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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유영 Sep 30. 2023

캐나다 스시집에서 일하기 (2)

각양각색 캐나다 손님들

우리 가게 메뉴 중 하나였던 스파이더 롤(Spider Roll).




   캐나다 사람들은 참 스시를 좋아한다. 내가 살던 월넛그로브(Walnut Grove)에만 해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 내에 스시집이 몇 개 있었다. 각 가게의 위치와 특성에 따라 규모는 제각각이었는데, 우리 가게는 주로 단골 장사를 하는 조그마한 동네 식당이었다.


   작은 식당에서 일하다 보면 자주 오는 손님들의 얼굴이 눈에 익는다.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주로 찾고, 그들이 찾는 메뉴도 대부분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그 가게에서 오래 일하신 매니저님과 팀장님은 많은 손님들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곤 하셨다. 내게 서버 일을 알려주시던 팀장님은 종종 들어오는 손님들을 보고 내게 말해주셨다.


   "저 손님은 아마 사케랑 니기리(Nigiri) 시키실 거야. 사카이 살몬(Sockeye Salmon)으로."

    "저 할아버지는 항상 들어오면서 Canadian 맥주부터 시키셔. 계산은 항상 할머니가 하시더라구. 재밌지 않니?"

    "저 꼬마 공주님들은 항상 *달라라마(Dollarama)에서 쇼핑하고 여기로 와. 아마 한 명은 꼭 아보카도 롤(Avocado Roll) 시킬 거야."

    *달라라마: 생필품과 먹거리 등을 1~5달러 사이에서 판매하는 잡화점. 캐나다의 다이소 같은 느낌이다.


   그러고 나서 손님들에게 오더를 받으러 가면 대부분 팀장님이 말한 대로 주문을 했다. 나는 포스기에 오더를 넣으며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시냐고 묻곤 했다. 팀장님은 우리 가게가 단골 장사라 몇 개월만 일해도 눈에 익는다고 하시며 웃으셨다.


   두 달 정도 지나니 정말로 그랬다. 며칠에 한 번씩은 꼭 오는 손님들이 있었고, 나도 그들의 얼굴만 봐도 뭘 시킬지 어느 정도 알아맞힐 수 있었다. 내가 알아보는 단골손님들이 생기고 나를 알아보는 손님들도 생겼다.




   하이틴 영화에 나올 것처럼 생긴 금발 머리 여자 아이가 있었다. 주근깨 흩뿌려진 콧잔등에 웃는 얼굴이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근처 세컨더리 스쿨(Secondary School)에 다니는 그 아이는 늘 친구들 서너 명과 함께 와서 '빅토리아 롤(Victoria Roll)'을 시켰다. 그 아이가 떠나고 테이블을 치우러 가면, 접시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고 냅킨에 예쁜 필기체로 잘 먹었다는 인사가 남아 있었다. 정말 별거 아닌 친절이지만 나는 그 냅킨을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종일 앉지도 못하고 고되게 일한 날도, 이런 작은 친절과 미소, 그리고 잘 먹었다는 인사에 기분이 환기되곤 했다.


   늘 킥보드를 끌고 다니는 작은 여자아이 둘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얼굴을 비추는 손님들이었다. 기껏해야 10~11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은 항상 손에 달라라마 비닐봉지를 하나씩 달랑거리며 들어왔다. 이따금 문구점에서 파는 플라스틱 귀걸이 같은 것을 달고 다니기도 했다. 그럴 때면 팀장님이 "아유, 우리 공주님들 오셨네." 하며 웃곤 하셨다.

   보통 먹고 가겠다 하면 서버가 자리를 안내해 주지만, 그 아이들은 내가 물어볼 틈도 주지 않고 익숙하게 자리를 찾아 앉곤 했다. 둘이서 한참 메뉴판을 뒤적거리기에 '오늘은 새로운 걸 시키려나' 생각하고 오더를 받으러 가면, 늘 아보카도 롤과 카파 마끼(Kappa Maki), 아게다시도후(Agedashi Tofu) 같은 애피타이저 종류를 시켰다. 다 먹고 나면 꾸깃한 지폐 몇 장과 동전을 한가득 꺼내 저들끼리 열심히 세어 내게 건네주고는 퇴장. 늘 귀여운 공주님들이었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3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 셋이 와서 식사를 했다. 아이들이 아직 먹고 있을 때 한 중년의 남자 손님이 전화로 주문한 음식을 찾으러 왔다. 그는 밥을 먹고 있는 아이들을 잠시 보더니, 내게 카드를 건네며 말했다. "저 애들 것도 같이 계산해 주세요(I'll pay for them, too)." 내가 순간 당황해서 되묻자, 그는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Why not? 이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날 저녁, 신기하게도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났다. 이번에는 초등학생 단체 손님이었다. 그중 한 명의 생일이었는지, 약 8명이 가장 큰 식탁에 둘러앉아 저마다 메뉴를 주문했다. 한창 정신없게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고 있는데, 작은 핸드백을 들고 반짝거리는 눈화장을 한 여자 손님이 혼자 들어와 테이크아웃 주문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왁자지껄 식사 중인 테이블을 발견하고는 내게 말했다. 한 사람 당 20달러(한화 약 2만 원)까지는, 자신이 아이들의 밥값을 내겠다고. 그녀는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며 쿨하게 퇴장했다.

    그들이 대신 내준 액수가 얼마였든 간에, 고민도 없이 아이들이니까 당연히 해준다는 태도가 인상 깊었다. 어린이가 어른으로부터 보호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낀 따뜻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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