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지방']《옥천신문》 대표 황민호
- 지역의 삶과 밀착해 성장하고 진화하는 진짜 풀뿌리 언론 《옥천신문》 이야기
1. 지역과 지방은 어떻게 다른가?
지역의 비극은 국가가 중심을 서울에 두고, 하위구조인 지역을 지방으로 크게 뭉뚱그려 편입시켜 설정한 데서 기인한다. 서울-지방-지역의 위계 구조에서 지역은 서울과 지방의 틈바구니에서 목소리도 못 내고 잠식되어왔다. 여기서 편의상 지방이란 광역시나 광역 거점도시로 규정하고, 지역이란 그 외의 시군단위를 지칭한다. 지방은 서울에 대한 열등감과 피해 의식에 놓여있다는 점에서 지역과 유사한 면이 있으나 서울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그 외 지역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울과 유사하다. 지역은 이중착취를 당해왔다. 한번은 서울에 의해, 한번은 광역거점 도시에 의해 이중 나선형 구조로 연일 착취되는 뫼비우스의 고리 안에 편입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농촌은 인근 도시와의 통합을 강요당하는 삼중 착취 구조에 놓여있다.
사실 지방분권과 균형 발전이라는 패러다임은 지방과 지역을 한 묶음으로 묶이게 만드는 구호였지만, 이 구호와 운동의 단물은 사실상 지방이 다 가져갔다. 혁신도시니 공공기관 이전이니 국가의 분권 정책에 해당하는 것들은 거점도시나 그 인근에 생겨 거점도시를 조금 더 크게 만드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거점도시가 커질수록 지역은 쪼그라들었다. 거점도시들은 인근 농촌 즉 제일 하위 구조에 있는 지역을 물·전기 등의 에너지원, 혹은 쓰레기 소각, 화장장 등 혐오 시설을 위치시키는 데 적극 활용했고 그린벨트 등으로 묶어내는 데 사용했다.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이용하며 착취를 한 것이다. 그렇게 지방은 마치 지역을 대변하면서 목소리를 내지만 지역의 목소리는 철저히 은폐해왔고, 필요에 따라 자신의 목소리에 지역의 목소리를 얹거나 그것을 덜어내면서 해당 도시의 이득을 극대화하는 데 이용했다. 그들에게 균형 발전과 지방분권이란 서울과 광역거점 도시들 간의 것들이고, 지방과 지역의 문제는 아니었다. 지방에서 많이 가지고 와야 지역도 먹고 살 수 있다는 해괴망측한 이론으로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공간적 위계에서 지역 농촌 군 단위는 불가촉천민들이 사는 향·소·부곡이다. 그것은 제도권 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수없이 강화되고 있다. 서울의 변방으로 지방을 위치시켜야 체계의 통치로 관할이 가능하지만, 관계성이 공고하며 자치의 물결이 휘몰아치기 쉬운 지역이 커지면 골치 아픈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서울과 지방의 구분은 엄밀히 말하자면 체계의 구분이다. 명확하게 이를 넘어서 본질을 꿰뚫는 대칭축을 찾는다면 서울과 지역의 구분이 더 적확하다고 볼 수 있다. 서울과 지방이 서로 대칭되는 체계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지역은 정서적 생활권을 오랫동안 다져온 관계의 공간이고 자치의 공간이다.
2. 교육과 미디어가 지역을 수렁에 빠뜨렸다
가장 중요한 통치구조 중 하나인 교육과 미디어는 전형적인 국가 중심으로 짜여졌다. 교육은 국검정교과서와 획일적인 국가교육체계로 서울을 표준으로 설정하고 모든 것을 이에 맞추는 걸 지향하고 있으며 ‘자본’과 ‘글로벌’이 합작하여 '사람은 서울로, 꿈은 세계로'라는 구호를 주입시키고 있다. 미디어는 사실 매우 중요한 통치기구이다. 미디어는 권력과 자본에 대항하며 입법, 사법, 행정에 이은 독립적인 제4부로서의 역할을 자임해왔고 그것의 부침이 있었지만, 전형적인 능력주의에 기반해 서울 엘리트나 지방 엘리트가 이를 독점해왔다는 사실은 이의가 없을 것이다. 국가는 문자나 전파는 함부로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민(民)에게서 그것들을 사실상 앗아갔다. 지역신문은 1988년 《홍성신문》을 필두로 지방자치제가 시작도 하기 전에 기초단위 주간신문이 들불처럼 창간했지만, 국가는 이들이 선거 등 정치 관련 보도를 하지 못하게 막아놓았고 지역신문들은 이를 넘어서 보도하다 대규모 정간사태까지 맞이하며 이에 대한 권리를 쟁취해왔다.
2004년 비로소 「지역신문발전지원법」이 만들어졌고 그 해 공동체 라디오가 시범 실시됐다. 공동체 라디오도 현재 지역신문의 초창기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정부는 전파는 공공재이기에 아무에게 줄 수 없다며 철저하게 봉쇄해왔다. 2004년 공동체 라디오 8개사를 허가한 이후 무려 17년 동안 허가가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정부의 의지가 없었다는 사실의 발로이다. 최근 정부는 공동체 라디오 20개사의 운영을 허가했지만, 여전히 예전 지역신문처럼 독소 조항인 보도금지가 여전히 남아있다. 역사의 반복이다. 이런 의식의 기반에는 지역이 스스로 미디어를 갖는다는 것에 ’니들이 제대로 할 수 있겠어’하는 못 미더운 의식들이 아주 짙게 깔려 있다. 선출되지 않은, 시험에 통과하지 않은, 지역 무지렁이한테 미디어를 맡긴다는 것은 마치 준비되지 못한 사람에게 큰 도구를 주는 것과 같다는 인식이다. 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지방자치제가 시작될 당시에도, 교육 자치가 시작될 즈음에도 지역이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너무 일찍 시작했다는 말들이 여기저기 터져 나온 것은, 지역 토호들이 다 잠식할 거라는 거창한 나름의 이유를 담았지만, 지역 비하와 부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체계와 관계의 생활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조금 거칠게 이야기하면 야만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3. 풀뿌리 신문이란 무엇인가?
보통 풀뿌리 신문이라고 통칭하는 것은 ‘지역 주간신문’이 보편적이다. 재정과 인력 상황 때문에 기사를 지면으로 못 내보내고 인터넷으로 운영하는 신문사도 있고 격주간, 혹은 한 달에 한두 번 지면 신문이 나오는 곳이 있다. 하지만 시군단위 풀뿌리 언론과 광역거점 단위 지방 일간지는 지역을 대하는 방식이 정서적, 체계적으로 다르다.
지방 일간지는 보통 광역거점 지역에 본사를 두고, 광역거점 지역에 속한 시군 기초단위 지역에 주재 기자를 두는 방식으로 지역을 커버한다. 서울과 지방의 위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지방 안에서도 광역거점 지역과 기초단위 지역의 위계는 그만큼 존재한다. 거점이 중심이고 그 외 지역은 변방인 셈이다. 지방 일간지가 광역거점 도시 소식을 중심에 두고 그 외 지역의 기사들을 주재 기자들이 시군에서 매일 발행하는 보도자료 중심으로 챙긴다면, 지역 주간지는 지역이 중심이기 때문에 보도 자료보다는 생활 속 발굴 기사를 더 챙기게 된다. 물론 지역 주간지도 면보다는 읍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때 지방 일간지와 규모 말고 뭐가 다르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시군 기초단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안다. 기초단위 지역은 다 둘러보는데 자동차로 30분이 채 안 걸리는 말 그대로 초밀집 생활권이다. 이러한 지역들은 그 규모나 성격이 광역거점 지역들과는 다르다.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동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밀착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거리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형성된 유구한 전통과 지속된 관계를 아무리 날고 기는 뉴미디어라도, 그리고 서울에서 온, 광역거점 도시에서 온 이름있는 레거시 미디어라도 넘지 못하는 선이 분명 있는 것이다.
일간지 등 기존 레거시 미디어들이 체계를 우려먹고 산다면 풀뿌리 미디어는 관계 안에서 뿌리내리고 성장한다. 건강한 풀뿌리 언론은 주민들의 필요 속에 생존하기 때문에 필요를 잃어버리는 순간 그냥 그저 그런 사이비 언론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실제로 지역 주간지 중에도 사이비 신문이 즐비한 지역도 많다. 언론사 간판 걸어놓고 정치 놀음하려고 하는 신문도 참 많다. 우후죽순 사이비 신문이 창궐하는 지역보다 차라리 없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말과 글을 왜곡하는 것은 민심을 어지럽히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은 과잉과 결핍으로 고통받는다. 어떤 곳은 사이비신문의 범람으로, 어떤 곳은 지역신문이 하나도 없어 언론의 사막화로 권력이 전횡을 휘두르면서 힘들다. 지역신문은 취재기자 하나하나가 일당백이고 힘이다. 보통 옥천, 보은, 영동군 세 지역을 연합뉴스 기자 하나가 커버한다. 그런데 옥천 한 지역을 《옥천신문》 기자 10명이 커버한다. 저인망처럼 아래서부터 쫙 옥천의 사건사고를 훑기 때문에 기사의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굳이 ‘특종’과 ‘단독’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다 특종이고 단독이기 때문이다. 제보와 민원이 이미 몰리고 있고 밑바닥 기사를 싸그리 훑고 지내기 때문에 기성 언론이 외면하는 특종은 사실 풀뿌리 신문에 즐비하다. 눈 밝은 지방 일간지나 방송사 기자, 또는 작가들은 그래서 지역신문을 구독한다. 특종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대충 매주 훑어도 그냥 그대로 써도, 아니면 조금만 발전시켜서 써도 좋은 기사가 나올 것이 분명한데 이들은 지역에 오지 않는다. 주재 기자들은 보도자료 챙기고 광고 관리하는 데 여념이 없고 거점에 있는 기자들은 거기서 나오는 소식 챙기기도 버거우니 사실 지역은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저널리즘 방임지역이다. 그 틈새를 지금 수십 년동안 주민 속에서 뿌리내린 풀뿌리 언론이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4. 풀뿌리 언론은 그 자체로 지역의 역사
‘풀뿌리 민주주의’를 입버릇처럼 내뱉지만, 이것을 정착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풀뿌리 언론 없는 지방자치란 지역 유지들의 권력다툼과 돈 잔치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역신문을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이자, 마지막 보루라고 하는 것이다. 알아야 참여를 하고 자치를 할 것 아니겠는가. 지역 정보를 도무지 모르는데 어떻게 직접 행동을 하는가. 이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풀뿌리 언론이 생활 속, 체계 속에 파고들어 끊임없이 정보를 제공하고 권력과 자본을 감시, 비판, 견제하는 저널리즘의 툴을 일상적으로 작동시켜야 가능한 일이다.
지자체 1년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내가 뽑아준 의원들이 어떤 공적인 일을 하고 있는 지 일상적 감시 체계의 레이더망이 필요하다. 주민들의 생활 속 민원을 바닥에서 끌어 올리고, 지역 변방 소수자의 삶에 감수성의 더듬이를 들이밀면서 지역의 변화를 알아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지역에 살아야 한다. 살아야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직접 주민이 돼서 일상의 언어를 듣고 체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바닥부터 언론의 신뢰를 쌓는 일이다. 신문사가 바로 지척에 있고 언제든 가면 기자를 만날 수 있고 기자에게 언제든 제보할 수 있는 이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산성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서울의 이슈에 매몰되지 않고 뉴스의 사막에서 지하수를 파는 심정으로 관정을 꽂아 물을 길어 올린다. 척박한 논밭에 그렇게 물을 댄다. 목을 축이고 양질의 양식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그런 노력 때문이다. 권력과 자본의 갑질, 부조리, 부패, 예산 낭비 사례를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말의 물꼬를 트기 시작하면 글 밭에 있는 양식들은 저절로 자란다. 주민이 주인인 생활 정치, 풀뿌리가 살아있는 민주주의가 비로소 구현되는 것이다. 풀뿌리 공론장을 제대로 지키면서 가능한 일이다. 치우침 없는 모두의 목소리를 공론장에 올려놓기 위한 노력, 기울어진 공론장을 재건하여 무너지려는 공동체를 다시 복원하는 일은 사실 풀뿌리 언론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는 지역의 삶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그 자체로 ‘지역 역사’이기 때문이다.
5. 《옥천신문》 이야기
《옥천신문》은 지난 1989년 9월 30일 옥천군민 222명이 창간 주주로 참여해 자본금 5천만 원으로 창간한 인구 5만 명의 작은 농촌, 충북 옥천군의 지역신문이다. 1988년 국민주 방식으로 《한겨레》가 창간했고, 전국 최초 기초자치단위의 지역신문인 《홍성신문》이 창간된 이듬해 군의 민주 방식으로 《옥천신문》이 탄생했다. 초대 대표는 오한흥 당시 《한겨레》 옥천지국장이 맡았다. (《한겨레》 초대 사장·회장을 지낸 청암 송건호 선생은 옥천군 군북면 비야리 출신이다.)
오래돼 보이는 신문 1면의 윗 부분. 맨위 중앙에는 '옥천신문'이라 크게 쓰여있고, 그 왼쪽 밑에는 '창간호'라 적혀있고 중앙에 있는 가장 큰 기사의 제목은 "「지역발전」에 큰 몫 기대"이다. 그 아래로는 "지역주민 군행정 대다수 모른다 (61.6%), "주민대다수 옥천군 상징 몰라. 꽃: 개나리, 나무: 은행나무, 새: 비둘기" 등의 글씨가 비교적 큰 글씨로 적혀있다. 그림 설명 끝.
《옥천신문》은 매주 금요일 지면으로 발행하는 주간신문으로 3,400부(11월 기준)를 발행하고 있다. 옥천군 인구는 5만 194명(10월 기준), 1만 5천여 가구로 다섯 집 중 한집은 《옥천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연 매출은 약 7억 원으로 55%가 구독료 수입이고 나머지 45%는 광고 등의 수익이다. 월 구독료는 1만 원으로 한 부에 2,500원꼴이다. 광고는 지역주민과 관공서, 지역 기업과 자영업, 소상공인 광고로 채워지고, 결혼을 알리는 광고는 무료로 해준다. 부음 광고 등 생활 광고도 많이 들어온다.
《옥천신문》은 편집국, 디자인국, 총무국으로 구성돼 있다. 기자 수는 편집국장을 제외하고 취재기자 8명, 편집기자 4명, 인턴기자 10명이다. 인턴기자는 《옥천신문》이 운영하는 옥천 저널리즘스쿨(풀뿌리 청년언론학교)에서 연수를 받으며 실제 기사도 쓰고 있다. 인턴 기간은 1개월에서 1년까지 다양하다. 1년 12달 365일 상시 모집을 한다. 네이버에서 옥천저널리즘스쿨을 검색하여 얼마든지 신청할 수 있다. 《옥천신문》이란 32년 된 느티나무에서 인큐베이팅 된 미디어 관련 기업들이 금거북이길 골목에서 긴밀하게 사회적 경제블록을 만들고 있다.
왼쪽에는 벼 이삭 그림이 있고, 그 옆에는 주황색 O, 연두색 C, 파란색 S가 세로로 쓰여있다. O 옆에는 한글로 '옥 천', C 옆에는 '저널里즘, S 옆에는 '스 쿨'이라 적혀있다. 'S 스 쿨'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Okcheon Community-journalism school'이라 적혀있다. 그림 설명 끝.
《옥천신문》 문화 콘텐츠 사업단에서 2017년 독립한 사회적기업인 주식회사 ‘고래실’은 잡지 월간 《옥이네》를 통해 주민의 삶을 기록한다. 옥천의 옥(沃, 비옥할 옥)자를 가져와 ‘옥이네’로 지었다. 농촌과 농민 기본소득, 청소년 기본소득, 작은 학교의 의미, 지역 문해 교육 등 서울에 10개의 이야기가 있다면 지역에도 10개의 이야기가 있다는 걸 확인하는 잡지다. 지난 2020년 7월 3주년을 맞은 옥이네는 유니세프 아동 친화 도시 인증을 받은 옥천군의 어린이 놀 권리에 대해서도 다뤘다. 《옥천신문》의 문화 콘텐츠 사업단에서 독립한 고래실의 규모는 어느덧 《옥천신문》만큼 커졌다.
고래실과 같은 건물에 있는 식당인 ‘옥이네식당’은 《옥천신문》이 로컬푸드를 식재료로 활용해 건강한 식단을 구성원에게 제공하려고 시작한 구내식당이었다가 사회적기업으로 독립했다.
최근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된 주식회사 ‘우리 동네’는 옥천 유일의 무가 생활정보지 《오크지》를 발행하며 옥천 닷컴이란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대전에서 발행한 무가지(《교차로》, 《벼룩시장》 등)에는 옥천의 소식이 거의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생활정보지를 만들었다. 《옥천신문》과 같은 건물에 위치한 ‘우리동네’는 디자인회사로 디자인이나 광고 홍보 업무도 같이 하고 있다.
신문이나 잡지보다 더 긴 호흡으로 옥천을 기록하는 아카이브 법인 ‘옥천기록공동체’도 있다. 지난해 옥천 주민들의 삶을 담은 책 『오랜 이웃』을 발간하기도 했다. 옥천 온라인기록관도 만들고, 마을기업으로 지정되면 기록카페를 만들어 차 한잔 마시면서 옥천의 다양한 기록을 꺼내 볼 수 있는 공간도 계획 중이다.
이들은 모두 《옥천신문》이 위치한 옥천군 옥천읍 금거북이 길에 옹기종기 모여있고, 《옥천신문》이나 옥천 저널리즘스쿨 출신들이 구성원으로 있다.
《옥천신문》은 사단법인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이사장 김병국) 주최로 오는 12월21일 개국하는 ‘옥천 FM 공동체 라디오(104.9Mhz)’도 함께 준비 중이다. 최근 사단법인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는 문화체육관광부형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기도 했다.
별칭은 OBN(Okcheon community Broadcasting Network), ‘오븐’이다. 풀뿌리 방송을 제대로 구워 만들겠다는 포부로 구호도 ‘풀빵(풀뿌리방송) 굽는 오븐(OBN)’으로 정했다. 공동체 라디오 사업은 2004년 7곳이 허가를 받으며 시작했다. 17년 만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7월 옥천 FM을 비롯해 20곳을 추가로 허가했다. 옥천 FM 사업 본부장은 오한흥 《옥천신문》 초대 대표가 맡는다. 같은날 KT IPTV 789번 채널을 받아 개국할 예정이다. 현재 청소년방송활동가를 모집했고 방송 장비, 기획과 대본작성 등 실무를 준비하고 있다.
옥천신문의 확장과 연대는 변화되는 미디어 환경에 커뮤니티 밀착형 미디어로 나름 변화에 조응하는 방법이다. 이는 종이 신문의 한계와 빈틈을 채워줄 것이며 지역 정보를 선순환하고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이라는 공론장에 여러 어젠다를 올려놓으면서 풀뿌리 민주주의 질적 향상에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32년 동안 주민들의 마음과 힘으로 성장해왔던 옥천신문의 새로운 저력이며 앞으로의 계획이기도 하다. 풀뿌리 언론 활동은 지방자치와 주민자치가 제대로 안착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건강한 지역언론은 그 자체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이자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좌측에는 남성 노인이, 우측에는 여성 노인이 농촌을 배경으로 옥천신문을 들고 서있다. 그림 설명 끝.
6. 풀뿌리 언론은 여전히 어렵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풀뿌리 언론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 사이 미디어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미디어가 여전히 출몰하고 있다. 트렌드가 바뀌고, 플랫폼도 시시각각 다변화되고 있다. 풀뿌리 언론은 신문이라는 플랫폼에만 100% 의존하기보다 지역 밀착형 콘텐츠로 다양한 플랫폼을 구성해야 할 내외적인 압박과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물꼬를 트지 않으면 공룡처럼 멸종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미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과 벤처 기업들이 골목 상권까지 다 아우르는 하이퍼 로컬로 지역의 정보와 홍보, 상권까지 다 점령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 중이기 때문이다. 자본과 기술로 침략하는 이들을 우리는 지역에 살고 부대끼면서 밀착된 정보와 콘텐츠로 막아낼 수 있다. 이는 결국 사람과 자본-기술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밀리면 사실 고사하기 마련이다.
이런 차원에서 《옥천신문》의 새로운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잡지부터 신문, 생활정보지, 소수자 신문 등 인쇄 매체를 비롯하여 라디오, 텔레비전까지 섭렵하며 다양한 플랫폼을 수평적 연계방식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신문이 매주 마감을 하듯이 영상과 음성 매체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편성의 힘에 있다. 레거시 미디어가 같이 만든 웨이브가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에 고전을 못하지만 그래도 경쟁이 되는 것은 편성된 프로그램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유튜브 채널을 하나 연다고, 팟캐스트를 시작한다고 해서 정시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여러 일들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지역 콘텐츠를 통해 구독자가 늘게 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조회수와 구독자 수를 높이려는 포인트는 아예 포기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이는 콘텐츠의 자극적인 변질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역 콘텐츠는 충분히 지역 주민들에게 소구할 수 있으면 된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과욕이고, 된다 하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
옥천은 방통위에서 허가받은 주파수 104.9Mhz로 공동체 라디오를 12월 21일 본격적으로 내보낸다. 하루 6시간 이상 방송을 해야 한다. 이 말인즉슨 하루 최소 6개 프로그램이 진행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루 24시간 편성할 수 있는 IPTV채널을 확보했다. 이는 또한, 영상을 24시간 편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레거시 미디어들은 결국 편성을 담보해내야 하고, 이 편성의 힘은 많은 일자리를 양산할 수밖에 없으며 양적·질적으로 공익적인 미디어 일자리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개별화된 미디어들은 서로 제 살 깎아 먹는 경쟁을 하지 않고 연대와 협력 방식으로 공유하고 있는 모델은 서로를 살릴 것이다. 공존∙공생의 기치를 내걸고 지역의 자급과 자치, 순환과 공생의 가치를 전파할 것이다. 이는 미디어만 사는 것이 아니라 지역도 같이 살 수 있도록 연동되어 있다. 인구가 줄어들고, 특히 청소년, 청년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이 시점에서 커뮤니티 저널리즘으로 미디어 일자리 인구를 늘려가며 기록과 공유로 지역을 살리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옥천은 커뮤니티 저널리즘의 선두주자로서 지역신문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려고 한다. 많이 주목해달라.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살 수 있다. 메가시티의 망령에서 벗어나 진짜 리얼월드 코뮌이 세상을 구할 것이다. 이를 지키는 지역 풀뿌리 언론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황민호《옥천신문》대표 / minho@o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