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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성 Jul 22. 2022

실크로드 기행 3 : 장예

하서주랑으로 들어서다

 란저우(蘭州)에서 무위(武威), 장액(張掖), 주천(酒泉), 둔황(敦煌)을 거쳐 신장(新疆)과의 경계인 옥문관까지 동남-서북 방향으로 늘어선 좁고 긴 평지를 '하서주랑(河西走廊)'이라고 한다. 한(漢)의 무제(武帝)가 하서를 개척해 무위, 장액, 주천, 둔황의 사군을 세운 이후 하서주랑은 신장으로 이어지는 주요 통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실크로드의 일부로서 고대 중국과 서방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적 교류를 진행시킨 중요한 국제 통로였다. 나는 란저우에서 장예, 주천(자위관)을 빠르게 주파해 3일 만에 둔황에 도착했다.

장예行 기차

 란저우에서 장예로 가는 기차는 가장 낮은 등급인 잉쭈오(硬座)였다. 좌석이 딱딱하고 불편한 데다 방향까지 뒤로 가는 방향이었다. 사람들은 복도까지 가득한데 이 기차를 타고 6시간 반을 갈 생각을 하니 타는 순간부터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즐거운 여행이었다.

장예行 기차

 내가 앉은 좌석은 6명이 마주 보며 가는 좌석이었다. 같이 앉은 사람들은 딱 봐도 기차에서 처음 만나는 사이들인데 별로 재밌어 보이지도 않는 카드놀이를 하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딱 봐도 나 같은 여행자는 아니고, 커다란 가방을 여러 개 들고 타는 걸 보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을 하거나 물건을 파는 사람들인 듯하다.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침대칸 살 돈도 없이 이 칸을 타는 걸 보면 넉넉지는 않은 듯한데, 그래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처음 기차에 오를 때 까맣게 그을린 그들의 피부와 더러운 차림을 보고 노트북을 못 꺼내놓을 정도로 긴장했다. 하지만 순박한 그들의 웃음소리에 긴장은 눈 녹듯 사라지고, 노트북으로 영화도 한 편 보고, 주위에 펼쳐지는 끝내주는 경치도 보며 별로 힘 안 들이고 장예에 도착했다.

 

 창밖으로는 서부극에나 나올 법한 황량한 풍경이 이어졌다. 황량한 땅을 낡은 기차를 타고 달리니 마치 서부극의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고, 어느샌가 마적 떼가 나타나 기차 안에 실린 금화를 약탈해 갈 것만 같다.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서부극 장르인 '만주 웨스턴' 무비도 배경이 만주라고는 하지만 실재 촬영은 이곳에서 많이들 한다고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서부극인 '석양의 무법자'의 테마곡 'Ecstasy of Gold'를 들으며 가고 있자니 한 층 더 감흥이 돋는다. 그렇게 창밖 경치를 감상하다 보니 내가 탄 기차는 어느덧 장예역에 들어섰다.


 호스텔에서 알게 된 사람을 통해 도시 주변 관광지들을 다니는 핀처(拼車)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러 명이 차 한 대를 빌려서 여러 유적들을 보러 다니는 개념이었는데, 보통 도시 외곽에 유적들이 산재해있는 실크로드를 여행할 때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보통 호스텔을 통해서 구하는데, 이후에 자위관, 둔황, 투르판을 여행할 때도 핀처를 이용했다.

장예 대불사
장예 대불사

 다음 날, 빙구 단하(冰沟丹霞)와 칠채산(七彩山)에 가는 핀처가 오후 두 시에 출발했기에 오전에는 슬슬 걸어서 대불사(大佛寺)에 다녀왔다. 사실 장예 시내에는 별 볼 게 없어 구색 맞추기 용으로 가이드북에 끼워 넣은 곳 정도로 생각하고 별 기대를 안 하고 갔는데,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와불전(卧佛殿)은 그런 내 선입견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2층짜리 목조 건물의 웅장함과 빛바랜 단청이 만들어내는 그윽하고 수려한 모습의 건물. 그 안에 누워 계신 거대한 와불과 그를 수호하는 먼지 쌓인 오래된 나한상들의 모습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장예는 그 건물 하나만은 보러도 갈 만한 곳이란 생각이 들 만큼.

주황색이 옛 서하 왕국의 강역이다. 분홍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북송(北宋), 녹색은 거란이 세운 요(遼)

 이곳 대불사는 서하(西夏) 왕조 시대인 1098년에 건립이 되었으니 천 년 가까이 된 고찰이다. 북송(北宋) 시대였던 당시 이곳 하서주랑 일대에는 서하(西夏)라는, 중원에서 독립된 왕국이 존재했다. 티베트 계열의 탕구트족이 세운 왕조로, 이 탕구트족은 삼국지에도 자주 나오는 강족(羗族)에서 갈라져 나온 집단이다. 불교를 국교로 하고 서하 문자 등 독자적인 문화를 갖춘 문명국이었고, 송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화친을 맺고 매년 공물을 받을 정도로 번영했으나, 칭기즈 칸에 의해 정복되어 현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쓰촨 성, 간쑤 성, 칭하이 성 등지에 강족(羗族)이라는 소수민족이 존재하지만 서하의 DNA적 특성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빙구 단하
빙구 단하
빙구 단하
빙구 단하
빙구 단하
빙구 단하

 늦은 점심을 먹고 핀처 예약 시간에 맞춰 호스텔로 돌아왔다. 오후 동안 빙하 단구와 칠채산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함께 간 인원은 나까지 4명. 쓰촨 성 청두에서 온 형과, 8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여행하는 광둥에서 온 아줌마. 빙구 단하는 그랜드 캐니언 못지않은 멋진 협곡이었다. 아니, 협곡과 웅장한 산들이 적절히 섞여 있는 모습이랄까. 물론 그 규모나 깊이는 그랜드 캐니언에 비할 바가 못 되겠지만, 그래도 그 풍광은 그랜드 캐니언보다 더 큰 감흥을 내게 불러일으켰다. 시간이 없어 너무 대충 감상하고 내려온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도 잘 감상하고 다음 장소인 칠채산으로 향했다.

칠채산
칠채산
칠채산
칠채산
칠채산

 칠채산 역시 다채로운 색감을 보여주는 멋진 풍경이었다. 빙구 단하가 웅장하고 호탕하게 펼쳐진 모습이라면 칠채산은 그런 맛은 덜하지만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해 질 녘 햇볕에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칠채산의 색감을 넋 놓고 감상하다가 어둑어둑해질 무렵에야 다시 장예로 향했다. 아홉 시가 훌쩍 넘어서야 호스텔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호스텔 근처 식당에서 그날 일정을 함께 한 광둥 모자(母子)와 늦은 저녁을 함께 했다. 아줌마 고향은 내가 공부했던 후베이 성 우한 근처 이창(宜昌)이라고 했던 것 같고, 어린 아들과 함께 한 달이 넘는 일정으로 샨시 성, 간쑤 성 일대를 여행하고 있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그렇게 길게 집을 떠나 여행을 하는 아줌마도 대단했지만, 별 투정 없이 잘 따라다니는 아이가 더 대견하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한 이 여행이 그 아이에게는 소중한 추억이자 앞으로의 인생에 큰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한창 개구지지만 쑥스럼이 많아 낯선 외국인 아저씨의 물음에 자기 이름도 제대로 얘기 못하는 아이가 무척 귀여워 한국의 전통문양이 그려져 있는 책갈피를 하나 선물로 주었다. 그게 뭔지도 모르는 듯 어리둥절하며 받아드는 아이와, 아이보다 더 기뻐하는 엄마. 중원 서북 변방 어느 작은 도시에서의 길었던 하루는, 기억이라는 책에 추억이라는 책갈피를 하나 남기며 그렇게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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