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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Jul 08. 2021

나는 누구인가요?


 좋아하는 치료법 중에 수용전념치료라는 것이 있다. 이 치료의 핵심 개념은 '수용',  탈융합', '심리적 유연함', 그리고 '가치' 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생각은 생각일 뿐이니 나와 생각의 거리를 두고, 이를 고치려 들지 않고 관찰하고 수용하며, 내 가치에 맞는 방향으로 행동을 하며 나아가자는 개념이다. 이 치료에서는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보다 큰 존재이다" 라고 말한다.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되었다는 기존의 정신분석적 개념화를 벗어나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고, 우리는 언어와 이야기가 우리를 규정하는 것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이 치료를 접하고 공부했을 때 나는 굉장한 해방감을 느꼈다.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든다’ 라는 개념에 약간의 반항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의지와 결정론을 둘러싼 논쟁과도 유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면서도 이야기가 전부라는 말에는 저항감이 든다. 그래서 생각과 이야기에 너무 많은 영향을 받는 환자들에게 이 치료를 적용하면 그들 역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수용전념치료는 메뉴얼화 되어있다기보다 이 치료에서 다루는 개념들을 치료자가 충분히 숙지하고 은유를 이용하여 그것을 천천히 전달해서, 내담자에게 어떤 깨달음을 얻어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내가 충분히 숙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도했기 때문에 적절하게 그 의미를 전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 개념을 적용했을 때, 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들은 이야기는 “근데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됐는지 알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기가 힘들다.” 였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의아하기도 했고 ‘왜’ 를 안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텐데요, 라는 마음도 들었다. 수용전념치료에서는 오히려 왜, 를 너무 오래 생각하는 것이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 역시 평생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탐구하며 살아왔다. 정신치료를 받으며 나의 과거를 탐색하고 매주 눈물을 흘리며 대충 나에 대한 가닥이 잡아가니 이제는 더 이상 ‘왜’를 묻기보단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어진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없이 자신을 탐구하며 괴로워하는 과정 끝에 이야기와 나를 분리하고 수용하며 앞으로 나아갈 순 있지만, 처음부터 그 욕망 자체를 내려놓으라고 할 순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너무나 당연한 욕망이기에. 자신을 알고자 하는 욕망, 아마 거기서 모든 이야기와 예술이 시작되겠지. 아주 역사가 깊은 이 욕망을 처음부터 내려놓으라고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또 고민이 깊어졌다. 늪에 빠져있는 사람을 구해내는 사다리도 필요하지만, 그 늪의 깊이는 어떤지, 어떤 생물들이 있는지 알아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나를 탐색하고 이야기를 만들되 그 이야기에 함몰되지 않는 균형점 어딘가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고,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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