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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선 May 08. 2023

친구

동양인끼리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T는 베트남에서 온 이민 2세대로 50년 평생 노르웨이에서 교육을 받고 살았지만, 베트남인 부모밑에서 다섯 형제와 함께 자랐다. 베트남어도 잘하고 베트남 음식도 잘 만든다.그녀의 겉 모습처럼 식성이나 취향이 매우 동양스럽다. 하지만 노르웨이인 남편과 자라온 환경때문에 노르웨이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베트남인스러운 노르웨이인이다. 첫째 아이의 반 친구 엄마인데 유일한 동양인이라서 그런지 금방 친해지게 되었다. 또한 우리집에서 1분 거리 이웃이 아니었겠는가. 우리는 가끔 만나서 산책은 물론 등산도 가고 카페를 가는 시간을 보냈다. 만나서는 자녀교육이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한다. 등산을 갈때 마다 그녀는 집에서 싸온 두가지 샐러드와 아침일찍 1+1로 구매한 디저트 빵을 들고 왔다. 첫 등산때 내 음식만 싸온 나는 가방 속 도시락을 집은 손부터 부끄러워졌다. 개인주의 성향에 길들여져 버린 나는 그녀에게 매번 놀랄 뿐이다.  또한 이민 와서 적응하는 동양인이나 아랍인들을 돕는 구호단체를 통해 매 주 음식봉사를 하는 그녀다. 백화점에 가도 구경만하고 물건 사는데 만원 이상은 쓰지 않는 편이고, 될 수 있으면 중고상점에 들러 아이들 옷이나 본인 물건을 구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중고 물건을 구경이나 구입도 좋아하지만 아직까지 중고옷을 사는 일은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놀랐던 것이 사실이다. 물건을 새로 사는 것 대신 쓸 수 있는 물건들을 재사용하는 것이 환경을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도 좋다는 그녀의 말에 깊게 동의했다. 그때는 그녀가 굉장히 알뜰하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친해지고 일년 쯤 지난 때, 그녀가 집으로 초대를 했다. 이미 깨끗이 정돈된 3층 집을 소유하고 있고, 남는 1층은 월세로 내놓아서 경제적으로는 풍족하게 살고 있는 듯 하였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풍족함과 내면에서 나오는 여유 그리고 따뜻함이 부러워졌다. 노르웨이에 와서 휴직을 시작한 순간부터 경제적 추락을 느낀 나는 여유가 없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직장의 보조금도 사택도 없이 톰슨씨의 외벌이만으로는 경제적 타격이 컸다. 나의 휴직으로 생기는 일 같아 죄책감이 들기도 하였다. 저금은 커녕 2백만원 정도의 적자가 일년 이상 이어졌다. 일년이 되기도 전에 나는 스스로 복직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이런 고민을 나눌 수 있었던 그녀는 내게 미술을 좋아하는 자신의 딸과 친구에게 미술수업을 해 주면 어떻겠냐고 제한을 했다. 작은 화실에서 시작한 두명의 학생은 열명이상으로 늘어났다. 결국 복직도 하게 되었고 그림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목요일 오후 갑작스레 T에게 문자가 왔다. 목요일과 금요일은 하루종일 근무하는 날이라 그날 수업 내용을 정리하고 있던 차였는데, 30분 거리에 있는 옆 동네에 쇼핑하러 가자는 메세지였다. 그녀가 메시지를 보낸 날, 귀찮은 마음에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다음에 가자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보통과 다르게 그럼 금요일인 다음 날은 어떤지 물어왔다. 두번의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은 분명 나와 가고 싶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며 다음날 퇴근 후 가자는 그녀의 메시지에 그러자고 답하였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작년 10월경이었으니 오랫만에 받은 연락이었다. 은행 회계쪽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는 보통의 워킹맘처럼 매우 바쁘다. 그런 그녀가 주중 오후에 퇴근하고 만나자고 하니 궁금해졌다.

그녀는 차를 몰면서 평소와 다르지 않게 차분하게 말을 하며 아시안 마트를 먼저 갔다가 늦게까지 여는 백화점을 가자고 하였다. 아시안 마트에는 중국의 설날을 맞이하여 빨간 봉투, 중국 생과자, 중국 설음식에 필요한 식재료, 햇쌀 등이 잔뜩 쌓여져 있었다. 나는 라면 몇개와 쌀만 계산하면서 그녀의 쇼핑거리를 크게 관심 두지 않았다. 백화점에서 두 어시간 쇼핑을 하고 난 후에서야 우리는 그녀가 좋아하는 중국집에 늦은 저녁을 먹으려고 들어갔다. 그녀는 쇼핑 따라와 준 것도 고맙다며 저녁을 사고 싶다고 하였다. 말도 안 된다며 거절했지만, T는 꼭 사야한다며 식사를 주문했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그녀는 내게 말했다.


“내일이 설날(구정)이잖아. 나는 부모 형제가 모두 오슬로에 있어서 주말동안 그곳에 가서 가족들과 설날 행사 등 즐겁게 보내고 올거야. 그래서 빨간 봉투도 사고, 먹을 것도 잔뜩 샀지. 그런데 당신은 이곳에 가족이 아무도 없잖아. 서양 사람들은 새해 후에 있는 구정에 대해 잘 몰라. 노르웨이 사람들에게나 당신 남편(뉴질랜드)에게도 아무 날이 아니잖아? 그래서 우리끼리 기념하자고, 내가 설날 기념으로 사는 거야. 알았지?”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은 구정이라고 들떠 있던 한국인 지인들의 SNS며 각종 매체가 나를 한없이 외롭게 했던 주였다.       

이심전심이라고 해야 할까. 동양인이라서 알고 있는것이다.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다. 내게 친구로써 특별한 저녁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 오전에도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2주만이다.

외식을 좋아하지만 헛툰 돈 쓰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그녀가 매번 수요일에 점심 먹자고 연락이 온다. 내가 일하지 않는 날이다. 은행 근무 중 점심 시간은 겨우 30분인데 퇴근 후 추가근무를 할 모양이다. 내가 사양하면 우리가 만날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만나자고 조르기까지 한다. 바쁜 그녀는 내가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먼저 만나자고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말한 적은 없지만 동양인끼리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노르웨이를 떠난 후 T 덕분에 노르웨이 생활이 덜 외로웠다고, 또 나도 고민을 나눌 친구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주 수요일 교회카페 점심 어때? 새우 샐러드, 커피, 당근 케이크 환상적이지…? 노르웨이에 봄이 왔잖아. 스시집이나 국수집이 있으면 좋은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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