 곳으로 되었을 때 구성원에게 많은 효용감을 주지 못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삶과 연결되는 공부라는 말에 많이 공감합니다.
보리 학회원의 성향, 갖고 있는 지식과 문제의식의 차이 등 학회 구성원의 다양한 면을 포용하려 노력한다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어떤 배경에서 이러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조금 더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지은 일차적으로는 학회에 더 많은 사람을 남기기 위한 생존 방식일 수 있는 것 같아요. 다양한 구성원을 포용하지 않고 특정 정체성을 차별하고 배제한다면 학회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요즘에 학회를 찾아오는 사람은 모두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학회가 페미니즘을 포함해 여러 소수자 정체성에 대해 감수성을 가지지 않거나 공부하지 않는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민 말을 더하자면 페미니즘을 고민하지 않으면 적절한 대안을 고민하기 어려워요. 노동자의 권리를 고민한다고 할지라도 페미니즘을 고려하지 않으면 여성 노동자의 재생산권이나 여성 노동자를 향한 이유 없는 차별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해요. 이런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대안을 내놓으면 인정받기도 어렵고요. 지금은 페미니즘을 학회의 대표적인 문제의식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늘 학회 공동체 차원의 문제의식을 확대해왔다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도 계속 확대해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러한 문제의식을 ’패션’처럼 걸친다기보다는 문제의식이 함의하는 바를 학회의 고민으로 수용한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일 것 같아요.
그리고 학회원들이 가진 지식 차이나 지식의 양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학회를 운영할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학회원들의 지적인 차이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아요. 모두가 같은 수준의 지식을 가질 수는 없잖아요.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데, 그 차이를 어떻게 학회에서 소화할지가 중요해요. 지식이 ‘있음‘과 ’없음‘으로 학회원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어떤 지식을 가졌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지금도 이런 문제에 있어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보리 답변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게요. 운영진분들께 학회에서 접하는 경험은 어떤 의미인가요? 꾸준히 학회 활동을 이어가는 동력이 궁금합니다.
린 학회 활동 왜 하냐 물어보면 할 말이 없어요. 진짜 나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재밌어서 해요. 이 공간이 저한테 좀 유일한 거 같아요. 대학에 와서 학회에서만 활동한 것도 있지만 이렇게 서로의 고민이 점층적으로 쌓일 수 있는 것도 신기하고, 각자가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경청하는 논의의 장이 많이 없는 것도 사실이기에 이런 담론장이 확보된 것 자체가 매우 고유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추가적으로 이런 사람들이 있다니 우후훗.
시언 나는 왜 학회를 하는가.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람’이 활동을 지속하는 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수레바퀴’라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학회 활동 동력의 큰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비통한 자들의 정치학』이란 책을 읽었는데 책을 읽으며 학회 활동이 많이 떠올랐어요. 어떤 개인이 비통함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다 다르잖아요. 책에서는 비통함을 경험하면 마음이 부서져 깨져 파편이 된다고 해요. 부서져 깨진 것들 속에서 체념하고 무기력함에 슬퍼하는 방식으로 반응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깨져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열린 마음을 통해서 사회의 긴장을 끌어안고 창조적으로 승화할 수도 있다고 쓰여 있었어요. 그리고 이런 승화하는 과정 자체가 학회의 모습과 너무나도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잘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지은 제가 학회에 들어온 2018년부터 학회가 흔히 말하는 ‘외부로 뻗어 나가는’ 활동을 잘해오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학회가 정체된 면이 크다고 생각해서 회의감을 많이 느꼈어요. ‘내가 하는 게 정말 학회 밖에 알려지긴 하는 걸까, 학회 활동이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걸까?’ 같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수레바퀴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우리가 뭔가를 공부하고 뭔가를 얻어간다고 해도 이것이 사회에 정말 알려지는가?’ 라고 질문했을 때, 그렇지 않은 측면이 크잖아요. 그럼에도 제가 학회에 있는 것은 요즘 세상 속에서 제가 시민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학회밖에 없고, 시민이 되는 법을 가르쳐준 공간도 학회뿐이어서. 그냥 내가 정치적인 사람으로 있을 수 있어서, 되게 살아 있는 기분이 들어서 학회에 계속 있는 것 같아요.
세민 ‘무엇이 변화인가?‘에 대해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한다면 대체 무엇을 바꾸어야 세상이 바뀌는지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지금 당장 광화문 가서 시위한다고 해서 우리가 전하려던 메시지가 사회에 유효하게 적용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회 활동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기준에 따르면 성과가 없어요. 학회에 오는 사람은 적은 것에 비해 활동에 들여야 하는 공력은 크고, ‘도대체 학회로 뭐가 남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아무리 멋있는 발제문을 써도 발제문을 보는 사람은 이미 발제문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들뿐인 것 같은데 하는 생각도 든단 말이예요. 그럴 때일수록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변화는 보이지 않고, 증명되지 않고, 인정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학회를 안 하고 살기 어려운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다루는 영상을 보면 저는 되게 우울해지고 죽고 싶어지는데, 이건 제가 개인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잖아요. 학회에서 활동하면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또 세상을 능동적으로 해석할 수 있고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울감이 해소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하는 데 있어 학회가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어요.
보리 마지막 질문입니다. 학생 운동이 이루어지던 시절, 학회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졸업하고 학출 운동가[5]가 되어 사회 운동을 업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 대학생이 마주한 현실이 달라져 학출 운동가는 이제 흔하지 않은 경우인 것 같은데요. 현재 학회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학회 활동의 경험을 자신의 삶이나 진로에 어떻게 녹일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은 현재 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크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질문인 것 같아요. 80년대와 달리 지금은 자기의 학회 활동과 소위 말하는 ‘현생’이 분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듯해요. 지금 상황에서는 학회 활동이 진로를 위한 스펙 쌓기와 분리되어 버리니까요. 학회 활동의 경험을 삶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엄청나게 있진 않지만, 저의 삶과 학회에서 공부하는 것이 당연히 분리되어 있지 않고 더 밀접해질 수 있고, 진로를 찾을 때 밀접하게 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 같아요.
린 저도 수레바퀴를 거쳐 간 사람들이 많이 고민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제 안에서 수레바퀴에서의 경험을 명확한 언어로 구현할 수 있을지가 저 자신에게 현재진행형인 고민이예요. 학회 활동이 제 정체성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영향을 안 줄 수 없다는 생각을 계속해요. 모임만 해도 일주일에 몇 번을 참여하고, 살을 부대끼고, 또 학습 이외의 경험을 총체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인데 삶에 안 남을 수 있나 싶어요.
세민 저는 이 질문에 대해 정해진 답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수레바퀴를 거쳐 간 사람들은 그 자체만으로 학회 활동 전과 후에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생각이에요. 정도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수레바퀴 활동을 한 뒤에 전업 활동가가 되는 분도 있고 기자가 되는 분도 있고 대학원에 가서 학회에서 공부한 것을 토대로 심화된 공부를 하는 분들도 있어요. 이런 식으로 학회 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직업을 선택하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 일반 취직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운동 끝’, ‘수레바퀴에서 배운 거 다 끝났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의 삶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게 되는 게 아니니까요. 수레바퀴에서 배웠던 것들이 삶의 수많은 선택에서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선택의 순간에서 갈등을 하겠지만 좀 더 많은 선택지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식으로 달라지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수레 이후의 삶이. 어떤 식으로든.
시언 지난 창립제[6]에서 지금은 수레를 졸업하신 선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기억에 남았던 것은 수레바퀴 경험이 각자의 마음속에 어떻게 새겨졌는지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직접적으로 대학원을 가거나 운동가로 활동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시위를 보게 되면 주의 깊게 보게 된다거나 전단지 하나를 받아도 관심을 갖고 본다든지, 사회적인 일이 발생했을 때 고민을 지속해서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든지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수레바퀴 연인 분들의 삶에 학회 경험이 녹아들고 새겨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회의 경험이 삶에 녹아든 모습을 특정한 것으로 결정지을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소감을 나누면서 수레바퀴 운영진분들은 ‘학회 같은 공간이 학교에서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공간을 넓혀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며 ’코로나19가 끝나고 다시 동아리방에서 모일 때까지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남겨주었습니다. 이러한 말을 들으며 ‘학회 활동은 그래도 꾸준히 유지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 있었습니다. 학회는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겠지만, 사회 문제에 주목하고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학내 단체의 어려운 시기가 끝나리라는 확신을 인터뷰로는 얻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인터뷰를 통해 학내 인권단체가 품고 있는 사회 문제와 사회적 약자에 관한 이야기가 학우들과 연결될 방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소수자와의 연대가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거부되기도 하는 학생 사회와 졸업 후 진로를 일찍 준비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럼에도 ‘학내 단체’의 이야기는 어떻게 학우들에게 연결될 수 있고, 학우들은 ‘학내 단체’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입니다.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고, ‘학생 운동’을 주로 했던 과거의 학회가 지금에 와서는 다양한 소수자성을 포용하고 삶과 연결되는 공부를 지향하게 되었듯, 학우들과 학내 단체는 현재 어떤 이야기를 징검다리 삼아 연결될 수 있을까요?
물론 이러한 고민이 ‘학내 단체’가 축소되는 추세를 당장 해결할 방법을 제시해 주진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학내 단체가 유지되기 어려운 이유가 단체에 따라 상이할 것이기에 그러한 해법을 여러 학내 단체 중 하나인 학회의 인터뷰로 도출하기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학생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이 마주하는 상황을 존중하며, 소위 ‘정치적인’ 이야기나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대학생과 연결될 수 있다면, 어느새 대학가의 상황을 묘사하는 말이 된 ‘각자도생’의 분위기가 조금은 옅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각자의 일로 분주히 살아가는 학우의 일상 속에서 그리고 여기까지 글을 읽은 당신의 일상에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접하고 이야기할 작은 시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마음 맞는 이들과 가볍게 책이나 뉴스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 두껍지 않고, 어렵지 않은 책이나 간단하게 오늘 나온 뉴스를 함께 읽으며 소소하게 생각과 느낀 것을 공유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학내 단체의 문을 두드려봐도 좋겠습니다. 사회의 이야기에 이미 관심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하면서 더욱 다양하고 깊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들이 쌓이다 보면, 사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가 어떤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새 익숙해지고 모임이 가져다주는 앎과 소통의 즐거움은 바쁜 일상 속 활력소가 될지도 모르지요. 나아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우린 조금씩 바뀌어 갈 것입니다. 사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금은 알게 된 우리는 누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살짝 들춰볼 의향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게 점점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음에 품을 수 있게 되고, 한번 넓어진 마음은 학생으로 살아가지 않는 시기가 와도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글머리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려 합니다. 올해에는 인권주간이 열릴 수 있을까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올해 가을에 우리는 학교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을지, 강의실에서 수업이 열리더라도 인권주간을 기획하고 부스 행사를 꾸릴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을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언젠가 다시 열릴 인권주간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붉은색 민주광장 위에 설치된 흰색 천막 아래에서 다양한 부스 행사가 열리고, 인권주간에 참가하기 위해 민주광장을 찾은 학생들의 모습에 설레는 날이 다시 오길 바랍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재회할 수 있으리라는 바람으로 글을 마칩니다.
*인터뷰는 지난 2월 21일에 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는 원래 지난 봄호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필자의 미숙함으로 여름호에 싣게 되었습니다. 지면을 빌려 필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기다려 주신 수레바퀴 운영진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편집위원 보리 / supersun1999@naver.com
[1] ‘외화 사업’은 학회 밖에서 학회의 주장을 알리는 활동으로, 수레바퀴는 주로 인권주간에서 부스를 꾸려 학우들에게 사회 이슈를 소개하는 활동을 해왔다. ‘연대 활동’은 학회 밖으로 나가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활동으로, 빈민, 이주민, 노동자, 여성 등 여러 사회적 약자가 주체가 되는 집회, 기자회견, 선전전, 문화제 등에 연대하는 것을 말한다.
[2] 연인(硏人)은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수레바퀴 구성원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다.
[3] 대화록은 수레바퀴 학회원들이 공유하는 일기장과 같은 것으로, 학회원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대화록에 그 이야기를 적어 공유하는 문화가 있어 왔다.
[4] '수레바퀴’는 대학가의 학생 운동이 활발하던 8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학회인데, 당시 학회는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읽었다. 학회의 정식 명칭 중 일부인 ‘정치경제학연구회’도 마르크스의 『자본』의 다른 이름인 ‘정치경제학 비판’을 연구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5] 과거 많은 학생 운동가는 대학 졸업 이후에도 노동 현장 등으로 진출하며 사회 운동가로 살아가곤 했다. 대학생 신분으로 학생 운동을 하다 사회 운동에 진출한 사람을 ‘학출(학생 운동 출신) 운동가’라 부른다.
[6] ‘창립제’는 학회 창립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 학회를 졸업한 선배들과 현재 활동하는 이들이 만나는 자리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작년부터는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