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진학하다
고등학교 진학은 내가 살면서 스스로 내린 가장 큰 결정들 중 하나였다. 나는 학교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 들어가는 것이었다.
열여섯 살이었던 내가 어떤 생각의 과정을 거쳐 이 결론에 도달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때쯤에 예쁜 교복을 입고 몰려다니는 또래 아이들이 유난히 부러웠던 것만은 분명하다.
오랜 시간 홈스쿨링을 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면 엄마가 내게 협박조로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너 그런 식으로 하면 학교 보내 버린다." 우습게도 학교에 가는 것이 내게는 그만큼 두려운 일이었다. 가본 적도 없으면서 경험해 보지 않은 곳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가겠다는 결심을 할 때쯤에는 그런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강해졌다.
‘나도 평범하게 학교 다녀보고 싶다. 매일 아침에 교복 입고 등교하고, 점심때가 되면 급식 먹고, 친구들이랑 교실에서 장난치며 놀고, 시험기간이라며 바쁜 티도 내보고.’
내 로망은 이런 것들이었다. 지극히 사소하지만 나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들.
부모님은 내 결정을 존중하셨다. 네가 가고 싶다면 가봐야지. 지금까지 홈스쿨링을 했으니 성인이 되기 전에 학교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집에서 가까운 인문계 학교들에 지원했고, 1 지망으로 쓴 학교에 가게 되었다.
신중하다 못해 우유부단하기까지 한 내 성격에, 그리고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참 신기하다. 오히려 어렸고 단순했기에 할 수 있는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고등학교에 간 건 잘한 선택이었다.
아, 이렇게 쓰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다. 홈스쿨링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홈스쿨링을 통해 무슨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해서 끝을 낸 것도 아니다. 만약 학교에 가지 않고 홈스쿨링을 계속했더라도 나름대로의 장점과 만족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10대를 떠나보내며 가보지 못한 학교에 대한 미련은 조금 남았을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감으로써 나는 모든 미련을 훌훌 털고 20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홈스쿨링과 학교 중 어느 쪽이 좋았냐 물으면 대답하기 힘들다. 그만큼 둘 다 내게는 귀중한 경험들이었기 때문이다. 홈스쿨링을 하면서도, 학교에 다니면서도 나는 각각의 환경에 적응하며 나름대로 꾸준히 자랐다. 그렇게 자라 10대를 지나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물론 고등학교에 가서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학교에 익숙하다 못해 질려 있는 아이들 사이로, 은근히 동경하던 그 평범함 속으로 드디어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 만만치 않았던 고등학교 적응기도 천천히 풀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