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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Jun 30. 2024

어제 복기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을 왜 그런 말을 해서

알람.


토요일에 약속이 있어서 하루만 걸어 놓으면 되는 것을 주말로 해 놓으니 일요일 오전에 눈을 뜨면 어제 맞췄던 알람 소리가 내 귀를 찌르고 찌른다. 


요즘은 보통 토요일에 약속을 잡고 일요일은 뻗어 자는 루틴인데, 최근 토요일에 만난 상대들은 대부분 유쾌하고 재미있는 모임이었다. 


그럼 뭐하나, 나는 매번 이런 만남 때마다 말실수를 하고 마는 것이다. 아, 적당히 깝쳤어야지. 내가 괜히 인생 모토가 '나대지 말자.'가 아니다. 가만 놔 두면 뭐라도 된 것처럼 자꾸 나댐의 본성이 머리를 들이밀고 올라오기 때문에 스스로 제한을 두는 것이다. 크크큭 흑염룡.


이렇게 알람이 같은 시간에 울리면 망쳐버린 어제 하루가 복기된다. 


2시에 약속이었고, 게으름 피우고 잔뜩 밍기적거리면서 알림을 두어 번 끄기를 반복하다 보면 11시에서 11시 30분까지 시간이 날아갔더랬다. 그리고 눈을 부비면서 약속 장소를 다시 확인하고, 씻고 나오면 5분에서 10분 정도는 지각할 것 같은 느낌이다. 


좀 빨리 걸으면 되겠지. 


뛰면 안 된다. 나같은 체질은 가만히만 있어도 이런 날씨에 땀을 옴팡지게 쏟아내기 때문에 뛸 수는 없다. 만약 뛰면 장마가 벌써 시작된 곳에서 우산 없이 거닐다 온 줄 알 것이다. 


그렇게 나는 수 분을 지각하고, 밥을 먹다가 A라는 헛소리를 하고, 카페에서는 B라는 푸념을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는다. 


소소한 디테일이 머릿속을 휘집고 지나가면 실수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도 '아 왜 그랬지.'하고 만다. 삼심 대로서 노련하지 못했구나. 이것이 내 결론이다. 


실수 투성이였던 이십 대에 비해서 삼심 대에 접어들자 좀처럼 동요도 하지도 않고, 실수도 적다. 다만, 요즘은 그 적디 적은 실수 하나가 자꾸 거슬린다. 이십 대 때의 거하게 저질러 버렸던 몇몇 실수에 비하면 이게 실수인가 싶기도 한 작은 것들은 완벽하지 못했던 나의 동상에 티끌 먼지가 되어, 멀리서는 보이지 않아도 가까이서 보면 '아, 청소 안 했네, 관리 안 했네.'흠을 잡힐 만한 귀찮은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이 나이가 되니 큰일에는 대범해지면서도 사소한 것에 짜증이 팍팍 나게 된다. 


마치 스트레스를 풀려고 게임을 하는데, 패드립 먹고 더욱 빡쳐하는 아이러니와도 같나 싶다. 주말에는 일과는 상관 없는 사람들을 만나서 가볍게 이야기나 즐기는데, 간혹 이렇게 만족스럽지 못한 작은 것 하나가 한 주의 마무리를 떫떠름하게 만든다. 하,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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