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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제주로, 사람은 모르겠고, 퀴어는 일단 서울로?

[특집 '지방'] 편집위원 해진

ⓒ서울퀴어콜렉티브

회색의 한국 지도이다. 다른 기호나 경계선 없이 배경으로만 그려져 있다. 지도 위에는 점, 그리고 연관된 두 점을 잇는 선이 있다. 각기 다른 색으로 칠해져 있다. 서울에 아주 많은 점들이 모여있고 그 외의 점은 강원도, 경기도,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에 드문드문 찍혀있다. 


담백하게 그려진 한국의 지도[1], 그 위에 유난히 많은 점과 선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 “당신은 어떤 궤적을 그리고 계신가요”라는 제목의 지도는 퀴어들이 태어난 곳, 자라온 곳, 그들 일상에 놓인 장소 곳곳을 표시해 삶의 궤적을 따라가볼 수 있게 해준다. 결과는 눈에 보이는 대로다. 기획자조차 “놀라울 정도로 서울로 향하거나 서울 내에서 이동하는 퀴어들이 많다”[2] 할 정도로 그들의 이동 사이사이에는 서울이 깊게 박혀 있다. 이를 무슨 말로 요약해볼 수 있을까, “말은 제주로, 사람은 모르겠고, 퀴어는 일단 서울로?”


서울, 서울, 서울?

퀴어들이 서울로 향하는 이유는 아주 많고, 그것들은 슬프게도 뻔했다. ‘친구사이’가 담은 인터뷰에서도,[3] ‘전국퀴어모여라’에 나온 이들의 말 속에서도,[4] 이번에 직접 만난 영 님, 차니 님, 영효 님과의 대화에서도 그 내용은 유사했다.


영 님, 차니 님, 영효 님 대학에 진학하기 이전까지 지방에 거주한 20대 퀴어이다. 영 님과 차니 님은 중소 도시, 영효 님은 광역시에 사셨다.


※본고에 인용된 ‘친구사이’와 ‘전국퀴어모여라(이하 ‘전퀴모’)’의 인터뷰 및 글들은 모두 해당 단체에 속한 것으로, 과거 해당 단체에서 진행된 것을 재인용 했음을 밝힙니다. 소중한 목소리를 담아 주신 ‘친구사이’·‘전퀴모’ 운영진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우선은 서울이라는 공간에 집약된 수많은 문화 행사와 만남들이다. ‘전퀴모’에 글을 기고한 늑대 님은 서울 사람들이 부럽다 말한다. 퀴어 퍼레이드에서부터 퀴어 관련 세미나, 모임, 강의, 퀴어 전용 술집까지 정말 모든 것들이 그곳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5] 사람이 많으니 다른 퀴어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도,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지방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다. 그렇다 보니 만약 서울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광역시 등의) 지방에 살고 있다면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 자연스레 무관심해진다는 것도 또다른 문제였다.


서울의 많은 인구는 퀴어들에게 일종의 보호 장치를 제공하기도 한다. 예컨대 이동 경로나 일상생활에서 점유하는 공간의 범위 자체가 크다면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일일이 알 수도, 알아갈 필요도 없다. 서로에게 자연스레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퀴어들 또한 마찬가지로, 서울에서 이들은 ‘익명성’을 얻는다. 나를 모르는, 한 번 마주치고 말 사람들이라면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대로 있기가 비교적 편하다. 차니 님은 자신이 서울 한복판에 서서 “나 레즈비언이다” 해도 지방에서 그렇게 외치는 것보단 마음이 편할 거라며, 서울에서의 무관심은 사실 기회라 했다. 더 편안하고 자신 답게 살 수 있는 기회 말이다. 관심이라 하면 지금으로서는 ‘동성애는 죄악입니다’하는 관심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관심은 단순히 대도시 서울의 개인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이 많으니 퀴어도 많고, 그에 비례해 더 많은 퀴어(‘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다보니 서울에 사는 이들이 지방 사람들보다는 다양한 외형과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을 비교적 더 잘 포용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차니 님은 이렇게 말했다. “인구 수가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 인식이 중화된달까요.”


꿈, 일자리, 미래 계획을 비롯한 생활의 여러 조건들 또한 그들을 서울로 이끌었다. 2016년 전퀴모 모임에서의 첫 자기소개에선 ‘꼭 서울에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라던 한 참가자도 일자리, (경제) 생활 등을 이유로 2년 뒤인 2018년에 서울로 올라갔다. 문화 지원 사업, 관련 재단 등 너무도 많은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고, 예술업에 종사하다보니 더 많은 기회를 찾고 생활을 꾸리려면 결국은 서울에 가야했다는 것이다.[6]


이것이 비단 ‘퀴어’인 그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청년 인구수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긴 하나, 올해 부산·울산·경남의 청년 인구수는 2018년 대비 평균 약 10%가 줄었고(수도권 지역 감소율의 두 배 이상이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코로나로 인해 지방의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 데다 애초에 양질의 일자리가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라 분석했다.[7] “꼭 예술 분야가 아니더라도 부산이 일자리가 되게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부산에서 만난 다른 분들도 다 그러시고”, 그는 이리 덧붙였다.[8] 서울로 뻗어있던 지방 퀴어들의 자취가 지방 청년들의 그것과 닿아있던 이유였다.


이들의 목소리가 일관되고 공통적인 것은 그들이 겪어온 문제들이 얼마나 고질적이고, 만성화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야기가 갈수록 뻔하게 느껴졌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누군가에겐 이미 일상이 된 일이라는 의미일 테다.

 

 

서울 vs 지방?

하지만 서울과 지방 간의 뚜렷한 격차에도 불구하고 그 둘을 무자르듯 나눌 순 없었다. 문제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서울서베이 도시정책지표조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민의 69%는 성소수자를 싫어하며, 그중에서도 31.8%는 성소수자를 매우 싫어한다고 밝혔다.[9] 서울시는 또한 퀴어문화축제조직위가 2019년 제출한 사단법인 신청을 두고 2년간 진행을 미루다 결국 지난 8월 불허했다. 불허 사유는 혐오세력의 주장을 답습한, 사실과 다르거나 조직위 측의 잘못이 아닌 것들이었다.[10]


서울이 퀴어에게 제공했던 익명성도 대개 그들이 ‘정주’할 때 아니라 ‘통과’할 때에만 유의미했다. 퀴어 지리학자 래리 몹은 고정성과 확실성을 기반으로 하는 기존의 장소 이론들과는 달리 “장소없음, 움직임” 같은 개념들이 퀴어들이 공간과 관계 맺는 방식을 더 잘 설명한다고 말한다.[11] 예를 들어 성북구에 사는 B가 사당역에서 약속이 있다 해보자. B는 그곳으로 이동할 때, 그리고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이 아닌 태평백화점 부근과 그곳의 식당에서 익명성을 얻는다. 그가 공부하는 학교 혹은 직장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2014년 국가인권위윈회의 성적 지향성·성별 정체성에 따른 실태 조사에 따르면 (현재 직장인인) 동성애/양성애자 응답자의 86.2%는 일터에서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간다. (트랜스젠더는 애초에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을 온전히 밝히려면 차별, 괴롭힘, 심하게는 해고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은 서울과 지방이 크게 다르지 않다.[12]  익명성은 그 의미에 이미 내포되어 있듯, 자신을 아는 사람들과 생활하는 일상 속에서까지 퀴어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는 없었다.


한편 지방이 반드시 퀴어 ‘불모지’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경북대, 부산대 등 지방거점국립대학을 비롯하여 강원대, 단국대(천안캠퍼스), 인제대 등 비수도권 지역에 위치한 전국 15여 개 대학교에는 성소수자 동아리와 모임이 운영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고등학교 최초로 전북외국어고등학교에도 성소수자 동아리 ‘ThanQ’가 생겼다. 퀴어문화축제는 말할 것도 없다. 대구 퀴어문화축제는 올해 12회차를 맞았으며 이외에도 제주(2017년), 경남(2019년), 춘천(2021년)을 비롯한 일곱여 개 도시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열려 왔다. 인권조례의 제정 및 운용에 있어서도 서울과 지방이 대척을 이루지는 않는다. 인권조례의 핵심 사항으로 꼽히는 인권위원회는 서울(5곳)과 경기도(3곳) 뿐 아니라 부산(4곳), 광주(5곳), 울산(3곳)에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광주는 (광역시이긴 하나) 인권 전담 부서를 설치, 전담 인력을 배치하여 인권 증진 정책과 인권 교육을 적극적으로 이행하고 있다.[13]


영효 님도 지방에서 비교적 ‘괜찮게’ 살았다. (기독교 신자인 부모님에겐 아니지만) 이런저런 상황에서 친구들에게 자신이 퀴어임을 말하거나 학교 안팎의 다른 퀴어 친구를 알게 되기도, 함께 놀기도 하며 말이다. 딱히 고민을 많이 하고 살지 않는다는 영효 님이 그나마 꼽아본 학창 시절의 고민은 이것이었다. “대학교 어떻게 가지? (웃음)”


 영 님 또한 가장 친한 주변인들에겐 정체성과 지향성을 모두 밝혔다. 하지만 동시에 서울과 지방이 정말 다르며, 서울이 지방보다 살기 좋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한다. 지방의 지인보다는 서울의 주변인들에게 하는 커밍아웃이 편하고, 지방보다는 서울에 사는 것이 정보와 교류 면에 있어 훨씬 낫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퀴어들끼리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던 데다,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 입시에 영향이 갈까 학교에서 그와 관련된 말조차 꺼내기 어려웠다는 영 님은 그럼에도 퀴어의 행복에 있어 ‘서울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고 읊조렸다. 편견과 인식의 문제는 어디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장 지방이 서울처럼 된다고 해도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게 서울보다 지방에서 사는 게 퀴어에게 더 좋단 얘기는 아니지만, 결국은 사람들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어디로?

서울의 좋은 점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만 “지방에 살면서 퀴어로서 얻는 이점은 무엇이 있을까요”하는 질문 후엔 어김없이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그리곤 ... “없는 것 같아요. (웃음)” (영효 님), “쥐어짜내 보자면 … 지방에서는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 때문에 물론 배척당할 수도 있겠지만 또 많은 시간을 보냈었으니까 (자기 정체성을 알렸을 때 받아들여진다면) 서울에서보다 더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생활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영 님) “진짜 작은 동네면 그쪽에 있는 퀴어들을 대부분 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진짜 끈끈해질 수는 있어요. ... 물론 말했다시피 금방 사귀고 깨지기도 하지만” (차니 님) 하는 답변들이 뒤따랐다.

 

그래서 퀴어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지방인가, 서울인가? 이리 보면 서울에 갈 이유는 너무나 많고, 지방에 있을 이유는 딱히 없다. 그렇다면 또다시 도돌이표처럼 서울과 지방의 기로에 섰을 때 우리는 매번 시옷쪽으로 향하는 발걸음만을 상상할 수 있을까.


영 님은 반드시 서울에 가야 한다 생각했던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요즘엔 여러 이유로 꼭 서울이 아니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서울에 살고 싶었던 건 일자리나 인프라 등의 이유 외에도 이곳에 퀴어들을 위한, 퀴어들이 모이는 공간이 많아서였는데, 최근에는 지방에도 그런 장소나 모임들이 이전에 비해선 많이 생기고 있다 들었기 때문이다. 또 교통이 괜찮으니 원한다면 서울에 바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허나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서울이 아니어도 괜찮겠다며 스스로 타협하는 것 같다고도 말한다.


“지금은 그냥 막연하게 엄마가 보고 싶어 지방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차니 님은 5년 후만큼은 꼭 서울에 살고 싶다고 한다. 아직 불안정한 20대 초반과 먹고 사는 것에 ‘올인’해야 할 것 같은 30대의 사이인 20대 중반 즈음이면 자신의 능력도 사회 문제들에 대한 생각도 비교적 안정되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정말 사회적으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그때, 서울에 있어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고, 또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은퇴까지 한 먼 미래엔 “동성혼이 합법화되지 않는 이상 일단은 셰어하우스”를 지어 서울 근교의 경기도에서 다른 퀴어들과 함께 살고 싶다. 늙어서 고독하게 살지 않도록, 고독하게 죽지 않도록 말이다. 경기도가 특히 더 좋아서는 아니고 “되도록 서울이면 좋지만 돈이 안 되니까 근교로 빠지는” 전략이다. 


영효 님은 지금, 그리고 5년 후에도 서울에 있고 싶다. 학교도 (아마 대학원도) 다녀야 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지방에는 수요가 없다는 이유다. 이후 10, 20년 동안은 서울에서 퀴어 전용 술집이나 가게에 가며 생활을 즐기고, 꼭 퀴어가 아니더라도 서울에 살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서이기도하다. 아주 먼 미래에는 “굳이 서울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 그 까닭은 여럿이다. “문물을 많이 이용하지 못할 나이이기도 할 거고 ... 집값도 문제고 ....” 영효 님은 만약 훗날 경제력이 있다면 서울에 살긴 하겠지만, 지금의 키오스크만 해도 특정 집단만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데 기술이 더 발달된 미래엔 자신도 도시에서 잘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 서울 아닌 다른 곳을 향하는 발걸음은 쉬이 상상하기 어려우며 이들의 선택은 앞서 언급된 퀴어로서, 청년으로서 가졌던 다층적인 이유들과 맥을 함께 했다. 그런데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 삶 전반에 서울이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서울을 뒤로 하는 발걸음은 자발적 선택이 아닌 다른 무언가의 압력 때문인 듯했고, 발을 옮기면서도 그들의 시선은 어쩐지 같은 곳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것은 ‘서울에는 정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몰려 있다’는 지난한 발견과 확인 외에도 특정한 지점들을 가리켰다. 서울에 지속적이고도 안정적으로 발붙이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할 능력이 있는 주체들, 경제력 있는 주체들뿐이라는 점이 하나, 그리고 ‘퀴어는 서울로’ 했을 때의 퀴어는 항상 2,30대의 젊은 퀴어들만을 상정해왔다는 점이 둘. 다른 말로 하자면 빨대처럼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서울은 언제나 그 반대편에서 사람들을 밀어 뱉어내고 있다는 것이 하나, ‘그래서, 어디로?’라는 질문은 이제껏 대개 2,30대의 청년 퀴어에게 던져졌다는 것이 둘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 사회에서 이미 함께 살고 있을 노인과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을, 특히 노인인 퀴어나 장애인인 퀴어를 만나기도 그 삶을 상상하기도 쉽지 않게 만드는 현대 사회를 암시했다.


서울에 살다 부산에 위치한 회사의 스카우트로 자리를 옮긴 ‘친구사이’의 카이 님은 다시 서울로 올라올 계획은 있느냐는 질문에 이리 답한다. “... 사실 노년이 돼서 서울 올라가면 마땅한 일자리도 없을 거고, ... 솔직히 처음 왔을 때는 5년 정도 있다가 서울 다시 갈까 생각도 했는데 굳이 서울로 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부산 지역에도 나이 드신 게이 분들도 있고 하니까 같이 어울리며 지내면 외롭지 않겠고, 서울 사는 지인들도 교통편이 좋아서 쉬이 볼 수도 있으니까.”[14]


이처럼 개인이 어느 공간을 선택하는지에는 그들의 정체성, 경제적 상황, 나이를 비롯한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저 그가 퀴어이기 때문만도, 특정한 경제적 조건을 가졌기 때문만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들의 선택은 또한 서울, 중산층, 소비력·능력 있는 청년(과 경제력을 지닌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짜인 사회를 드러내는 동시에 사회의 그러한 조건들이 퀴어에게 있어서도 동일하거나 심화된 정도로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방의 퀴어가 행복하려면 

지방이 서울과 닮아갈수록 지방의 퀴어는 행복해질까? 아마 어느 정도는 그럴 것이다. 인구가 늘어나면 (문화)자본, 사람들의 다양성, 포용성과 그 수가 제공하는 익명성이 파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 [‘같아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바로 앞서 언급된 것들만 보아도 대도시에 살기 위해선 ‘괜찮은’ 경제력, 능력 등 ‘정상성’으로 분류될 것들이 필요했고, 이는 서울이 가진 여러 이점과 별개로 모두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자리, 주거 등 생활 차원에서의 기본적인 보호망들 또한 필요하다. 영 님은 이리 말한다. “당장 내 한몸 건사하기도 힘들면 ‘내 정체성이고 지향성이고 뭐고’ 이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더욱이 대개 국가에서 ‘인정’하지 않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가진 퀴어들은 청년 주택 청약, 전세금 대출에서부터 시작해 기초적인 구직 활동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고, 그렇기에 자연스레 ‘생활동반자법’, ‘1인 가구 청약’ 등의 정책과 가장 기초적인 보호를 가능케하는 인권 조례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이 중요해진다.


인터뷰 대부분을 서로 얼기설기 얽힌 서울과 지방에 대해 말하며 보냈지만, 지방의 퀴어가 행복해지려면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를 묻자 세 분의 인터뷰이는 지방이 서울과 비교해 어떻게 변해야 한다는 말 이전에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느낌, ‘나’로 살아도 안전하며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이 중요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를 위해 주로 언급된 것들 중 하나는 ‘온라인’이었다. 직접 만나지는 않더라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을 덜 수 있고, 온라인으로 서울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여하거나 수도권의 퀴어와 만나는 활동 등을 통해 지방의 퀴어 또한 그들과 같은 공동체에 속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어서 차니 님은 지방이 서울처럼 변하지는 못하더라도 지방에도 〈너에게 가는 길〉 등 성소수자 관련 영화를 상영해주거나 소소하게 퀴어 영화제를 여는 등 작은 문화 행사라도 점차 확대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무조건 자본의 논리로만 생각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이처럼 지방의 퀴어들이 경험하는 단절감과 외로움을 끊어내는 일은 곧 그들을 대도시 퀴어들과 연결해 퀴어 문화가 ‘서울’에 거주하는 특정 공동체에만 [전유되게 하는] 구조를 해체하고, 그것을 자본과 대도시로부터 조금이라도 끊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장애·환경·퀴어·노동운동가 일라이 클레어는 뉴욕에서 열린 1994년 ‘스톤월 25’ 행사에 대해 유사한 비판을 던졌다. 비싼 입장료, 수많은 장신구와 기념품들로 점철된 행사는 경찰에 대항했던 스톤월 항쟁 당시의 퀴어들을 기념했다기보다는 오직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만 열려 있는 중산층과 상류층 도시민 파티일 뿐”이었다는 것이다.[15]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또다른 축으로 작용한다. 이를 위해선 온오프라인으로 주변 퀴어와의 교류를 늘리는 것도 필요하나,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해 보다 개방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인터뷰이들은 입을 모아 퀴어를 그 공동체, 그리고 퀴어들과 (원한다면) 보다 편안하게 연결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했다.


“많은 퀴어들이 자기가 퀴어인 게 의도치 않게 밝혀졌을 때 다른 사람들의 반응 같은 걸 걱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사회가 개방적으로 변하면 정말 좋겠죠. 사람들이 보통 미디어의 영향을 잘 받으니까 사회 인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컨텐츠가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영효 님)


“그냥 학생들 사이에서 그런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성교육처럼 그냥 인권 교육의 하나로 교육해도 괜찮을 것 같고 학교 측에서 성소수자 동아리 같은 걸 할 수 있도록 변화하면서 지원해주면 좋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청소년들이 오래 머무는 곳이 학교니까요.” (영 님)


“결국 행복하려면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되잖아요. 자기가 있는 공동체에서 그게 부모님이 됐든, 친구가 됐든 자기 자신에 대해 말했을 때 그 사람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자연스러워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너는 그렇구나 알겠어 근데 네가 이걸 얘기했다고 해서 내가 너를 달리 바라보진 않을 거야’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자기를 밝히고 자기 자신대로 살아가는 과정들이 조금이나마 편해지고 덜 외로워지면 그래도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차니 님) 


epilogue

인터뷰를 정리할 때 사용했던 음성 인식 앱은 퀴어를 자꾸 ‘키어’라고 썼다. 한 번도 ‘퀴어들’을 ‘퀴어들’이라 써준 적 없으며 그를 ‘키워드’라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땐 그나마 다행이었다. MS워드는 ‘키어’ 아래에 빨간 밑줄을 그어줬지만 키어 대신 코어, 케어, 키 어로 바꾸는 게 어떻겠냐 물었다. 이들은 퀴어라는 말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나는 사람의 탓이라 생각한다.


계속해서 지방의 퀴어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그 얘기를 온전히 잘 하지 못한 것 같다. 관련된 자료가 너무 없어서일까,[16] 지방의 퀴어는 언제나 서울의 대립항으로 존재하는 ‘지방’ 아래에서만 말해질 수 있어서일까,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방금 다 말한 것 같기도 ...


차니, 영, 영효 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정말 다양하고 복잡하며, 어찌 보면 이상적이고, 때로는 당연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로 여러 층위로 둘러싸인 지방 퀴어들의 삶을 드러낸다. 오랫동안 반복되는 말들은 신선하지 않은 문제 제기와 제안들이 아니다. 이들 삶 한 구석에 충족되지 못한 행복의 조건들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 모두를 요청했다. 지방의 퀴어로서, 지방의 퀴어만이 아닌 퀴어로서, 퀴어만이 아닌 사람으로서.


편집위원 해진/ jnnnterm@gmail.com


[1] 서울퀴어콜렉티브 (2020). 85-88.

[2]  [인터뷰] “서울퀴어콜렉티브는 낯섦과의 마주침이다”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 1편 (2020.08.14.). 국립현대미술관.

[3] '친구사이'는 1994년 2월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 인권 운동 단체이다.

[4] ‘전국퀴어모여라’는 비수도권에 사는 퀴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단체이다. 지역의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연결하며, 모임을 기획하고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5] 전퀴모 첫 번째 이야기 (2014.05.09.). 전국퀴어모여라. [온라인 게시글].

[6] [전퀴모 아카이빙] 부산에서 만나 다시 서울에서 만난 앤드님 (2021.07.15.). 전국퀴어모여라. [온라인 게시글].

[7] ‘일자리 찾아 수도권으로’ 부울경 MZ 급감(종합) (2021.11.22.). 부산일보.

[8] [전퀴모 아카이빙] 부산에서 만나 다시 서울에서 만난 앤드님 (2021.07.15.). 전국퀴어모여라. [온라인 게시글].

[9] 서울퀴어콜렉티브 (2020). 89-93.

[10]  서울시는 퀴어문화축제조직위의 설립 허가 신청을 받은 이후 소관 부서가 지정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2년간 진행을 지지부진하다 올해 8월에서야 ‘설립 불허’로 최종 결정했다. 다음은 지난 8월 서울시가 신청을 불허하며 든 이유들이다. 첫째, 축제 시 과도한 노출로 인해 검찰로부터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바 있다. 둘째, 성기를 묘사한 제품을 판매하는 등 실정법 위반소지가 있는 행위를 하였다. 셋째, 매 행사시 반대단체와의 물리적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대규모 행정력이 소모되고 있다. (홀릭, 2021.08.31.) 첫째는 허위사실, 둘째는 혐오세력의 논리를 반복한 것, 셋째는 서울시의 당연한 책무를 조직위 측의 잘못으로 전가한 것이다.

[11] 캐스 브라운· 제이슨 림 (엮음) (2018). 48-49.

[12] 국가인권위원회 (2014). 136.

[13] 인권조례와 지역 사회의 인권 발전. 사실 농촌, 도 단위의 지방 지역에서의 인권 조례 제정 비율은 (기초 지자체 기준) 각각 10%, 25%로 제정 비율이 50%에 달하는 광역시·특별시보다 확연히 낮다. (김중섭, 2015) 비록 광역시에 한정되어 있긴 하나, 이 지점에서는 ‘지방’과 ‘보수’·‘폐쇄’를 직결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14] [2015년][기획]〈전국퀴어자랑 #2〉 경상도 부산 – 전라도 상남자 ‘카이’의 부산 적응기  (2015.04). 친구사이.

[15] 일라이 클레어 (2020). 104-105.

[16] 고려대학교 도서관 웹사이트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퀴어 지방’을 키워드로 검색 시 전체 5개 중 4개가 「지방 도시의 퀴어 축제를 통해 형성된 다양성 레짐: 대구, 제주, 부산을 사례로」로 중복이었으며 나머지 한 개마저 지방의 퀴어 퍼레이드 연구지였다. ‘퀴어 공간’을 키워드로 검색 시 비수도권 지역의 퀴어에 대한 이야기는 검색결과 총 84개 중 대여섯 개 남짓이었다.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외 4개 단체에서 수행한 「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_연구보고서」의 응답자의 거주지는 79%는 서울, 경기도,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 크게 몰려 있었다. ‘친구사이’의 「LGBTI커뮤니티사회적욕구조사-주요결과보고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참여자들의 70%가량이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거주 인구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탓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연구와 설문조사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퀴어들에 집중되어 있었다. 서울과의 큰 격차를 경험한다는 것 외에 지방 퀴어에 대한 정보가 극히 부족한 상황에서 서울 퀴어와 지방 퀴어의 삶 사이의 다층적인 차이를 파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지방 퀴어가 현재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파악하고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장단기적 계획을 세우려는 노력 또한 뒤따라야겠다.


참고문헌

단행본

서울퀴어콜렉티브 (2020). 타자 종로 3가/종로3가 타자. 서퀴콜프레스.

일라이 클레어 (2020). 망명과 자긍심: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 전혜은·제이 (번역). 현실문화.

캐스 브라운· 제이슨 림 (엮음) (2018). 섹슈얼리티 지리학: 페미니즘과 퀴어 지리학의 이론, 실천, 정치. 김현철 외 3인 (번역). 이매진.

 

논문 및 저널

국가인권위원회 (2014).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김중섭 (2015). 인권조례와 지역 사회의 인권 발전. 현상과 인식, 39(4), 39-71.

루인·정희성 (2018). 퀴어와 공간의 관계 재구성. 공간과 사회, 63, 194-226.

 

기사 및 온라인 자료

김덕준 (2021.11.22.). 미래 동력 잃었다 … ‘일자리 찾아 수도권으로’ 부울경 MZ 급감(종합). 부산일보. Retrieved from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1112219161487799

홀릭 (2021.08.31.). 퀴어축제조직위 사단법인 신청 거절, 서울시의 희한한 공문. 오마이뉴스. Retrieved from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70418

국립현대미술관 (2020.08.14.). [인터뷰] “서울퀴어콜렉티브는 낯섦과의 마주침이다”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 1편. Retrieved from http://www.mmca.go.kr/pr/blogDetail.do?bId=202008140000473&bCd=08&cdId=1360&bGb=02

전국퀴어모여라 (2019.03.03.). 〈전국 퀴어 모여라〉는 뭘 하는 곳인가요? [온라인 게시글]. Retrieved from https://koreaqueer.tistory.com/71

전국퀴어모여라 (2014.05.09.). 전퀴모 첫번째 이야기 [온라인 게시글]. Retrieved from https://koreaqueer.tistory.com/8

전국퀴어모여라 (2021.07.15.). [전퀴모 아카이빙] 부산에서 만나 다시 서울에서 만난 앤드님 [온라인 게시글]. 전국퀴어모여라. Retrieved from https://koreaqueer.tistory.com/126

크리스 (2015.04.). [전국퀴어자랑 #2] 경상도 부산 – 전라도 상남자 ‘카이’의 부산 적응기 [온라인 게시글]. 친구사이.  Retrieved from https://chingusai.net/xe/newsletter/435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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