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곳에서
매미가 울어대는 소리도 이젠 백색소음처럼 익숙하다. 쪄 죽을 듯한 칠월이 가고, 팔월의 무더위도 어느덧 지나간 지금, 한 달도 남지 않은 나날이 어서 끝이 났으면 하면서 오늘도 어김없이 책이 듬성듬성 쌓여있음에도 무거운 북카트를 민다.
삼 층까지 돌고 돌아 텅 빈 카트를 1층으로 가져다 놓고, 2층에 위치한 데스크에 앉아 한숨을 돌린다. 방학이라 열람실엔 학생들로 꽉 찼다. 덕분에 열람실과 휴게실에서 노닥거린다는 도서관 이용 시민들의 컴플레인에 시달리고 있다. 딱 두 달만 일하는 거라 금방 지나갈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하루하루가 매우 버겁다. 종강하고 바로 시작한 시립도서관 알바는 꿀알바라는 친구의 말에 했건만, 여러모로 신경 쓸 게 많은 나날들이 번뇌가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사서 선생님도 좋은 분이시고 잘 챙겨주셔서 일하는 데엔 어려움이 없지만, 왜 이리 쓸데없는 생각만 늘어 가는지.
학기 중에도 공강 하나 없이 매일 등교를 하고 중앙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같은 도서관에 가더라도 출근은 다른 의미로 무척 힘겨웠다. 같이 일하던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일정 상의 문제로 먼저 그만두게 되어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빈 자린 안다더니. 옛 조상들의 지혜에 저절로 감탄하게 된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만 두 사람이 하던 일을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건 제법 부담이 된다. 사서 선생님이 도와주시는 것과 가끔 주말에 봉사를 하러 오는 중, 고등학생들도 있지만 한 번 오는 학생들을 위해 매번 가르치는 일도 그다지 도움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피곤하기만 할 뿐.
.
.
.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현관에 서둘러 빗물 털이와 우산 거치대를 가져다 두었다. 바닥에 남은 물자욱의 흔적이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따라 이어지고, 퇴근 전에 닦을 생각에 고개가 절로 내려간다. 현관에서 중간에 나눠지는 세 갈래로 나뉜 물 자욱에 이상함을 느꼈다. 화장실도 아닌, 길이 없는 곳으로 일정하게 누가 일부러 맞춰서 흘려놓은 듯한 짙은 회색빛에 헨젤과 그레텔이 된 듯 멍하니 홀려 뒤를 따랐다. 조명도 밝지 않은 시립도서관의 한편에 이어진 막다른 길로 보이는 듯한 가벽 뒤에 있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도착한 곳은 현대적으로 지은 도서관의 분위기와 달리 따듯한 나무벽과 문으로 이어진 공간. 마치 다른 건물에 와 있는 듯한 느낌, 영화 속에 들어온 신비한 공간에 들어온 주인공이 된 듯했다. 그래서였을까. 무턱대고 손잡이를 잡아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을 때가
펼쳐진 곳은 다름 아닌 도서관이 맞긴 했는지. 아담한 공간이지만 그 공간을 꽉 채운 서가와 서적들이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지하에 위치한 식당이 다른 층에 비해 작다고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 이유는 주차장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런 공간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문의 오른편으론 한국사 시간에만 보았던 장서, 고서들이 보였다. 왠지 박물관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서적들이 이런 곳에 있어도 되는 건지 의구심이 생겨났다. 한눈에 봐도 조선보다 더 거슬러 가야 할 것 같은 세월의 흔적들. 왼편에는 넷플릭스에서 보았던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외국 드라마의 배경을 보는 듯했다. 어설프게 훑어본 책들에는 셰익스피어의 이름도 보이고, 도스토옙스키의 이름도 있는 듯하다. 그렇게 멍하니, 아니 마치 뭐에 홀린 듯이 눈으로 샅샅이 책들을 좇았다. 감히 만져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손도 대지 못하고 눈으로만 열망하며.
철컥. 하고 들린 문의 손잡이 소리가 들린 순간. 두 다리에 힘을 바짝 빼어 가장 왼 편에서 두 번째 서가의 밑으로 몸을 숨겼다. 오래된 나무 문 같아 보이면서도 끼익 거리는 소리 하나 없이 부드럽게 열리는 문과 지하 계단을 울리는 발소리. 제 작은 숨소리라도 새어나갈까.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