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처럼 Feb 25. 2022

술 주정

    

깜깜한 골목에 가로등 불빛이 참 시원하게 느껴진다. 주차를 하는 사이 아이는 내릴 준비를 하며 “데리러 와 줘서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오늘 학원 잘 다녀와줘서 고마워요”라고 대답하는데, 휴대폰이 징 하니 울린다. 저장이 되지 않은 번호다. 누군가 하고 받았더니 내가 번호를 지워버린 그녀의 목소리다. 착 가라앉았다. 울먹울먹 하는 것도 같다. ‘울었나? 술을 얼마나 마시고 전화를 한 걸까?’ 통화가 어렵다고 전화를 끊었다. 내 말이 끝나기 전에 꼭 전화를 해 달라는 답변이 온다. 

그녀가 전화를 하기 전에 은미가 전화를 했다. 운전 중이라 받지 않았는데, 그녀와 통화하기 전에 은미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은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미안해요. 내가 전화를 받지 말아야 했는데, 술 먹고 전화가 왔길 래, 영서한테 술 마시고 전화하지 말라고 했더니, 어디서 들었냐고? 그러더니 언니 욕을 막 하네요. 에고, 내가 참았어야 했는데, 내 입이 실수를 했네요.”

“에이고, 그러게 좀 참지 그랬어요. 걔가 그런다니까요. 누가 뭐라고 하는 소리를 절대 안 들어요.”

“내가 이야기하면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앞으로 조심 한다고 할 줄 알았죠. 술 마시고 또 전화 했길래 짜증이 나서 뭐라 했는데 난리가 났어요.”

은미와 통화를 하는 동안, 계속 전화가 온다. 그녀가 나와 은미에게 번갈아 가며 전화를 거는 모양이다. 그녀는 주정이 있다. 아직 당해 보지는 않았는데, 본인이 웃으며 기억을 못한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영서는 술 취한 그녀에게서 ‘반찬 좀 맛있게 해 봐. 사람들이 간이 너무 싱겁대. 소금이 아까워? 소금 좀 보내줄까? 엄마한테 반찬 맡기지 말고, 소금 좀 적당히 써서 해 봐. 연세 드시면 간 보기 힘들어. 형부가 찌개 맛있다고 자주 가는 거 아는데, 찌개만 맛있게 하지 말고. 그리고 가게 좀 옮겨. 보상금 받은 거 있잖아. 내가 밥 먹으러 가고 싶은데, 솔직히 가게가 후져서 못 가겠어. 좋은 데로 옮겨서 엄마도 좀 편하게 해드리고. 통장에 돈 넣어두면 뭐해. 돈은 쓰라고 있는 거야. 이제 효도 좀 해야지.’라는 말을 들었단다. 영서는 그녀에게 멀쩡할 때 전화하라고 한마디만 하고 끊었단다. 

영서는 그랬다. 다음에는 형부 오면 다른 데 가라고 해야겠어요. 밥 못 팔겠다고요. 그 웃음이 나중에는 오열이 되었다. 영서는 남편이랑 아이를 교통사고로 먼저 보내고 그나마 마음잡고 친정엄마 식당을 도와준 게 이제 6개월이다. 3년을 태백 언니한테 가 있었다. 이제 마음을 좀 잡으려는 영서한테 그녀가 미친 짓을 한 게다. 엄밀히 말하면 술이 미친 짓을 한 게다. 

내가 그녀에게 영서대신 따지러 전화를 걸었을 때, 그녀는 나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지난 번 통화하면서 나한테 기분이 상해 내 전화번호를 지워버렸단다. 언니가 전화했으니 이제 번호 추가하겠다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나도 깔깔거리며 영서한테 술 마시고 전화했냐고 물었더니, 기억 안 나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영서한테 전화 했을 때는 술 많이 안 취해서 기억이 다 난단다. 남편이 집에 오면 밥이랑 찌개는 맛있는데 반찬이 싱거워서 손이 안 간다고 이야기해서, 버리는 반찬이 아까워서 반찬에 소금 좀 치라고 이야기 했단다. 찌개랑 밥값만 받으라고 할 수도 없고, 환경을 생각해서 반찬 맛있게 만들어주면 음식물쓰레기가 안 나가는데, 아깝지 않냐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한마디 했단다. 웃으면서 기분 좋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나도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다만 술 마시고 전화하지 말라고만 했다. 몇 번을 반복해서 대화 중간중간 강조했다. 

은미는 이런 그녀에게 ‘참 오래 살 거예요. 스트레스가 없어서.’라고 이야기한다. 은미는 그녀의 전화를 받지 말라고 한다. 은미와 전화를 하는 동안 그녀는 계속 전화를 한다. ‘나중에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답글을 남기니, ‘집 앞으로 갈 테니 나와 봐’라고 문자가 찍힌다. 은미에게 미치겠다고 이야기를 하니, 

“언니 나갈 거예요? 언니 안 나가면 목소리도 엄청 커서 동네 소리소리 지를 텐데요.” 

“우리 집 몰라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남편이 늦은 시간에 무슨 전화를 하냐고 빤히 쳐다본다. 낮은 목소리로 옷부터 갈아입으라고 한다. 학원에서 온 아이 간식도 챙겨주긴 해야 한다. 

그녀는 계속 전화를 한다. 문자도 한다.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그래도 울린다. 방법은 차단밖에 없다. 지웠던 전화번호를 다시 등록하고 차단을 한다. 휴대폰에서 그녀의 전화번호에 차단 표시가 뜨고서야 전화기가 조용해졌다. 

전화번호가 차단이 되었는데도, 전화기에는 새벽 1시까지 전화를 한 흔적이 보인다. 

은미가 이야기한다. 그녀가 미쳤다고, 자기 잘못을 어쩜 그렇게 모르냐고, 이제 아예 상대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사 잘하는 사람의 노하우가 필요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