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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굶찮니 Aug 20. 2024

이게 '입추'라면 가을도 이름을 바꿔야지요

정말 말도 안 되는 날씨

일요일부터 월요일까지 Ctrl+C/V를 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밤에는 25~26도, 낮에는 34~36도. 어떤 곳은 40도까지 오를 정도로 더웠던 날도 있다고 하는데 2018년 기후 이상으로 미친미친 날씨를 겪은 이래로 올해가 제일 지독한 여름으로 기억될 것 같다. 2018년 여름 당시에는 뙤약볕에 정말 햇볕이 '아프다'라고 느낄 정도였다. 


요즘은 아픈 햇빛보다도 습하고 찌는 듯한 날씨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이 특징이겠다. 분명히 아침인데도 한증막에 들어간 것처럼 더운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이야.... 곳곳에 쑥주머니만 갖다 놓으면 입장료 받아도 되겠는걸. 남들보다 두 배는 땀이 많은 나는 동남아 날씨가 되어버린 미친미친 한국 날씨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태국에 도착했을 때 돈므앙 공항에서 밖으로 나설 때 느낌을 한국에서 느끼다니. 4D 태국 체험인가.


학기말로 슬슬 바빠지던 어느 날, 어떤 선생님이 '오늘이 입추래요.'라고 말하자 사무실에 있는 선생님들은 마치 뭔가 들으면 안 되는 말을 들은 것처럼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해리포터에서 '볼트모트'이름을 육성으로 들은 것 같은 의외성과 공포감. 아니, 오늘 같은 날씨가 입추면 이제 가을은 없는 거죠. 내가 말했다.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나는 딱히 어딘가 놀러 가지 않고 있다. 이번 휴가는 조금 길었지만 나는 다짐했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 꼼짝달싹 안 할 테다!' 이렇게 잠깐 나와서 글을 쓰는 데까지는 그야말로 큰 용기와 응원이 필요했다(아무도 응원은 해주지 않았다). 누에처럼 침대에서 찬바람 찜질을 받아가며 필사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기 때문에 살은 필연적으로 찔 수밖에 없었지만 생존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 동물들이 동면(冬眠)에 드는 것처럼 나는 휴가가 시작되자마자 하면(夏眠)에 드는 것이다. 그래! 하면 된다! 나는 온종일 뒹굴 수 있어. 할 수 있다.


나는 이 미칠 듯한 날씨에도 밖에서 싸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비꼬는 거 아니다.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태국에서 거주해 본 사람으로서 정말 부끄러운 발언이지만 정말 더운 날씨가 체질인 사람을 존경한다. 물론 나도 잘 버티는 타입이지만 땀 때문에 미관상 안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 있을 때는 주로 스쿠터로 이동했기 때문에 달리는 동안에는 그리 덥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뚜벅이로 살아가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뙤약볕에도 고개 숙이지 않고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용기. 택시를 타고 싶은 욕망을 눌러담은 채 환승하는 곳으로 담담하게 걸어가는 굳은 심지. 이 모든 것이 질린다면 요즘 부쩍 늘어난 외국인들을 보며 같이 여행한다는 자기 암시로 견뎌내는 정신력. 정말 써 놓고도 더위 먹은 사람처럼 헛소리를 잘 써 놓은 것 같아 뿌듯하다. 


오늘 저녁부터는 태풍의 영향권이라고 하는데 요즘 날씨는 정석을 따라가지 않는다. 마치 힙합하는 사람들 같다. 웬만해서는 콘셉트를 안 바꾸고 자기 할 것만 같은 힙합 아티스트들. 태풍이 지나가면 기온이 떨어져야 할 텐데 분위기상 계속 더울 것 같다. 한반도 더위는 계속해서 '비트 주세요'하면서 베이스 드럼 붐뱁을 탈 준비가 되어 있다. 하, 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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