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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Dec 30. 2023

과연 엄마같은 사랑이었을까

그래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성탄절이라고 캐럴이 울려퍼지고 실내도 예쁘게 꾸며졌다.

선물에 손녀의 이름을 적어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갖다 놓았다.

성탄절에 산타할아버지가 줄 선물이다.  

오래 전 우리 반 아이에게 줄 성탄절 선물로, 빨간 점퍼와 초콜릿을 사서 포장하며 즐거웠던 생각이 난다.

누가 주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저 받는 것이 좋은 아이였다.


토요일 수업이 있을 때이다. 토요일은  가까이에 있는 저수지로 산책을 하러 간다.

가로수가 잘 자란 2차선 도로를 걷는다.

저수지 주변에 있는 별장으로 가는 승용차만 가끔 지나갈 뿐 한적하고 편안한 길이다.

우리 반은 초등학교 1학년으로 10명이다.

발달장애 학생들로 발달 정도도 제각각이고 특성도 다양하다.

이동 능력만 봐도 뛰어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잘 못 걷거나 휠체어가 필요한 아이도 있다.

외부에서 교사 혼자 이동하기 어려워서 과정별로 모여 함께 간다.

 지금처럼 지원 인력이 없을 때여서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서로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로 보조를 맞추어 걷자니 '천천히 가, 빨리 와'라 외쳐가며 간다.     

도착지에서 아이들에게 줄 간식과 물, 휴지 등을 넣은 배낭을 메고 양손은 혼자 걷기 힘든 아이를 잡는다.  

한참 걷다 보니 영남이가 보이지 않는다. 뒤를 보니 몸을 좌우로 흔들고 잉잉 거리 따라오고 있다.      

선생님이 돌아보는 것을 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영남아, 빨리 와~"하고 간다.

잘 따라오나 싶어 슬쩍 뒤를 보니 느린 걸음으로 따라오고 있다.     

뒤돌아보니 또 주저앉는다. 빨리 오라고 재촉하고 다시 간다.     

잘 걸어오다 돌아보면 주저앉기를 반복하는 영남이를 보며 마음이 복잡해진다.     

가서 데려올까? 자립심이 없어질까? 습관처럼 될까?. 그래도 혼자 걸을 수 있으니 따라 오기를 바라며 계속 걷는다.     

아무래도 거리가 너무 떨어지는 것 같아, 우리반을 다른 반 선생님에게 맡겨 기다리게 하고 되돌아간다.     

돌아오는 것을 본 영남이가 다시 주저앉는다.

선생님이라는 말도 발음이 안된다. 훌쩍거리며 옹알이처럼 엄마~한다.

업고 와서 전체 다시 출발~   

          


영남이는 무연고자로 장애인 사회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다.      

코도 잘 흘리고 상고머리에 얼굴은 핼쑥하다.

몸이 약하니 교감 선생님이 매일 달걀을 삶아와 교무실에서 먹인다.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으며 우쭐해하는 모습에 모두가 웃는다.     

추석, 성탄절 등 명절에는 영남이에게 입힐 옷을 사러 시장에 간다.     

평소에도 시장에 갔을 때 예쁜 옷, 먹을 것을 산다.     

결혼도 안 했는데, 항상 생각하게 되는 영남이 때문에 엄마라도 되는 줄 알았다.

내 아이를 기르고 보니 어찌 감히 엄마의 마음이라 할 수 있겠나 싶지만, 그때는 정말 사랑하는 아이였다.          


무슨 버릇을 잘못들이게 된다고, 자립심을 길러야 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그리 외면했을까.

손잡고 가라, 업고 가라, 떼 부리며 주저앉을 때 가끔은 못 이기는 척 한 번 더 안아주고 업어줄 걸 그랬다.

그랬으면 아예 걷지 않고 계속 업어달라고만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엄마의 정이 필요한 어린아이에게, 관계로 맺는 심리적 안정을 주는 것이 더 우선일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어떤 것이 영남이를 더 행복하게 하는 일이었을까.

성장기인 데다 생활환경이 평범한 가정이 아님을 배려하지 않고 교육만을 앞세운 오류는 아니었는지.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여한 없이 행복했다 생각되는데도 나이 들어가는 것인가.

자꾸 미안한 생각들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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