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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기도, 다루기도, 자르기도 어렵게

[칼럼] 편집위원 이내

한 사람씩 돌아가며 카메라와 시선을 맞추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온라인 간담회는 모두에게 새로운 것이었지만 고령의 조합원들에게는 특히나 낯선 경험이었다. 화면에 대고 말을 하는 건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었고, 불안정한 온라인 환경 탓에 말이 끊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어수선한 와중에도 서로서로 끊긴 지점을 되짚어주며 발언은 계속되었다. 작년 연말, LG 측이 청소용역업체를 변경하며 적게는 3년, 많게는 10년간 트윈타워에서 일하던 청소노동자 80여 명을 집단 해고했다. 고용 승계 요구 농성 30일 차였던 1월 14일. 사원증을 멘 사람들이 오가는 1층 로비에서, LG 트윈타워 청소 노동 조합원들의 온라인 현장 간담회는 이어졌다.


LG 트윈타워 로비에서 점거 농성 중인 청소 노동 조합원들이 노트북을 통해 온라인 간담회에 참가하고 있다. 왼쪽에는 사원증을 멘 사람들이 보인다.


조합원들은 처음 이곳에서 일을 시작할 때 대기업이라 처우가 더 나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오히려 ‘더 업그레이드된 착취’를 경험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처음 입사하고 2주 만에 식당(3,400평) 왁스 작업을 하는데 더우니까 땀이 흐르고 약품 냄새가 엄청 지독했다. 식당이다 보니 기름때가 많이 끼어서 엄청 독한 약품을 썼는데 한두 번 닦아서 해결할 수 없어서 엄청 많이 닦아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왁스 작업은 특수 작업이라 전문 업체에 맡겨야 하는데 이를 기존 청소노동자에게 전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급여와 수당도 교묘하게 빼앗겼다. 한 조합원은 “다른 데보다 식사 시간을 1시간 반씩 줘서 ‘아 여기는 30분 더 쉬게 해준다’ 하고 고맙게 생각했었는데, 노조 만들고 나서 알고 보니 그게 ‘시간 꺾기’라고 해서 너무 황당했다”고 말했다. 매일 30분씩 휴게 시간이 늘어나면서, 주 40시간 근무를 채우기 위해 노동자들은 토요일에도 격주로 출근해야 했다. 그는 “토요일에도 허리 필 새 없이 일했는데 알고 보니 무급으로 했던 것이었다”며 속상함을 토로했다. 청소노동자들은 ‘가글값’(납품회사를 대신해 가글 용액 1.5L짜리 6통을 지하 3층에서부터 운반해 각 화장실에 부착하고 받는 수당), 조장 수당 등 각종 추가수당도 회사와 감독으로부터 갈취당해왔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할 때도 눈치를 봐야 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업무 중) 다쳐도 다음날에 (몸 상태가) 어떠냐는 소리도 못 들었”다고 말했다. 관리자는 오히려 “이런 식으로 산재를 1번 이상 타 먹게 되면 용역회사 사장이 산재 타 먹는 데 가서 훈련받고”, “소장도 이런 일이 빈번해지면 모가지 달아난다”며 다쳐도 산업재해 보상을 요구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 밖에도 간담회 내내 과도하고 위험한 업무 배당, 수당 갈취, 정당권리행사 방해로 인한 그간의 고충이 쏟아졌다. 사실 ‘고령의 단순노무직 노동자’를 둘러싼 갑질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당장 지난해에도 한 노동자의 죽음으로, 각종 잡일을 처리하고, 다치면 산재 보상을 받기는커녕 해고되는 경비노동자의 처지가 공론화된 바 있다. 『임계장 이야기』의 저자 조정진 씨는 은퇴 후 일터에 뛰어든 수십만 노인들이 사회적 안전망에서 배제된 채 비참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질문해보자. 왜 이런 상황은 자꾸 되풀이될까? 왜 노인은 취약한 일자리에 자리를 틀 수밖에 없을까?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생산성은 현대 산업사회의 핵심 가치이다. 따라서 이는 사회적 기대와 보호를 받을 자격을 결정하는 냉정한 기준으로 기능한다. 이런 맥락 속에서, 더는 생산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노인은 사회에서 쉽게 방치된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당 59명이다. 이는 ‘자살 공화국’ 한국의 평균 자살률인 25명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어마어마한 수치이다. 그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48.8%에 달하는 노인 빈곤율과도 무관하지 않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격언을 떠올려보자. 이 말에 따르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노인에게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 게 마땅해 보인다. 하지만 그건 일정한 나이에 다다르면 모두가 비생산적인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무시했을 때나 타당하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상 법정 정년은 만 60세이다. 그리고 사실상 우리나라 은퇴 연령 인구(55~64세)가 생애 주된 일자리를 그만두는 평균 연령은 만 49.4세(여자 47.9세, 남자 51.2세)로 법정정년에도 미치지 못한다. 즉, 노동자들은 60세가 되면 실제 노동 의지나 능력과는 무관하게 노동의 세계에서 방출되며 평균적으로는 그보다도 이른 50세 언저리에 이러한 자격 박탈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사회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일을 그만둔 이들은, 노후 자금마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꼼짝없이 굶어야 할까?


다행히 우리 사회가 그렇게 잔인하지는 않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국가에서 노후 자금을 대신 관리해 준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국민연금은 소득의 일부를 보험료로 납부하고 은퇴한 이후에 연금을 받는 형식의 사회보험이다. 달리 말해 국민연금은 과거의 ‘생산성’을 근거로 제공된다. 이에 따라 불안정 고용 형태로 인한 국민연금 적용제외자, 실업자, 전업주부와 같은 무불 노동자처럼 좁은 의미의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은 모두 국민연금 시스템에서 배제된다.


이러한 국민연금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기초연금이 지급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과 기초연금만으로 적절한 노후 소득을 확보하긴 어렵다.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은 점차 줄어 2028년엔 40%로 축소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마저 40년 가입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으로, 평균 가입 기간인 25년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25%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2019년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소득이 250만 원인 점을 고려할 때, 평균소득자가 25년간 납부했을 시 수령할 연금액은 63만 원 정도로, 상대적 빈곤선인 약 85만 원보다 낮다. 기초연금은 모든 노인에게 30만 원 지급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보충 지급한다는 원칙에 따라 생계 급여나 공적 연금을 받을 경우 연금액이 삭감·환수된다. 생계 급여를 수령하는 저소득층 노인이 실질적으로 혜택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기초’연금으로서의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조기 수령하더라도 50대 후반부터, 기초연금은 만 65세부터 지급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 주된 일자리를 그만두는 평균 연령은 만 49.4세이다. 퇴직 시기와 연금수령 시기 사이에 긴 무소득 공백기가 발생한다. 이렇듯 촘촘하지 못한 한국의 노후 보장 제도 속에서 노인 인구 절반은 아직도 빈곤하다. 그래서 많은 노인은 자신들을 쫓아낸 노동 세계에 다시 진입해 ‘일하는 자’가 된다. 노동 세계에서 한번 퇴출당했던 고령 인구가 여전히 경제활동인구의 16%를 차지하는 아이러니는 이렇게 탄생했다.


노령, 정년이라는 딱지를 단 이들은 주로 청소, 경비 업무, 건설업 및 조선업 일용직 등 단순 노무직과 일용직에 새롭게 자리를 튼다. 결코 신체, 감정 노동강도가 낮다고 할 수 없다. 신체 능력의 쇠퇴와 비생산성을 이유로 노동의 세계에서 퇴출당한 이들이 역설적으로 부당한 처우, 높은 노동강도, 많은 노동량을 견뎌야 하는 직업으로 유입되는 것이다. 전체 산업재해 중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3%로, 경제활동인구 중 고령자 비율인 16%보다도 높다. 더 약해진 몸으로 더 강도 높고 위험한 일을 하는 상황에서 기인한 수치로 볼 수 있다. 게다가 노인노동자 대부분이 산재가 더 많이 은폐되는 비정규직, 용역 하청업체 소속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실제 고령자 산재 비중은 더 높을 것으로 추측된다.


노동인생 ‘에필로그’

노령이 무직으로 정의되는 사회에서 노인의 노동은 노년기 용돈 벌이 혹은 봉사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하자면 노동 인생 ‘2막’이라기보다는 노동 인생 ‘에필로그’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노인 노동자는 젊은 노동자와 동등한 수준의 권리와 노동자성을 부여받지 못한다. 이들이 다른 노동자와는 달리 경비 ‘아저씨’, 청소 ‘아줌마’와 같이 친근한 호칭 혹은 멸칭으로 불리는 점도 이와 같은 사실을 방증한다. 더 구체적으로, 노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관련 법률 조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고령의 노동자는 일반 노동자보다 적은 휴업급여를 받는다. 휴업급여는 산업재해로 인한 요양 및 업무중단을 이유로 발생한 노동자의 소득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지급된다. 「산업재해보상보호법」 제52조에서는 업무상 사유로 질병을 얻거나 다친 노동자에게 일하지 못한 기간에도 평균임금의 70%를 휴업급여로 지급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법 제55조에 의하면 휴업급여를 받는 근로자가 61세에 도달한 후부터는 휴업급여가 매년 4%P씩 감액된다. 이렇게 휴업급여의 소득 대체 비율이 차등적으로 감소하여 65세 이상 노동자는 평균임금의 50%만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고령을 이유로 휴업급여의 지급 수준을 감액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 게다가 고령 노동자가 대부분 저소득 노동에 종사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에 더해 이루어지는 감액은 휴업급여의 생활 보장적 측면을 더욱 약화한다는 점에서 불합리하다.


또한, 노인 노동자는 2년을 초과해 일해도 무기계약직으로 자동 전환되지 않는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에서는 사용자가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을 2년 이내로 제한하고, 이를 넘길 시 해당 근로자는 무기계약직 노동자로 전환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55세 이상 고령자는 ‘특례 기간제 노동자’로, 사용자는 2년을 초과해서도 이들을 기간제 근로자로 사용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이 규정은 사용 기간의 제한 없이 고령의 계약직 노동자를 계속 고용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노동자를 보호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계속 고용은 업무 숙련도를 향상시킨다는 측면에서 사용자에게도 긴요하다. 예를 들어, 숙련된 청소노동자일수록 건물구조에 대한 숙지와 동료 간의 합을 바탕으로 높은 작업 능률을 보인다. 그런데도 현 규정은 사용의 연속성만을 보호할 뿐 그에 상응하는 책임, 즉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은 막음으로써 사용자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65세 이후에 고용된 노동자는 「고용보험법」 제10조에 따라 실업급여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규정은 재취업을 전제로 지급되는 실업급여를 사실상 받지 못하는 고령 노동자가, 보험료 납부 의무만을 질뿐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방지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인구 고령화와 노인 빈곤화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법이 제정된 과거와 현재의 65세 이상 고령자의 근로 의사와 능력은 다르다. 이는 여러 청소노조의 대표적인 요구가 ‘70세로 정년연장’이란 점을 고려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즉, 고령화 사회의 노인들은 70세까지도 노동할 의사, 능력 그리고 필요가 있지만, 정년과 실업급여에 관한 규정이 오늘날의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65세 이후 고용된 노동자를 실업 급여 지급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오히려 노인 노동자들을 오래된 연령 기준에 따라 차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공식적인 법으로써 노인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자성이 지워졌을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이들의 존재와 노동은 자주 숨겨졌다. 편집회의가 새벽에 끝나 가끔 첫차를 탈 때가 있다. 하루를 열심히 살았다는 뿌듯함도 잠시, 차 안 가득한 노인을 마주하곤 머쓱해진다. 고요하다 못해 경건한 분위기까지 풍기는 지하철을 타고 이들은 일터로 향한다. 사람들이 등교, 출근하기 전 청소를 마무리하기 위해 정오보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출근하는 것이다. 심지어 5년 전쯤에는 청소노동자 엘리베이터 사용 자제 권고가 이슈화된 바 있다. 건물 이용자들이 청소노동자들과 마주치지 않게 하려는 조치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할 때, 새벽 출근을 고수하는 이유가 업무의 특성이나 아침잠 없는 노인들의 부지런함에 있다는 고용자의 변명에 의심이 든다. 해마다 새벽 버스를 이용하는 청소·경비 노동자를 위해 차편을 늘리겠다는 정치인들의 복지 공약이 뉴스에 오른다. 해당 업무를 사람들이 다니기 전에 다 끝내야 하는 이유가 노동자의 업무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 다음에 출근하고 등교할 이들에게 이들의 존재와 노동을 비가시화하기 위함이라면, 그 ‘복지’는 과연 누구를 위한 걸까.

이처럼 노인 노동자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며, 이들의 생산적이고 당당한 노동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위축된 노인 노동자는 불합리한 처우 및 그림자 노동을 더 쉽게 용인하게 된다. 위축과 취약성 증대의 악순환이 반복되며 마침내 ‘고.다.자’(고르기도, 다루기도, 자르기도 쉬운 노동자)가 탄생한다.


여전히 노동자

사실은 당연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은데 사회 전반에 만연한 어떤 믿음이 있다. 그리고 이는 사람들이 불평등을 파생하는 사회구조에 의문을 품지 않고 쉽게 용인하도록 만든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러한 믿음을 ‘부정의의 교의’라고 부른다. 노인 노동에 있어서 제1 부정의의 교의는 ‘노인은 노동자가 아니다’이다. 노인 노동의 개선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는 믿음, 즉 노인 노동자가 ‘여전히 노동자’라는 새로운 교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노인 노동조합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선, 노인 노동자는 노조 결성 및 가입을 통해 이들이 노동자이며, 나아가 주체라는 점을 이중으로 선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을 생산과 협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주체로서 선언한다. 다시 말해, 사측의 지시만을 받는 객체의 위치에서 탈피해 사측과 쌍방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노사관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노인 노동자는 쌍방향 노사관계를 형성하기에 앞서 애초에 노사관계의 노동자 항에 포함되지 못한다. 앞서 살펴봤듯 이들은 동등한 노동자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차별받는다. 따라서 노인 노동자는 노조를 만듦으로써 자신이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엄연한 ‘노동자’임을 드러내고, 노조 활동을 통해 노사관계의 주체로서 등장할 수 있다. 나아가 이들은 조직력을 바탕으로 개별 사용자뿐만 아니라 고령자를 차별하는 법과 제도 전반에 더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다. 노인 노동자들은 당사자성을 바탕으로 자신들을 둘러싼 법과 제도의 개악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고, 차별 대우에 대해 개선을 요청하는 정치적 주체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노인 노동자는 노조를 통해 무력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를 가시화할 수 있다. LG 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처음에 ‘이 나이에 내가 노조 만들겠어?’라는 생각에 노조 결성을 망설였다고 말한다. 이처럼 고령의 노동자가 대부분인 청소 노동의 세계에서 ‘나이 딱지’는 이들이 부조리를 조금 더 감내하게끔 하는 무력감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다른 청소노동자들 역시 비슷한 상황에서 노조를 통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들도 합심하여 ‘생애 첫 노동조합’을 꾸렸다. 일단 노조를 만들고 나니 각종 불이익에 대응하거나 정년 연장을 요구할 때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조합원들은 “암튼 노조 들고부터 노조 핑계로 갑질 더 당하긴 했지만, 소리 낼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무력한 지위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들에게 갑질 근절 이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LG ‘본사’ 건물의 ‘1층’을 당당히 점거하며 진행되는 이번 농성은 그 자체로 노동자를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더 값지다.


마지막으로, 노인 노조는 조합원 서로서로 교육하고 지지하는 커뮤니티로서 기능한다. 이번 간담회에선 “(우리가) 60세 이상 고령자들이다 보니 낯선 단어가 참 많았다. 착취, 갑질과 같은 단어들을 전혀 몰랐다”, “산재를 자유롭게 타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노조 만들고 알았다”와 같은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기본 업무에 포함되지 않는 식당 왁스 작업을 묵묵히 하던 조합원도, 시간 꺾기의 일환으로 30분 늘어난 휴게시간에 되레 감사하던 조합원도, 노조에 들고 나서야 해당 업무가 노동 착취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들은 당연하고 개인적인 일이라고 여겼던 경험을 공유하며 구조적인 문제로 해석하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로서 마땅히 누렸어야 할 권리를 되찾아 나갔다. 나아가 조합원들은 이 과정을 통해 연대의 가치를 배웠다고 말했다. 서로 이름도 모르던 청소노동자들은 노조를 계기로 서로에게 가족보다도 든든한 존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외부 농성에도 참여하며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노동자들과도 연대했다. 한 조합원은 “우리(LG 트윈타워 청소노동자)가 승리해야지만 ‘우리’가 힘을 얻기 때문에, 이게 같이 가는 연대구나”라고 느꼈다며 “같이 힘을 모으지 않으면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걸 배웠다”라고 이야기했다.


‘고.다.자’ 못 잃어

작년 연말 집단해고 이후 4월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LG 트윈타워 해고 노동자들은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다. 사측은 청소 품질 저하가 해고의 주된 이유라고 설명했지만, 노조 측 의견은 이와 다르다. 모든 일은 2019년 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LG트윈타워 분회가 생긴 후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2011년 홍익대 청소노동자 사태 등 다른 사례에서도 적용되었던 노조 무력화 및 와해 공식이 이번에도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한다.


노조결성 이후 사측의 대응은 ‘노동조합 결성 → 집단 해고 → 신규노동자와의 갈등 조성’까지 전형적인 노조파괴 공식을 따르고 있다. 노조 측은 LG 트윈타워가 그룹 본사 건물로 상징성을 가진 공간이기 때문에 노조 조합원들을 트윈타워에서 계속 고용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노조원인 임원실 담당 청소노동자와 일부 중간관리자는 선별적으로 고용 승계된 점이나 ‘LG 마포빌딩’에서의 전원 고용 승계를 제안하면서 본사 건물인 ‘LG트윈타워’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측에서는 신규 용역업체에 기존 노동자 승계를 강요할 수 있는 근거가 없으며, 고용 승계가 되레 새롭게 고용된 청소노동자 90여 명의 일자리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고용 승계 거부를 정당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노조 측이 11월에 이미 LG 측의 성급한 조치에 우려를 표했음에도 일방적으로 업체 변경 및 새로운 고용을 강행했다는 맥락을 알고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막무가내로 일을 추진하고 신규노동자를 볼모 삼아 노조 측에 책임을 전가한다는 인상을 벗기 힘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시장원리에 따라 하자 없이 진행한 해고에 노조가 불매운동하고 떼쓰는 상황’으로 묘사하는 일각의 입장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집단해고와 본사 건물에서의 고용 승계 거부 이면에 자리한 노조 파괴적 맥락을 인식해야만 이번 LG트윈타워 농성이 갖는 의의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LG의 고용 승계 거부는 ‘노동조합’, 그중에서도 ‘고.다.자’로 착취당하던 고령의 청소 노동자들이 마침내 결성한 ‘노인노조’를 건드리고 있다. 앞서 살펴본 노인노조의 순기능을 모두 위협할 수 있는 것이다. 노조가 와해하고 노동자가 쫓겨난 전력이 생기면 LG트윈타워에서는 당분간 새로운 노조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고령의 청소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노동자로 선언하고 연대해 사측과 적극적으로 협상하지 못하고 과거에 그래왔던 것처럼 비가시화되어 무력하게 순응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고분고분하고 다루기 쉬운 노동자를 잃기 싫을 누군가가 바라는 바일 수도 있겠다.


LG 트윈타워 농성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

“만일 상호작용하는 양자가 주체의 역할과 객체의 역할을 모두 담당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두 역할을 모두 담당할 때 반드시 따르는 위험을 감수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완전히 인간적인 관계는 있을 수 없다(바우만, 2019)”라는 말을 노인 노동자와 사측의 관계에 대입해보자.


노인 노동자가 객체뿐만 아니라 주체의 역할을 모두 담당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사측이 주체뿐만 아니라 객체의 역할을 모두 담당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노인 노동자가 주체가 될 때 반드시 따르는 복잡한 협상 과정을 감수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사측이 객체가 될 때 반드시 따르는 이익의 포기를 감수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진정으로 인간적인 노사관계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노인이 인간적인 노동환경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용돈이 아닌 ‘임금’을 받고, 청소 아줌마가 아닌 ‘청소노동자’로 불리기 위해서는 우선 노인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사측이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동의를 ‘받아내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선 노인 주체의 중요성 그리고 주체되기 과정에 수반되는 사측의 부담 감수가 당연하다는 점에 대해 사회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당사자의 경험과 목소리만큼 강력한 설득수단은 없기에 노인 노조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지금 있는 노인 노조를 지키고 더 많은 노인 노조의 활약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이다.



편집위원 이내 / dlso9827@gmail.com


참고문헌

단행본 및 소책자

울리히 벡 (1997). 위험사회(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홍성태 (번역). 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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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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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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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2020.11.18.). LG 청소노동자의 작은 바람 “’왜 밥먹는데 숟가락 소리 나?’ 갑질도 참았는데…” [인터뷰] 박소영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LG트윈타워 분회장. 프레시안. Retrieved from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11813322391886#0D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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