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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특집 '지방' 닫는 글] 편집위원 열음

그리고 어느 여름밤, 당신은 채 덜어내지 못한 미묘한 억양으로 나의 존재가 신기하다며 고백했다. 그럼 너의 학창 시절에는 내내 한강이 있던 거네. 신기하다, 여기는 내게 늘 한 켠의 로망이었거든. 응, 나는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한강을 찾았어.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딱 10분, 그거면 올 수 있는 거리니까 말이야. 까맣게 반짝이는 물결과 그 위로 쏟아져 내린 불빛들은 이십 년을 넘게 보아도 매번 새로이 아름다운 것이었기에 나는 뚝섬유원지에서 청담, 그 사이를 지날 때마다 늘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으나, 봐도 봐도 생경한 황홀경에 홀린 채인 나와는 정반대의 마음으로 당신은 여태 이 도시가 낯설다고도 말했다. 있잖아, 바다와 강은 똑같이 물이잖아. 똑같은 물이니까 이 강물도 흐르고 흐른다면 내 고향의 바다에 도달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나는 그게 통 실감이 안 나. 영원히 고여 있을 이곳으로 꾸역꾸역 물살을 거슬러 올라온 것만 같은 기분이 자꾸만 들어. 왜일까.


그러게, 왜일까. 그때의 나는 당신에게 별다른 대답을 건네지 못한 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고, 그러므로 여전히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바다에 가보기는커녕 가끔은 고여 있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평생을 한강의 야경에 붙박인 내가 당신을 태동한, 당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그 바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리는 만무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이번 호 특집에 실으려 준비했던 아이템들을 두고 머뭇거리고 있을 무렵, 당신은 들뜬 표정으로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간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아무리 간만으로서니 그렇게까지 기뻐할 일이냐며 핀잔을 주는 내게 당신은 답지 않게 투정을 부렸다. 여기서 나고 자란 너는 절대로 내 마음 모른다. 바보 같은 소리긴 한데, 오래 고향을 비워두게 되면 언젠가는 그곳이 완전히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서울에서 잘 지내다가도 가끔 훅 무서워질 때가 있고 그래.


사라짐, 사라짐. 당신의 푸념을 통해 나는 시골집에서 별을 보던 나의 매해 여름을 보았던 것도 같다. 가로등조차 몇 개 심기지 않아 하늘에는 별이 유달리 총총거리는데, 별다른 지형지물도 없이 광활한 탓에 밤하늘에 홀려 걷다 보면 북극성도 소용없어질 것만 같은 그런 곳. 그리고 당신께서는 평생을 그곳에 사셨다. 일 년에 기껏해야 일주일 얼굴 비추러 오는 나를 두고 당신께서는 늘 여름 손님이라는 말과 함께 서울서 오느라 욕보았다는 걱정을 빼놓지 않았다. ‘손님’이었고 항상 ‘욕보는’ 존재였던 나에게도 그곳은 줄곧 이상하리만치 고요해서 이대로 마을 하나가 사라져도 모를 것 같다는 망상을 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기도 하였는데.


한밤 사이에 마을이 사라진다는, 어느 괴담으로나 전해 들을 법한 일이 아예 없는 이야기가 아님을 안 것은 또한 준비했던 글들을 모두 포기했을 무렵이었다. 취재 가기로 한 거요, 고흥으로 가려고요. 왜 고흥이에요? 곧 사라질지도 모른대요.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동네가 정말로 사라져 버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 위에 당신과 당신의, 또한 당신의 목소리가 겹쳤다. 나는 그냥 우리 동네가 계속 남아있었으면 좋겠을 뿐이야. 고흥이 그렇게 쉽게 없어질랑가? 결국은 사람들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여기서 나고 자란 너는 절대로 내 마음 모른다.


워드 한 페이지 반 가량의 글을 써내기 위해 떠올린 당신과의 대화와 당신이 놓인 풍경, 더구나 당신이 지나온 시간들은 결코 괴담도, 잔혹 동화도, 쓰거나 쓰지 않기로 섣불리 결정한 뒤 치워버릴 일도 아님을 알기에 이 글은 무제가 되었다.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마음으로 쓴, 그렇기에 내 것이라고 확신할 수조차 없는 이 글을 읽은 당신이 나를 아주 질책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내년 여름에는 손님 정도의 각오로만 당신의 곁에 머물지 않을 수 있기를,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당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그 바다까지 흘러갈 수 있기를 이제야 바라며.


편집위원 열음 / yeoleums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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