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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Dec 04. 2023

[일본 돗토리 3편] 모래 언덕이 어디오

사구.... 사구가 보고 싶다

돗토리 관광지를 검색하면서 가장 많이 본 곳이 돗토리 사구(모래언덕)이었다. 

워낙 많이 나와서 세뇌가 되었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여길 다녀왔었나 싶을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게 문제였다. 거길 가야겠다는 생각이 꽂히고 나서부터는 그 다음은 어디를 가야할지 막막해졌다. 자연경관이나 온천마을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런 곳들은 차가 없으면 가기 힘들거나 열차를 타고 돌아다녀야 해서 시간 확인을 잘 해야만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곳은 전철 개념이라기 보다는 열차 개념이기 때문에 배차 간격이 한 시간 정도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아침부터 멘붕이 올락말락 했던 것이다. 잘못하면 여행 조지겠는데?

차분해지기 위해 나는 주린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Green Rich Hotel Tottori Ekimae의 조식. 종류별로 잘 갖춰진 야사시이한 뷔페식 조식이다. [출처: 아직은 멀쩡한 아이폰 XS]


Green Rich Hotel Tottori Ekimae의 1층은 조식을 제공하는 뷔페 식당이 있다. 양식, 일식(가정식) 등이 잘 갖춰진 곳이다. 사진을 뭣같이 찍어서 그렇지 정말 맛있었다. 호텔 투숙객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일정 돈을 내면 먹을 수 있는 모양이다. 


다음 행선지가 문제였는데, 어제 지인이 추천한 '택시 여행'이 생각이 났다. 3000엔으로 주변 여행 스팟 3곳을 돌아주는 3시간 코스 상품이었다. 버스 간격도 외곽 나가려면 꽤나 시간 걸리는 데다가 지하철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고민을 했다. 일단 메인 이벤트인 돗토리 사구까지는 300엔 정도 내고 충분히 갈 수 있었지만, 그곳에서 어디로 갈지, 배차 간격은 어떨지, 이 짐짝을 이끌고 도저히 사구까지 갈 엄두가 안 났다. 여행용 가방을 질질 끌고 돗토리역의 코인락커까지 와서 보니 큰 락커가 600엔이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래, 이때 아니면 언제 일본에서 택시를 타 보겠니."(실제로 한 혼잣말)


나도 자동문 '찌~익' 열리는 기깔나는 택시 한번 타 보겠다 결심하고 3천 엔을 주섬주섬 준비해서 역 옆에 있는 관광 안내소로 갔다. 


택시를 타려면 돗토리역 북쪽 출구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꺾어 조금만 가면 있는 관광안내소로 가면 된다. 가기 전에 돗토리 사구에 있는 모래 박물관에도 들르게 될 텐데, 북쪽 출구 나가기 직전에 있는 곳에서 표를 미리 사 오라고 한다. 가격은 600엔 정도. 현장에서 사는 것보다 200엔 정도 싸다. 


안내소에 들어가서 굉장히 시크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택시 관광 안내 코스를 설명해주시는데, 


"코스가 많네요. 하나, 둘... 열 개? 몇 개야 이거?"

"어떤 코스로 갈 거니?"

"사구요. 돗토리! 사구! 사구!"

"아니, 그러니까 어디? A, B, C 중에 골라 봐."

"사구.... 사구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

"일단 진정하고 물부터 마셔라."


코스는 오질나게 많지만 돗토리 사구가 포함된 메인 코스는 3개 정도이다. 세 개 스팟인데, 두 군데를 느긋하게 돌지 세 군데 다 찍을지는 기사님이랑 상담해서 정하라고 했다. 나는 코스를 추천 받아 '돗토리 사구-하쿠토 신사-돗토리 성벽 터'를 돌기로 했다. 돗토리 성벽은 사실 금방 보기도 하고 뭐가 별로 없는 모양인지 갈지 안 갈지는 상담해서 결정하라고 해서 별로 기대는 안 했다. 


3000엔에 500엔이 추가되는데 이건 돗토리 사구 주차장 값이라고 한다. 요금은 다 끝나고 기사님께 직접 전달한다. 결정이 되면 기사님을 부르고 노오란 작은 스타렉스 같은 택시를 타고 출발한다. 


무려 자동문이다. 자동문. [출처: 아직은 배터리 빵빵한 아이폰 XS]


일본에서 택시는 처음이었기에 얼떨떨했다. 관광택시지만 택시는 택시니까, 나도 부자 계열에 입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망상에 빠지며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감상하며 20여 분을 달렸던 것 같다. 


하쿠토 신사 동상. 이 신사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궁금하면 검색해라. (출처: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아이폰 XS)

 


첫 번째로 들른 곳은 하쿠토 신사였다. 신사 앞에는 널찍한 해안이 자리잡고 있었다. 여름이면 여기에 해수욕을 하러 오는 사람으로 북적인다고 한다. 여행 당시에는 겨울이어서 그런지 바닷바람이 매우 거셌다. 미칠듯한 강풍에 사진이고 뭐고 건물 안으로 대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 대자연이여. 

하쿠토 신사 앞 육교에서 찍은 정경. 파도가 매서움. (출처: 강품으로 기절했지만 사진은 찍히는 아이폰 XS)

바다 반대쪽으로 들어가면 신사로 이어지는 언덕길이 보인다. 이곳은 옛날 하얀 토끼가 두 커플을 이어준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토끼가 바다를 건너 고생고생한 상태에서 삼형제를 만나는데, 첫째와 둘째에게 쌍콤보로 사기를 당하고 마지막 막내에게 겨우 조언다운 조언을 듣고 이 막내를 어여쁜 여인과 이어줬다는 아름답고 슬프며 세상은 혹독하지만 이와중에 눈맞을 애들은 결혼하고 잘산다는 매우 현실 반영적인 전설이다. 전설인데 너무 현실적이라 놀라웠다. 와우.


하쿠토 신사 길목에 토끼 동상. 신사 사진은 많이들 봤을 테니 토끼나 보고 가시라. (출처: 토끼를 좋아하는 아이폰 XS)


이곳 요나고-돗토리 일대에는 '사랑'스팟이 몇 군데가 있다. 역 전체가 핑크핑크로 칠해져있는 고이야마가타역(恋山形駅), 코난 공항으로 유명한 돗토리 코난 공항, 사랑을 기원하면 들어준다는 이곳 하쿠토 신사 등이 있다. 만약 당신이 솔로인데 얼굴에도 이상이 없고, 성격에도 문제 없고, 뭔가 마가 끼인듯 계속 솔로인 상태라면 큰 맘 먹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나? 모르겠다. 

돗토리 사구 박물관. 이집트 테마 전시관. (출처: 웅장하지만 이거 다 못 잡아내는 망할 아이폰 XS)


택시 여행 코스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돗토리 사구로 이동했다. 돗토리 사구로 들어가기 전에 돗토리 사구 박물관에 입성했다. 미리 할인가로 사 놓은 표를 내고 들어가면 웅장한 모래 예술품들을 볼 수 있다. 그때그때 테마가 다르다고 했는데 이번 테마는 이집트인 것 같다. 박물관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별 기대는 안 하고 보는 편이었는데, 생각보다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생각보다 넓으며 박물관 밖에도 볼 만한 작품들이 몇 개 있기 때문에 초스피드로 돌아도 30분은 걸릴 것이다. 

 

돗토리 사구. 수많은 유튜버들의 성지. 걷다가 죽을 뻔했다. (출처: 같이 고생해 준 고마운 친구 아이폰 XS)


박물관에서 차로 2~3분만 더 이동하면 드디어 돗토리 사구에 다다르게 된다. 주차장 한쪽에 널찍하게 모래 털고 신발 닦는 곳이 있어서 살짝 기가 죽었다. 모래가 엄청 많긴 많나 보다. 택시 기사 아저씨께서도 다른 곳보다 시간을 더 넉넉하게 주신 것을 보면 이곳은 만만한 곳이 아니라 예상이 되었다. 


그리고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가며 나는 보고 만다. 와.... 진짜 사막이네. 

바닷가에서 모래언덕은 많이 봐 왔다. 해운대에서도 큼직한 언덕이 있었고, 올해 여름에 잠깐 갔던 속초 바다에서도 어느 한쪽에 쌓인 언덕을 보면서 참 높다 생각했다. 여긴.... 모래 산이네.......

 

나는 사막이다. 오아시스를 보유하고 있거든. (출처: '그랬구나' 맞장구치는 아이폰 XS)


일부러 조성한 것인지 자연생성인지 모를 나름 거대한 오아시스까지 갖추어 이곳은 정말 미니 사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다와 맞닿은 높은 언덕까지 올라갈 때는 숨이 조금 찰 정도이다. 등산을 참 좋아했는데.... 물론 어릴 때 말이다. 내려오는 길에 어느 노부부가 올라가는 것을 봤는데 할머니는 힘내라고 계속 올라가자고 하고 할아버지는 "됐어. 여기까지.... 이제 충분해...."하면서 계속 끌려가고 계셨다. 그래요. 올라가시면 강풍에 한 번 더 놀라실 거예요. 하하. 


놀라운 사실은 여기에 낙타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뜻밖의 등산으로 그로기 상태가 되어 피난하다시피 택시로 돌아왔는데, 혹시 방문할 사람들은 이악물고 낙타까지 꼭 보고 오길 바란다. 나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락교 밭. 돗토리는 랏교 산지로 유명하다. (출처: 슬슬 밥달라고 조르는 아이폰 XS)


가는 곳마다 적절한 질문과 적절한 스고이를 외쳐 준 덕분인지, 아니면 콘서트 가수가 원래 준비된 앵콜 공연을 하는 것처럼 기사 아저씨도 미리 준비해 둔 서비스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서비스로 가는 길에 몇 군데에서 사진을 더 찍을 수 있었다. 


그곳이 바로 락교(ラッキョウ) 밭이었다. 랏쿄라고 해서 처음에 잘 못 알아들었다가 아, 그 락교인가 싶었다. 아저씨 말씀으론 일본 전국 락교의 60%가 돗토리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보라색 꽃이 피어있는데, 약 일주일만 피는 락교꽃이라고 한다. "어? 보이는데요? 활짝 핀 건 아니지만.", "운이 좋네요." 역시 될놈될.  


우라도메 해안(浦富海水浴場). 실제로 보면 뭔가 웅장하다. (출처: 이제 집에 가고 싶은 아이폰 XS)


돗토리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우라도메 해안(浦富海水浴場)과 히가시하마 해수욕장(東浜海水浴場)을 차례차례 들르면서 경치를 감상했다. 중간에 사진 스팟에 멈춰주시면서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아저씨께 감사드린다. 바람이 세서 그런지 파도의 움직임이 매서웠다. 분위기로 치면 거제도 해안과 아주 조금 흡사하다. 다만 이 작은 바다마을 전경은 분위기가 확실히 달랐다.  


3시간을 꽉꽉채워서 간당간당하게 돗토리역에 도착하자 역시나 칼같이 택시 아저씨 본부쪽에서 무전이 왔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추가금을 내야 하는데 아저씨가 센스있게 딱 맞춰서 도착해 주셨다. 나는 일본 사람들은 과속 안 할 줄 알았는데, 이 기사님은 밟을 곳은 과감하게 밟으시는 베테랑이셨다. 돗토리 출신이시기도 하고.나는 3000엔+돗토리 사구 주차장 요금 500엔 도합 3500엔과 감사 인사를 전하고 여행을 마쳤다. 


그리고 이 인간은 돗토리 시의 또다른 면을 보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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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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