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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 Klarblau Mar 13. 2024

덕업일치의 삶

좋아하는 것을 할 수밖에 없었어.


어려서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나의 직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기하다. 그때 80~90년대에 나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근데 직장인으로서의 방법은 아니었다.



아빠는 직장인이었고 (지금도 직장인...)

어렸을 땐 월급날 현금으로 돈봉투를 갖고 오셨던 기억도 나는데

왠지 난 그렇게 직장생활하며 매월 돈을 회사에서 받아오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도 생각난다. 그 돈봉투를 보며 시큰둥하게 속으로

'난 직장인 안 해야지. '

라고 생각했던 것. 다짐까지는 아닌데, 그저 직장 다니며 돈 버는 게 그리 하고 싶은 방법이 아니었다.

딱히 직장 다니는 게 나쁘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것도 아닌데

왜였을까.

 

아빠는 회사일에 대해 얘기해주지 않아서, 도대체 회사에서 뭘 하시는지 몰랐다.

아빠는 건축을 전공하고 건설회사를 다니셨는데,

집에 있는 뭔가 아빠의 예전 공부자료나 도구를 보면 흥미로워서 물어보면 설명해주지 않으셨다.

디자이너를 꿈꾸던 나로서는 그런 설계도구며 그림이 너무 알고 싶었는데 말이다.

... 아빠가 어려서부터 회사일이나 하다못해 학교에서 배운 걸 조금이라도 가르쳐주거나 뭐 던져서 얘기만 해 주셨어도 단언컨대 난 엄청 그 방면으로 인사이트를 얻어서 지금 작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암턴. 이상하게 난 고정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난 프리랜서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서 그런 걸 주워 들었을까.



디자이너를 꿈꿨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미대가 아닌 경영대로 진학했고

내 삶의 목표를 잃음으로써 다른 목표를 찾아 참 열심히 대학생활을 했다. 어디서 나의 마음을 안주할 수 있을까 내가 손발 닿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선 최고로 적극적으로 살았던 것 같다. 학교에 너무 잘 적응했고, 많은 사랑을 받았고, 외부에서 보면 참 즐거운 학창시절이었을것이다.

하지만 내 내면에서는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되었고, 디자인이나 만들기에 대한 답답함과 로망, 동경 같은 것이 생겼고, 그렇게 가슴에 한이 쌓여갔다. 자퇴도 여러 번 생각했고, 휴학하면서 디자인학원을 다녀보기도 했다. 결국 졸업은 했지만

내가 경영학과를 졸업해서 어떤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사회 선배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는 없다! 고 하였다.

하고 싶은 것은 취미로 해야 한다며

심지어

하고 싶은 것이 일이 되면 일이 싫어지고, 그 좋아하던 것이 싫어진다는 조언도 여기저기서 꽤나 들었다.


지금은 창업이나 1인기업, n잡러 등의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덕업일치라는 용어도 누구나 알지만

그때엔, 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도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내 주변 대학 동기나 선배들은 모두 취업이 목표였다.


분명 그 당시에도 사업가가 있었고 자영업자 있었을 텐데 자기 하고 싶은 걸 찾아 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엔 없었다. 혹은 내가 몰랐던가.


그렇다면 나에게 조언을 해 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않는 것에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들이고 살고 있는 것이었는데,

나는 내가 그렇게 산다는 게 상상이 안 갔다.



결국 경영대 졸업 후 독일미대 유학을 했다.

어학, 학사, 석사 졸업 후 일을 조금 하는 그 10년은 내 인생의 최고 파라다이스였다. 몸이 아파도, 엄청난 행정과 서류들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했어도, 거기에선 내가 좋아하는 것이 학교 수업 듣는 것이었고, 학교 공부가 곧 놀이였다. 외국문물을 겪으며 디자이너로서 펼칠 무대들을 알아가는 것이 하루하루 즐거웠고, 그래서 생기는 고생은 낙이었다.


졸업 후 취직을 할지에 대한 고민 때문에 학생신분일 때에 프락티쿰 (Praktikum, 한국에서는 인턴제도와 유사하다.)을 많이 했다. 웬만한 다른 독일인들보다, 외국인들보다 매우 많이 한 편이다. 거의 방학 때마다 했고 심지어 한 학기 혹은 일 년을 휴학하며 했다.  

학생 비자가 없으면 취직이 안되면 비자발급이 안되니, 학생신분의 기회를 최대한 누리며 다양한 실무 경험을 하고자 한 것이다. 그 나라는 학생이 실무 현장에 참여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다양한 디자인 회사 경험을 하며 졸업 후 취직을 할지, 프리랜서로 나갈지를 결정하고자 했다. 가능하다면 수많은 선배들의 조언대로 직장생활에 내가 만족할 수 있다면 그러고자 했기에, 직장생활이 과연 나에게 맞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라기 보다는 사실 현장이 더 재밌었다. 맛들렸다. 학교는 뭔가 학기 수업하며 조사하고 이론 찾고 연구하고 논문쓰는 것 같고, 회사는 당장 실제적용 되고 학생이니까 실수해도 되니  얼마나 좋아!)


그런데 여러 번의 프락티쿰을 통하여 나는, 나 같은 아이가 직장인이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하루 일과를 스스로 짜고 실행해왔고, 내 몸과 정신이 최고로 발휘될 때에 그에 맞는 활동을 하는 생활을 해 왔고, 필요한 것은 혼자 잘 뚫고 나가는 편이었는데

직장에서는 그런 나의 특징이 발휘되지 않아도 (혹은 가끔만 발휘되어도) 되었고, 나의 그동안 쌓아온 습관이 아까웠다.


학교 다닐 때엔 하루하루가 설레고 잠자기 싫어서 아침에 눈뜨면 벌떡 일어나 움직이고 밥 먹고 막 내 할 일 하는 하루를 보냈었다. 그런데 프락티쿰 때에는 (나도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약간 충격이었는데) 내가 원해서 지원한 회사임에도 아침에 조금만 더 자고 싶어서 알람을 누르고 누르고 그런 내가 된 것이다. 그리곤 피곤(?)한 내 몸을 끌고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는 내가 된 것이다...


처음 그런 아침을 맞이하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그리고 직장에서는 내가 배고플 때, 쉬고 싶을 때, 내가 개인업무를 봐야 할 때가 자유롭지 않았다. 거기에 나를 몇 달 적응시키면 되었을 수도 있지만

...

학교 다닐 때엔 방에서 내가 원하는 때 먹고 자고 일하는 것이 자유로웠으니.


그래서 난 취직하지 말고 프리랜서로 자리 잡아야 하겠다는 결론을 내고 졸업을 했다.



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일을 하고 있다. (뭐 다른 걸 하는 게 없으니 이게 본업이다.)


졸업 전에는,

내가 프리랜서 할 거라고 하자 몇몇 지인들은 그래도 직장 다니면서 사회를 좀 경험하고 돈도 벌고 인맥도 쌓은 후 프리랜서 하는 것을 강력 권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프리랜서 하는 지금도, 다른 부업으로 돈을 벌라는 조언도 듣는다.


돈을 싫어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지만, 나는 내가 돈을 위해 다른 걸 하며 사는 걸 상상할 수가 없다.

단 며칠을 그렇게 있어도 그렇게 마음이 힘들고 불안하고 집중을 못하는,

돈이 당장 들어오지 않아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 그저 숨만 쉬고 있어도 행복하고 평안하다.

그리고 사실 그러다보면 굶지않게 관련된 방향으로 수입은 들어온다.


글쎄... 근데 아직 내가 덜 살아보아서 그런가

돈이 많아야 행복해 보이지는 않고, 오히려 돈이 많아도 맨날 죽을상을 하고 입에 죽겠다는 말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자기 삶을 원하는 대로 이루어가는 사람이 행복해 보이고 그에 따른 수입은 적절히 따라 보이고,

그러니 나도 이렇게 살다보면 계속 이걸로 내 삶을 다져갈 수 있을 것 같다.

느리지만 방향은 어쨌든 가고 있고, 다행히 큰 지출이 아직 없었고, 평소에도 꼭 필요한 것만 사는 편이라 기본지출 외에는 지출이 거의 없다. 심지어 웬만해서는 내가 만들어 쓰는 편이다...

아직까지는 내가 더 살아봐야겠지만

이렇게 살아가면 될 것 같다.


어떤 이들은 내게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고 응원한다고 말해주시기도 하는데,

나는 이 길이 제일 쉽고, 소위 다른 분들이 쉽다고 하는 길이 어렵다. 좀 시도해 봤는데 괴롭고 못 쫓아가겠다.




점점 많은 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본업인 삶을 살아가고 있고

또 그것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자 하고 있는 것 같다.


소위 그런 덕업일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아마도 아마도

그렇게 사는 게 제일 쉬우니까 그렇게 사는 걸 거다.


자신의 모습과 다르게 살면 정말 괴롭고 힘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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