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하는 태양'. 투르판은 내가 지금껏 다녀본 모든 곳을 통틀어 그 표현이 가장 잘 들어맞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르판 북역에 내리자마자 말 그대로 '작열하는 태양'이 나를 반겼다. 기차 하차 방송은 보통화로 한 번, 위구르어로 또 한 번 나오고, 역내 모든 표지판은 한자와 위구르 문자가 병기되어 있다. 드디어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들어선 것이다.
버스에 올라타는데 히잡을 쓴 여성 차장이 내 가방에 금속탐지기를 들이댄다. 순간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된다. 사실 신장 전 지역은 2009년 소요사태 이후 줄곧 외교부 지정 황색경보(여행 자제) 지역이다. 신장에 들어오기 전까지 그런 건 전혀 신경 안 쓰였는데, 버스에 탈 때에도 금속탐지기를 들이대는 괴랄한 장면과 조우하니 갑자기 긴장이 된다. 하지만 앞선 여행기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신장은 내게 결코 잊지 못할 여행지로 남게 되었다(내 실크로드 기행의 절반 이상의 글이 신장에서의 이야기이다).
버스를 타고 투르판 시내로 들어와 미리 알아본 호스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마침 호스텔 건너편이 식당가라 뭘 먹을까 둘러보고 있는데 내 배낭보다도 더 큰 배낭을 멘 여자가 열심히 길을 찾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딱 봐도 내가 묵는 호스텔을 찾는 눈치여서 말을 붙여보니 그렇다고 한다. 잠시 같이 호스텔에 갔다가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투르판에서 나흘 간 묵어간 호스텔. 실외에 있는 공동구역이 꽤나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그렇게 인연이 된 우수연 누나는 랴오닝성 선양에서 온 사람이었는데, 직장을 때려치우고 3개월째 장기 여행 중이었다. 티베트에서 두 달, 신장에서 벌써 한 달을 보냈는데, 내가 지나온 루트를 반대로 거쳐 시안으로 간다고 했다. 우 누나의 여행은 3일 뒤 우리가 투르판에서 헤어진 뒤로도 계속 이어져 그 해 10월 말이 되어서야 선양에 돌아갔다고 연락이 왔다.
교하 고성
교하 고성
교하 고성
교하 고성
교하 고성
다음날은 또 핀처를 타고 투르판 근교의 명소들을 둘러보았다. 이번에 함께한 멤버는 수연 누나와 나, 그리고 푸젠성에서 온 아줌마 두 명이었다. 우리 엄마 뻘의 아줌마들은 밤새 기차를 타고 그날 아침에 투르판에 도착했는데 쉬지도 않고 바로 투어에 참여할 만큼 활기가 넘쳤다. 위구르인 기사 아저씨가 우리를 태우고 처음 향한 곳은 투르판 근교의 교하고성이었다.
기원전 108년부터 AD 450년까지 이곳 투르판 일대에는 차사전국이라는 나라가 위치해 있었는데, 이곳 교하고성은 차사전국의 수도였다고 한다. 그 뒤로도 이 일대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다가 13세기 이후 버려졌다고 한다. 절벽 위에 늘어선 고대 주거지의 흔적은 그 배후지가 꽤나 넓었는데, 흡사 로마의 포로 로마노만큼이나 흥미로웠다. 짧은 구경을 끝내고 다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카레즈였다.
카레즈
카레즈
카레즈(Kariz)는 중동에서 유래한 수리 관개시설인데, 기원전 700년에 개발된 오랜 수리 방법이 아직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이곳 투르판은 지표면의 증발량이 어마 무지하다. 실제로 손빨래한 빨래를 제대로 짜지도 않고 호스텔 마당에 널어두었는데 불과 2~3시간 만에 다 말라버렸다.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농업용수와 생활용수의 증발을 최대한 막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 바로 카레즈이다. 쉽게 말해 지하에 수로를 파는 것인데, 아래 사진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다.
카레즈의 원리
투르판 지구의 카레즈는 총길이가 5,000km에 이른다고 한다. 2,000년도 더 전에 지금의 상하수도에 맞먹는 촘촘한 수리시설을 지하에 건설해 놓은 것이다. 인간에 대한 경외감과 동시에 인간 삶과 인류 문명의 발전에 있어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시원한 지하 수로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다음 일정으로 투르판 제일 명소라 할 수 있는 포도구로 향했다.
위에서 내려다 본 포도구 전경. 계곡을 따라 넓게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포도계곡에서의 점심식사. 신장 사람들이 즐겨먹는 양고기 볶음밥인 양좌판(羊抓飯)을 먹었는데, 손으로 먹는 게 전통이다.
포도넝쿨로 덮인 길도 만들어 두었다.
탐스럽게 열린 포도. 임의로 따먹다 걸리면 벌금인데, 몰래 몰래 따먹었다.
포도구는, 당시 일기에다가는 50원이나 하는 입장료가 아까웠다고 써놨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사진을 찾아보니 또 너무 싱그럽게 느껴진다. 싱그러운 여름이 가는 게 너무 아쉬운 요즘이다.
화염산
화염산
화염산 온도계. 이 곳은 중국에서 가장 더운 지역으로, 한여름에는 50도가 넘는다.
아래위로 엄청난 열기에 눈을 뜨기가 힘들다.
베제클리크 석불동을 잠깐 들렀다가 그날의 마지막 일정으로 화염산에 갔다. 이곳은 투르판 분지와 타클라마칸 사막 경계에 위치한 사암 지대인데, 햇볕이 강하게 내려쬐는 한낮에 산의 붉은 색감이 흡사 불타오르는 것 같다고 하여 화염산이라고 불린다. 이곳은 중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더운 곳인데, 한여름에는 50도가 넘는다. 우리가 간 날은 다행히 구름도 좀 끼고 선선해서 46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곳은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서유기에서 우마왕이 기거하는 곳으로 나온다. 중국인들에게 서유기는 또 특별한 의미인지라 수연 누나를 비롯해 같이 간 중국 사람들은 굉장히 즐거워했다.
투르판에서 3일간 함께 여행했던 수연 누나와 함께
그날 밤, 오랜만에 시안에서 헤어진 한국인 친구와 통화를 했다. 쓰촨 성 야딩에 가 있는데, 해발 4,000m가 넘는 고원지역인지라 매일 고산병과 추위에 시달리고 있단다. 난 해발 -154m 투르판 분지에서 작열하는 태양과 타는 듯한 더위에 시달리고 있는데... 함께 출발했지만 전혀 다른 세계로 가 완전 상반된 고충을 토로했던 우리가 지금 생각해도 좀 재밌다. 그 친구가 보내온 짙푸른 초원의 사진과 내가 보내준 황갈색 사막 사진의 선명한 대비만큼이나 다른 세계에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고 돌아왔지만, 그 기억들은 우리 둘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거름이 되었으니, 결국 여행에서 목적지는 별러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소공탑. 1777년 투루판의 군왕 소래만이 자신의 아버지 액민을 위하여 세운 이슬람식 건축물이다.
소공탑
소공탑
투르판에서의 마지막 밤, 호스텔 마당에서 수연 누나와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누가 갑자기 한국말로 말을 걸어 깜짝 놀랐다. 지금껏 2주 넘게 여행하면서 한 번도 한국인을 만나지 못했을뿐더러 투르판에서 한국인을 만나리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날 밤 같은 방에서 묵었는데도 몰랐다. 하얼빈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는 그분은 여름방학 두 달을 꽉 채워 중국 대륙을 한 바퀴 도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빠르게 빠르게 돌고 있는데도 광동이나 푸젠 등 동남쪽은 시간이 없어 결국 못 갈 거 같다는 말에 다시 한번 중국 대륙의 거대함이 실감이 났다. 다음날 아침 호스텔을 떠나며 김자반을 선물로 받았는데, 나중에 키르기스스탄에서 맛있게 먹었다고 이 자리를 빌려서라도 전하고 싶다.
투르판에서 보낸 3일은 그렇게 끝났고, 나는 다음날 우루무치로 향했다. 투르판 포도만큼이나 향긋하고 달콤한 기억만을 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