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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달샘 Feb 22. 2024

가을이 오면

김용석

나는 꽃이에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에요

가을이 오면




  고등학교 때 이해인 수녀님의 에세이 <두레박>을 읽으며 발견한 동시다. 짧으면서도 내용의 울림이 좋아 나는 이 시를 정성스럽게 써서 학교 화장실 문 앞에 붙여두었다. 혼자 보기 아까워 다른 친구들과 나누고  싶었다. 어느 날 화장실 안에서 누군지 모르는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야, 이 시 좋지 않냐? 근데 이거 누가 붙였을까? 좋은 시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흐뭇했다. 내가 붙여 놓은 걸 아무도 몰라서 더 좋았다.   

   

  며칠 전 오랜 기억을 더듬으며 인터넷으로 이 시를 검색해 보았다. '가을이 오면'이라고 검색하니 이문세의 노래가 먼저 올라왔다. 다시 '가을이 오면 동시'라고 검색하니 네**에서 줄줄이 시인이 김용택이라고 검색되었다. 내 기억에 작가가 김용택이 아닌데 싶어 구*로 다시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고도원의 아침편지에도 소개된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시인 이름은 김용석이다. 그런데 그 지면 댓글 칸에 시인이 이렇게 댓글을 남기셨다.  

'윗 글의 저자입니다. 좋은 지면에 올려져 여러분에게 읽히게 되니 너무 기쁩니다. 하지만, 원래의 모습이 아니어서 조금은 섭섭하네요. 원문을 올립니다. '       


   

(작가 버전)     


나는

꽃이에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

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에요.     


가을이

오면     



  행갈이가 전혀 다른 작가 버전을 읽으면서 시에서 행갈이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나는 왠지 작가 버전보다 내가 알고 있었던 위 버전이 더 편하게 읽힌다. 위의 꽃이 더 넓은 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 작가는 왜 굳이 더 행을 나눴을까? 독자들이 꽃의 마음을 더 음미하며 천천히 읽어주기를 바랐을까? 이 시에서 마침표가 있음과 없음은 다른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라는 질문도 들었다. 나는 마침 부호가 없는 게 더 편하게 읽히니 말이다. 시는 예민한 장르가 틀림없다. 마침표, 쉼표 같은 문장부호의 변화도 다른 장르의 글보다 크게 다가오니 말이다. 


  언젠가 어느 지면에서 나태주 시인이 자신의 시를 독자들이 행갈이를 새롭게 바꾼 버전을 원문과 함께 소개하는 글을 읽었다. 블로그, 브런치, 카페 등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좋아하는 시를 마음껏 공유하는 시대에 시인은 이런 변형을 긍정적으로 얘기하셨다. 자신의 시는 독자가 함께 쓰는 시라고, 원문보다 낫다고 하셨다. 물론 독자들의 실수로 인한 시의 변형이 원문보다 언제나 좋을 리는 없다.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많지 않을까 싶다. 나도 인터넷으로 찾은 시는 원문이 맞을까 의심하며 여러 번 검색해 비교해보고 그래도 의심스러우면 도서관에서 원문을 찾아보기도 한다. 인터넷에 실린 대부분의 시가 원문이 훼손되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서설이 길었다. 나는 왜 동시를 쓰고 싶어할까? 라는 자문에 대한 답에 이 시가 있다. 좋은 시를 향유하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언제부터 이런 좋은 시를 쓰는 일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시는 누구나 쉽게 읽으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어떤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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