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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Mar 12. 2024

흔적(1)

1940년대 초등학교 졸업사진

몇 년 전, 6남매가 고향에 사시는 큰 언니 댁에 모였다. 제일 맏이인 오빠의 바람이었다. 건강이 안 좋아진 탓인지 당신이 살아온 곳들을 둘러보고 싶어 하셔서 마련된 모임이었다. 어느덧 오빠의 나이가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형제들이 모이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2006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들을 꺼내 보았다. 사진, 앨범, 일기장, 글, 인터넷으로 주문해 드린 반찬의 평을 적은 메모지 등이다. 친필로 쓰여진 반찬 평 메모지는 아버지의 모습같아 보관해 둔 것이다. 주민등록증도 있다.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소풍 다녀가신 증표로 이만한 것이 있겠나 싶다.

 아버지의 추억 조각 들이다. 이제는 이 것들도 처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물건들도 줄이고 버리기를 해야 할 나이가 됐는데, 부모님 유품까지 남길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도 내 살아생전까지는 갖고 싶어 PDF 파일로 만들어 저장해 두었다. 일제강점기 때의 사진들이 많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그 시대의 모습들이다. 아버지께서 살아오신 길의 사진들이 우리나라 역사였음을 실감한다. 색이 누렇게 바래기는 했으나 매혹적인 자태의 여인 사진도 다. 처음 보는 순간 웬 여인, 혹시... 하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진 뒷면에 ‘배우 문예봉’이라는 메모가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1930년대 최고의 스타란다.

학생 단체사진들을 보면, 맨 앞줄은 널빤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은 앞에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모두, 하나 같이 굳은 표정이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것 같다. 당시 현장에는 정적만 흘렀을 것 같은 분위기다. 그 시대의 무거운 마음들이 보이는 듯하다. 사진들 중 아버지께서 교사 첫 발령을 받았다는  남원 이백초등학교 졸업사진도 몇 장 있었다. 벌써 74년 전 사진이라 빛이 바래 사람 모습도, 졸업 기념 문구도 희미하다. 이런 사진들을 아무 의미 없이 없앤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어딘가에 기념이 된다면 뜻있는 일이 될 터였다. 이 학교 역사 자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학교에 기증할까, 필요하기나 할까, 사진만 천덕꾸러기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여러 생각을 하며, 형제들과 의논하여 일단, 학교를 방문해 보기로 했다.          

학교를 찾아간 4월의 햇빛은 화사했다. 화단의 바위 옆에 태어날 때부터 할미라는 할미꽃이 어우러졌다. 수선화도 피어 있었다. 앙증맞은 아이의 조각도 서 있는 아담한 학교다. 운동장을 휘~ 둘러보던 오빠의 한 말씀, “여기서 내가 놀았네” 아버지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운동장에서 놀았단다. 여기에 오빠의 어릴 적 기억도 추억이 되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옛일을 생각하시는 듯 오빠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스쳤다.

교장실로 찾아가 상황 이야기를 하고 졸업사진을 내밀었다.

5회(1943년), 7회, 8회, 9회 등 4장이다. 과연, 학교에 필요한 것일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행히 생각 외로 반가워했다. 역대 졸업사진을 현관에 게시해 놓았는데, 마침, 우리가 가진 것 중 5회와 7회 졸업사진이 없다며 반기신. 현관에 '우리 학교의 졸업생 모습'이라는 역대 졸업사진들만 모아 인쇄한 게시판이 붙어 있었다. 8회 졸업생부터 80회까지였다.



졸업사진을 보니 학교의 역사 중 한 부분이 보인다. 졸업생 수가 적었다, 늘었다, 줄어든 것이다. 농촌 인구감소로 인한 학생 수 감소를 여기도 피해 갈 수 없나 보다. 그래도 역사를 소중히 하는 뿌리 깊은 학교이니, 이에 굴하지 않고 날로 빛나는 학교가 될 것이다.

사진 속에서 아버지 모습을 또렷이 알아볼 수 있었다. 여기에서 아버지를 뵙다니, 새삼 반갑고 감격스럽다. 멋진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계신다. 5회 졸업사진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떠꺼머리총각 모습이라면, 9회 때의 모습은 원숙미도 느껴지고 여유 있어 보이신다. 생전에 흰 구두와 하얀 바지, 감색 재킷 차림을 좋아하시더니, 사진 속 모습도 그대로다. 혹시 이때가 아버지의 화양연화였을까? 어딘가의 역사에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그 후 학교 홈피에 들어가 보았다. 졸업사진을 기증받았다는 소식으로 공지 사항에 올려져 있었다. 헛되지 않게 받아주신 교장선생님이 감사하다. 대개 역사 자료를 자료집으로 만들거나 보관하는 정도로 관리한다. 이 학교처럼 역대 80년의 졸업사진을 현관에 게시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인데, 반갑고 감사했다. 어려운 시대에 고단한 길을 걸어오신 아버지께 드리는 위로의 선물만 같았다. 여기에 와 보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계신 줄도 모르고 지냈을 것을, 유품이 소중하여 챙기다 보니 이런 뜻밖의 기쁨이 생겼다.

그때, 기증한 사진도 역대 졸업사진 게시판에 올려져 있을까 궁금하다. 아버지의 모습을 현생에서 뵙는 듯 찾아가 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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