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나를 가장 크게 바꾼 한 가지 사건은 무엇인가요?"
Q. "나를 가장 크게 바꾼 한 가지 사건은 무엇인가요?"
Q. "그리고 왜 그 순간이 특별했나요?"
인간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산다. 그 선택은 자유지만 결과는 책임이다. 그래서 선택은 어려운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 아빠가 어린 나에게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말씀하셨다. "연하야, 오빠가 도시로 고등학교를 가고 싶어 하는구나. 우리 형편에 어려운 일이지만, 저렇게 원하니 보내주고 싶다. 네가 양보해 주면 안 되겠니? 만약 1년 쉬고 집안일을 도우면 고등학교까지는 꼭 보내줄게. 하지만 올해 바로 중학교에 가면 그것으로 끝이다."
고등학교까지 보내주신다는 말씀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고민도 없이 바로 1년을 쉬겠다고 말씀드렸다.
결국 친구들은 모두 중학교에 진학했다. 나는 홀로 구멍가게를 보면서 농사일과 집안 살림을 하며 어른 몫만큼 일을 했다. 생각보다 마음이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무더위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귀가하던 한 여자애가 담뱃잎을 엮고 있는 나를 손가락질하며 무심코 말했다. "저 애도 우리 학년인데 저런 일 하고 있어"라고 했다. 그 말은 곧바로 날아와서 가슴에 커다란 화살처럼 박혔다.
그 아이는 의도 없이 던진 말이었을 것이다. 그날 밤 많이도 울었다. 어렸지만 가난이 주는, 무시당한 마음에 대한 서러움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그 아이의 말은 계속해서 내 마음속에 들어와 제 집인 양 나가지를 않고 나를 찔러댔다. 그 말을 한 아이에 대한 미운 감정보다 당장 학교를 가지 못하는 현실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내게는 내년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 무렵 시골집에는 공부하고 싶어도 집에 책 한 권 없었고, 책을 빌릴 곳도, 살 곳도 없었다. 첫 책은 초등학교 3, 4학년 때 서울 사는 친척 오빠가 가져다준 세로로 된 삼국지였었다. 그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수백 번 읽었다. 거기에서 제일 마음에 와닿은 사람은 제갈공명이었다. 공부를 해서 능력이 되면 시골 촌구석에까지 와서 삼고초려까지 하는구나. 자기 능력을 쌓으면 무시받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제갈공명처럼 나도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늘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그 아이의 손가락질은 결국 내게 중학교에 가서 교과서를 받으면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사건이 되었다.
중학교는 한 시간씩 걸어서 통학을 했다. 집에 오면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공부 시간 확보를 먼저 했다. 책을 보며 걸을 수 있는 왕복 2시간과 모두가 잠든 밤 10시 이후의 2~3시간이 온전한 내 공부 시간이었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온갖 일을 도우면서도 어떻게든 공부의 끈을 놓지 않으려 무던히 애썼다.
중학교 1학년은 500명이 넘었었다. 학교에서 3월 말 고사 시험 후, 벽에 붙은 성적 우수자 50등까지의 명단을 보았다. 나는 그때 100등 안에도 들지 못했었다. '반드시 내 이름도 저기에 올리겠다'라고 굳게 다짐했다. 그 순간이 두 번째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나는 중간고사부터 50등 안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고, 성적은 꾸준히 올라 3학년 때는 늘 전교 10등 안에 들었다.
성적이 오르자 주변의 시선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어릴 때는 그 인정받는 느낌이 참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시받기 싫어서 악착같이 매달렸던 공부가 어느새 진심으로 재미있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때 깨달은 배움의 즐거움, 그리고 목표를 세우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성취감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어떤 일이든 먼저 사전 공부를 하고 임하게 되었다. 삼국지의 교훈 중 하나가 똑같은 일도 계책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똑같은 일도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까 연구한다. 연구하다 보면 늘 다르다. 그 과정이 참 즐겁고 재미있다.
에디슨이 1003번의 실험 끝에 “나는 전구가 켜지지 않는 1003가지 방법을 안다”라고 했다. 나 역시 그러했다. 안 되는 일은 늘 책과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고민할 때마다 좀 더 나은 방법이 생겼다. 이렇듯 내게는 일의 과정만이 있는 인생이었다. 어린 시절 그 손가락질에서 시작된 마음속 결기가 공부로 이어져 50대 초반까지 삶을 이끌었다. 공부를 통한 일의 해결은 늘 재미와 성취감을 불러일으켰다.
세월이 흐르며 독서나 강의는 물론, 유튜브나 사람과의 소통 속에서도 배움을 찾는 등 그 방법 또한 다양해졌다. 지식이 넘쳐나는 현대를 산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다. 이제는 한의학, 육아, 인간관계에서부터 요리나 정리 정돈에 이르기까지,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을 연구하고 적용할 수 있는 자료들이 쉽고 풍성해졌다. 삶을 살다 보면 이해 안 되고 해결되지 않는 수많은 것들이 발생한다. 그때마다 적용할 수 있는 쉽고 풍성한 자료 덕분에 고민과 납득이 더 빠르고 쉬워졌다. 해결이 되지 않더라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왜 그런지 납득되면 마음이 편해진다.
특히 요즘은 궁금한 점을 즉시 해결해 주는 AI 덕분에 배움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공부와 실행밖에 몰랐던 내가 직접 음악 작곡을 하고, 영상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새 무시당하던 어린아이가 아닌 세상을 창조하는 아티스트가 된 기분마저 든다. 참 감사한 세상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