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입제도는 해방 이후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계속해서 변천되어 왔으나 발전적인 변화라기보다는 그때마다 집중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임시방편적이고 번복적인 변화였다. 대학의 발전과 자율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을 때는 대학 본고사제 위주로, 공공성에 대한 요구가 커질 때는 국가수준의 일제고사 형태의 시험 위주로 대학입시가 시행되었다. 그러다가 2008년부터 수능 등급제와 함께 현재는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불리는 입학사정제가 도입되었고 그 이후로도 대입에 관한 크고 작은 변화를 통해 현재 대학입시는 크게 내신, 수능, 논술의 삼원구조가 되었다.
내신, 수능, 논술은 각각 고등학교, 국가수준, 대학에서의 평가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3가지의 시험이 서로 유기적이지 않아 학생들은 대입 준비를 통해 건설적으로 실력을 높이고 성장하기보다는 입시 전략을 짜고 자신한테 유리한 전형에 집중하게 되고 이는 고등학교 교육의 비정상화를 초래한다. 수능을 통해 대학에 가기로 정한 학생들은 학교에서의 수업시간을 오히려 대입에 방해되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고3 교실에서는 성실히 수업하는 선생님보다는 자습시간을 주는 선생님을 좋아한다. 수능 준비보다는 내신 경쟁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학생은 일부러 교육환경이 좋지 않은 학교로 전학을 가는 현상도 발생한다. 그리고 대학 논술고사의 경우 거의 대부분 사교육을 통해 준비한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이들의 교육 정책의 키워드는 '공정성'이라고 나타나고 있다(조선일보, 2021.12.6.보도). 그리고 공정성의 가장 한가운데에 대입 공정성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충분한 연구와 숙의에 의한 변화라기보다는 조국사태 등 최근 사회적으로 공정성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에 단순히 이러한 기조를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는 고교학점제의 전면 시행, 즉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다양화와는 대치되는 역행적인 대입 정책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 근대교육의 70여년의 역사 동안 대입 문제는 '교육'이라는 키워드 하에서 항상 가장 뜨거운 감자였음에도 여전히 식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행 입시제도는 한편으로 미국의 대학 학생 선발 방법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말도 자체가 SAT(Scholastic Aptitude test)'를 그대로 번역한 말이고(정진곤, 2005) 2002년, 2008년에 거쳐 봉사활동, 특기적성, 리더십 등 다양한 요소들을 대입에 고려하기 시작한 것도 미국의 입학사정제를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방식을 주로 도입했음에도 미국과 우리나라의 대학 학생선발의 원칙은 많은 차이들을 보이고 있는데 이 차이들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미국에서는 연방정부가 대학입시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 대학 전체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입시 방안이라는 것은 없고 대학마다 독자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의 입시 방침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매년 2년 앞서 '대학입학전형기본사항'을 발표한다. 2019년도에 발표한 '2022학년도 대학입학전형기본사항'에서는 1) 수시-학생부, 정시-수능 위주의 간소화 기조 유지, 2) 공정한 학생부종합전형 운영을 위한 다수 평가 의무화, 3) 대학별 공정성 관련 위원회에 외부위원 참여, 4) 대학별 적성고사 폐지, 5) 교사추천서 폐지를 통한 제출서류 간소화를 제시하고 있다. 모두 간소화와 공정성 강화에 대한 내용이다. 그리고 2023, 2024학년도 대학입학전형기본사항에서도 일관성 확보를 위해 이와 같은 기조를 유지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대학 입시가 대학 자율이 되느냐, 전국적으로 통일시키느냐는 무엇이 좋고 나쁘냐의 문제는 아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주요 선진국들은 전국적으로 통일된 입시 정책을 가지고 있다. 일원화되어 있고 일관성 있는 대학 입시는 고등학생들의 대학 입시 부담을 낮추고 예측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 입시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의 문제 이전에 국가가 대학, 특히 사립대학에 어느 정도 관여할 것인가의 문제부터 다루어야 하고 이는 재정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미국 대입의 다양성과 독일과 프랑스 대입의 통일성은 사립대학과 국공립대학의 차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사립대학들은 정부로부터의 재정 지원은 매우 열악한 데에 반해 규제는 많이 받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 입시도 마찬가지로 정부의 재정으로 운영되는 대학은 교육부의 방침을 따리고 재정지원을 받지 않는 대학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대학의 자율적인 입시든, 국가 차원의 방침이든 간에 대학입시가 정치적 싸움의 직격탄을 받거나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 교육적인 논의의 결과가 되어야 할 것이다. 현행 우리나라 대학 입시에서 대학 자율성이 결여된 것은 초창기에 대학들이 대학의 본질인 교육과 연구의 발전을 목적으로 한 입시에 힘쓰지 않고 자율성을 남용하여 부정입학 문제를 일으키고 사적인 이익을 취하려고 했었기 때문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둘째, 학생의 지적인 능력을 측정하는 고등학교 GPA와 내신, SAT와 수능을 비교해볼 수 있다. 대학에서 학력이 뛰어난 자를 선발하는 것은 타당하다. 입학시킨 학생이 중도 포기하지 않고 대학에서 배우는 내용을 이해하고 무사히 졸업할 수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국가 모두 학업 능력을 측정하는 다양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의 다양한 차이점들이 있다.
GPA와 내신의 가장 큰 차이점은 GPA는 절대평가인 데에 반해 내신은 상대평가라는 것이다. 내신 상대평가는 학생들을 소집단 안에서 제로섬 게임을 시키는 비교육적인 제도로, 전국단위 상대평가보다도 체감 경쟁 강도가 높고 학교 내에서의 협력적 인성의 형성을 방해시킨다(이범, 2020). 또한 학생이 어느 집단에 속해있느냐에 따라 성적이 다르게 나올 것이므로 불공정성을 야기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일부러 교육환경이 좋지 않은 학교로 전학을 가는 경우가 초래되기도 하는 것이다. GPA와 내신의 또 다른 차이는 과목 선택에 있다. GPA는 학생이 자신의 관심과 진로 방향에 따라 자율적으로, 혹은 교내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아 선택한 과목들이라면 내신 과목들은 학교에서 정해진 과목들이다. 과목 선택권이 학생에게 있는 게 아니라 학교에 있다. 2025년부터 전면 시행되는 고교학점제와 이에 따른 내신 상대평가가 무사히 시행될 수 있도록 잘 준비해야 할 것이다.
SAT와, SAT를 표방했다는 수능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 다양한 차이들이 있겠지만 크게 출제기관과 방식, 그리고 횟수의 차이를 꼽을 수 있다. SAT 문항의 출제와 관리는 ETS(Educational Testing Service)라는 외부 평가기관에서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 수능은 정부출연 기관에서 다루고 있으며 출제자와 검토자를 감금시킨 상태에서 문제를 출제하도록 하는 원시적이고 전근대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양질의 시험 문항의 출제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강승호, 2007). 이러한 문제제기가 된지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올해도 어김없이 출제 오류가 논란이 일어났다. 생명과학II 과목을 응시한 수험생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내일 수능 성적이 발표되는 시점에서 오늘 오류 여부가 판가름 난다고 한다(서울신문, 2021.12.09.보도).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차이는 SAT는 1년에 7회 시행되며 수험생들은 자신의 페이스에 맞추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횟수만큼 응시할 수 있는 반면 수능은 고등학교 재학 중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이다. 만약 그 기회에서 실패하면 '재수생'의 신분이 되어 독서실과 사교육기관에서 1년의 시간을 또 할애해야 한다. 그래서 수능은 자유롭게 자신의 개성을 계발해야 하는 소중한 청소년 시기를 억압과 긴장상태로 만드는 굉장한 고부담 시험이다.
셋째, 미국의 대학 선이수과목인 AP(Advanced Placement)와 우리나라의 이의 부재를 이야기할 수 있다. 이는 수능의 일회성과 상대평가와도 관련이 있다. 학생들의 다양성은 천차만별이기에 어떤 학생들에게는 수능은 매우 쉬운 시험이기도 하다. 1학년 때부터 이미 수능점수 90점 이상을 획득할 수 있는 학생들도 많다. 그 학생은 대학수학능력을 충분히 지녔다고 보고, 남은 2년간은 추가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그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1~2점이라도 더 올리기 위해 수능 보는 날까지 문제풀이를 반복해야 한다. 이는 한마디로 시간낭비가 아닐 수 없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들이 인원이 없어 힘을 잃어가는 가운데, 대학교육의 대상을 수직적으로 확장하여 주변의 뛰어난 고등학생들도 대학 전공과목들을 수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능시험의 성격이 바뀌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험의 질을 높여 일관성 있는 난이도를 유지하게끔 하여 수능 절대평가와 자격고사화가 가능해야 하며,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횟수만큼 시험을 치를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뛰어난 학생들이 수능일까지 시간낭비를 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넷째, 미국의 입시는 주어진 환경을 얼마나 활용하고 이에 도전해왔는지를 평가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3불 정책'의 일환인 고교등급제 금지(김천홍, 홍수진, 2018)로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달리 평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즉, 미국의 입시에서는 SAT점수가 비교적 낮고, 이수한 AP과목 수가 적더라도 해당 학생이 비교적 낙후된 교육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이 되면 선발하도록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국 고등학교 간의 차별을 두지 말도록 하는데 오히려 정당한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므로 이는 다시 고려해보아야 할 사항이다. 이는 차별과 평등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대학의 교육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학생의 주어진 환경을 고려하여 선발하면 대학이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로 구성될 수 있게끔 해준다. 출신 지역, 사회경제적 배경, 인종, 문화가 다양한 학생들을 선발하고 이들이 대학 내에서 함께 지내게 함으로써 학생들은 대학에서 학과공부를 할 뿐 아니라 서로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가치관, 의식, 태도를 이해하고 학습할 수 있게 되며 이는 사회 지도자의 양성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정진곤, 2005).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미국과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시험의 명칭이나 표면적인 것에 있어서만 유사성을 가질 뿐 실질적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다(정진곤, 2005). 앞에서 다 언급하지 못한 차이들도 매우 많이 있다. 미국의 대학 입시에서는 학업성적뿐 아니라 예체능 분야의 특기, 봉사활동 참여, 지역사회활동에서의 리더십도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는데 우리나라 입시에서는 이런 것이 어떻게 반영되고 고려되는지도 점검해보아야 한다. 또한 SAT와 수능에 대해서도 위에서는 시험 외적인 문제들만 언급했는데 문항의 유형 등 시험 내적인 문제들 또 다른 문제이다. 대학 입시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올바른 대학 입시는 초중고 시절의 삶을 발전적이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대학교육의 질도 높여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대학 입시는 학생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대학에 대해 오해하게도 만든다. 대학 입시에 대한 논의를 하느라 정작 대학 입학 이후의 교육에 대한 논의는 항상 뒷전이고 대학 입시에 지친 학생들은 대학 입학 이후에는 공부에 소홀해지기도 한다. 앞으로는 올바른 대학 입시가 이루어져서 초중고대학을 통틀어 다양한 인재들이 양성되어 조화로운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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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한국대학교육협의회(2021). 2024학년도 대학입학전형기본사항 발표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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