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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카우

 


* 본 리뷰에는〈퍼스트 카우〉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퍼스트 카우〉(First Cow, 2019)의 오프닝 크레딧이 끝나고 처음 보이는 화면은 황량한 미국 시골의 강을 찍은 쇼트이다. 이내 화면 왼쪽에서 긴 바지선이 등장해 한참 동안 화면을 가로지른다. 아무도 없는 그 강가에서 검은 개와 젊은 여성은 산책을 하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개가 땅을 마구 파기 시작하고, 그러는 개를 멈추게 하려던 여자는 그 자리에 묻혀 있는 두개골을 발견한다. 하지만 여자는 그다지 놀라지 않고 맨손으로 땅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겨울임에도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열심히 흙을 털어낸 끝에, 그녀는 나란히 누워있는 채로 죽음을 맞이한 두 사람의 유골과 마주하게 된다.


흙 속에 파묻혀있다가 드러난 듯한 두 구의 해골이 나란히 누워있다. ⓒA24
노란 버섯이 나있는 땅을 아주 가까이서 찍은 장면에 구멍 난 부츠의 앞부분이 들어와있다. ⓒA24

 

오리건주, 1820

이다음 장면에서 영화는 대략 200년 전으로 시간을 건너뛴다. 누워있는 해골을 찍은 쇼트의 바로 다음 장면이 구멍난 부츠를 신은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노란색 버섯을 따는 모습인 것이다. 이 신발의 주인공은 오티스 피고위츠, 하지만 모두가 그를 ‘쿠키’라고 부른다. 그는 백인 사냥꾼 무리의 식량 조달 및 요리 담당으로서 함께 서쪽을 향해 가고 있다. 사냥꾼들은 쿠키가 버섯만을 구해오자 (자신들이 먹어 치운 것은 생각도 않고) 식량이 모자란다며 그를 힐난한다. 그리고 그날 밤, 또다시 식량을 구하러 나선 쿠키는 웬 낯선 남자가 벌거벗은 채로 떨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에게 옷가지와 먹을 것을 가져다준 쿠키는 그와 통성명을 하게 되고, 그가 ‘인디언’이 아니라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쿠키는 러시아인 무리에게 쫓기는 중이라는 ‘킹 루’를 몰래 데리고 와 하룻밤 재워주고, 이튿날 아침에는 짐수레 안쪽에 그를 숨겨준다. 이윽고 이동 중 사냥꾼 무리 내부에서 싸움이 붙은 틈을 타 킹 루는 재빨리 강으로 도망치고, 그렇게 그들은 인사조차 하지 못한 채 헤어진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는 다시 한번 아무렇지 않게 시간을 건너뛴다.


사냥꾼 무리로부터 받은 듯한 은화로 방금 새 부츠를 산 쿠키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마을 술집에 들어가 위스키 한 잔을 시킨다. 그러나 여유도 잠시, 술집은 이내 시끄러워지는데 아기 요람을 든 한 덩치 큰 사내가 술집에 들어오자마자 다른 이들과 시비가 붙은 것이다. 사내가 싸우러 나가며 맡긴 아기를 보느라 가게 안에 남아있던 쿠키는 남아있는 다른 한 사람―주인마저도 금고에 자물쇠를 걸어놓고 싸움 구경을 하러 나갔다―과 눈이 마주치게 된다. 바로 운 좋게 살아남은 킹 루이다. 반가운 재회 후 킹 루는 자신이 머무르고 있던 오두막에 쿠키를 초대하고, 쿠키가 계속 그 집에 함께 살며 이들은 사업 하나를 구상하게 된다. 바로 쿠키의 제빵 실력을 활용해 빵을 파는 것이다.


반죽에 넣을 소젖이 없어서 고민하는 쿠키에게 킹 루는 얼마 전 이 땅에 ‘첫 젖소’를 데려와 키우고 있는 대장(Chief) ‘팩터’의 소에게서 젖을 훔쳐 올 것을 제안한다. 처음에는 고개를 내젓던 쿠키도 어느새 계획에 동참하고, 훔친 소젖으로 만든 튀김빵은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문제는 튀김빵에 대한 소문이 팩터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직접 와서 튀김빵을 맛본 팩터는 빵에서 “런던의 맛이 난다”며 극찬한다. 이후 그는 쿠키에게 ‘클라푸티(clafoutis)’(과일을 넣은 프랑스식 파이)를 만들 줄 아느냐고 묻는다. 자신의 집에 손님으로 ‘루비’ 대위가 방문할 예정인데, 본토의 것에 가까운 클라푸티로 오만한 그의 기를 눌러주고 싶으니 자신의 블루베리로 그 파이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시장에 처음 내놓은 튀김빵. ⓒA24

왼쪽에는 앉아있는 쿠키와 킹 루의 다리가 있고, 네모난 나무 도마 위에 둥근 갈색 튀김 빵 8개가 나란히 올려져있다. 그림 설명 끝. 

대위와 팩터에게 클라푸티를 선보이는 쿠키와 그 뒤의 킹 루. ⓒA24

파란벽의 된 깔끔한 저택 안에서 올리브색 모자와 옷을 입은 쿠키가 블루베리가 빼곡히 박혀있는, 원형 팬에 담겨 있는 크고 동그란 파이를 앞쪽을 향해 보여주고 있다. 남루한 남색 옷을 입고 있는 킹 루가 뒤에 떨어져서 이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 뒤에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인 팩터의 부하가 킹 루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고 있다. 그림 설명 끝.


둘은 팩터가 그들이 자기 소의 젖을 훔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까봐 걱정하지만, 차마 마을 제일의 권력자인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는 못한다. 다행히 그날의 방문은 별 탈 없이 마무리되지만, 문제는 그날 밤에 발생한다. 항상 쿠키가 젖을 짜는 동안 킹 루는 나무 위에 올라가 망을 봐왔었는데, 하필 그날 킹 루가 앉아있던 나뭇가지가 부러진 것이다. 마침 고양이를 찾기 위해 집 밖에 나와 있던 팩터의 부하(아래 스틸컷에서 쿠키와 킹 루 뒤에 있는 인물)는 곧장 사람들을 깨우고, 쿠키와 킹 루는 다급히 도망치게 된다. 소젖 자국이 묻은 나무통과 의자를 본 팩터는 그제야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분노하며 부하들에게 두 사람을 쫓아가 죽일 것을 명령한다.


둘은 천신만고 끝에 팩터 부하들의 추격으로부터 벗어나지만, 킹 루의 집은 이미 팩터의 부하들이 다 망가뜨리고 간 상태이다. 각자 떨어져 탈출했다가 이 집에서 재회한 둘은 튀김빵을 팔아 모아두었던 돈을 챙겨서 남쪽으로 향하려 한다. 하지만 도망치다가 넘어져 머리를 심하게 다친 쿠키는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 밑동에 기대어 눕는다. 자신이 망을 볼 테니 눈을 좀 붙이라던 킹 루는 이제껏 모아 놓은 돈을 담은 주머니를 잠시 보더니, 이내 그 주머니를 베고 쿠키 옆에 나란히 눕는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암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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