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더 무비>는 속도에 미쳐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F1이 자본과 기술의 쇼 비즈니스인데도 영화에서는 오직 스피드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인물의 관계나 캐릭터는 새로울 게 없죠. 익숙한 컨벤션에 충실합니다. 영화적인 핵심이 속도에 있다 보니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수축 작용이 일어나고, 무한속도의 효과를 내는 사운드에 달팽이관은 너덜너덜해집니다. 2시간 35분 동안 시각과 청각은 혹사당하고, 도파민은 과잉 배출되죠. 영화를 감상하기보다 트랙을 달리는 속도를 체험합니다. 조셉 코신스키가 <탑건 : 매버릭>에선 중력을 거스르는 체험을 선사하더니 <F1 더 무비>에서는 지상 최고의 속도를 짜릿하게 느끼게 해 줍니다. 광란의 질주에 여름이 시원해집니다. 미친 거죠.
<F1 더 무비>를 보고 느낀 점
첫째, 상투적인 스토리. 익숙하지만 거부감이 없고, 그만큼 위험 부담도 없죠. 소니 헤이스(브레드 피트)는 한때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나 사고 이후로 지금은 부초처럼 차박하고, 도박중독에 트라우마까지 안고 사는 한물간 드라이버입니다. 그런데 기회가 찾아오죠. 과거 동료였던 루벤 세르반테스(하비에르 바르뎀)가 F1 참여기회를 제공한 거죠. 에이펙스 팀에서 동료인 떠오르는 신성 조슈아 피어스(댐슨 이드리스)를 만나 갈등하고, 화해하며, 서로에게 동력이 되는 관계로 발전합니다. 루저인 소니와 루키인 조슈아가 짝을 이루는 전형적인 버디 무비죠. 조슈아는 허위의 껍질을 벗고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소니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자신을 회복하는 휴먼 스토리인 셈이죠. 이런 버디 무비는 많습니다. <러시 : 더 라이벌>에서는 상대 팀의 캐릭터로 설정되고, <포드 V 페라리>에서는 같은 팀의 전략가와 드라이버로 되어 있는데 <F1 더 무비>에서는 팀 동료입니다. 같은 팀 안에서의 갈등과 반목이 일어나니까 캐릭터는 확연히 대비될 수밖에 없죠. 기존의 익숙한 관습과 컨벤션에 따른 문법으로 관계와 구도를 짰고, 그건 처음부터 작정하고 드라마보다 레이스 블록버스터로 스피드가 주는 극한의 스릴감을 확실히 보여주는 데 방점을 찍은 겁니다.
둘째, F1은 첨단의 기술과 자본주의가 결합한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F1의 현장은 완벽한 협력과 조화로 이루어지는 예술이란 걸 보여줍니다. 차를 제작하는 엔지니어, 경기의 전략을 짜는 분석가, 피트 스톱(pit stop)을 담당하는 메카닉, 거기다 광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리모트 팀이 드라이버와 함께 어우러져 경주가 진행됩니다. 드라이버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팀 전체가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거죠. 타이어 전략을 세우는데 마모 정도를 예측해서 어떤 타이어로 교체하고, 교체 타이밍은 언제 잡을 것인지 고도의 과학적 수치와 감각을 총동원합니다. 소니가 팀원들과 불화를 겪는 건 데이터를 기본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이단적인 방식으로 레이스를 펼치기 때문입니다. 소니는 같은 팀 동료들과 협력하고, 소통하지만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그의 독특한 캐릭터가 빛을 발합니다. 관습을 뛰어넘는 열망과 도박적인 레이스로 승리자가 되죠. 한물간 늙은 드라이버의 컴백이 멋지게 이루어지죠. 소니가 그걸 실현하는 원동력은 명예와 돈이 아니라 레이스 자체를 즐기는 철학에 있습니다. F1에서 우승한 뒤, 어떤 미련도 없다는 듯이 새로운 오프로드 장거리 랠리에 도전하는 게 그 증거입니다. 그러고 보면 오프닝 씬에 거친 파도와 격렬한 카 레이싱을 병치시켜 교차편집으로 몇 번 계속 보여준 건 바다는 끊임없이 파도가 운명이듯이 카레이서의 숙명도 카 레이싱에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 메타포로 와닿았습니다.
셋째, 1초는 정말 긴 시간이라는 걸 느끼게 해 줍니다. 피트인에서 타이어 교체 시간이 2초 안에 이루어진다고 하니까 더 말할 나위 없죠. 소니가 시뮬레이션으로 하루 만에 렙타임을 0.5초 단축하고 환성을 지르는 장면이 있는데 일반인의 시간 감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죠. 하지만 실제 F1 경주에서 0.5초 안에 열 대 정도가 들어온다면 0.1초로도 순위가 뒤바뀌는 일이 일어나니까 0.5초 차이는 정말 엄청난 거죠. 우리가 평소에서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던 미세한 시간에 대한 체험을 새롭게 하게 됩니다. 그게 모두 물리적인 도로 위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무한 질주 때문이죠.
넷째, 속도를 리얼하게 청각으로 느끼게 해주는 일등 공신은 OST를 맡은 한스 짐머입니다. F1의 현장감을 느끼게 해주는 락 뮤직은 말할 것도 없고, 강렬한 신시사이저의 사운드와 고막이 터질 듯한 비트와 퍼커션은 마치 관객이 직접 핸들을 잡은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합니다. 소리가 속도로 환원되는 감각의 변이와 그 속도의 리듬이 온몸을 수축하게 만드는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러다가 트랙을 벗어나 방어벽과 충돌하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까지 합니다.
다섯째, 카메라를 비추기만 해도 극적인 분위기가 조성지는 배우를 보는 건 즐거움입니다. 브레드 피트와 하비에르 바르뎀을 보는 건 그런 즐거움이 두 배로 커지는 셈이죠. 물론 스토리 상으로 볼 때, 하비에르 바르뎀이 맡은 루벤의 역할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평범하지만 그의 표정과 몸짓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합니다. F1 사상 최초로 여성 기술 총괄책임자 케이트 매케나 역을 맡은 케리 콘던의 연기도 시원했습니다.
여섯째, 몇몇 인상적인 대사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소니와 루벤의 대사.
“우리 우승할 수 없어.”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다면 그렇지.”
소니의 대사.
“희망은 전략이 될 수 없어.”
“내가 잃어버린 건 트로피도, 타이틀도, 기록도 아냐. 경기에 대한 애정이었어.”
사족 : F1의 규칙을 알면 머리로 섬세하게 속도를 느끼지만 F1을 잘 몰라도
본능적으로 가슴이 속도를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