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와 드라마 대본을 쓸 때, 금과옥조로 삼는 몇 가지 명제들이 있습니다.
작은 이야기로 큰 울림을 줄 것.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할 것.
캐릭터 사이의 갈등을 최대한으로 높일 것.
멋진 반전을 보여줄 것.
사건의 발전과 캐릭터의 변화를 보여줄 것.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첫 장면을 만들 것 등등.
이런 논리대로 대본이 써지고 완성도 높은 영화를 완벽하게 만들었다면 쪽박을 차는 최악은 면할 수 있겠죠. 하지만 현실은 냉혹합니다. 유능한 메인 스토리텔러와 네댓 명의 서브 작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죽기 살기로 대본을 써도 유치하기 그지없고, 그럴듯한 대본이 있다 해도 엿같은 연출로 인해 말아먹을 때도 있죠. 어쩌면 쪽박을 찬 영화는 영화흥행에 실패한 게 아니라 애초부터 실패한 영화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죠. 설령 좋은 대본이 있다고 해도 그걸 말아먹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대본마저 시원찮다면 결과는 뻔한 겁니다. 좋은 대본에 나쁜 연출은 있어도 나쁜 대본에 좋은 연출은 죽어도 없는 법입니다. 결코요.
최근에 <무사의 레시피>란 영화를 보고 나서 일본영화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그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구로자와 아키라, 이마무라 쇼헤이, 이와이 순지, 수오 마사유키, 기타노 다케시, 나카무라 요시히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미키 타카히로 같은 감독의 영화를 길가에서 동전 줍듯이 보고는 했습니다. 무사와 검객의 영화하면 중국영화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중국 무사영화는 역사를 담아낸 거대 담론이나 영웅적 인물에 대한 예찬이 많죠. 거기에 비해서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는 처절한 복수의 스토리가 적지 않고, 스크린에서 피냄새를 확 풍깁니다. 간간히 촌티 나는 유머도 빼놓을 수 없죠. 그런데 <무사의 레시피>는 제목부터 조금 황당했고, 줄거리 또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거기다 그게 실존 인물에 근거하고 있으니 구미가 당길 수밖에요. 에도 시대의 카가 현에 실존했던 요리 무사 후나키 덴나이와 그의 아들이 남긴 요리책 <요리무언초>를 바탕으로 해서 스토리가 만들어졌다니까요.
남자주인공 후나키 야스노부(코라 켄고)는 최고의 검객이 되는 게 열망이자 꿈입니다. 그래서 도장에서 피나는 검술을 익히지만 집안의 장남이 죽고 난 뒤, 그의 현실은 요리사의 가업을 이어야 하는 것이었죠. 더구나 도장의 외동딸인 사요를 좋아해 데릴사위가 되는 게 목표였지만 친구 사다노신과 최종 결투에서 지는 바람에 그 꿈이 산산조각 납니다. 그러니 검대신 주방에서 식칼을 잡은 자신의 처지에 열패감이 들고, 요리사를 비웃게 됩니다. 그때, 그의 아버지 후나키 덴나위(나시다 토시유키 - <멋진 악몽>에서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줌)가 하루(우에토 아야)의 절대 미감과 요리솜씨에 반해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합니다. 하루는 카가 번에 속한 시녀로 시집을 갔다가 여성으로서 품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빽쉽을 당해 구박을 당하고 있었죠. 그런데 하루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절대 미감과 요리솜씨에 빠진 후나키 덴나위의 끈질긴 설득으로 하루와 야스노부는 결혼하게 됩니다. 여전히 검객의 열망과 마음속에 연인으로 둔 사요를 잊지 못하는 야스노부로부터 하루는 무시당하고, 찬밥 취급을 받습니다. 하지만 하루의 요리솜씨가 가문으로부터 인정받고, 더 나아가 야스노부가 승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바람에 집안의 부엌을 책임지는 자리를 잡게 됩니다. 하지만 검객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 야스노부가 영주를 죽이는 반란에 참가하는 걸 알게 된 하루가 그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루와 야스노부는 여러 갈등을 극복하죠. 결국 검대신 식칼을 잡은 야스노부는 요리 장인이 되고, 하루와 함께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영화의 인상적인 몇 장면을 정리해 봅니다.
첫째, 스토리의 자연스런 연결과 흐름입니다. 억지를 부리지도 과장도 하지 않습니다. 에도 시대의 일상이 그랬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극적 리얼리티는 사실의 여부보다 감득력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스토리에 감득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일본 음식 특유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디테일하게 보여줍니다. 무를 자를 대고 썰듯이 똑같은 크기로 써는 것, 생강죽을 만드는 것, 하루와 야스노부의 회를 뜨는 대결에서 야스노부의 회맛이 없는 이유, 야스노부의 아버지 덴나위가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감탄했을 때 하루가 맛을 통해 “두루미는 방어를 말려 얇게 밀어 술에 삶은 것, 국물은 에조의 다시마 국물에 약간의 미림을 넣고, 간장은 타츠노 지방의 것으로 생각됩니다.”라는 대사로 극중 배우들이나 관객을 모두 놀라게 한 것, 영주가 주관하는 향응 요리에 ‘정어리 산초조림에 연오 무침, 송어회 구이와 살구 두부, 꽃잎 모양의 어묵, 살짝 데친 바다 농어, 도미 겨자찜, 꿩회’ 같은 음식이 나올 때마다 입안에 침이 고였습니다. 특히 시선을 끄는 건 유자빵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었죠.
“유자에 밀가루를 섞어 껍질째 삶아 겨울 동안 처마에 걸어두면 돼. 겨울의 찬바람을 맞고, 부드러운 햇살을 받아 봄이 오기 전까지 천천히 시간을 들여 숙성시킨단다. 너희 부부도 그런 식으로 살면 좋겠구나.”
음식과 인생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대사가 참 좋았습니다.
셋째, 주인공 야스노부의 캐릭터 변화에 공감이 됩니다. 하루(봄)가 처음 왔을 때, 얼마나 관심이 없었던지 나츠(여름)이라고 부릅니다. 첫날밤인데 신부는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칼을 손질하는데 온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오죽하면 아내를 늙은 너구리라고 비꼬아서 말할까요. 주방에서도 동료가 하루에 대해 물었을 때 퉁명스럽게 “여자는 감자와 마찬가지야. 껍질을 벗기고 나면 다 똑같아. 산지가 어디든 감자는 감자야.”라고 냉소적 어조로 말하죠. 그랬던 그가 하루의 진가를 알아보면서 “역시 감자도 여자도 산지에 따라 다르더군.” 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감자를 울퉁불퉁 못생기게 깎고, 껍질도 제대로 벗기지 않아 호되게 꾸지람을 듣지만, 나중에는 하나하나 정육각형으로 보기 좋게 깎아서 요리를 하죠. 그가 요리를 마음으로 하기 시작했다는 걸 보여줍니다.
넷째, 야스노부의 친구 사다노신이 토사노카미 영주에 대항해서 반역을 계획했을 때, 하루가 야스노부를 그 모반에 참석하지 못하게 칼을 감추어 실패로 끝나는 장면은 심쿵하게 만듭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야스노부가 칼을 들어 하루의 목을 베려고 할 때, 주고받는 대사가 짧지만 강렬합니다.
“저는 당신이 살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그만……”
“사다노신 일행은 모두 죽었어!”
“저는 당신이 살아 있으면 됩니다.”
다섯째, 카가 번 주택의 주방과 요리를 디테일하게 만드는 걸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다못해 골목에 등장한 두부장수가 두부를 다 팔았을 때 시마이하는 장면과 야채장수의 모습도 실감 나게 그렸습니다. 음식이나 요리 영화의 즐거움은 디테일에 있죠.
여섯째, 귀에 꽂히는 대사도 있습니다. 아버지 덴나위가 야시노부에게 꾸짖듯 말합니다.
“검을 휘둘러 피를 흘리는 것만이 무사의 길인가!”
야시노부의 어머니가 하루를 며느리로 받아들이긴 하지만 그리 탐탁지 않게 말하는 대사도 재미있습니다. 소박을 맞고 온 이력이 있는 하루를 물고기에 비유해서 시니컬하게 말하는 게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요리 영화답다.
“에도에서는 첫 가다랑어를 선호한다고들 하지만 기름기가 오른 황다랑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
일곱째, 토사노카이가 자신의 입지를 다진 향응 요리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덴나위와 야시노부 부자를 불러 말하는 장면에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성에서 보는 전경은 참 좋구나. 노을과 어우러져 아름다워. 그러나 말이다, 내 눈에는 피로 물든 세상으로 보인다. 전에 내 목숨을 노린 자들이 있었다. 복직을 노린 배신자들을 모조리 쳤다는데 젊은 자들이 많이 죽었다지. 처자식이 있는 자들도. 이제 이런 일은 끝을 내야 해. 이런 각오를 다진 건 당신들 요리 덕분이야.”
토사노카이 영주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야시노부의 눈빛과 표정이 변해가는 게 참 인상적입니다.
사족 – 일식 좋아하는 분들께서 영화를 보시면 환장할만한 장면들이 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