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네버랜드

놀이공원

by HanA
리조트에서 바라본 워터파크의 야경. 놀이와 휴식은 한 몸일 때 추억의 효과가 더 막강하다.



직장 입사를 위해 총 다섯 군데 설계 사무소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했다. 동시에 지원하고 실기까지 준비하다 보니 다수의 사무소 전체 커리어를 확인하기에는 버거운 면이 있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입사지원서 양식을 다운로드하며 대표 작품을 훑거나, 해당 사무소에 재직 중인 선배들에게 연락하여 사내에서의 작업 성향 정도를 파악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준비가 미흡했음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지원한 곳 중 마지막 발표를 기다리던 중에 유일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첫 직장은 나의 판단으로 기품 있고 유명한 랜드마크를 다수 설계한 유서 깊은 설계사무소였다. 실제로 인트라넷에서 접근 가능했던 그간의 업적은 작은•중간의•대형의(S, M, L) 프로젝트가 즐비했고, 수많은 관공서와 전 국민이 알만한 유명 건축물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체적인 첫인상은 좀 많이 점잖았다.


학부생의 특징이긴 하지만, 나의 설계작은 유독 실험적 성향이 강하고 기획에 대한 흥미가 높은 작업 위주였다. 포트폴리오 내용은 공상과학에 가까웠으며, 입사 실기시험에서도 실무와는 거리감이 큰 결과물로 발표했었다. 그런 내가 우직한 관우 같은 이미지의 회사에 합격하게 되어서 조금 의외의 결과라는 생각까지 가졌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반전의 작품 하나가 나를 단번에 수긍하게 하였다. 선배들이 신입사원의 열정과 패기에 기름을 부어 주고자, 애사심 부흥책을 쓰던 중에, 광화문 광장 앞의 위풍당당한 '세종문화회관'보다 더욱 밝고 격앙된 목소리로 설명해 주신 작품은 예상밖에도 용인의 대형 워터파크였다.


수년이 지난 프로젝트였음에도, 당시에 얼마나 재미있고 신났었는지를 설명하는 중에 팅커벨과 피터팬이 날아다니는 것 마냥 분위기가 둥둥 떠올랐었다. 회사 업무에 다이내믹 함이 부족할 것만 같았던 우려는 말끔하게 사라지고, 선배들의 목표는 쉽게 달성되었다. 애사심 충전을 넘어서, 데이트를 앞둔 듯 살짝 설렜었다.


이제 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그전까지는 상상과 모험의 나라를 구성해 내는 것이 건축가의 일이라고 생각 못했다. 각종 놀이기구의 기술적인 분야와 휘황찬란한 데코레이션을 조합하여, 전체적인 마스터플랜을 기획하는 곳이 건물을 짓는 설계 사무소였다니. 나만 몰랐던 점이 아니기를 바라본다. 알면 알수록 건축이라는 분야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교양과 예능을 넘나드는, 흡사 힘과 지략에 모두 능한 장수였다.


그러나 설레었던 것이 무색하게도 재직기간 동안 꿈과 상상을 풀어낼 행운의 기회를 만나지는 못했다. 게다가 요즘의 테마파크는 시설을 전담하는 설계팀이 따로 있을 만큼 전문화된 분야라서 나름의 입지를 굳게 다지고 있다. 더 나아가 테마파크 사업의 초•중기에 건축사 사무소에 설계를 의뢰했던 것을 거슬러서, 건설사에서 테마파크 설계팀에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를 의뢰하고 있다. 집 앞에 그럴듯한 놀이공원을 만들고 있눈 것이다.


'잃어버린 계곡'이 있는 인근 아파트는, 동네 어린이들에게 '놀이터 원정'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킬 만큼 최고의 인기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네버랜드를 현실로 선사하는 것은 철저히 건축가의 몫이다.




서산시대 연재 중인 최하나 건축 칼럼 니스트의

'하나두 건축' 기사 교열본 입니다.


[출처] 서산시대(http://www.ss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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