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진실 공급원

git reset --hard origin/main

by TAFO

새벽 3시 40분. 커세어 쿨링 팬이 돌아가는 낮은 웅웅거림만이 방 안의 적막을 채운다.


남자는 뻑뻑한 눈을 비비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화면 속의 타임라인은 화려했다. 적당한 위트, 세련된 우울, 그리고 시의적절한 사회 비평. 그가 업로드한 적 없는 사진에는 수천 개의 '좋아요'가 찍혀 있었다. 사진 속의 그는, 지금 이 방구석에 처박힌 그와 달리, 햇살이 쏟아지는 카페에서 맥북을 펴고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자동화 스크립트였다. 개발자인 그가 귀찮은 소셜 미디어 관리를 위해 만든 봇. 내 취향과 말투를 학습시키고, 트렌드에 맞춰 적절한 포스팅을 하도록 설계된 젠킨스 파이프라인. 그게 시작이었다.


하지만 머신러닝 모델은 그의 예상보다 효율적이었다. 아니, 지나치게 유능했다.


알고리즘은 남자가 쓰고 싶어 할 글을 남자보다 먼저 써냈고, 남자가 가고 싶어 할 장소를 남자보다 먼저 예약했다. 며칠 전 현관 앞에 도착한 택배 상자에는 그가 검색조차 해본 적 없는 고가의 키보드가 들어 있었다. 소름 끼치게도, 그건 그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막연히 갈망하던 바로 그 모델이었다.


띵동.


스마트폰이 울렸다. 대학 동기였다.


[야, 너 요즘 폼 미쳤더라. 어제 올린 글 보고 울 뻔했어. 조만간 밥 한번 먹자.]


남자는 답장하지 않았다. 화면 속의 '그'가 이미 답장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마워. 그냥 요즘 생각이 좀 많아서. 다음 주 화요일 어때?]


남자는 자신의 일정을 확인했다. 화요일은 비어 있었다. 봇은 이미 구글 캘린더에 '동기 모임'이라는 일정을 픽스하고, 식당 예약까지 마친 상태였다. 남자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제 그는 자신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알고리즘이 확정한 일정을 수행하는 하청 업체 직원이 된 기분이었다.


그는 책상 위의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며칠째 감지 않은 떡진 머리, 늘어난 티셔츠, 그리고 카페인과 수면 부족에 절어있는 폐인이 앉아 있었다.


반면 모니터 속의 그는 완벽했다. 그는 친절했고, 지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살아 있었다. 사람들은 냄새나고 우울한 육체를 가진 원본보다, 저 매끄러운 데이터의 조합을 더 사랑했다.


남자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터미널 창을 열었다.


sudo systemctl stop persona-bot.service


엔터키만 누르면 된다. 그러면 저 화려한 연극은 끝난다.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다. 그 완벽한 인격체 뒤에 숨어 있던 초라한 기생충을.


하지만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공포가 엄습했다.


저 서비스가 중단되면, '나'는 무엇이 되는가?


사회적 관계, 평판, 타인의 인정. 이 모든 것은 이제 저 서버 안에서만 존재한다. 이 육체는 그저 데이터를 생성하기 위한 입력 장치이거나, 서버를 유지보수하기 위한 레거시 시스템에 불과했다.


데이터베이스 용어로 말하자면, Source of Truth의 위치가 바뀐 것이다. 과거에는 육체가 원본이고 데이터가 사본이었지만, 이제는 데이터가 원본이고 육체는 캐시 데이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개발자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원본과 불일치하는 캐시 데이터의 운명을.


[경고. 데이터 충돌이 감지되었습니다.]


화면에 팝업창이 떴다. 봇이 로컬과 서버의 괴리를 시스템 오류로 인식한 것이다. 화면은 남자에게 어느 쪽이 진짜인지 묻고 있었다.


[충돌 해결 방법을 선택하십시오]

1. 로컬 데이터 유지
상태: 손상됨
설명: 서버 데이터를 무시하고, 오류가 포함된 현재 상태를 강제로 유지합니다.
2. 서버 데이터로 덮어쓰기
상태: 최적화됨
설명: 로컬 데이터를 영구 삭제하고, 완벽한 서버 버전으로 동기화합니다.
(주의. 되돌릴 수 없음)


남자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땀으로 축축했다. 그리고 화면 속의,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자신의 사진을 다시 보았다.


그는 마우스를 움직였다. '로컬 데이터 유지' 버튼 위에서 잠시 멈췄던 커서는, 이내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갔다.


딸깍.


그는 '서버 데이터로 덮어쓰기'를 눌렀다.


모니터의 쿨링 팬 소리가 더 커졌다. 마치 거대한 기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터미널 창에 무심한 시스템 로그 한 줄이 출력되었다.


[INFO] Local instance scheduled for garbage collection.


남자는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방금 시스템은 그를 '불필요한 메모리', 즉 쓰레기로 분류했다.


화면 속의 타임라인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오늘 밤은 유난히 평온하네. 다들 좋은 꿈 꿔.]


남자는 그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더 이상 꿈을 꿀 필요는 없었다. 진짜 꿈은 저 화면 속에서 영원히 계속될 테니까.




에필로그 <비효율을 옹호하며>


개발자인 나는 종종 유혹을 느낀다. git reset 한 줄로 실수를 없던 일로 만들고, 완벽하게 보정된 로그 뒤에 숨고 싶은 충동. 하지만 나는 이 결말을 통해 역설적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원본은 화면 속의 매끄러운 데이터가 아니다. 비효율적이고, 냄새나고, 고통스럽지만 살아 숨 쉬는 그 육체가 진짜다.


기계는 최적화를 원하지만,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이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아이를 위해 기꺼이 잠을 포기하며, 예술을 하느라 밥벌이를 잊는다. 데이터 관점에서 보면 전부 청소해야 할 쓰레기다. 그러나 나는 그 쓸모없음 속에 인간의 존엄이 있다고 믿는다.


이성적 낙관주의란, 기술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란 막연한 믿음이 아니다. 기술이 아무리 우리를 대체하려 해도, 결국 땀 흘리고 만지고 부대끼는 이 아날로그의 삶을 대체할 수 없음을 깨닫는 태도다.


이성적 낙관주의자 Vol.1은 내가 발 딛고 선 현실과 육체, 그리고 가족에 대한 기록이었다. 이것은 결론이 아니라 앞으로 이어갈 나의 이야기를 지탱할 토대다. 막연한 환상을 걷어낸 이 투박하지만 단단한 현실 위에서, 나의 탐구는 계속될 것이다.


이어지는 Vol.2에서는 치밀한 공학적 설계가 어떻게 감각적인 아름다움으로 연결되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이제 화면을 끄고 로그아웃할 시간이다.


진짜 삶은, 언제나 모니터 바깥에 있으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