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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동시 뜰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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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달샘 Mar 08. 2023

높고 녹는 산

동시로 말랑말랑해지는 시간

고깔 바닥 위로

흰 산이 구불구불 솟아오른다

조금 휘어진다

서둘러 붉은 사람이 오른다

아래에서 위로

차가운 눈 산을 힘차게

헤치며 오른다

붉은 사람을 맬어낸 또 다른 붉은 사람이

금세 산봉우리를 떼어 가 버린다

더 서두르지 않으면

산은 녹아 없어질 것이다

부지런히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오르던 산이 점점 낮아지고

낮아지고 낮아지다가

산은 언덕이 되고 평지가 되고

구덩이가 된다

흔적만 남은 산이 고깔 밑으로 쑤욱 빠져나간다

혼자 남은 붉은 사람은

입술 틈을 열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김물 <오늘 수집가> 중에서



이 시의 제목을 '아이스크림콘'이라고 했으면 시를 읽는 재미가 줄었을 것이다. 고깔이란 단어에서 멈칫하다 쭉 읽어내려가다 '혼자 남은 붉은 사람이 입술 틈을 열고'에서 무릎을 탁 친다. 아~ 붉은 사람은 바로 '혀'로구나. 바닐라 아이스크림콘 하나를 두고 녹을세라 두 사람이 함께 입을 대고 먹고 있다. 이 단순한 상황이 이렇게 재미있는 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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