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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선 May 09. 2023

일곱 감정을 추스르며

에필로그


지난주 수요일 오전에 한국인 이웃을 만났다.

그녀는 이미 결혼한 자녀가 있는 인생 선배였다. 나와는 분명 다르고 좀 더 굴곡 있는 경험을 하신 분이었다.

한국말을 오랜만에 하시기에 쏟아 낼 수 도 있겠다 싶지만 사연 가득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에세이 쓰셔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글쓰기를 권했다.

“이런 감정을 글로 써 보시면 어때요. 글을 쓰면 내 감정에 충실하면서 마음도 힐링되고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갖게 되더라고요. 말씀하신 육아에 대한 생각이나 국제결혼에 대한 경험을

에세이로 풀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남편이 글로 풀어보라고 권하더라고요.”

“가지고 계신 경험이 다른 분들께는 새로운 자극이 될 것 같아요.”

“그럴까요? 혹시 자랑한다 생각하면 어쩌죠? 글쓰기는 어떻게 시작하죠? “

“처음엔 세줄, 혹은 긴 일기처럼 써보는 거죠”

“남들이 내 인생을 너무 깊게 들여다보는 건 싫은데…”

“분명 나의 감정과 경험을 들여다보는 값진 시간이 될 거예요.”


글을 겨우 쓰고 있는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어디서 들어본 말 같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 나의 글쓰기 여정을 깊게 엮어준 초고클럽에서 나온 말들 아닌가.

짧은 글부터 긴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선량 작가님, 15 꼭지를 쓸 수 있도록 피드백과 응원을 함께 해 주신 미숙님, 리엘리님, 민숙님, 류연님과 함께 하는 초고클럽 말이다.




초고클럽 멤버들과 매거진을 쓰기 시작한 것은 랜선 연말파티를 끝낸 2023년 1월부터였다. 매거진 글쓰기는 새해 처음 마음먹은 것이라 프롤로그와 첫 글인 ‘고난의 기쁨’을 금방 쓰게 되었다.

유난히 긴 겨울을 자랑하는 노르웨이의 겨울에 대해 쓴 글이었다. 고독하고 추운 겨울에 아름다운 설경을 맞이하는 로컬의 기쁨이 전달될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나 홀로

꿈꾸듯 동화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은 아닐까. 관심은 물론 공감을 얻고 싶어 조바심을 내며 썼더랬다. 역시나 노르웨이의 삶은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삶일 뿐, 나의 글이 독자들의 마음을 붙잡지는 못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1월에 쓴 기쁨의 글을 뒤로한 후 안 좋은 일 들이 매달 이어졌다. 분노로 시작된 일들은 결국 슬프고 참아야 하는 일들로 이어졌다. 남은 여섯 감정을 풀어내는 내내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았다. 하고 싶은 한국말은 보통 글로만 풀어야 하는 상황인 내게 어느 날은 글이 너무 길어져 도통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를 지루한 글로 남았다. 또 다른 날은 한 줄 쓰고 더 이상 쓸 수 없는 날의 연속이었다. 글 속의 감정이 현실처럼 들쑥날쑥하였다. 어느 날은 괜찮을 거야라며 홀로 다독이고, 어느 날은 그냥 푹 무너지는 것처럼 말이다. 두 아이들과 톰슨 씨를 챙기고 직장도 나가야 하니 겨우겨우 정신줄 붙잡아야만 나아갈 수 있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에 글쓰기와 그리기는 일 순위로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쓰게 되었다. 약속한 매거진 발행은 시간 내에 쓰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런 우울한 상황 속에서 감정의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미움과 분노로 가득했던 날들에 쓴 글들과 슬픔과 우울함이 가득한 날들에 풀어낸 글들이 나를 돌보는 느낌이었다. 내 속 안에 잠겨있던 속상함과 분노를 글에 마음껏 풀어내서 속이 시원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 글들은 아직 서랍 속에 잠자고 있지만 그 글들 대신 이야기로 풀어낸 글들은 매거진에 담겼고 지난날들을 포함해 내 주변을 뒤돌아 보게 해 주었다. 나를 포함하여 가족과 이웃을 글 소재로 끌여다 쓰기도 했다. 나의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살짝 다듬어 글로 옮김으로써 그 시간만은 글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결국 시간은 흘렀고 힘들었던 지난 3개월은 과거가 되었다. 일곱 감정을 추슬러보니 그 시간들도 곧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간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함께 쓰는 매거진이라 꾸준히 참여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글로 맺은 인연들을 글에서 꾸준히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섯 마음의 글을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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