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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봄봄 Jul 06. 2021

엄마가 그렇게 빨리 보고싶었니

우리 둘째는 결국 태어난 지 103일, 교정일 38일에 기관절개술을 했다

우리 둘째는 결국 태어난 지 103일, 교정일 38일에 기관절개술을 했다.     


2020년 12월 31일 둘째 봄봄이가 태어났다.

임신 30주 5일 만에 1602g으로 태어나버렸다.      


첫째는 2016년생으로 41주에 유도 분만하여 3.6kg으로 건강하게 태어나서 지금껏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래서 조산이란 단어는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단어였고 이른둥이란 말도 와닿지 않았다. 3월 6일이 예정일이라 태명도 봄봄이라 지었었다.     


임신 30주 3일째 되는 2020년 12월 29일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모처럼 생리통을 겪는 느낌이었고, 배 뭉침도 있는 거 같았다.      

화장실을 가보니 갈색혈도 보였다. 그런데 바로 병원을 갈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난 2012년도에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심장수술을 한 적이 있어서 첫째도 둘째도 로컬 산부인과를 다니다가 임신 중기부터는 내 기록이 있는 건국대학교병원 산부인과를 다니고 있었다. 대학병원은 교수님 스케줄도 맞춰야 하고 또 그 전날 이미 정기검진이어서 휴가를 내고 병원을 다녀온 터라 번거롭기도 하고 또 조퇴하기에는 회사에도 눈치가 보였다.      


사실 임신 중기에도 이런 증상이 있어서 깜짝 놀라 조퇴하고 얼른 택시를 타고 중간에서 신랑을 만나 부랴부랴 다니던 로컬 산부인과에 간 적이 있었는데 예약 없이 가니 너무 오래 기다렸고, 그렇게 기다리다 진료를 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니 다행이긴 했지만 괜히 신랑한테 미안하고 예민한 임산부 같고 임산부 티 내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괜찮겠지 하고 그냥 퇴근시간에 퇴근을 하였다. 그런데 퇴근하는 길에 지하철에서도 배가 살살 아팠다. 평소에는 노약자석에 간혹 자리가 있더라도 앉지 않았었는데 그날은 노약자석에 앉아서 앞에 할아버지가 눈치를 주어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있었다. 잘 때도 배가 계속 아팠다.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 다음날인 12월 30일 아침, 회사에는 조금 늦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신랑이랑 로컬 병원으로 갔다.      


병원 오픈 시간에 맞춰갔지만 역시나 사람은 많았고 오래 기다렸다. '신랑 회사도 가야 하는데... 회사에 눈치 보이는데... 기다리기 짜증 나는데..., 괜찮을 거 같은데...'     

1시간 정도 기다리다 결국 참다못해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냐며 따지듯 물어보니 예약을 안 하고 오면 어쩔 수 없다는 말에 짜증이 팍 났다. 그래서 그냥 가겠다고 말하고 엘리베이터를 누르는 순간 초음파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이미 짜증이 난 상태라 가려고 했지만 신랑이 여기까지 왔으니 보고 가자 하여 마지못해 초음파실로 들어갔다.      


초음파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질문을 계속하다가 바로 진료를 봐야 한다며 진료 선생님한테 가라고 하더니 또 진료 선생님은 아기가 곧 나올 거 같다며 ‘자궁경부무력증’인거 같다며 빨리 다니던 대학병원으로 가라 하였다. 에? 뭐야? 신랑이랑 나는 멍해진 채 건국대학교병원에 전화해 상황설명을 하였다. 교수님 진료는 오후 1시부터이니 1시에 오라 하기에, 또 그렇게 급한 건 아닌 건가 보다 생각하며 난 집에 가서 점심밥을 먹고 신랑은 잠깐 회사에 갔다가 시간 맞춰 집에서 출발하였다. 병원에서는 1시가 되자마자 기다리지 않고 진료를 보게 해주었는데 교수님은 이틀 전에도 괜찮았는데 하시며.. 초음파를 먼저 보자 하셨고, 초음파실에서 초음파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시다가 교수님을 급하게 부르더니 교수님이 빨리 입원하자고 애가 곧 나올 거 같다 하셨다. 최대한 날짜를 끌어보고 혹시나 지금나오더라도 초음파상 아기가 1500g은 되니까 문제없을 거라고 하셨다.      


우선 응급실로 가서 코로나 검사받고 기다리다가 결과 나오면 분만실로 바로 가서 입원하라고 하셨다.      

정신없이 응급실로 가서 코로나 검사받고 자리에 누워 있으니 그때부터 내진과 각종 검사가 시작되었는데 무슨 검사인지도 모르게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때부터 무서워졌다.      


코로나 검사 결과는 1시간 반 만에 ‘음성’으로 나왔고 누워있는 상태 그대로 바로 분만실로 옮겨졌다. 이제 이 상태로 애가 나올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며 하루가 될지 한 달이 될지 두 달이 될지 모르지만 이렇게 누워 있어야 한다고 했다. 네? 그럼 첫째는? 그럼 회사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럴 바에야 차라리 아기가 빨리 나왔으면 했다.      


지금 와서 보니 정말 무식하고 멍청한 생각이었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 너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급하게 자궁수축 억제제를 맞았으나 그마저도 얼마 못 맞고 중단하였다. 이미 진통은 시작되었고 자궁은 4cm 열려있어 분만은 진행되었다.  폐성숙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두 번은 맞는 걸 목표로 하자고.. (그러나 결국 한 번밖에 못 맞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무통주사는 맞지도 못하였다. 아 진통.. 첫째 때는 무통주사도 맞고 진통도 짧게 해서 순간 잊고 있었다. 이게 진통이었지.. 생으로 12시간을 진통을 겪었다. 빠르게 진행되는듯했으나 6cm 열린 뒤에는 진행이 더뎠다. 30일 날 나올 줄 알았는데 31일 새벽에 태어났다.       


다행히 아기도 나도 건강하였다. 아기가 빨리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해서 얼굴만 잠깐 보여줬는데 그나마도 간호사 선생님 팔에 가려서 제대로 보지도 못하였다. 그렇게 아기 먼저 분만실에서 나갔다. 신랑도 아기가 나갈 때 전화 통화를 하고 있어서 제대로 못 보고 사진만 하나 남겼다고 했다.      


그때는 미쳐 몰랐다. 코로나19로 인에서 NICU는 면회가 안된다는 사실을...핸드폰을 건네며 사진 좀 찍어주면 안 되냐고 했더니 그것도 안된단다.      

그렇게 둘째 봄봄이는 NICU로 나는 병실로 옮겨졌다. 그때부터 봄봄이를 NICU에서 퇴원하는 날까지 직접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둘째는 2020년 12월 31일 6시33분 1602g 여자아기로 우리 가족에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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