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아빠가 설계한 도파민 세상의 생존법
지난 글에서 나는 게임이 내게 안식처라고 썼다. 하지만 아들을 바라볼 때면 전혀 다른 생각이 머리를 채운다. 이 세상이 아이를 어떻게 망가뜨리도록 설계되었는지, 그 의도가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디지털 세상의 메커니즘을 뼛속까지 안다. 그곳이 도파민 회로를 얼마나 집요하게 파고드는지도 안다. 무작정 게임을 금지하거나 억지로 막는 것 말고, 균형을 가르치는 더 현명한 길은 없을지 고민했다.
놀랍게도 단서는 ta.fo Journal을 시작하며 내 소개글에 적었던 한 문장에 있었다. ‘나는 결코 하나의 기둥으로 정의되지 않겠다.’ 육아를 염두에 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그 논리가 아들에게도 그대로 통했다.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는 건 단순히 소프트웨어가 훌륭해서가 아니다. 자신을 지탱해 줄 다른 무언가가 없을 때 중독된다. 적어도 내 어린 시절은 그랬다.
나는 아들에게 천 년을 버틸 수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지어주고 싶다. 이것은 아버지라는 역할을 넘어, 아이를 감싸는 환경의 설계자가 되겠다는 뜻이다. 시작은 바닥이다. 바닥이 늪이라면 천하의 대리석도 소용없다. 그 기초는 ‘자율성’이 되어야 한다. 단단한 암반은 아이가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감각이어야 한다. 아이는 자기 선택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바람이 몰아쳐도 구조물이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그 단단한 땅 위에 다섯 개의 뚜렷한 기둥을 세워주고자 한다.
1. 신체의 기둥.
아이에게는 땀 흘리고 중력을 거스르며 솟구치는, 그 날것의 엔돌핀이 필요하다. 게임 속 레벨 업은 손가락 하나면 충분하다. 하지만 현실의 레벨 업은 고통을 요구한다. 나는 아이가 손에 쥔 죽도의 묵직함과, 백 번을 휘두른 뒤 팔뚝에 남는 얼얼함을 알았으면 한다. 다리가 후들거려도 계속 움직일 때, 거친 숨이 어떻게 단단한 규율로 바뀌는지 몸으로 느끼길 원한다. 이 육체적 활력이야말로 디지털 세계의 정적인 피로와 균형을 맞추는 힘이다.
2. 지성의 기둥.
학교 성적표 이야기가 아니다. 깊은 사고 끝에 오는 논리적 희열에 대한 것이다. 나는 아이가 폭넓게 읽고 논리로 문제를 해체하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 난해한 질문이 깔끔한 구조로 정리될 때 느끼는 수학의 고요한 기쁨을 알았으면 한다. 물리학을 통해 현실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길 원한다. 수학은 명료하게 생각하는 법을, 물리학은 인과관계를 가르친다. 이 기둥은 아이의 뇌를 깨어있게 한다.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대로 받아먹는 수동적인 존재가 되지 않게 막아준다.
3. 예술의 기둥.
감정이 형식이 되는 공간이 필요하다. 논리는 강력하지만, 감정의 앙금까지 씻어내지는 못한다. 예술은 그걸 해낸다. 나는 아이가 음악을 평가 대상이 아닌 하나의 언어로 접하며 자라길 바란다. 연습이 어떻게 소음을 선율로 바꾸는지, 리듬이 어떻게 요동치는 마음을 잠재우는지 듣길 원한다. 카메라를 들고 세상이 빛을 드러낼 때까지 끈기 있게 응시하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 사진은 인내를 가르친다. 그리고 주의력을 가르친다. 엄마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길 원한다. 빈 캔버스는 결정이 되고, 그 결정은 하나의 세계가 된다. 이 기둥은 삶을 통째로 삼키는 대신 소화할 방법을 준다.
4. 사회의 기둥.
관계가 주는 단단함이 필요하다. 함께 뒹굴며 웃고 싸우고 용서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강점을 정확하게 짚어주는 스승을 만나길 바란다. 자신을 끌어주는 선배와 오만하지 않게 지켜줄 후배를 찾길 원한다. 타인과 마주 앉아 차분하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남자로 성장하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파트너를 만나길 희망한다. 함께 웃고 논쟁하면서도, 아침에 눈 뜨면 여전히 서로를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이 기둥은 아이가 사람 숲에 뿌리내리게 한다.
5. 놀이의 기둥.
그리고, 게임이다. 삶으로부터 도망치는 곳이 아니라, 삶에 결을 더해주는 놀이로서의 게임이다. 규칙이 있는 세계에 들어가 그에 맞춰 사고를 조율하는 감각을 알았으면 한다. 나는 사막의 황제고, 아이는 나의 황태자 아지르 2세다. 모래성을 쌓다 무너뜨려도, 부끄러움 없이 다시 쌓길 원한다. 승부 속에서 타이밍과 절제를 배운다. 주의력은 자원이며 좌절에는 비용이 따른다는 것을 배운다. 이 기둥은 즐거움 또한 하나의 실력임을 상기시킨다.
마지막 요소는 ‘여백’이다. 파르테논 신전이 아름다운 건 기둥 사이에 공기가 통하기 때문이고, 그 공기의 이름은 ‘지루함’이다. 수업과 레슨으로 아이의 시간을 꽉 채우면 내면은 질식한다. 나는 구조물이 숨 쉬길 원한다. 지루해야 비로소 누군가 즐겁게 해주길 기다리는 걸 멈추고, 스스로 놀이를 짓기 시작한다. 그 빈 공간이 있어야 건물이 제 무게를 이기고 버틴다.
아이가 짓는 동안 나는 곁을 지킨다. 구조를 살피며 기초가 단단히 굳었는지, 신전의 수평은 맞는지, 바람은 잘 통하는지 묻는다. 그 대답들이 ‘예’라면, 게임엔 굳이 규칙이 필요 없다. 다섯 기둥 중 하나인 ‘놀이의 기둥’으로서 제 자리를 찾을 테니까. 내 임무는 아이의 파르테논 신전이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땅을 다지고 공간을 터주는 것,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