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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

Dreams Come True!


 긴 시간 내가 한눈팔지 않고 교육에만 전념한 이유가 있다면, 단연 ‘학생 사랑' 일 것이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멘토링. 상대방이 되어 그 사람의 최고를 끌어내고자 하는 노력과 열정. 그것이 내가 이 일을 오랫동안 해 오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2015년, 나는 갑자기 돌연 친구를 잃고 마음의 병을 앓았다. 긴 시간 투병 중이었던 친구와의 이별이 나에게는 큰 아픔이었다. 친구가 뇌종양으로 떠난 후, 나의 긴 시간의 달리기는 잠시 멈추게 되었다. 20살이 되던 해부터 단 한순간도 쉬지 않았던 일을 처음으로 쉬게 된 것이었다.

 당시, 결혼으로 서울에서 내려와 곧장 일을 다시 시작해 당시에는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을 1대 1 혹은 2대 1, 3대 1로 수업을 열렬히 하고 있었을 때였다. 성과가 좋아서 한창 소문이 제법 나던 때라 대기 줄이 끊이지 않으며 수업 문의 또한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죽기 살기로 매달려하던 가르치는 일을 처음으로 쉬던 그때까지 나는 달리고 달려 주말도 없이, 평일은 새벽녘까지 수업 준비와 수업을 했다.

 단지, 수업 그뿐만 아니라 나는 그 학생이 되어보는 경험을 한 것 같다. 나의 고등학생 시절에 의지할 데 없던 나에게 꼭 곁에 있었으면 하던 지지자가 되어 보는 경험? 단연코, 나는 선생으로서 시간과 정성을 쏟는 그 이상의 노력을 하였다.

 동시에 아픈 친정엄마의 병원 진료를 위해 고향 집을 처분하고, 내가 사는 1시간 남짓 떨어진 이곳으로 친정집을 옮겨오게 해 드렸다. 아이는 겨우 6살, 한창 손이 가고 돌봐야 할 나이였다.

 일과 육아, 살림에 더해 친정집을 옮겨오느라 심신이 상당히 지쳐 있을 무렵, 친정 집 이사하던 날. 겨우 하나를 마무리했다는 안도의 숨을 쉬게 된 찰나, 친구가 위독했다.

 친구가 세상을 떠나던 순간까지 나는 친구들 보러 다니며 그 친구의 마지막을 배웅하며 내 일상은 최선을 다해 붙잡고서 나보다는 학생들 생각에 내가 가진 모든 시간과 갖은 노력을 다 하였고 간신히 버텼다.

 도저히 견디지 못할 6월 어느 날.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그토록 열정을 가지고 하던 일이며 사랑하는 학생들과 잠시 이별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딱 3개월을 쉬고서, 나는 곧장 다시 학생들 곁으로 돌아갔다.

 한때는 박사과정을 밟으시던 목사님께 TOEFL을 가르쳐 드린 적이 있다. 내가 미국으로 석사 유학을 하러 가기 전, 6~7개월 시간이 있던 차 가르쳐 달라는 제안을 해 오셨다. 그 학생 한 분의 대학원 박사학위에 필요한 공부를 도와 드리느라 밤낮으로 준비하였던 기억이 있다. 나는 당연히 나와 토플을 함께 공부했던 동료들과의 일본 여행도 마다하고 그분의 일정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미래를 떠 올리며 나는 오직 그들이 필요한 것을 챙기느라 늘 바빴다.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많은 학생이 있다. 건축을 공부하고 건축가가 되어 해외를 누비는 A 양,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나  화가로 활동 중인 B 양, 그리고 의대에 가겠다고 고2의 학교를 그만두고 스스로 준비하여 의사가 되려 어쩌면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혹은 지금은 의사가 되어있을 C 군, 과학고 출신으로 KAIST에서 얼마 전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D 군, 또한 얼마 전 자신이 과학고에 정말 합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던 소식을 전해주며 한껏 기뻐하던 유학을 꿈꾸는 E 군 등.

 수없이 많은 학생과 함께 현재 지금 나와 함께 꿈을 이루고자 미래를 위해 차곡차곡 저금 중인 나의 학생들이 있기에 오늘도 나는 정말 행복하다.

 그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5년 이상을 영어로 쓰인 책을 읽으며 책을 사랑하고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느끼게 되며 책에서 공감하며 익힌 영어와 함께 중고등학생이 되어가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책을 통해 본인이 세상을 크게 볼 수 있었다며 선배들처럼 이 과정을 통해 꿈을 이룰 수 있었다며 자신들을 자랑스러워 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 또한 넓은 세상에 나아가 크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수없이 많은 날 내가 꿈꾸어 왔던 희미하게나마 꿈을 향해 작은 여러 번의 도전을 거듭했기 때문이었다. 영어 공부가 그 꿈을 꿀 수 있었던 큰 부분이었다. 나에게 영어는 꼭 학교 공부만은 아니었기에…

 단지 영어가 그들에게 해야만 하는 지긋지긋한 공부만이 아니기를, 미래에 쓰일 날개이기를 바라며, 꿈을 꾸며 과정을 하나하나 즐기는 그들이 되길 바란다.

 힘든 공부와 학습 속에 찌들어 숨 쉴 수 없는 현실에서 굳이 남들처럼 허덕이며 꼭 경쟁 속에서 이겨야 한다는 부담은 조금 내려놓고 몰입해서 지금처럼 즐기다 보면 책 속에서 그들이 바라는 꿈도 희망도 조금씩 찾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자신의 미래가 현재는 막연해 보이더라도 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좋아하는 자기 모습이 짙어지며 그 모습을 점점 닮아갈 테니.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는 강사는 널려 있으나 스승은 드물다. 내가 학생 시절에 믿고 따를 멘토, 스승 한 분만 있었어도 그리 길을 잃고 헤매지는 않았으리라. 감히, 나는 많은 학생 중에 단 몇이라도 나를 스승이라 여겨준다면, 그것이 나의 행복이 아닐까 한다.

 무엇을 크게 바라지도 굳이 얻으려 하지도 않는다.

 내가 새삼, 왜 가르치는 일에 그렇게 까지나 몰두했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나의 행복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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