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코드가 아니다

'시뮬레이션 가설'이 과학이 될 수 없는 이유

by TAFO

지난 글에서는 AGI를 맹신하는 현상을 사회적 관점에서 다뤘다. '특갤'이라는 커뮤니티가 어떻게 기술을 종교화하는지 말이다. 오늘은 그 믿음의 기저에 깔린 논리를 정면으로 응시해보려 한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지만, 깊게 파고들기는 주저하는 본질. 바로 물리학이다.


여기 간단한 질문이 있다. 시뮬레이션 가설과 AGI, 둘 중 어느 쪽이 아주 조금이라도 더 그럴듯하게 들리는가? 시뮬레이션 이야기는 우주적이고 추상적이다. 당신의 공과금 청구서나 건강, 혹은 당신의 삶이 짧다는 사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반면 AGI는 다르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자꾸만 코앞에 닥쳤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5년에서 10년을 말한다. 그 5년에서 10년이 지나면, 아마 또다시 5년에서 10년을 말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진짜 비약이 등장한다. 그들은 그저 AGI를 기다리는 게 아니다. ASI를 기다린다. 그들은 그것이 완전 몰입형 가상현실의 시대를 열고, 각자를 자기만의 우주 속 신으로 만들어 줄 거라 믿는다. 그건 예측이 아니다. 카운트다운이 달린 종교다.


그 환상은 시뮬레이션 가설의 재탕이다. 제품 로드맵으로 포장만 바꿨을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물리학이 중요해진다.


시뮬레이션 가설은 전형적인 ‘미끼 상술’이다. 컴퓨터가 현실의 일부를 모사할 수 있다는 소박한 주장으로 시작한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온 우주를 디테일하게 복제할 수 있다는 거창한 주장을 끼워 넣는다. 마침내 마지막 도약을 감행하며, 통계적으로 우리가 코드일 가능성이 높다고 선언한다.


매혹적인 생각이지만, 쓰레기 같은 이론이다.


첫째. 디지털 세계는 작은 우주가 아니다. 인간의 지각에 맞춰 조율된 경험일 뿐이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은 무시하고, 측정할 수 없는 것은 단순화하고, 연산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가짜로 때워 리소스를 아낀다. ‘가상 세계’가 일관성 있어 보이는 건 당신이 자유롭게 뜯어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미시 물리학에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그럴듯한 표면을 얻는 셈이다. 그럴듯한 경험을 만드는 것과 진짜 우주를 짓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둘째. ‘관찰될 때만 렌더링한다’는 주장은 서로 다른 두 가지를 혼동한 것이다. 물리학에서 관찰은 의식이 아니다. 상호작용이다. 양자 얽힘은 당신이 보든 말든 발생한다. 정보는 환경으로 퍼져나간다. 우주는 플레이어가 뒤를 돌아보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별이 생겨나고 원자핵이 붕괴하는 건 물리 법칙 때문이다. 그것들은 당신의 주의 따위엔 관심이 없다. 세계는 계속 진화한다. 주의가 아니라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주문형으로 렌더링되지 않는다.


셋째. 화면에 픽셀을 그리는 건 쉬운 부분이다. 어려운 건 정보 그 자체다. 완벽한 시뮬레이션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반드시 막대한 연산 비용이 따른다. 현대 실험 물리학이 탐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현실과 일치시키려 한다면, 양자 거동, 정밀 시계, 중력파 등 그 모든 복잡성을 빠짐없이 계산해내야 한다. 이건 그래픽의 문제가 아니다. 정보 밀도의 문제다. 비용을 아끼려고 구석구석을 생략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유일하게 중요한 것을 포기한 셈이다. ‘현실과 구별 불가능하다’는 명제 말이다.


마지막으로. ‘시뮬레이터를 시뮬레이션하는 건 누구인가’라는 무한 회귀 문제에 부딪힌다. 만약 ‘기저 현실’이 우리 같은 세계를 대량으로 돌릴 수 있다면, 그들 역시 그에 상응하는 물리적 비용을 치르고 있거나, 혹은 적당히 타협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적당히 타협하는 거라면 ‘현실과 구별 불가능하다’는 말은 그저 마케팅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우리 세계가 짊어진 것과 똑같은 종류의 물리적 짐을 지고 있는 세계다. 그 시점에서 당신은 시뮬레이션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진짜 우주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중 어느 것도 내 개인적인 독단이 아니다. 물리학 및 컴퓨터 과학의 주류 견해다. 검증할 수 없는 주장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간절히 과학이기를 바란다고 해서 저절로 과학이 되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말해, 지구 평면론자에게 중력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한 피로감을 느낀다.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미 결론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여전히 그 매혹적인 가설에 흔들리는 이들을 위해, 혹은 알면서도 그 달콤한 환상을 차마 놓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다.


혹자는 내게 부질없는 짓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맹신자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전능한 시뮬레이터’라는 핑계 뒤로 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논리가 막히면 슬그머니 물리학의 경기장을 떠나 반증 불가능한 철학의 영역으로 도망친다. 아무것도 검증될 수 없는 곳에서 믿음을 강요한다. 다른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이.


나는 그들을 개종시키려는 게 아니다. 그저 각자의 주장이 있어야 할 ‘제자리’를 찾아주려는 것이다. 형이상학이 되고 싶다면, 좋다. 가서 형이상학을 하라. 하지만 물리학의 영역에 무단으로 눌러앉아 과학인 척 연기할 자격은 없다.


적어도 나는, 거짓된 과학을 우리의 단단한 물리적 공간 밖으로 쫓아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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