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굶찮니 Jul 06. 2024

중간은 없다

씁쓸한 군대이야기

12사단 훈련병 사건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뉴스를 대충 봤을 때는 '완전군장이 뭐가 힘든가' 싶었다. 물론 군 시절 상상할 수 있는 최고 강도의 얼차려이지만 군장을 메고 뛰는 것정도야 뭐.... 뭐? 뛴다고?


나는 훈련병 시절 그나마 제일 할 만하다고 느낀 훈련은 행군이었다. 그냥 걷기만 하면 되니까. 어깨는 가만히 있어서 깨질듯이 아프기는 하지만 온갖 망상으로 사회에 있을 때 한 재미있던 것들을 복기하면서, 때로는 마음 속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고통을 잊으려 했다. 걷는 방법에는 자신이 있었는지 나는 그 흔한 물집도 안 잡히고 잘만 걸었다. 


반대로 말하면 완전군장 행군은 수많은 부상자를 만들어내는 극악의 훈련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발이 팅팅 불거나 살이 벗겨져 나가기도 한다. 어깨와 허리 무릎이 갈려나가기도 한다. 걸으면서 조는 것을 사람들이 잘 안 믿던데, 지하철에서 서서 조는 것의 훨씬 상위버전으로 실제로도 가능한 현상이다. 이게 참 위험한 게 걷다가 졸면 행군 도중에 도랑이나 언덕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순식간에 골로 갈 수도 있다. 


나도 자대에 와서 완전군장 얼차려를 받아본 적이 있다. 어떤 병장 선임이 생일빵을 맞다가 허리를 삐끗하게 되었는데, 이게 과하다고 느낀 신임 중대장이 부대 전체에 얼차려를 준 것이다. 물론 뛰진 않았다. 하지만 '완전군장' 이 네음절만으로도 병사들의 스트레스를 단숨에 올릴 수 있는 실로 마법 주문 같은 효과 때문에 육체적 타격과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굉장한 타격을 주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다룬 것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저게 뭐가 힘드냐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에 뉴스를 대충 본 것처럼 일순의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자기들 현역 때를 생각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는 들었는데, 글쎄다. 


설사 저 얼차려 강도가 별 거 아니라고 해도 실제로 시켰다는 것이 경악 포인트다. 적어도 내가 군생활을 하던 시절에 군대는, 그리고 요즘 군대도 그렇고, 사람이 다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정확히 말하면 사고가 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해당 지휘관이 진급 욕심이 있다면 더욱 그렇고, 진급 욕심이 없는 비사관학교 출신이면 애초에 빡세게 부대를 굴리지도 않는다. 장교들이나 부사관들도 마찬가지다. 괜한 문제 만들고 싶지 않은 곳이 군대라는 곳이다. 온갖 더러운 꼴은 다 나와도 결과적으로 어떤 부상이 생기는 상황을 극도로 싫어한다. 아프면 미리 빼주고 사고 안 터지게 하는 것이 최대 사명으로 생각한다. 실전 같은 훈련? 뭐, 그것도 부대가 무탈하게 조용히 돌아갈 때나 통용되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는 이번 얼차려 지시가 참으로 납득이 안 된다는 것이다. 문제가 될 만한 지시라는 것은 군짬밥 먹은 사람이라면 다 알 만한 상황일 텐데. 그렇다면 그렇게까지 얼차려를 지시할 수 있는 이유는 몇 가지 없다.


1. 정말 골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본인의 진급과 군생활 모두 걸고 원기옥을 날렸다. 

2. 골로 보내도 여태 문제도 없었고, 문제가 생겨도 금방 수습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1번은 원한 관계일 때나 생각할 수 있겠는데 이제 갓 들어온 일 주일차 훈련병들과 안면이 있을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될까 싶다. 

2번도 참 말이 안 되는 것이 그렇게 자신이 있었나. 아니면 군대를 너무 만만히 본 것인가. 


이번 사건에서는 열받는 포인트가 한두 개는 아니지만 정말 어이가 없고 군대스럽다고 느껴지는 포인트가 '얼차려 전면 금지'조치이다. 




어차피 전역했으니까 얼차려 왜 금지시키냐? 꼰대 아니냐? 이렇게 생각한다면 할 말이 없다. 나는 누구처럼 일면식도 없는 젊은 사람들을 괴롭히려는 악취미적인 사고는 안 한다. 


군대는 중간이 없다. 사고가 나거나 부상자가 나와서 부대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막상 중대한 일이 터지면 조치한다는 것이 '전면 금지'이다. 


군 시절 옆 부대에서 새벽에 위병초소 근무가 끝난 인원 두 명이 라면을 먹다가 실수로 불을 낸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어차피 정수기 뜨거운 물을 받아먹으면 되는 걸 왜 불을 냈는지는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은 안 난다. 아마 버너같은 것을 썼을 것이다. 


그러면 버너 사용을 하지 말라고 하든지, 관련 주의 사항을 전파하면 그만일 것이다. 그런데 군대는 중간이 없다. 그다음날 보급관님의 지시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야간 근무 이후에 라면 취식 금지'.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 이 글을 쓰는 와중에 잠깐 헛웃음이 나왔다. 


이 금식 조치는 한두 달을 유지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말이 한두 달이지 체감 상으로는 서너 달 이상 라면 구경을 못했다. 추운 겨울밤 근무 끝나고 돌아오면 잠깐 선후임과 담소 나누면서 먹는 라면 취식이 참 꿀이었는데. 알고 보니 불도 크게 난 것도 아니고 라면 봉지에 살짝 불이 붙은 정도였다고 한다. 더군다나 계곡 하나 너머에 있는 부대에서 난 일로 우리 전 부대원은 강제 다이어트를 하고 말았다. 


 




군대가 참 융통성이 없는 집단이라는 것은 말해 뭐하겠나 싶지만 정말 높은 확률로 중간이 없는 결정을 할 때면 한숨만 터져나온다. 나름 원천봉쇄를 하겠다는 취지지만 이게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신병교육대에서 얼차려를 없애면 이 전국 각지에서 온 망나니들을 어떻게 통제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군대에는 참 별의별 인간들이 다 온다. 어떤 한 장교가 잘못된 지시를 했으면 그 사람에게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옳겠다. 원래 있던 얼차려 지시까지 없애버리면 군인을 만들어야할 조교과 교관들은 어떻게 이들을 통제할까.


또 한편으로는 해당 장교를 벌하면 군의 지휘체계가 무너지므로 처벌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는데, 이건 또 무슨 이상한 이야기인가 싶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군대에는 중간이 없다. 아무리 상식이 안 통하는 집단이어도 중요한 순간에는 상식이 적용되어야 하겠다. 가뜩이나 오물풍선 한창 날아오는 중인데 우리끼리 싸우고 있어 봤자 이득도, 올바른 결과도 도출 못한다. 



작가의 이전글 한국어 전달자가 아닌 한국어 교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