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와 예술, 논리가 빚어낸 가장 밀도 높은 경험
내 의식의 삶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되었다. 그 이전의 기억은 희미하다. 내가 진정으로 눈을 뜬 순간은 <스타크래프트>가 한국에 상륙한 시점과 맞물린다.
서구와 일본이 콘솔과 함께 성장할 때, 한국은 다른 길을 걸었다. 빠르고 저렴한 인터넷이 도심 곳곳에 깔렸고, 이는 사람들이 노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렇게 PC방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 후 <리니지>와 MMORPG의 폭발적인 성장이 뒤따랐다. 한 세대가 통째로 중독자라는 낙인을 달게 되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공부를 팽개치고 화면 속으로 사라졌다. 사회는 우리를 연민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들에게 나는 인생을 내다 버리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세계 안에서,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묘한 연민을 느꼈다. 그들이 우리를 동정했듯, 나도 그들을 동정했다. 그들의 세상은 너무나 생기가 없어 보였다. 공성전의 전율이나 리니지 혈맹에서 느끼는 소속감을 결코 알지 못할 그들이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구원은 뜻밖에도 앰프에서 찾아왔다. 밴드부 친구 덕분에 일렉트릭 기타를 처음 잡게 되었다. 처음 잭을 꽂았을 때 터져 나오던 피드백의 굉음을 기억한다. 앰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것의 아날로그 사운드는 디지털 세상이 줄 수 없는 방식으로 나를 불태웠다.
중독적 기질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저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한때 게임에 쏟던 그 집요함을 음악에 쏟아부었다. 차이점이라면 음악은 화면이 줄 수 없는 물리적 실체가 있다는 것이었다. 무게가 있고, 저항이 있고, 피드백이 있었다. 게임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며, 내 삶의 전부일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음악이었다. 그 문이 열리자, 나는 몰입할 가치가 있는 또 다른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공부가 그중 하나가 되었고, 결국 대학까지 가게 되었다.
30대가 된 지금, 내가 여전히 하는 게임은 <리그 오브 레전드>뿐이다. 로그인하면 옛 영혼이 돌아온다. 그 초집중 상태가 다시 찾아온다. 하지만 구조는 다르다. 게임은 더 이상 내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기둥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논쟁적인 믿음을 하나 가지고 있다. 나는 게임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말의 연민을 느낀다. 중독을 미화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창작자로서의 확신을 담아 하는 말이다. 개발자이자 예술가로서, 나는 그들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본다.
게임은 흔히 현실 도피처로 폄하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라. 좋은 게임은 인지, 판단, 행동, 피드백이 수천 번 반복되는 촘촘한 루프다. 게임이 유독 몰입감 있게 느껴지는 건 바로 그 루프 때문이다. 코드에서, 예술에서, 그리고 논리에서 그 밀도를 볼 수 있다.
먼저 코드를 보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 현대 게임은 출시하기 가장 어려운 소프트웨어 중 하나다. 입력, 애니메이션, 물리, 조명, 오디오, 네트워킹, 캐릭터 행동이 모두 동기화된 상태로 일정한 프레임 레이트를 유지하며 세계를 일관성 있게 지켜야 한다.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멈추거나, 재시도하거나, 적당히 성능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은 매 순간 반응해야 한다. 이 실시간 제약이 게임 개발을 기술적으로 그토록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다음은 예술이다.
영화에 대해서는 이미 누구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영화는 이미지, 음악, 글, 연기, 편집, 디자인을 하나의 경험으로 섞는다. 게임도 이 모든 요소를 포함한다. 그리고 여기에 재료 하나를 더 넣는다. 바로 주체성이다. 당신은 주인공을 지켜보는 게 아니다. 당신이 주인공이 된다. 이것은 수동적 소비가 아니다. 당신의 행동에 반응하는 세계에 대한 참여다.
마지막으로 논리다.
우리는 체스와 바둑을 진지한 수양으로 존중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리그 오브 레전드>나 <스타크래프트>를 그저 마우스 클릭질로 치부한다. 그건 명백한 지적 허영이다. 높은 수준의 리그 오브 레전드 경기는 불완전한 정보 아래 펼쳐지는 5대5 전략 싸움이다. 자원 관리, 예측, 협동, 그리고 압박 속에서의 실행을 요구한다. 그 정신적 부하량은 많은 전통 스포츠가 요구하는 수준에 필적한다.
나는 게임이 고급 예술인지 따지는 논쟁에서 이길 생각이 없다. 그 논쟁은 본질을 놓치는 경향이 있다. 중요한 건 경험이며, 인간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그 경험이 어떻게 드러내느냐다.
지금으로선, 그 경험 자체로 만족한다. 나는 정교한 논리 위에 지어지고 예술로 빚어진 세계로 걸어 들어간다. 인간의 상상력이 코드를 따라야 할 때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게임을 한다. 이것은 그저 또 다른 형태의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 속에서, 나는 참여한다. 나는 행동한다. 나는 게임한다, 고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