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반듯이 누워 있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아프지도, 즐겁지도 않은, 그저 자는 듯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이마가 조금 창백하고 귀가 보라색인 것을 빼면 안색이 특별히 나쁜 것도 아니었다.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가 빳빳한 삼베옷을 입고 차가운 스테인레스 판넬 위에 그렇게 누워 있었다.
깨끗한 속옷을 입혀 드리고 예쁘게 단장을 해드렸습니다, 유족분들은 고인분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시신을 직접 염했다는 중년의 남자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울음들이 터졌다. 할머니의 유일한 딸인 고모와, 할머니에게 호된 시집살이를 한 어머니의 울음이었다. 고생하셨어요, 어머니, 하고 시신의 손을 붙드는 아버지의 마지막 한 마디와 함께 아들 삼형제의 눈에도 소리없이 물기가 어렸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사랑했던 사람의 시신을 똑바로 대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할아버지의 임종은 너무 어려서 기억이 또렷하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촌동생이 스물두 살의 나이로 뉴질랜드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에는 그 잘난 직장에를 나가느라 건너가지 못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엔 늦게 도착해서 입관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선지 처음 본, 죽은,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은 비현실적이었다. 그냥 자고 있는 것 같은데, 당장이라도 흔들어 깨우면 눈을 뜰 것만 같은데, 비어 있는 저 몸에 다시 영혼만 쏙 하고 들어가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날 것만 같은데.
육신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무언가가 비어 있었다. 몸뚱이를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없었다. 그 명백한 빈 자리가 멀쩡해 보이는 육신 안으로 덩그러니 존재하고 있었다. 저 빈 몸뚱이에 다시 영혼을 불어넣어 일으킬 수 있는 자가 바로 신이구나, 그것이 모든 기적 중에 가장 신비로운, 기적 중의 기적이구나. 절절한 깨달음이 전신을 휘감았다. 예수가 죽은 사람을 다시 일으켰다는 기록을 읽은 적이 있지만, 그게 대단한 일인 줄 몰랐다. 남의 가족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게 세상에서 가장 대단하고 위대한 일임을 미처 알지 못했다. 로또 당첨 번호를 미리 알려주는 기적이 대단한 줄만 알았지, 비어버린 육신에 다시 영혼을 불어넣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임을 나는 몰랐다.
우리 할머니, 어렸을 때 할머니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비누방울을 불었던 것처럼 그렇게 후 하고 무언가를 불어넣으면 금방이라도 다시 눈을 뜰 것만 같은데, 그게 불가능하구나. 그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구나. 죽는다는 게, 다시 일어날 수 없다는 게.
할머니의 시신을 바라보며, 저 상태가 우리 모두의 미래임을 곰곰이 새겼다. 오는 데 순서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 없다는 말처럼, 삼십 년 뒤일지 삼 년 뒤일지 우리는 모른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죽음은 모든 현실 가운데 가장 분명한 현실이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출신학교도, 직업도, 재산도, 명예도, 권력도 아님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스테인레스 판넬 위에 삼베옷을 입고 누워 있는 시신들에게 그런 건 아무런 의미도 변별력도 갖지 못하니까. 신문에 매일 대문짝만하게 얼굴이 실리고, 군중을 벌떼처럼 몰고 다니고, 자가용 비행기를 몰고 다닌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 것들 모두가 결국엔 초등부 축구시합만도 못한 것들이 아닌가. 오로지 ‘곧 닥칠 나의 죽음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느냐’ 만이 유일한 인생의 화두임을 할머니는 지난 삼일 동안 나에게 분명히 가르쳐주고 그렇게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