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구슬 Jun 06. 2023

출산..12시간의 고행

아픈 만큼 힘을 줘야 고통이 끝나는 잔인함..

38주 5일 일요일


새벽 4시

배가 싸한 기분에 저절로 잠에서 깼다.

뭔가 느낌이 이상해 화장실로 갔는데 속옷이 젖어있었다.

양수임을 직감하고, 그동안 인터넷 출산후기들을 보고 병원에서 양수인지 확인하기 위해 생리대 확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바로 생리대를 찼다.

솔직히 놀란 마음보다는 출산으로 드디어 막달 고생이 끝난다는 기쁨이 더 컸던 것 같다.

부랴부랴 신랑 깨우고 출산가방을 챙겼다. 몸을 움직이니 양수가 더 많이 새어 나왔다;;

신랑은 응급성황이라는 말에도 비몽사몽.. 임신출산과정에 대한 지식이 없는 건지 양수가 샌다는 게 뭔지도 모르는가 보다.. 재촉하여 급히 차 시동을 켜고, 다니던 산부인과 응급실 번호로 연락하고 출발했다.


새벽 5시~6시

병원이 가까이에 있어 금방 도착했고, 분만대기실 침대 안내받고 분만복으로 갈아입었다. 간호사가 생리대를 보여달라 하고 확인하더니 양수가 맞다 내진을 했는데 1.5센티 열려있고 양막이 없다고 한다. 어디로 간 건지..

막달감사 때 내진을 하지 않는 담당의여서 내진이 처음이었다. 많이 아프다고 해서 긴장했는데 검사과정이 아픈 게 아니고, 검사 후 없던 진통이 살짝 심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후 항생제 알레르기검사, 관장을 한 후 유도분만 촉진제를 맞았다. 내진, 관장, 제모가 3대 굴욕이라고 하는데 걱정했던 것보다 자연스럽게? 진행되어 할 만했다.

유도분만 촉진제는 적은 양을 투여했는데도 진행이 잘 되고 있다고 해서 안심했다. 통증은 수축 시 살짝 아픈 정도였다.


새벽 7시

진통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참을 만했다.

분만대기실 침대마다 커튼으로 둘러쳐있어서 심리적으로 안정이 됐는데, 옆에서 신랑이 계속 큰소리로 얘기해서 신경에 거슬렸다. 옆 침대에도 산모가 있으니 조용히 얘기하라고 계속 말했는도 목소리를 안 줄였다. 하~.. 간호사가 들어와 모니터로 수축정도를 체크하더니 앞으로 많이 아파야겠다고 얘기해 주고 간다;;


오전 8시~10시

내진을 했는데 2센티 열렸고, 분만실로 이동했다. 가족분만실이지만 코로나로 신랑만 동행가능했다.  분만기실이서는 진통이 심하지는 않았는데 분만실 올라오고 진통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자궁수치가 올라갈 때마다 진통이 세졌다. 통증이 심할 때마다 온몸에 힘을 주며 견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호흡을 길게 하여 근육을 이완시켜야 아기가 아래로 잘 내려와 진행이 빠르다고 한다. 그 사실을 모르고 반대로 온몸에 힘을 주었으니 진행이 느렸던 것 같다.

촉진제 효과는 좋아서 간호사들이 순조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문제는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해졌다. 불과 3센티밖에 안 열렸는데,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극심한 통증과 함께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간호사에게 비닐봉지 가져 다 달라고 하여 토했다. 왜 토하는지 물어보니 간혹 통증이 심해서 토하는 산모들이 있다고 한다;;

무통주사는 4센티가 열려야 놔준다고 다. 그동안은 어쩔 수 없이 생으로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소변이 마려워 일어나서 화장실 갔는데 수축 시 진통이 누워있을 때보다 덜한 느낌이었다. 계속 누워있지만 말고 서 있는 것이 통증이 덜하다고 유튜브에서 분명히 봤는데, 그럼에도 양수가 터진 상태이고, 배에 장치를 한 상태라 누워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오전 11시

참는데 한계에 다달했다. 허리통증이 너무 심했고, 그나마 누웠을 때보다 앉아있을 때 고통이 덜해서 앉아있었는데, 간호사가 아기에게 압력이 가해져서 힘들어한다고 바로 누으라고 한다;;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 신랑에게 간호사내진 호출해 달라고 했고 신랑은 아직 아니라고 조금만 더 참으라 한다. 하~ xxx.. 참다못해 내가 벨을 누르겠다고 일어나니 그제야 간호사호출을 했고 내진하니 드디어 4센티가 열려 무통천국을 맛보게 되었다.

언니는 막달 검진으로 병원에 갔는데,  통증이 없었는데 이미 3센티가 열려있었다고 한다. 사람마다 통증의 강도가 다 다른 것 같다.

간호사가 수축 올 때마다 힘주기 연습하라고 해서 배에 힘을 는데, 아기를 아래쪽으로 밀어내는 느낌으로 힘을 줘야 하는데 연습할 땐 잘 몰랐다.


12시

무통천국으로 힘주기연습을 잠시 뒤로 하고  잠을 잤다. 수축 오는 느낌이 들어도 통증이 없으니 신기했는데, 아기는 배속에서 힘들겠지 하고 생각하니 혼자만 편한 게 미안하기도 했다.

무통주사 성분은 요즘 미국에서 좀비마약으로 문제가 커진 펜타닐 마약성 진통제다. 그 당시에는  이 성분인 걸 몰랐는데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무통주사를 선택할 것이다.

허리통증 고통이 너무 극심하여 무통주사 없이는 애를 못 낳았을 것 같다.


오후 1시~4시

1시에 자궁문이 다 열려서 본격적으로 힘주기를 시작했다.

힘주기를 시작하면 무통주사를 끄는데 약효는 1~2시간 정도 간다고 한다. 그 사이에 애를 낳으면 고통 없이 낳을 수 있는데 난 3시간이 걸려서 중간에 진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지금생각해 보면 무통주사 맞기 전보다 허리통증이 약는데도 그 당시에는 그것도 너무 힘들어서 간호사에게 제왕절개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간호사는 사무적인 말투로 가 이미 아래로 내려와서 수술하려면 다시 올려야 한단다;;

이제 힘을 주어 애를 낳을 수밖에 없다. 수축간격이 짧아 진통으로 배는 계속 아프지, 온 힘을 끌어모아  배에  줘야지, 힘이 들어 쉬고 싶은데 쉴 틈 없이 진통이 바로 와서 또 힘을 줘야 하지,  렇다고 힘을 안 주면 애가 안 나와 진통이 계속될 걸 알고 있으니,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간호사는 아프면 아픈 만큼 힘을 주면 된단다. 정말 맞는 말지만, 동시에 너무 잔인한 말이었다. 얼굴 찡그리지도 말고 소리 내지도 말고 어깨에 힘을 주지도 말고, 온 힘을 모아 오로지 배에 힘주는데만 쓰라고 한다.

간호사들이 양옆으로 서서 내 발을 자신들 허리에 대고  힘줄 때마다 내쪽으로 다리를 밀었다. 그리고 아기를 아래로 밀어낸다는 생각으로 배에 힘을 길게 주니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머리가 3센티 보이기 시작하자 당직의를 불렀다. 일요일이라서 담당의가 없었다. 문제는 아기가 다 내려와서 한 번만 힘주면 나올 상황이 되자 통증이 극심해졌다. 빨리 힘주어 낳고 싶었는데 의사를 기다려야 한다.ㅠㅠ  아기도 안에서 너무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니 3센티가 보여야 의사가 오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후 4시 5분

의사가 와서 열상방지주사, 회음부절개하고 힘을 한번 주니 바로 아기가 나왔다. 회음부절개할 때 다시 무통주사를 켜는데 무통주사 영향인지 아무 느낌이 없어 자르는 지도 몰랐다. 나중에 신랑이 하는 말이 멀리서 가위 들고 푹 자르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그동안 출산장면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져서 나도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면 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감격보다는 고통해방으로 인한 안도감으로 머릿속이 져서 울음이 안 나왔다. 아기 얼굴을 보고 무탈해서 다행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신랑은 울 줄 알았는데 아무 생각이 없는 듯했다. 에 하는 말이 간호사들이

 탯줄 자르는 것으로 이것저것 시켜서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아빠가 아기에게 말을 안 하니 간호사가 애기한테 말 걸어주라고 해도 멍해 있어서 나만 태명 부르며 말하고 있었다.

 회음부 파열이 많이 되어 무통주사를 킨 상태였만 꿰맬 때 아팠다. 회음부 열상방지 주사는 나에게는 큰 효과가 없었다.


오후 5시~

혹시 모를 응급상황을 대비하여 분만실에서 1시간 정도 대기한 후 휠체어를 타고 입원실로 올라왔다. 간호사가 현기증으로 쓰러질 수 있으니 오늘은 샤워하지 말라고 한다. 모자동실이어서 아기는 체온유지 후에 올라왔고 수유방법을 교육받았다. 아직 젖이 몇 방울 안 나오는데도 잘 빨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항생제, 무통주사 등등 여러 주사를 맞아서 젖에 혹시 안 좋은 성분이 들어가지는 않았나 생각되지만 바로 젖이 도는 게 아니니까 큰 영향은 없었으리라.

자세히 아기를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쪼끄마한 얼굴에 눈코입이 정말 작았다. 내 뱃속에 열 달 동안 있었던 생명체라고 생각하니 신비함 그 자체였다.

산통은 심했지만 끝나고 나니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아기에 대한 사랑, 책임감, 소중함, 감사함이 커져갔다.

양수가 터진 지 12시간 만에 출산했는데, 무통주사 덕에 극심한 산통은 4~5시간 겪은 것 같다. 무통주사 없이  겪었을  생각하기도 싫다.


출산할 때 도움이 되는 팁을 말하자면,

-출산후기들을 많이 검색해 보고 신랑과 공유한다. 예측이 가능한 상황에서 긴장이 덜 되므로,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지 미리 숙지하면 출산 시 도움이 된다.

-궁문이 다 열리기 전에는 근육이완시키는 긴 호흡법으로 아기가 아래로 빨리 내려오게 다. 아픔을 견디려고 바들바들 힘을 주면 진행이 더디게 된다.

-누워있는 것보다 서 있는 게 통증이 덜하다.

-힘주기 할 때에는 아기를 밑으로 밀어낸다는 생각으로 온 힘을 길게 다. 온 힘을 내는 법은 역도 선수들이 역도 들 때 소리 내지 않고, 표정 일그러짐 없이 집중하여 힘을 내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이것으로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아 그나마 수월하게 진행된 12시간의 출산 고행이 끝났고, 기나긴 육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280일의 여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