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최 Sep 06. 2022

하드보일드 꿈의 해석

#앤솔로진 6호 투고글

생리 기간이 다가오면 예지몽을 꾼다. 대개 당혹스러운 꿈이다. 배경 공간은 주로 화장실. 예를 들면 이렇다.

지진인지 전쟁인지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모두 안전한 곳을 찾아 피신한다. 나도 어딘가로 피신하려 우왕좌왕하다가 왜인지 요의를 느껴 공중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럴 때면 또 하필 화장실인가 싶은 기분이 든다. 화장실도 이미 인산인해다.


난 무언가 천신만고의 과정 끝에 간신히 빈칸을 찾아 들어가지만 문이 잠기지 않는다. 늘 그런 전개다. 내가 힘겹게 찾아 들어간 화장실의 문은 절대로 잠기지도, 닫히지도 않는다. 계속해서 벌컥벌컥 열리거나 위가 훤히 뚫려 있어서 볼일을 보는 내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무슨 짓을 해도 나는 볼일을 보는 숭한 내 모습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내 소화기관에서는 영양분을 흡수하고 남은 찌꺼기를 내보내려 아우성을 친다. 나는 변기에 쪼그려 앉아 배설하는 치욕적인 모습을 인산인해를 이루는 화장실의 모두에게 목격당한다. 간간이 나를 비웃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수치심을 느낀다. 난 바들바들 손을 뻗어 간당간당한 화장실 문고리를 잡으려 애쓰거나, 어딘가에 매달려 하늘하늘 휘날리는 천 귀퉁이를 잡아당겨 칸막이를 치려 안간힘을 쓴다. 물론 어느 것 하나 손에 닿지 않고 어떤 시도도 성공하지 못한다. 내 몸짓은 궁지에 몰린 작고 초라한 존재의 사투로 귀결된다. 그렇게 나의 가장 내밀하고 추한 모습과 내 속에서 나오는 나만의 분신(…)은 길가에 놓인 광고판처럼 누구나 관람할 수 있는 공공의 풍경이 된다.


생리 기간을 앞두고 꾸는 꿈이 다 이 모양이다. 이 고귀한 지면에 차마 적을 수 없는 참혹한 꿈들도 있다. 꿈에서 깨고 나면 일단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꿈속에서 느낀 창피와 치욕과 굴욕감의 콜라보레이션이 불쾌한 잔상으로 머문다. 그날의 아침은 수치심 요정이 되어 찝찝하게 시작된다. 아무리 잠시라도 명백한 고역이다. 그러고 나면 며칠 뒤 생리가 시작된다.


내 월경신은 당최 왜 이런 기괴한 예고장을 보내시는가.


꿈의 기억이 그렇듯 꿈속에서 느낀 감정의 여운도 금세 휘발된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그런 망측한 꿈도 꾸었더랬지 그랬었었지 하게 되고, 더 지나면 그런 꿈을 꾸었다는 기억조차 휘발된다. 프로이트가 내 꿈 이야기를 들었다면 흥미로워했을까. 오늘처럼 글감으로 써먹는 날—이 올 줄은 몰랐지만—에는 그 꿈이 못내 기특하기도 하다만.


월경신이시여, 그래도 좀 고상하고 우아한 꿈으로 부탁드립니다. 깬 직후엔 오만 게 다 몰려온다고요.


내 무의식은 생리를 수치심으로 표상한다. 늘 남에게 들킬까봐 전전긍긍해온, 생리하는 몸의 기구한 역사가 꿈에서 역으로 재현된다. 까발려진 객체가 자기 모습을 가리려 애쓰는, 그러나 어떻게 해도 까발려진 채 들켜버리는 숭한 미장센으로.



어릴 적 우리 집 화장실에는 휴지통이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 4~5학년 때쯤 생리를 시작했는데 화장실에서 늘 생리대 처치가 곤란했다. 난 쓰고 난 생리대를 휴지로 돌돌 감싸 옷 주머니에 넣거나 손에 쥐고 나와 부엌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 화장실에서 나와 부엌까지 가는 동안 손에 들린 뭉치를 아빠나 남동생이 볼까 봐 종종대며 걸었다. 마치 화장실에서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않은 양 말이다. 고등학교 땐가 대학교 때 참다못해 휴지통을 사서 화장실에 두었는데 얼마 안 가 치워졌다. 화장실에 휴지통을 놓으면 집안일이 하나 늘어나는 탓이었다. 나는 굴하지 않고 다시 휴지통을 놓았고, 이후 내가 자취하기 전까지 휴지통은 거기 그대로 있었다. 난 비로소 안전한 기분으로 생리대를 처리하고 경쾌하고 당당하게 화장실을 나올 수 있었다. 오늘날 생리 예지몽 속에서 문고리를 잡기 위해 바들거리는 손짓은 그 시절 화장실에서 나와 생리대 뭉치를 버리러 부엌으로 가던 종종걸음과 닮아 있다.


그간 21세기가 되었고 나는 혼자 사는 독신 생활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생리 기간이면 잠자는 사이 피가 흘러나와 이불을 더럽힐까 걱정한다. 일반 생리대 외에 탐폰, 생리컵, 생리팬티 등 다양한 제품이 있지만 어느 것도 완벽하게 안전하진 않다. 탐폰은 썩 괜찮은 도구이지만 컨디션에 따라 끼워 넣을 때 통증이 복불복이고, 생리혈을 흡수해 부풀면 아랫배가 당긴다. 생리컵은 실리콘 재질의 컵을 접어서 밀어 넣는 것도 힘겹거니와 질 안에 들어가서 탱 하며 펴질 것 같은 공포가 어마어마하다. 인터넷에 간증글이 넘쳐나고 실제 사용해본 친구도 탱 하며 펴지지 않는다 했지만, 난 어느 분노의 사용후기를 본 뒤 마음을 접었다. 그는 공중화장실에서 생리컵을 빼다 컵이 튕겨서 피가 사방으로 튀는 바람에 칸 안에서 홀로 피의 축제를 즐겼다고 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생리팬티는 세상에 태어날 이유가 없었던 실패작이다. 팬티에 내장된 스펀지가 생리혈을 흡수해서 생리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제품인데, 이는 하루 종일 피에 젖은 스펀지를 입고 다녀야 한다는 소리다. 입는 내내 축축한 감촉이 당신의 기분을 더럽게 만들 것이다. 일회용 생리대를 대체할 장점이란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것인데, 사용자가 느낄 위축감으로 인해 떨어지는 삶의 질에 비하면 감수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요즘엔 기저귀처럼 입는 생리대도 나오던데 가격이 내 예지몽만큼이나 하드코어하다.


Y존의 굴곡을 감춰주는 인체공학적 레깅스랄지 첨단 기기와 결합한 스포츠용품 따위는 많아도 생리 부문은 여전히 척박하고 생리대 시국은 불완전하다. 완벽한 생리대란 게 과연 가능하긴 할까. 애초 인간의 몸은 끊임없이 분비되는 노폐물을 계속해서 씻어내며 유지되는 물건이고, 유독 여성의 몸은 생식 메커니즘으로 복잡하게 돌아가는 신체인 것을. 생리란 이토록 어려운 인류 보편의 난제다. 별 새삼스럽지도 않은 그 명제를 일깨워주려 내 월경신은 매번 정신 번쩍 드는 하드보일드 꿈으로 경종을 울려주시나 보다.


어쩌겠는가. 그분의 뜻이 정 그러하시다면야. 그저 자기 전에 화장실을 충분히 다녀오는 수밖에. 〈아기상어〉 플레이리스트라도 틀어놓고 무의식에 때려박으며 잠을 청할 수밖에.


작가의 이전글 고도의 왈츠 #6/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