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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Jun 09. 2024

첫 직장은 국내에서 하라고 했잖아

해외에서 한국어교육을 시작하면 (조금) 힘든 이유

나는 해외에서 한국어교육 일을 시작했다. 지금 선배들을 만난다면 거꾸로 시작했다고들 말씀하실 것이다. 오래는 아니더라도 현시점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질 경력이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거꾸로 시작'한 것이 맞다. 


한국어교육에 발을 들이면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다. 


'첫 직장은 국내 어학당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여기에서 경험을 쌓고 그다음 나이가 많이 들기 전에 외국 갔다오는 것이 좋다.'

'만약 해외에 간다고 해도 짧게 갔다오는 것이 좋다. 돌아오면 적응하기 힘들다.'


그때도 그 이유를 듣기는 했고 내가 이전에도 정리를 몇 번 한 적은 있지만 다시 한번 정리해 보려고 한다. 오늘은 정말 할 일이 드릅게 없기 때





뽑기 애매함


국내 어학당의 인사 담당자들도 전세계를 돌아다녀 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본 선생님이 경력을 제출하면 이것이 인정해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는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보통은 국립국어원의 기준을 따르는 경우가 많겠다. 외국은 학제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1년에 몇 백 시간을 강의했다고 해도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러면 사람이 어학당 수업에 바로 투입되어 50분씩 4시간 수업을 정해진 교안에 따라 표준에 맞는 수업을 해낼지 검증이 되는 것이다.


내가 있던 태국을 예로 들자면 대학교에 전공, 부전공, 교양으로 한국어가 개설된 곳이 저마다 다르고, 고등학교에서도 언어 전공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경우가 있다. 태국의 고등학교는 인문계, 자연계 등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한두 과목을 집중적으로 배운다고 한다. 내가 일한 곳은 전공 과목으로 되어 있는 대학교였고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관한 전반적인 과목이 개설되어 있었다. 강의시간은 한 과목 3시간이고 시험주간 포함 16주였다. 


대학 기관이어서 쉽게 인정될 줄 알았지만 한국에 돌아오기 전에는 국내 어학당에서 인정받기 쉽도록 내가 직접 내가 가르친 과목과 강의 시간을 정리해서 서류를 올렸고, 그것을 총장 서명을 받아 가지고 오게 되었다. 이렇게 해도 인정해 줄지 안 해줄지는 어학당에 따라 다르다. 나는 어학당 수업과 비슷하게 문법 수업도 했지만 한국 문학, 비즈니스 한국어, 학문목적 쓰기, 한자 등 어학당 수업과는 사뭇 성격이 다른 수업도 했기 때문이다. 특히 문화수업만 했다고 하면 어학당에서 잘 안 쳐주는 느낌이 있다. 어학당 입장에서는 문법 수업을 정석적인 방법으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원하지 주관적인 느낌이 가득한 수업을 하는 사람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수업 내용과 학제도 문제이지만 어떤 기관에서 일했는지도 문제일 것이다. 사설 학원에 가까운 성격의 기관에서 일했다면 경력을 인정받기 힘들다. 과외 형식도 마찬가지이다. 이 역시 그 선생님의 자질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어떻게 수업하는지 가늠이 안 되는 것뿐이다. 새로운 어학당에 들어갈 때마다 시강을 해야 하는 것은 모든 선생님들이 부담되고 짜증이 나는 부분이지만 한 편으로는 스타일이 너무 튀는 선생님은 배제 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 




모뗀 버릇


닉네임을 앞세워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이런 무대에서조차 수위가 너무 세서 글로 담아내기 어려운 빌런들에 대해서 많이 만나보고 들어도 봤다. 특히 태국에서는 그랬다. 선생님이라고 온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만약 해외 파견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러 왔다면 하나만 기억하자. 뭔짓을 하더라도 수업만은 제대로 하자. 


내가 있던 곳은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내 이전에 거쳐 간 몇 분의 선생님, 이제와서는 선생님 소리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인간들은 수업도 제대로 안 하고 놀러다니기 바빴다고 한다. 생각해보라. 상대는 무려 한국어 '전공'으로 들어 온 애들인데, 전공 '교수' 자격으로 온 사람들이 수업을 안 한다. 미친 거다. 포지션과 명칭이 '교수'라서 본인들이 정말로 교수가 것마냥 뭐라도 알고 이것저것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평가도 지멋대로 했다. 학생들은 재수없이 맞은 것이다. 


태국처럼 분위기가 여유로운 나라에서 일하다가 들어 온 사람들은 국내에서 일을 해도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물론 나도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 과목의 교육과정을 짜고 교육 내용을 구성하다가 타이트하게 짜인 국내 어학당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매 시간마다 시간에 쫓기는 아마추어 랩퍼가 된 느낌이었다. 


말의 습관도 마찬가지이다. 태국에서 수업할 때도 100% 한국어로 수업을 했고 그래야만 했지만, 학생들과 친해지기 위해 태국어를 농담용으로 사용했고, 조금 어려운 개념을 설명할 때 '덧붙여서' 사용하곤 했다. 극도로 제한은 했지만 이것도 습관으로 남았는지 국내에 들어와서 수업할 때도 간혹 "꺼크~(ก็คือ~)", "퍼와~(เพราะว่า~)"가 튀어나오거나 나올 뻔한 경험이 있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어떤 선생님은 특정 국가에 오래 있다 보니 그 국가 언어로 대화할 때 사용하는 추임새, 만약 일본이라면 '에~ (え~)↗'와 같은 것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고 하셨다. 사소하지만 선생님으로서는 지양해야 하는 모뗀 습관이 생겨버린 것이다.  




내가 알던 학생이 아님


해외 파견을 가면 특수한 상황 아닌 이상, 다들 그 나라 사람이다. 당연한 얘기다. 중요한 건 내가 이방인이니까 학습자들은 부담감이 적다. 나같은 경우는 학생들도 그렇고 태국 사람들이 대부분 호의적이어서 다행이었지만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거나 자국민주의가 강한 나라, 또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교실에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해외에서 한국어교육을 하면 모두 같은 나라 사람이고, 관심사도 비슷하기 때문에 수업할 때 기준을 잡기가 오히려 편한 구석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수업을 하다가 국내에 들어오면 아주 많이 달라진 교실 환경에 당황하게 된다. 일단 학생들은 한국에 온 이방인이고, 같은 교실에 있는 학생들도 다 이방인이니까 움츠려 있는 경우가 많다. 좋은 점은 유학생 입장이다 보니 해외 현지에 있는 학생들보다는 학습 성과가 좋은 편이다. 


당황스러운 점은 다양한 국가의 학생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말을 두세 배는 더 조심해야 한다. 문화도 고려해야 한다. 수업하다가 신경쇠약이 올 것 같다. 만약 어떤 나라의 사람에 대해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도 싹 잊혀질 수도 있다. 의외로 좋은 면을 발견하거나 의외로 뭣같은 경우도 접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국내 어학당 수업은 더욱 혼돈의 도가니탕이다. 


단일 국가 학습자 교실 환경이 아니니까 학습자의 모국어에 의존할 수도 없다. 좋든 싫든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정하던 교실이 아니다. 어학당의 교안에 맞게 정해진대로만 수업해야 하기에 해외부터 시작한 나같은 사람들은 그래서 타이트하고 빡세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쓰면서도 내 자신을 스스로 까는 느낌이 들어 움찔움찔했지만, 나는 요즘 들어 선배들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해 주셨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심각하게 늘어 놓았지만 결국에는 국내에서도 안 죽고 잘 버티면서 강의를 이어나가고 있다. 첫 직장을 해외에서 잡으면 조금 힘들 뿐이지 그 이후가 '없다'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도 스스로 못된 습관은 없는지, 당황하지 않을 멘탈은 잘 차려져 있는지는 자가 확인을 해 보도록 하자. 해외 경력은 인정 받기가 쉬운 편은 아니니까 돌아오기 전에 서류를 잘 챙겨 오는 것도 잊으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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