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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선 May 15. 2023

만나서 반가웠습니다만,

불편한 방문

노르웨이를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대부분의 가구와 전기제품들을 양도하게 되었다. 나는 이층에 이삿짐으로 인하여 어질러져있는 잡동사니와 먼지로 가득 쌓인 생활공간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 무리해서 양도할 가구들을 일층으로 옮겨 놓기 시작하였다. 그로 인해 일층 공간은 짐들로 가득 차 걸어 다니기도 힘들게 되었다. 그 후로 수차례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가구를 옮겨가거나 작은 짐을 실어갔다. 일층에 모아놓은 짐들을 사람들이 서둘러 가져가길 바라는 마음에 일정을 잡느라 더욱 바쁜 한 주를 보냈다. 양도하지 못한 물건들 중 장식장등 튼튼하지만 오래되고 투박한 가구들이 생겼다. 결국 무료 양도 광고임에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아 창고에서 다시 차고로 옮겨졌다. 무거운 가구들을 옮기느라 매일 피곤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가구 몇 가지를 빼면 그 속에서 나온 물건들을 박스에 넣거나 버려야 하고 2년 넘게 쌓여있던 먼지뭉치를 치우느라 집도 내 마음도 부산하였다. 지저분한 집을 치우는 것도 힘들지만 지저분한 집을 남에게 본의 아니게 보여주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지인이 많지 않은 우리는 양도할 물건들을 직장동료에게 먼저 공유하였다. 그 과정에서 2살과 6살의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미국인 동료가 마지막으로 물건들을 픽업을 하였다. 피곤한 눈빛에 핼쑥한 얼굴로 차에서 내리더니 늦게 픽업해서 미안하다고 하였다. 아이들은  남편과 썰매를 타라고 겨우 두고 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워킹맘이 어린 자녀들을 키울 땐 주말에조차 쉬 기기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토닥이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녀는 큰 한숨을 쉬며, 일주일 후에 미국에서 시부모님이 오시는데 방이 두 개인 작은 집이 지저분해서 청소하고 정리해야 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남편이 내일부터 일주일간 출장이라 주말 동안 집 정리를 하자고 했더니 남편은 굳이 할 필요 있냐고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친정 부모님이 왔을 땐 앞집 에어비앤비를 이용해서 편하게 사용했는데, 남편은 시부모님께 부담을 주기 싫다고 했단다. 나도 최근 들어 몇 차례 뉴질랜드 손님이 왔다간 차라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4월 부활절 휴가 때였다.


일 년 전 우리가 노르웨이를 떠날 것이라는 것을 뉴질랜드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하자, 놀랍게도 네 차례 손님들이 뉴질랜드에서 방문했다. 나는 성격상 집을 어지른 상태로 손님을 맞이하는 편은 아니다. 평소에는 지저분하게 산다는 것은 아니지만 ‘들어와 본 사람이 욕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남에게 욕먹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시기별로 네 번의 대청소를 하게 되었다. 이층 집에 살고 있는 덕에 대청소는 보통일주일이라는 긴 청소주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지금껏 그 누구도 우리의 휴가기간에 방문한 이들은 없었는데, 네 차례의 손님들 중 마지막 손님은 그야말로 예상밖의 휴가기간에 더군다나 6박이라는 긴 방문이었다. 부활절 휴가 2일 전에 와서 6박 7일을 머물렀다. 3살, 9살, 12살 세명의 아이들과 넷째를 임신한 조카, 그리고 조카 남편까지 총 다섯 명의 대가족이었다. 톰슨 씨와 결혼한 이후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조카, 톰슨 씨 누나의 딸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한참 어렸는데, 일찍 결혼했다고 한다. 톰슨 씨와도 20년 만에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보기엔 조카와 삼촌사이인 둘 사이도 꽤 어색해 보였다. 그래도 그는 멀리서 온 가족이라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였다.


유럽의 부활절은 꽤나 조용하다. 특히 부활절 주말 전 후인 굿 프라이데이와 굿 먼데이는 모든 곳이 닫는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노르웨이의 일요일은 모든 상점이 닫는다. 하는 수 없이 집에서 아이들 다섯 명과 어른 네 명을 위해 7일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시 세끼를 차렸어야 했으며, 심심한 손님들을 위해 작은 시골마을에서 억지로 산행과 골목 투어를 진행했어야 했다. 하지만 부활절이라 상점, 도서관, 박물관 등이 모두 열지 않아 그야말로 지루한 투어의 연속이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콕해야 했다. 아이들 다섯 명과 어른 네 명이 실제 생활공간인 2층에서 생활하기는 좁기 때문에 주인인 내게 매우 어려웠다. 일층 방과 화장실을 쓰라고 제공했지만, 불편한지 다섯 명의 손님은 늘 이층에서 저녁 10시까지 티브이를 켜두고 장난감을 가지고 함께 놀았으며 넓은 2층화장실을 썼다. 또한 다섯 식구가 머물기엔 좁은 아래층 방은 3살 아이와 부부에게만 쓰라고 하고 이층 방 중 2층침대가 있는 방을 손님들에게 내어 주었다. 그로 인해 우리 집 둘째 아이는 일주일 동안 톰슨 씨와 나 사이에 끼어 잤다. 아이와 함께 자는 게 오랜만이기도 하거니와 아이가 이리저리 뒹굴며 자기 때문에 우리는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황금 같은 일주일의 휴가기간에 대가 없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는 피곤한 시간들이었다.  내 부모와 형제도 아니고 만난 적도 없는 조카와 그녀의 대가족이라니. 나의 불평을 넘어 불편함과 피곤한 부활절 휴가로 톰슨 씨와 작은 말다툼까지 이어졌다. 보통 우리는 휴가를 3개월 전쯤에 계획하는데, 조카는 일 년 전에 부활절날 노르웨이를 방문할 거라며 통보하여 우리의 휴가계획을 무마시켰다. 덴마크로 2박 3일 크루즈 여행을 계획한 것을 취소한 나는 내심 짜증이 났다. 노르웨이의 마지막 긴 휴가를 이런 식으로 보내야 한다는 속상함으로까지 이어졌다.


또한 노르웨이 남동쪽에 위치한 우리 동네는 아직 한겨울인 트롬쇠나 로포텐 제도보다 맑고 따뜻해, 노르웨이의 겨울 피요르드나 오로라를 보기엔 거리가 먼 곳이었다. 노르웨이 지역특성상 자가용이 없으면다니기 힘들다. 조카네 가족은 렌터카 대신 우리 집 차로 이동하길 원하는 듯 해보였다. 결국 나와 아이들은 늘 집에 머물렀다. 근교를 가더라도 상점들이 닫아 볼 것이 없었고, 시골이라 갈 곳이 적어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낸 조카네 가족이 피부로 느껴졌다. 노르웨이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바로 런던과 파리의 친구집에 머물 거라고 했다. 6개월 차 임신부인 조카가 힘들어 보였고, 일반 집에서는 다섯 명의 가족을 수용하기엔 좁을 텐데 굳이 이런 식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로가 불편했던 부활절 휴가. 누구를 위한 휴가였을까. 성탄절 이후 오랜만에 긴 휴가를 쉴 것이라 생각했던 예상치 않은 많은 식사준비로 피곤했고, 저녁엔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방에 들어가 일찍 잠들었다.

톰슨 씨도 어린 조카 가족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라도 더 해주려는 모습이 힘겨워 보였다. 조카네 가족이 떠나는 토요일 아침,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까지만 말하고 말았다.

‘뉴질랜드 가서 만나자 ’등 그 뒤를 더 이어 말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내 마음속에서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만, 긴 방문은 사양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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