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의 장례식장에서 읽을 내 젊은 날의 유서
26살 여름에 일원동 먹자골목(이제는 '일원동 맛의 거리'로 명칭이 바뀌었다)을 걷다가, 오랜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 있어요.
"가장 행복한 순간에 팍 죽어버리고 싶어. 그리고 그 죽음은 네가 나를 덜 사랑해서도 아니고, 내가 날 덜 사랑해서도 아니고, 내 연애가 온전치 못해서도 아니고, 내가 겪은 실패나 슬픔 때문에도 아니야. 아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죽음이었으면 해."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아, 얘가 고시 공부가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가? 행복하지 않나?'하는 생각에 덜컹했죠. 저 옆집에서 익어가는 갈비 아래에 깔려서, 갈비를 익혀버리고 있는 숯불 속으로 추락해버리는 기분이랄까. 손발 끝이 저리고 어쩌다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물을 수조차 없었어요.
지금 당신이 느끼고 있을 감정도 비슷하겠거니 예상해봅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했고 또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내 장례식이 애달프고 슬프게 느껴질 뿐이지, 불행하지는 않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당신들이 온전한 사고를 하고 있을 때 내 죽음이 있어, 당신들이 내 죽음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귀한 시간을 내어 이곳까지 걸음을 해주어 고마워요. 나와의 추억을 조금 더 멋지게 구체적으로 회상해주기를 부탁해요. 당신 곁에서 훌쩍이고 있을 내 가족과 친구들이 서로 그 기억을 공유하며 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는지 나누었으면 합니다. 이를테면 타이머를 켜두고 대결을 하던 때나, 설거지하기 싫어서 가위바위보에 목숨을 걸었을 때나, 조용한 풀 길을 걸으며 산책하다가 배고파서 치킨을 먹으러 갔던 때 말이에요.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때에는 바닷가로 훌쩍 가버리곤 했고, 색이 선명하고 아기자기한 꽃을 좋아하고, 청소를 귀찮아했다는 뭐 이런 것들이요. 내 몸이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신들 기억 속의 나조차 없어져버리는 건 좀 많이 속상할 것 같거든요.
아 참, 내 방 여기저기에 10대 후반부터 써왔던 일기장과 다이어리가 흩어져있을 거예요. 아무도 읽지 않고 폐기해 주었으면 해요. 반드시. 알겠죠?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돈은 엄마 아빠, 민우,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큰 침대와 식탁을 사는 데에 쓰였으면 좋겠어요. 자기 전에 가만히 누워있을 때 센티해져서 내 생각이 많이 날 테니까 함께 잔다고 생각해 주세요. 배가 고플 때는 가끔 함께 준비했던 식사 시간이 그리울 테니까. 맛난 음식에 반응을 잘 했던 내가 가끔 건너편 자리에 앉아 같이 식사를 한다고 상상해주세요.
내 사랑들,
잘 자고 잘 먹고 건강히 지내다가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