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초등학교 재직 중에 한국전쟁을 맞았다. 정지아 님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나 조정래 님의 ‘태백산맥’ 소설과 같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아버지께서도 우여곡절 끝에 퇴직을 하시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이곳 오수에서 몇 년을 살았다고 한다. 언니들은 그 당시 살던 집을 알아보았다. 둘째 언니가 가까이 가서 보자고 하니 큰언니는 물러선다. 이 집에서 셋방을 살며, 너무도 많은 고생과 서러움을 받아서 보고 싶지 않다고 한다. 지난 일은 추억으로 남게 마련이건만, 옛 기억이 아직도 이리 큰 아픔으로 남아있다. 오랜 시간에도 삭지 않은 큰언니의 아픔이 그대로 내게로 왔다. 오빠와 언니들이 마을을 돌아보며 나누는 이야기들이 생소하기만 하다.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극한의 어려운 삶을 함께 살아낸 오빠와 언니들은 남매 이자 동시대를 살아온 동지들이다.
내내 궁금했던 일을 큰 언니에게 물었다. “나를 건져 낸 데가 어디 여?” 발걸음을 움직여 주변을 살폈다. “여기쯤 될 것 같은 데 없어진 것 같네.” 언니 말대로 주변 어디를 봐도 하천이 있었을 것 같지 않다. 시멘트 포장길과 가옥 몇 채와 밭으로 둘러져 있다. 아마도 그 하천은 복개되어 길이 된 것 같다. 물에 떠내려갔다 하니, 멀리 보이는 오수천 어디쯤인가 했는데, 마을 조그만 농수로 같은 곳이었나 보다. 그렇지, 그때 큰언니도 십 대에 불과한데, 큰 물이라면 구해 낼 수 있었겠는가.
큰언니가 전하는 이야기다.
내가 4살~5살 무렵, 헝겊 조각만 보이면 빨래한다고 냇가로 나갔단다. 늘 주의하고 지내는데, 잠시 안 보여 혹시나 하고 냇가로 나갔더니, 냇물에 뭔가 빨간 것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동동 떠내려 가고 있었다고. 급히 뛰어들어 건져 올리니 “푸우” 하더라는.
오래전, 이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 기억에 없으니 실감이 안 났다.그 당시 있었다는 하천은 흔적마저 없어졌지만, 떠내려가는 내가 보이는 듯하다. 그동안 언니에게 생명의 은인이라는 둥, 살려냈으니 책임지라는 둥의농담을 하곤 했지만 정작 진지하게 감사의 인사는 안 한 것 같다. “살려 줘서 고마워요” 이제 사, 진심을 담아 말을 건넨다. 언니는 누구든 그리했을 것이라며, 그 일이 액땜이 되어 오히려 더 오래 잘 살 거라고 등을 토닥인다. 순간 순탄치만은 않았던 삶에 위로받은 듯 가슴이 울컥한다. 살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죽을 목숨이었는데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라고 다독였던 기억이 난다. 큰 언니 덕분에 덤으로살고 있는 것이다. 가족의 살아온 흔적을 찾고 삶을 돌아보는 이 일이, 큰언니의 저 깊은 아픔까지도 들여다보고 위로하며마음이 편안해지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