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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Dec 25. 2023

아파도 웃으니 좋다

유방암 표적 치료의 가벼운 이야기

유방암의 세가지 타입 중 허투 양성이다.

표적 치료제인 허셉틴과 보조 치료제를 맞으러 3주 간격으로 병원 외래로 간다.

주사 전용실에서 허벅지에 좌.우교대로 18번을 맞는다.

이번은 12번째로 오른쪽에 맞는 날이다.

보조치료제는 간호사가, 허셉틴 주사는 의사가 놓는다. 허셉틴 주사를 계속 전공의가 놓았는데 오늘은 전공의가 없어서 주치의 선생님이

직접 진료실에서 주사한다고 한다.


"이 주사가 아픈 건 아시죠?"

"네. 하지만 안 아프게 놔주세요."  말해놓고 왠지 쑥스럽다.

사실은 주사액을 천천히 주입시켜 달라는 말인데 아시려나.

살이 많은 곳에 놓는 것이 좋다며 허벅지 안쪽에 놓는다. 불안한 마음은 역시나다.

주삿바늘을 찌르는 날카로운 통증이 오고, 바늘을 찌른 곳에서부터 배꼽아래까지 순식간에 뻗쳐오는 통증에  

절로 흡~소리와 함께 호흡이 멈춰졌다.

"아, 천~ "하는데 다 됐다며 문지른다. 아, 문지름에 더 아프다. 3~4분에 걸쳐 천천히 주입해야 덜 아픈데.

전공의들도 다 다르다. 같은 허벅지라도 놓는 부위가 다르고, 대화를 유도하며 천천히 부드럽게 놓는 이가 있는가 하면, 좀 더 통증이 느껴지게 놓는 이도 있다. 그래도 이 정도로 아프지는 않았다.

허벅지 안쪽이 더 예민한 건지도 모르겠다. 주사 전용실로 내려왔다.

보조치료로, 혈관주사를 맞기 전에 알레르기 방지와 면역증진을 위한 주사 두 대를 배에 맞는다.

주사준비를 하며 간호사에게 하소연하듯 일렀다. 주치의 선생님한테 허셉틴을 맞는데 너무 아파서 혼이 났다고.

"안 아프게 놔달라 하시지요." 한다.

샘이 먼저, 이 주사가 아픈 거라고 하시더라 했더니 파안대소다.

"밑밥 깔았네, 밑밥 깔았어." 하며 웃겨 죽겠다는 듯이 계속 웃는다.

나도 같이 깔깔댔다.

주사를 놓아야 하는 간호사의 손이나, 주사를 받아들여야 하는 내 뱃살이 진동을 하여 잠시 쉬었다.

복부주사가 끝나고 혈관주사 차례다.

실패다. 노련해 보이지 않으니 아득하다. 또 몇 번을 찔러야 될까?

원래 약한 혈관이 잦은 주사에 숨는 것인지, 더 안 보여서 서로가 곤혹스럽다.

다행히 센스 있게 다른 간호사를 불렀다.

고생했는데, 다시 실패할까 봐 노련한 간호사를 불렀다는 것이다.

세 시간여 전에 채혈한 혈관 옆이 통통하고 매력적이어서 꽂았는데 안 됐다며 미안하다고 한다.

새로 온 간호사에게 말한다.

"샘이 아프게 놓았대, 밑밥을 깔았대, 하하~" 하고는 나에게 묻는다.

"비밀 아니지요?"

"그럼요. 이젠 전공의 샘이 놓을 때 아프다고 안 할 거예요."

"어머, 하하하~"


어렵기만 한 전문의 선생님이 더 아프게 놓았다는 사실이 그리 재미있는 것인가.

인간적인 모습으로 보이나 보다.

부실한 혈관에 통통한 매력을 느꼈다는 그 직업의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간호사의 해맑은 웃음에 동화되었나 보다

치료를 받으러 올 때마다 착잡하게 가라앉던 기분이 한바탕 웃고 나니 가볍고 산뜻하다.

재미있었던 치료의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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