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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울과 철학 Dec 19. 2021

절망에 대한 단상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들을 경험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슬픔을 느끼고, 진행하던 일이 잘못되면 분노와 좌절감을 느낀다. 사랑하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는 질투심과 모멸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심해졌을 때 절망감에 빠진다. 생을 지속할 수 없다는 인식, 모든 희망이 영구적으로 사라진 듯한 전망이 절망과 불가분의 관계로 맺어져 있다. 절망은 부정적인 감정의 끝, 극한값이라고 할 수 있다. 절망은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과 카테고리가 다르다. 절망은 다른 감정들의 상위 카테고리에 있는 것이다.


절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특징은 절망의 크기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동일한 고통을 경험하고도 그에 따라 느끼는 절망감은 사람마다 다르다. 동일한 고통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은 절망을 빨리 극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일생을 절망에 휩싸인 채 살아간다. 절망을 통해 내적 성장을 이루어 더 충만한 삶을 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절망이 고통에 대한 합리적인 반응일 뿐이라면 절망의 크기가 사람마다 이토록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두 번째 특징은 절망이 한 인간에게 총체적인 현상으로 경험된다는 것이다. 절망은 우리의 정신과 신체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우울한 감정, 정서의 불안함, 슬픔, 희망의 부재를 느끼게 된다. 또한 여러 가지 신체화 증상을 겪게 되는데, 무기력함, 상쾌하지 않은 기분, 장기 및 조직 활동성의 제한 등이 그것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우리의 세계관이 극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더 이상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게 되고, 세계의 예측 불가능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거나, 신이 존재를 믿더라도 신의 비인간성, 무심함을 증오하게 된다. 절망은 한 사람에게 쏘아진 강력한 폭탄과 같은 것이다. 그의 삶의 양태를 전적으로 바꾸어 버리는 총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특징은 절망은 자살을 고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느끼는 정서는 부조리의 정서와 매우 흡사하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인간은 비합리와 얼굴을 맞대고 서 있다. 인간은 자기 내면에 행복과 이유를 향한 열망이 차 있음을 느낀다. 이처럼 부조리는 인간의 욕구와 세계의 불합리한 침묵이 대립하는 데서 비롯된다"라고 하였다. 절망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욕구와 이를 만족시킬 의도라고는 전혀 없는 세계와의 대립에서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 현실세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고, 더 이상 추구해야 할 가치가 없음을 느낄 때 절망에 빠진 자에게 자살은 유일하게 진지한 철학적 질문이 된다.


위의 세 가지 특징이 절망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절망이 우리의 정신에 내재하고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절망은 우리 안에 본유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가 외계의 사건이라는 일정한 형식을 만나면 절망감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절망이 정신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시간, 공간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절망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에 존재하더라도, 혹은 감정의 다른 영역으로 도망가더라도 절망은 끈질기게 우리를 쫓아올 것이다.


세계의 논리와 나의 논리가 대립하는 지점에서 절망감이 생겨난다는 것은 절망이 정신의 한계, 정신의 허약함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윤리적인 좋음과 나쁨을 구별할 수 없는 상태,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할지 결정할 수 없는 상태는 우리를 절망감으로 이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절망에 빠진 자는 기존의 윤리의 체계(당위성의 체계)를 잃어버리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윤리 체계를 고통이라는 계기로 잃어버린 것이 먼저이고, 절망은 이러한 상실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다.


절대적 윤리의 부재로 인해 우리는 언제든지 절망할 수 있다. 절대적 윤리가 존재하지 않음을 강하게 느낄 때마다 절망감에 빠질 수 있다. 왜냐하면 절대적 윤리의 부재는 정신의 허약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절망은 이 허약함에 따른 감정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절망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무엇이 무능력감을 극복하도록 하고, 결정 불가능의 상태에서 결정 가능한 상태로 도약하도록 할 것인가? 그것은 새로운 행동의 준칙, 새로운 윤리학을 마련하는 것이다. 새롭게 자신만의 윤리적 기준들을 찾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여 정신의 허약한 부분을 확신으로 채울 수 있다면 절망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멀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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