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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나무 Feb 03. 2022

자본주의가 문제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돈 주면 사람도 죽여주는 세상! 

유전무죄 무전유죄!




맞다. 그게 자본주의 혹은 자유시장경제라고 불리는 사회체제의 부정할 수 없는 일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본주의는 실패했다, 자본주의를 뜯어고쳐야 한다, 수정자본주의가 필요하다, 라고 열심히 외친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GDP가 오르면 어김없이 자살률이 따라오르고, 그 자살자들을 마치 국가에서 관리해야 할 짐짝이나 낙오자취급해야만 편안하게 이득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적인 특성때문에 ‘소수 낙오자의 목숨은 사라져도 알 바 아니다’라는 무의식을 갖게 되고, 결국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철학으로 개인들이 중무장하게 되는 게 자본주의의 불문율이다. 그런 관점에서 자본주의가 실패했다는 말도 옳고,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는 말도 옳다. 좋은 방향으로 수정할 여지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자본주의가 현재까지 세상에 존재했던 체제중에서 ‘그나마 가장 나았다’라는 점이다. 그나마 가장 많은 사람을 절대적인 빈곤으로부터 건져냈고, 그나마 가장 높은 수준의 자유를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선사했다. 누군가가 번뜩이는 기지로 자본주의보다 더 훌륭한 제도를 고안해 낼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헌법이라는 기본적인 원칙 아래 오랜기간 쌓아온 법체계인데, 그걸 임의로 이곳 저곳 뜯어고친다면 엉뚱한 곳에서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크다. 미세한 개선은 가능해도 혁신적인 개선은 힘들다는 얘기다. 미세한 개선을 쌓아가는 일이 혁신적인 개선을 위한 유일한 길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본주의가 ‘그나마 가장 나았던’ 이유가 법체계에 있지 않다는 걸 아는 일이다. 현대인들이 ‘자본주의’ 하면 떠올리는 자본주의의 상징 미국, 미국이 공화국으로서 독립선언을 하기 한참 전부터 영국과 유럽의 청교도들은 이미 대거 아메리카로 이주해 살았었다. (조지 워싱턴 이전에 8명의 전임 대통령이 있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리고 정착 초기 미국 민초들이 삶을 영위했던 방식은 철저히 청교도적인 원칙, 즉 성경의 가르침에 의거했다. 마을마다 있는 교회가 마을회관이자 의회였다. 분쟁이 생기면 성경의 가치에 따라 조정되었고 그 과정에서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라는 개념이 정착되었다. 인간은 신의 형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천부인권’이라는 게 모든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망망대해를 건넌 청교도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공동체를 건설했고, 천부인권사상은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에 취임할 때쯤에는 ‘당연히 헌법에 넣어야만 하는 가치’가 되어 있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누구든지 그 자리에서 끌려 내려와야 했을 것이다. 심지어 기독교인도 아니었던 조지 워싱턴은 국민들 보는 눈이 무서워 일요일마다 억지로 교회에 참석했다가 중간에 빠져나가곤 했다. 




가끔 미국을 프리메이슨이 세운 나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반만 맞는 말이다. 미국은 청교도 민초들에 의해 세워졌고 자금력이 있는 프리메이슨들에 의해 ‘기망에 의해 강탈’되었다. 그리고 프리메이슨들은 권력을 활용해 인디언들을 학살했다. 그래놓고 청교도들이 인디언을 학살했다고 뒤집어씌웠다. 민초에 불과한 청교도들이 어떻게 인디언을 학살하나? 개척해서 먹고 살기도 바쁘고 군대도 없는데. 행정부와 군대는 프리메이슨들의 것이었다. 




마치 비행기를 납치하듯 청교도들에 의해 형성된 미국이란 나라의 조종석을 꿰찬 프리메이슨들은 자신들의 진짜 종교와 사상을 숨기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척 해야만 했다. 워싱턴의 의회를 비롯한 온갖 관공서 및 천주교 성당들에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 바빌론의 신들을 몰래 그려넣고 조각해 넣으면서도 겉으로만은 독실한 기독교인인 척 살아야만 했다. 프리메이슨들은 그렇게 본인들의 신앙을 거짓말로 꾸며대지 않고는 도저히 청교도 정신으로 가득한 미국을 장악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현재까지도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청교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나라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15%의 사람들이 ‘신앙’이라고 답하는 유일한 나라다.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돈이 최고라고 꼽았던 그 설문조사 맞다.)  비틀즈 시절에 ‘뉴에이지’와 ‘히피’가 휩쓸고 간 이후로 마약 중독과 범죄가 급증하고 무신론자가 급격하게 늘었지만 여전히 15%는 언제 누가 물어도 자신은 신앙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답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국민의 50% 이상이 종교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신앙이 첫번째라고 답한 사람은 1%였다. 그래서 한국에는 천부인권사상이 없다. 천부인권사상은 ‘어떠한 경우에도’ 신이 부여한 인간의 고유한 권리를 다른 인간이 빼앗을 수 없다는 사상인데, 신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돈이 다른 말을 한다면 한국사람의 99%는 돈의 말을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는 천부인권이 없다고 보면 맞다. 미국에는 15% 가량의 천부인권이 남아있다. (사람수로 하면 대략 5천만 명. 대한민국은 50만 명. 미국이 세상의 천부인권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천부인권사상은 인류의 역사를 뒤바꿔놓았다. 물론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이고 미국이라고 모든 사람이 성경을 믿는 것은 아니었기에 인권과 관련한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시절 동족을 노예로 삼아 멍석말이로 때려죽이고, 도망치면 추노꾼을 시켜서 잡아오고, 십대 초반의 여종을 마음대로 강간하던 조선에 비하면 천부인권 사상은 그 자체로 경천동지할 혁명적 사상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공자왈 맹자왈 찾는 소위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인간’에 노비와 오랑캐는 포함되지 않았기에 동양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천부인권을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이해하지 못한다. 방해되는 사람은 노비로 만들거나 오랑캐로 몰아버리면 죽여도 되기 때문이다. 




천부인권사상이 없는 자본주의는 결국 또다른 형태의 봉건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에서 주는 벼슬이나 땅의 소유권, 핏줄 등에 의해 정해지던 것이 돈이라는 기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이다. 천부인권이 있는 동안에는 돈이 공정하게 순환할 수 있지만 시간이 가면서 사람들이 신이나 양심보다 돈을 더 숭배하게 되면 결국 담합과 이면합의가 횡행하게 되고 결국 카르텔이 형성된다.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들의 카르텔처럼 돈의 카르텔이 형성되고 힘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게 된다. 엘시티, 조국사모펀드, 위안부모금, 대장동 등 카르텔의 사업과 관계된 사람들의 목숨이 어떻게 취급되는지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도 자본주의니 공산주의니 들먹이면서 제도가 문제고 권력자가 문제라는 사람들은 양심이 없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들이다. 문제는 천부인권이 사라졌다는 것, 아니 대한민국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한 번도 천부인권이 있어본 적이 없다는 것인데 말이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집단이주했던 청교도들이 없었다면 현재의 자본주의도 없었다. 있더라도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소유재산에 따라 투표권을 배정받았을 수도 있다. 마치 주식처럼. 그 안에 천부인권사상이 없기 때문이다. 천부인권은 신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 모든 것을 잃어도 신앙만은 잃을 수 없다는 확고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 바탕위에 미국식 자본주의가 꽃을 피웠다. 그리고 돈이 넘쳐흘러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감에 따라 미국도 병들어갔다. 악마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이 85%가 되었고, 15%의 천부인권만이 남아있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엔 1%정도의 천부인권밖에는 없다. 그러니 세상 그 어떤 제도를 채택해도 답이 없다. 남들에게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는 사람은 걸레조각 취급을 받을 것이고 남들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은 이득을 줄 동안만은 적당히 자부심과 쾌락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단물이 나오는 동안은 띄워줄 테니까. 그러다 세월이 흘러 어느 순간 아무에게도 이득이 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면 용도폐기될 것이다. 그게 전부다. 천부인권이 없는 나라에서 인간의 가치는 그게 전부다. 




그래서 우리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일 첫번째가 ‘신을 믿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필연적인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신이 없는데 천부인권을 누가 줄 수 있나. 돈이 줄 수 있나? 언제든지 바꾸면 그만인 법조문이 줄 수 있나? 천부인권은 국민 개개인의 마음속에 있어야만 하고, 그러려먼 사람들의 마음은 신에 대한 믿음 안에 있어야만 한다. 개인의 마음속에서 천부인권이 사라지는 순간 이미 이 세상의 천부인권은 그림자만 남는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미 천부인권은 없다. 단지 후환이 두려워서 남의 인권을 존중하는 척—내가 널 안 건드렸으니 공평하게 너도 나 건들지 마 건들면 나쁜 사람이야—하거나 딱히 남의 인권을 크게 침해할 힘이 없어서 착한 사람인 척 하고 있을 뿐이다. 상대방의 고유한 권리가 하늘에서 왔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답은 미국의 경우 15%, 한국은 1%다. 매일 100명의 사람을 만나면 그 중에서 딱 한 명만이 당신의 인권이 하늘에서 부여받았다고 생각한다. 이쯤되면 바보라도 소위 ‘자본주의의 문제’가 뭔지 알아차려야 정상이다. 주사맞고 죽어도 개값 2만원 받는 게 고작인 이유도 천부인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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