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지방'] 편집장 민철
Intro. 지방⁴ 명사: 서울 이외의 지역을 이르는 말[1]
‘지방’이 문제라 한다.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고령 인구 비율은 늘어나니, 몇 년 동안 몇 개의 도시가 없어질 것이라는 저주에 가까운 예측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이 ‘지방에 문제가 있다’는 단순한 진단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다. 지방이란 서울 이외의 지역을 모두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지방’에 문제가 있다는 말은 정확히 어디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며, 애초에 우리는 지독히 ‘서울중심적’인 언어로 그 바깥을 설명하려 해왔던 것이다. 우리나라 면적의 99.4%에 달하지만 항상 ‘지방’이라는 두 단어로 뭉뚱그려져 왔으며, 근 10여 년간 단 한 번도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던 그곳에 과연 어떤 문제가 어떻게 있다는 것일까? 절반의 막연함과 절반의 확신 사이에서 나는 우선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를 예매했다.
* 이후부터 ‘지방’의 사용은 되도록 지양하며, 이는 지역으로 대체됩니다.
**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우리 지역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요?
전날 저녁부터 이틀을 꼬박 달려 마침내 고흥에 도착했다. 서울발 버스가 하루에 몇 대 다니지 않아 순천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고흥으로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비몽사몽 일어나 다시 버스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두 시간 남짓, 곧 고흥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러나 갈 길은 멀어 보였는데 여전히 창밖으로 이렇다 할 건물이나 심지어 터미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버스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왼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작은 터미널이 나타났고, 터미널을 중심으로 모든 건물이 3층이 채 안 되는 좁은 거리가 펼쳐졌다. 전체 인구 중 고령 인구가 30%가 넘는 초고령 사회이면서[2] 전국 도시 중에서 가장 소멸 위험이 높은 이곳,[3] 고흥이었다.
‘도시가 사라질지 모른다’던 수많은 경고의 메시지와는 달리 고흥은 몹시 평화로워 보였다. 실제로 내가 고흥에서 만난 모든 사람은 고흥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바로 믿지 않았다. 고흥 터미널에서 만난 중학생 예슬 씨와 친구들은 고흥이 사람 냄새가 나는 도시라 좋다면서, “네? 고흥이 얼마나 대도시인데! 요새 역도시화도 있대요. 고흥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하며 웃었다. 하지만 그들이 내가 고흥에서 볼 수 있었던 유일한 학생들이었다는 말을 굳이 그들에게 전하지는 않았다. 30년 동안 한 마을에서 택시를 몰아오신 일수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비록 어디선가 그런 보도를 들어봤다면서도 “고흥이 그렇게 쉽게 없어질랑가?”하며 룸미러를 통해 내게 멋쩍은 미소를 보내왔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고흥의 변화는 부쩍 체감되는 것이었다. 고흥 전통시장에서 40년간 방앗간을 운영해 오셨다는 숙자 씨는 고흥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냐고 묻자 금세 눈이 커지며 “왜 사라진다요?”라며 되물었다. 그 모습은 분명 내가 지금 고흥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이곳이 사라질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체념하듯 “그렇지, 테레비에서 몇 번 보긴 했네. (시장을 가리키며) 여기도 둘러봐. 사람이 있는가. 진짜 달러. (장사도) 옛날을 80~90%라고 하면 지금은 20%도 안 돼. (…) 옛날은 좋았어. 인자 다 끝이제.”라며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고흥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당당히 말하던 예슬 씨 또한 숙자 씨가 바라보던 이곳의 미래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고흥을 끔찍이 아끼던 그였지만, 그에게도 ‘이곳에 남고 싶냐’는 물음은 다른 의미였다. 어린 예슬 씨에게 사라지는 도시는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먼 미래와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는 어른이 되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넓은 곳으로 가고 싶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런 그의 눈빛에 나는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는데, 그 모습은 과거의 내가 서울을 꿈꾸던 모습과 매우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도 둘러봐. 사람이 있는가. 진짜 달러. 옛날을 80~90%라고 하면 지금은 20%도 안 돼. (…) 옛날은 좋았어. 인자 다 끝이제.”
“저는 부산에 가고 싶어요! 음… 그냥요!”
고흥 시민들이 들려준 짧은 이야기들은 작은 지역이 처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인구가 더 이상 늘어날 일은 없는데, 사람들은 큰 도시로 떠나니 작은 도시들은 버텨낼 재간이 없다. 이러한 도시의 위기를 수치화한 것이 바로 ‘소멸위험지수’다. 이는 만 20-39세의 여성 인구를 만 65세 이상의 인구로 나눈 것으로, 만일 이 지수가 0.5 미만이면 소멸 위험지역으로, 0.2 미만이면 소멸 고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2021년 기준 전국 기초자치단체 총 229곳 중에 소멸 위험지역은 69군데, 소멸 고위험지역은 39군데로 총 108군데에 달하는 지역이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4] 이에 여러 지자체들은 도시의 소멸을 막기 위해 앞다투어 출산장려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과연 그 정책들이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출산장려정책 중 가장 먼저 검토되는 것이 ‘출산장려금’ 제도다. 직접 돈을 주는 방식은 가장 쉬우면서도 아이를 낳은 부부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시민들에게도 부쩍 체감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이에 각 지자체 역시 출산장려금을 높여왔는데, 예컨대 해남의 경우 전국에서 출산장려금을 가장 많이 지급하는 지자체였던 곳으로 첫째 아이 출산 시 300만 원을 지급하고, 계속해서 둘째 350만 원, 셋째 600만 원, 넷째 이상은 720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한다. 이 기간 동안 해남군의 출산율[5]도 상당히 올랐는데, 정책 시행 이전 1.5명을 간신히 넘기던 출산율이 2012년 2.47명으로 늘며 7년 동안 전체 지자체 중 1위를 차지했다.[6] 이는 전국 평균을 두 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그러나 같은 기간 동안 해남군의 4세 이하 연령대 인구는 꾸준히 감소해왔다. 출산 장려금을 받고 난 이후 해남을 떠난 것이다. 이 방식은 또한 다른 지자체가 해남보다 더 많은 장려금을 준다면 애초에 유지가 불가능한 방식이다. 실제로 2019년 인접한 영광군의 출산장려금이 해남군보다 높아졌을 때 해남군의 출산율은 영광군에 따라 잡혔다.[7] 결국 경쟁적인 출산장려금은 지역끼리의 출혈을 가속화하는 제로섬 게임이며, 지속 불가능하다. 더하여 저출산은 전국적인 문제로 지자체 수준의 노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고 애초에 지역의 출산율 평균이 서울의 출산율보다 높기도 하다.[8] 그러므로 작은 지역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출산율보다도 현재 거주하는 사람들이 떠나지 않게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한편 정부와 지자체 역시 출산장려정책 외에도 다양한 도시 재생 사업을 시도해왔지만, 매번 그랬듯 시도와 성공은 별개의 문제였다.
벽화를 그린다고 집 나간 사람들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 우리 주위에 유행처럼 늘어난 것이 있다. 벽화마을이다. 이제 국내 어느 곳을 여행하더라도 가 볼 만한 곳으로 ‘XX 벽화마을’이 검색 결과 상단에 나타나며, 경우에 따라서 한 지자체 안에 여러 군데의 벽화마을이 있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고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흥에 도착해서도 40분을 달려 도착한 석촌문화마을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원두가 생산되는 고흥의 특색을 살려 마을 곳곳 커피와 관련한 벽화를 그려 놓았다. 그러나 정작 실제 마을에 들어서서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이후의 장에서 서술하겠다.
출처: https://blog.daum.net/streetart/16151545
이러한 전국의 벽화마을들은 대부분 1, 2차 도시재생사업단(2007-2013, 2016)과 2013년에 통과된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결과다. 도시재생이란 쇠퇴하는 도시를 중심으로 지역 역량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 및 지역 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활성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9] 이 시기에 정부는 도시를 재생시키기 위하여 쇠퇴 지역의 물리적 노후화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달동네 지원 사업, 지붕 개량 사업, 재개발, 재건축 등을 추진하였다. 벽화마을도 이 일환이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어떤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미지수다. 애초에 도시가 물리적으로 개선되는 것과 그로부터 부가 이익이 생겨 도시가 재생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으며, 만에 하나 벽화마을이 성공해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더라도 그 이익은 원 거주자들과 동떨어져 있었다. 벽화마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규모 공방이나 게스트하우스 등은 이주민에 의해 운영되었고,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커피숍의 경우에는 그 자본이 다시 외부로 흘러갔기 때문이다.[10] 지역 내 산업 구조의 획일화와 새로운 시설의 값비싼 가격으로 인해 주민들의 시설 이용률이 떨어지는 문제나 관광객들이 지역 주민들의 삶을 침해하는 일은 덤처럼 따라왔다.
정부가 이와 같이 실효성 없는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지자체는 그 나름대로 지역의 경제 체제를 개편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산업단지 유치다. 실제로 30만 평의 산업단지를 조성할 경우 2,000명의 고용효과가 있으며, 이들 중 50%만 외부인으로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최소 1,000명의 인구가 유입된다. 이에 지방선거 기간만 되면 어느 후보나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실제로 산업단지의 수는 꾸준히 증가해 최근 5년 동안 100곳 이상이 신설되었다.[11]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개발된 산업단지는 오히려 각 지자체에게 독이 든 성배였다. 막대한 재정을 들여 설립하였지만, 미분양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12] 이에 각 지자체는 세금 혜택, 분양 대금 분할 납부, 미분양 산업단지 매입 등 파격적인 조건이라도 내세워 기업을 불러 손해를 줄이려 하는 형국이다. 이 과정에서 몇몇 기업들은 산업단지를 저렴하게 분양받은 후 공장은 짓지 않은 채 부지만 되팔아 시세 차익만을 얻기도 했다.[13]
이렇듯 정부와 지자체의 실패를 보며 우리가 얻은 (투입된 비용과 노력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빈약한) 교훈은 물리적 개선만으로는 근본적인 도시 재생이 불가능할뿐더러, 맥락 없이 ‘이식된’ 정책과 일자리는 지방에 완전히 녹아들 수도,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한 상황에서, 2017년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추진되었다. 이 정책은 “기존 도시개발 사업과 달리 물리적 환경 개선뿐만 아니라 주민의 역량 강화를 통해 도시를 종합적으로 재생"[14]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재인 정부의 야심 찬 공약이기도 했던 이 정책은 과거 도시 재생 사업과는 그 재원이나 규모에서 궤를 달리했다. 재원의 경우 이전에 1년당 1,500억 원 규모였던 도시재생 기금을 5년간 10조 원씩 총 50조 원으로 늘렸고, 규모 역시 매년 100군데씩 총 500개의 사업을 목표로 했다. 더하여 중앙 주도의 방식이 아니라 지자체 주도로 정책이 추진된다는 점 역시 기대감을 높였다. 고흥 역시 2020년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되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정말 달라졌을까? 우리는 사실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올해는 정책 시행 5년째고, 수도권 외의 지역들은 여전히 위태롭다.
이번엔 다르다는 거짓말
새로운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지자체가 각 도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정부에 제시하면 정부가 타당성을 검토해 예산을 집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각 지역을 “지역공동체가 주도하여 지속적으로 혁신"[15]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시-검토-승인의 단계가 정말 엄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실제 채택된 사업 내용을 보면 그 파급 효과가 의심되는 것들이 다수다. 예컨대 ‘청년 창업’이다. 전라남도의 경우 목포, 순천 등 총 12군데의 지자체가 청년 내지 창업 혹은 청년 창업을 포함한 과제와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전라남도의 행정 구역은 시와 군을 합쳐 총 22군데이며, 이중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참여한 지자체는 20군데다). 물론 청년 창업은 중요하지만, 최근 대도시 청년 창업 사업의 실효성마저 비판 받는 가운데 청년 비율이 낮은 전라남도의 중소 도시에서 우후죽순 늘어난 ‘청년 창업’이 어떤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16] 청년 창업 외에도 ‘지역 커뮤니티 센터 건설’ 등의 모호한 사업 계획 역시 몇 군데나 확인할 수 있다. 도시재생 뉴딜은 최근의 ‘정책 트렌드’에 영향을 받은 ‘그럴듯해 보이는 사업’ 중심으로 채워지고 있었고, 이 사업들이 지역을 변화시키기는 물론 어렵다.[17]
사업 계획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문제도 드러났다. 비록 고흥군 도정 계획을 보면 사업 선정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했다고 되어있으나, 서울에서 내려와 고흥 터미널 앞에서 9년째 카페를 운영 중인 민수 씨는 “이러한 정책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며 “맨날 추상적으로만 할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 때 확실하게 도와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의 의견이 모이긴 했으나, 아예 다르게 반영된 사례도 존재했다.[18]
이처럼 도정과 현실이 계속해서 어긋나는 이유는 지방자치 재원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2021년 우리나라 각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48%지만, 만일 범위를 군으로 한정하면 이는 17%까지 떨어진다.[19]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처럼 큰 규모의 국고를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이 시행되었을 때 각 지자체는 정책의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기보다도 당장 국가 사업을 따올 수 있는지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에 비해 공론장이 덜 활성화된 중소 지역들의 경우 지자체장의 재선을 위해서라도 당장 눈에 보이는 단기적인 성과가 정책의 중심이 된다.[20] 이에 중앙 정부의 공약이 변경되기 전에 서둘러 예산을 따오고, 이 역시 ‘그럴 듯’ 하게 사진을 찍어 도정 게시판에 올리는 일이 중요해진다. 앞서 소개한 산업단지 유치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의 발전을 위한 중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일은 힘들어진다. 이와 같은 단기적 정책 방향은 도시 발전의 가장 기초가 되는 ‘도시기본계획’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6,400만의 대한민국?!
“15만 명품도시 생거진천시 건설!” 어느 지자체 홈페이지에서나 볼 수 있는 장밋빛 미래가 담긴 진천군의 군정 목표다. 각 지자체의 목표는 지자체 별로 수립한 ‘도시기본계획’을 바탕으로 정해지며, 이 계획에 따라 지자체의 도시 구조가 짜여지는 등 장기 계획이 세워진다. 이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변수는 ‘예상 인구’다. 진천군 역시 2015년 발표한 도시기본계획에서 2020년까지 112,000명, 2030년까지 150,000명을 목표로 하는 인구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진천군의 2021년 현재 인구는 8만 5천 명에 그친다.[21] 이러한 양상을 보이는 지자체가 비단 진천만은 아니다. 강원도는 동해, 태백, 삼척 등이 충청도는 공주, 보령, 논산 등이 경상도는 안동, 영주, 영천 등이 전라도는 익산, 정읍, 남원 등이 모두 실제 인구보다 계획 인구를 높게 잡고 있다. 이를 다 합치면 얼마가 될까? 계획대로라면 2020년 우리나라의 인구는 6,400만이 되었어야 했다.[22]
각 지자체의 장밋빛 계획과 실제 인구의 괴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 도시 재생 실패의 일차적 원인은 여기에 있다. 도시가 커지고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니, 도정의 기본 방향은 늘어가는 인구를 위한 새로운 주거 지역 건설과 그에 따른 인프라 확충에 초점이 맞춰진다. 중소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도심과 신도심의 분리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 중심지의 분리는 도시의 집적 효율을 떨어트려 끝내는 도시 전체의 효율을 떨어트리고 쇠퇴의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작은 도시들의 거주지가 넓어진다면 가장 먼저 서비스업이 감퇴할 수밖에 없다. 서비스업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교류에 기반하는데, 가뜩이나 적은 사람들마저 떨어져 산다면 서비스업이 버틸 수가 없다. 더하여 사람이 적게 살든 많이 살든 상수도나 도로 보수 등의 최소한의 공공서비스는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구의 감소로 세수가 줄어드는 와중에 거주지가 넓어진다면 자연스레 공공 서비스의 질은 점차 나빠질 수밖에 없고, 나아가 그 유지 비용 역시 국가에 점차 의존하게 된다.
지역이 계속해서 확장을 추구하는 이유는 무책임한 지자체장들의 선거 전략 때문이기도 하다(인구가 줄고 지역이 축소된다고 주장하는 군수 후보를 상상해보라).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지도, 산업단지가 갑자기 채워지지도 않을 것이다. 매번 파리만 날리던 지역 축제가 갑자기 각광받기도 힘들 것이고, 공공기관을 모든 지자체마다 하나씩 이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당면한 문제는 높아질 인구수를 위한 시설 확충이 아니라 남아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계속 거주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인구 유입은 그 다음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도시재생 사업은 지금처럼 그럴듯해 보이는 허울로만 남을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 지역의 산업경쟁력을 회복하고 도심을 활성화 할 수 있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의 투자는 대개 공공사업만으로 그치고 있는데, 이러한 공공사업들은 정부의 지원 기간이 끝나면 사실상 방치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앞서 석촌문화마을의 벽화를 보고 실망한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 어느덧 10년이 되어가는 벽화마을은 그간 보수가 한번 밖에 이루어지지 않아 색이 다 바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투자가 마중물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정된 공공재원을 넘어서서 지속적 민간 투자 유치를 가능케 해야 한다. 그리고 지자체는 이를 바탕으로 그 지역만의 특색을 살린 일자리를 개발하고 유지해야 한다. 이는 다소 이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선언에 가깝지만, 이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지역 거주민들이었다. 앞서 소개한 카페 사장님 민수 씨는 “지금 군의 재생 사업이 체감이 전혀 안 된다”면서 “저는 연구시설이 있으면 좋겠어요. 고흥에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 유자, 석류도 있고 한우, 해산물 이런 것들이 다 너무 퍼져 있어요. 이렇게 영세화된 걸 하나로 모아주고 연구도 하고 그걸로 사람들이 들어와서 일도 할 수 있게요”라고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덧붙이기를 “군이 하는 사업을 주민이 체감하면 사람들이 안 빠져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이처럼 지자체의 도시발전계획은 지역 주민들의 삶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 각 지역의 특색을 살려야 한다. 더하여 현실적이고 세심한 도시기본계획과 정부의 중, 장기적 지원이 그와 함께할 때 비로소 지역은 살아날 수 있다.
21세기의 멸망은 죄악 때문이 아니다
부산∙울산∙경남을 잇는 메가시티를 만든다고 한다. 이를 통해 수도권의 독주를 막고 지방 균형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메가시티의 논의가 한창일 때 부산은 이미 얼마나 거대한지, 메가시티가 만들어지면 그 옆에 있는 작은 도시 진주, 김해, 밀양, 사천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답은 뻔하다. 또 하나의 거대한 ‘서울 공화국’이 탄생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더욱 빠른 지방의 ‘소멸’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기득의 구조를 가장 쉽게 합리화하는 방법은 그것을 개인의 선택 혹은 부족한 능력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살던 지역을 떠나는 개인의 선택은 불가피하며, 쇠퇴하는 지역은 그들이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서울의 공고한 기득 구조와 당선을 위해 단기적인 정책을 내세우는 정치인들 그리고 이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언론과 대도시의 시민들이다.
77년 평생을 고흥에서 살아오신 문래 씨는 고흥에 대한 칭찬을 한참이나 늘어놓더니 “고흥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며 호언장담했다. 그런 그 앞에서 고개를 젓기는 매우 힘들었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지방 도시 살생부’라는 무시무시한 책을 읽는 일은 마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혼자만 알고 있는 어떤 선지자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 고흥이 위태로운 이유는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모를 신의 섭리여서도 아니며 사람들의 죄악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곳엔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들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나는 점차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기사를 통해 고흥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는 일과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흥이 사라진다고 말하는 일은 정말로 별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은 도시들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모든 지역이 서울 수준의 인프라를 가져야 할 필요는 없을뿐더러 이는 가능하지도 않다. 지금 우리가 사라져가는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는 각 지역의 특색을 최대한 살리고 그곳의 목소리를 최대한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지금처럼 모두가 서울과 뭉뚱그린 지방만을 이야기 할 때 우리 사회의 대안적 상상력은 부족해진다. 그러나 사람이 딱 네 명 앉아있던 고흥의 작은 터미널에 걸려 있던 텔레비전에서 전하던 소식은 그로부터 500km 떨어진 서울의 코로나 소식이었다.
편집장 민철 / a40034136@gmail.com
[1] 표준국어대사전.
[2]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7%가 넘으면 고령화 사회, 14%가 넘으면 고령 사회, 20%가 넘으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된다. 고흥 외에도 경북 의성군과 군위군, 경남 합천군과 남해군의 고령 인구 비율은 30%로, 이미 초고령 사회의 기준을 훌쩍 넘었다.
[3] 인구가 0이 되는 시점을 도시의 소멸 시점으로 잡을 때, 과거의 추이가 계속된다면 고흥군의 소멸 시점은 2040년이다(마강래, 2017).
[4] 국회입법조사처 (2021). 지방소멸 위기지역의 현황과 향후 과제.
[5] 대개 저출산의 대체어로 저출생을 쓴다. 하지만 출산율은 여성 1명이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자녀 수이고 출생률은 특정 집단에서 1년 간 인구 1,000명 당 태어난 출생아 수로, 경향성이 아닌 수치를 말할 때는 구분해야 한다.
[6] KOSIS (2021). 전라남도 합계출산율, 모의 연령별 출산율.
[7] 영광군은 2019년부터 첫째 아이 출산 시 500만원을, 둘째는 1200만원을, 셋째부터 다섯째까지는 3000만원을, 여섯째 이상에는 3500만원을 지급한다.
[8] 서울의 출산율은 0.64로 전국에서 제일 낮은 수준이다(국회입법조사처, 2021).
[9]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10] 이태희 (2021).
[11] 전국산업단지현황통계 통계표(16.2분기), 전국산업단지현황통계 통계표(21.2분기).
[12] 35개 지방 산업단지 절반도 못채워 헉헉 (2020.01.02.). 매일경제.
[13] ‘외화내빈’ 산업단지, 지방 경제 발목을 잡다 (2014.07.17.). 월간중앙.
[14]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0). 도시재생뉴딜.
[15] 도시재생종합정보체계. 도시재생 뉴딜사업.
[16] 이태희 (2021).
[17] 같은 글.
[18] “친환경 놀이터 요구했는데 딴판…” 주민은 들러리로 (2020.01.12.). 제주매일신문.
[19] E-나라지표. 지방자치단체 재정자립도.
[20] 그러므로 각 지역의 언론의 역할은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특집글을 참고하라.
[21] 진천군. 2021년 10월말 기준 진천군 인구 현황.
[22] 마강래 (2017).
참고 문헌
단행본
강준만 (2015).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 개마고원.
마강래 (2017). 지방도시 살생부. 개마고원.
법령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논문 및 저널
이태희 (2021). 도시재생사업 7년, 도시는 왜 활성화되고 있지 않나?. Urban planners, 8(1), 26-35.
기사 및 온라인 자료
우성덕, 이상헌 (2020.01.02.). 35개 지방 산업단지 절반도 못채워 헉헉. 매일경제. Retrieved from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20/01/6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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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거리의 미술(2016. 02.21.). 고흥 문화마을 커피벽화그리기-커피한잔 하실래요? [다음 블로그] Retrieved from https://blog.daum.net/streetart/16151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